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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heritage

취향의 기원

editor 안미은 기자

입력 2016.10.18 15:01:57

상징하고 의미하고 기념한다. 주인의 취향을 고스란히 간직한 오래된 물건들.
취향의 기원
1 카메라 노출계
어렸을 적 아버지는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셨다. 아버지에게 사진관은 생계를 책임지는 엄숙한 곳이었지만, 내겐 그저 신나는 놀이터였다. 방과 후엔 집에 책가방을 내려놓지도 않고 사진관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촬영을 준비할 때면 노출계에서 ‘삑삑’ 하는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만 들으면 마음이 들뜨고 설레었다. 사진을 하겠다고 가족들에게 공표한 날, 아버지가 건네주신 거다. 돈을 벌고 유명세를 타기 전까지 거의 모든 사진을 이 노출계로 촬영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촬영을 나갈 때면 서브로 갖고 다닌다. 촬영 목적보다는 일종의 부적 같은 거다. 안주영(포토그래퍼)

2 니콘 FM2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카메라를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40년 넘게 충무로에서 현상소를 하고 계신다. 아버지의 손때가 가득 묻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대학 다닐 때까지 모든 촬영을 이 카메라로 했다. 빛이 없는 검은 암실에서 현상할 때도 꿈은 반짝반짝 빛났다. 지금은 아버지보다 내 손때가 훨씬 더 많이 묻었다. 필름 카메라에서 DSLR로 시대가 바뀌면서 자주 쓰진 않지만 여행 갈 때 한 번씩 들고 가서 촬영한다. 확실히 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은 다르다. 이은복(포토그래퍼)

3 브라운 SK4 1956
지난 여름 독일을 여행했다. 어느 빈티지 숍을 구경하고 있는데, 디터 람스의 오디오가 눈에 들어왔다. 1955년 독일 가전 회사 브라운에 입사해 그 이듬해 만들어 보인 모델! 파격적인 투명 아크릴 덮개로 ‘백설공주의 관’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아이폰을 디자인한 수석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가 찬사를 보낸 그 디터 람스의 처녀작이다. 바로 구입해 항공 운송으로 받았다. 라디오와 턴테이블, 앰프, 스피커 모두 A급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유럽과 한국의 전압, 주파수에 차이가 있어 턴테이블 속도가 맞지 않을 뿐. 가급적이면 인위적인 가공 없이 해결하도록 방법을 모색 중이다. 이쯤에서 고백하건대 난 테크 ‘덕후’는 아니다. 테크의 세계엔 진짜 덕후들이 많아서 이 정도 가지고 까불면 혼난다. 최수형(바버샵 마케팅 과장)

4 롤렉스 시계
외할아버지랑 친구처럼 친했다. 세상엔 나이를 초월한 우정도 있다. 그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물려준 시계다. 실버와 골드 컬러 체인이 딱 중년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이다. 고등학생 여자애가 차기엔 너무 무지막지하게 크고 비쌌다. 그래도 할아버지의 부재를 달래기 위해 열심히 차고 다녔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가 됐다.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친구 같기도 하고. 정지윤(신세계백화점 브랜드전략팀 대리)




취향의 기원
5 앤 드뮐미스터 워커
10대 때부터 친하게 지낸 동네 친구가 있다. 우린 함께 패션을 논했고, 리미티드 에디션을 모으며 기뻐했다. 친구가 유학을 가는 바람에 지금은 자주 못 만난다. 재작년쯤일까. 앤 드뮐미스터의 부츠를 사려고 했는데 모두 품절이었다. 해외에서도 맞는 사이즈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국에서 신발을 하나 샀는데, 사이즈가 맞지 않아 날 주겠다는 거다. 받아보니 내가 애타게 찾던 그 부츠였다. 운명이다 싶었다. 스웨이드 소재라 날씨가 궂지 않은 날 신어야지 하고 모셔뒀는데, 도저히 신을 수가 없었다. 지금껏 딱 한 번 신었다. 류시혁(패션 스타일리스트)



6 벙거지 모자
이 모자를 보면 아직도 처음 섰던 쇼의 긴장감이 되살아난다. 브랜드 쇼였는데, 무대에 오르기 전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심장이 제멋대로 요동쳤다. 그렇게까지 떨어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래도 성실히 연습한 덕분인지 실수 없이 쇼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끝났다는 안도감에 숨을 내쉬고 있는데 백스테이지로 디자이너 선생님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우석이 잘했다”며 쓰고 있던 벙거지 모자를 내게 씌워주셨다. 웬일인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게 또 그렇게 떨리는 날이 올까? 변우석(모델)

7 헤어밴드
작년 가을에 엄마가 선물이라며 쇼핑백을 건넸다. 열어보니 현란한 패턴의 명품 스카프가 있었다. 이 화려한 걸 어떻게 하고 다닐까 싶었는데, 보드라운 실크 소재에 자꾸 손이 갔다. 가방에 묶어가지고 다녔다. 여름에 더울 땐 풀어서 머리를 묶거나 반다나로 활용하기도하고. 지금은 색이 바래 수납장에 보관하고 있다. 길을 걷다가도 실크 스카프를 보면 하나씩 사게 되는데, 내게 스카프 컬렉터 기질이 있을 줄이야…. 김용지(모델)

8 서스펜더 앞치마

매일 몇 시간씩 타투를 그리다 보면 옷이 남아날 수가 없다. 타투에 사용하는 잉크가 묻으면 아무리 삶고 빨고 치대도 지워지지 않는다. 앞치마는 필요한데, 목에 두르고 싶진 않았다. 고개를 숙여 오래 작업하다 보면 가만히 있어도 어깨와 목이 쿡쿡 쑤시니까. 그래서 생각해낸 게 서스펜더 앞치마다. 철 지난 서스펜더와 벨트 장식을 활용해 어깨에 걸 수 있도록 직접 디자인했다. 가죽과 데님 소재도 철저히 취향대로 골랐다. 군데군데 묻은 잉크 자국도 근사해 보인다. 난도(타투이스트)

9 듄펄트 반지
브랜드 론칭을 앞두고 주얼리 전시회에 참여하게 됐다. 사람마다 좋아하고 어울리는 색이 따로 있는데 주얼리는 유독 실버, 골드 등 컬러가 제한적이지 않나. 차가운 금속에 색을 입혀 좀 더 자유롭고 유니크한 감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때 남녀 페어로 제작한 반지가 지금 전개하고 있는 주얼리 브랜드 ‘아스’의 기원이 됐다. 오른손 검지에 항상 착용하고 다닌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뜻으로. 권재이(아스 주얼리 디자이너)

사진 조영철 기자 홍중식 기자 REX
사진제공 롤렉스 에르메스
디자인 이지은




여성동아 2016년 10월 6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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