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엘 킴벡
입력 2019.06.24 17:00:01

명품 스니커즈 시장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낸 브랜드는 발렌티노다. 2007년 창업자 발렌티노 가라바니 은퇴 이후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현재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피에르파올로 피촐리가 브랜드를 이어받으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대중이 발렌티노의 의상을 데일리 룩으로 소화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럭셔리한 파티에나 어울릴 법했던 드레시한 발렌티노의 의상을 기존의 화려함을 살리면서 일상에서도 돋보이게 입을 수 있도록 변모시킨 것이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락스터드 스니커즈’다. 남성적 이미지가 강한 카무플라주 프린트에 레드와 핑크, 형광색 등 과감한 컬러를 적용해 패션 피플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은 것이다. 여기에 테니스화에서 영감을 얻은 아디다스의 전설적인 스테디셀러 슈즈 ‘스탠스미스’의 디자인을 차용해 신발 끈이 보이지 않는 디자인으로 변형시킨 오픈 스니커즈까지 인기를 끌며 스니커즈는 발렌티노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발렌티노의 인기를 이어받은 후발 주자는 발렌시아가이다. 베트멍을 통해 스트리트 스타일을 구조적인 테일러링으로 풀어내며 일약 스타 디자이너 반열에 오른 뎀나 바잘리아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하우스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후 내놓은 ‘트리플S’는 원래 발 사이즈를 가늠치 못하게 하는 청키(Chunky·두툼한, 땅딸막한) 스니커즈. 소위 ‘어글리 슈즈’로, 처음 런웨이에 등장했을 때부터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정식 발매까지 6개월이나 패션 피플들의 몸을 달게 만들었다.
2017년 첫 번째 시즌의 트리플S는 ‘Made in Italy’로, 디자인은 스포츠 브랜드의 스니커즈를 연상하게 했지만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명품이어서인지 무게가 엄청났다. 6개월이나 기다려서 트리플S 신상을 ‘득템’한 패피들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천근만근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고충을 수렴해 두 번째 시즌부터는 스포츠 브랜드의 스니커즈를 제작한 경험이 풍부한 중국 공장에서 만들기 시작해 무게를 3분의 1 이상 줄였다. 하지만 ‘폼생폼사’ 패션 월드에서 ‘Made in Italy’와 ‘Made in China’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기에 이것이 오히려 불만의 요소가 되기도 했다. 발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무거워도 괜찮으니 다시 이탈리아에서 생산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이와 동시에 트리플S의 첫 시즌 상품이 중고 명품 시장에서 희귀 아이템으로 대접받으며 고가에 거래되는 기현상까지 발생했다.
명품 마니아부터 중국의 10대까지 열광하는 어글리 슈즈

럭셔리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어글리 슈즈를 내놓고 있다. 가운데 사진은 중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스포츠 브랜드 휠라의 어글리 슈즈.

과연 청키 스니커즈의 인기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정장이든 헐렁한 티셔츠든 무릎이 드러나는 ‘찢청’이든 어떤 디자인의 의상과도 궁합이 잘 맞기에, 모던한 테일러링과 경직된 듯 선이 살아 있는 모드가 다시 한 번 트렌드의 중심으로 회귀하기 전까지 청키 스니커즈의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엘 킴벡의 칼레이도스코프

뉴욕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네스 팰트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작업해왔다. 현재 브랜드 컨설팅 및 광고 에이전시 ‘STUDIO HANDSOME’을 이끌고 있다.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REX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베자 베트멍 아디다스
여성동아 2019년 6월 66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