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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집으로 가는 길’ 실제 주인공 장미정 고통과 회한의 기억

“두 딸에게 용서받기 위해 타인에 대한 원망 내려놓으려 해요”

글·김유림 기자|사진·조영철 기자, 다세포클럽 제공

입력 2014.02.14 10:28:00

잘못된 선택이 살을 도려내는 고통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지인의 거짓말에 속아 졸지에 마약 사범이 돼 대서양 외딴섬에서 수감 생활을 한 주부 장미정 씨.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서 다 쏟아내지 못한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 실제 주인공 장미정 고통과 회한의 기억
기온이 영하 10℃로 뚝 떨어진 날 두꺼운 패딩 점퍼에 웜 부츠, 야구 모자로 완전무장한 장미정(44) 씨를 만났다. 모자의 용도는 따로 있는 듯 보였다. 인터뷰에 앞서 얼굴은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장씨는 최근 개봉한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의 실제 주인공이자, 최근 발간된 수필집 ‘잃어버린 날들-대서양 외딴섬 감옥에서 보낸 756일간의 기록(이하 ‘잃어버린 날들’)’의 저자다. 장씨는 2004년 지인의 말에 속아 17kg에 달하는 코카인을 운반하다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체포돼 2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그에게 먼저 책 발간 소감을 물었다.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지 물었을 뿐인데 그의 눈에 금세 물이 차올랐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지 8년이나 지났지만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는 듯 보였다.

“울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고 왔는데 자꾸 눈물이 나네요. 남편, 아이와 떨어져 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분노와 원망, 자책, 후회 등 온갖 감정들이 휘몰아쳐요. 당시 네 살배기이던 어린 딸을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를 떠올리면 정말 지옥이 따로 없죠. 책은 큰딸한테 설 선물로 주려고 아직 안 보여줬어요. 백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책을 보면 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는 어린 딸을 키우고 성실한 남편과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는 평범한 주부였다. 곧 입주 예정인 새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구경하며 행복에 젖어 있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불행이 날아들었다. 남편이 후배 빚보증을 잘못 선 바람에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날린 것. 아늑한 둥지를 떠나 허름한 옥탑방에 짐을 푼 장씨 부부는 가난과 후배에 대한 원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가족이 있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코카인 17kg 운반, 꿈에도 몰랐던 위험한 제안



영화 ‘집으로 가는 길’ 실제 주인공 장미정 고통과 회한의 기억
딸이 36개월에 접어들 무렵, 빚은 거의 다 갚았지만 집세를 8개월이나 밀려 급기야 집주인으로부터 방을 빼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 무렵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남편 지인의 후배가 부부에게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을 했다. 남아메리카 수리남에서 금광 사업을 한다던 그는 금광에서 캔 원석을 운반해주면 그 대가로 3백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지만 혼자서 옮기면 비싼 세금을 물어야 해서 여러 명을 동원해 짐을 나눠 옮긴다며 이유도 댔다. 정씨 부부는 “혹시 불법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했다.

결국 장씨는 2004년 10월 21일 자신의 생일에 프랑스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곳에서 가이아나로, 다시 수리남으로 가는 긴 여정이었다. 처음에는 남편도 같이 가기로 돼 있었지만 갑자기 후배는 말을 바꿔 일단 여자들이 먼저 가는 게 좋겠다며 장씨에게만 비행기 티켓을 건넸다. 결국 그는 일주일이 넘는 고단한 여정 끝에 계획대로 원석이 든 가방을 갖고 다시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커다란 가방은 이내 경찰 눈에 띄었고 검색대에서 나온 건 원석이 아닌 엄청난 양의 코카인이었다.

“전도연 씨도 처음 영화 시나리오를 받고 제가 정말 그 사실을 몰랐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하던데, 정말 몰랐어요.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았겠죠. 10년 동안 알고 지낸 동생이 3백만원을 주면서 부탁하는데 의심하지 않았던 게 그토록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는지…. 제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알면서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그 자리에서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 장씨는 바로 유치장으로 이송됐고 사흘 뒤 교도소행이 결정됐다. 이렇게 그는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세계로 들어와버렸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만큼 힘들었던 게 추위와 배고픔이었어요. 프랑스 교도소는 대부분 민간이 운영하기 때문에 세 끼 식사 외에 모든 생필품을 사서 써야 하는데, 저는 마약 사범이란 이유로 남편이 부치는 돈을 일절 받을 수 없었어요. 교도소 내에서 CD를 종이 봉투 안에 넣는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밤이 되면 어김없이 교도관이 나누어주는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었죠.”

영화 ‘집으로 가는 길’ 실제 주인공 장미정 고통과 회한의 기억

장미정 씨는 앞으로 연고도 없이 힘겹게 수감 생활을 하는 재소자들을 위해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그의 석방을 위해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검찰청 등 온갖 곳을 쫓아다녔지만 두 차례 대사관 직원이 면회 온 것 말고는 진전이 없었다. 파리 교도소에 수감된 지 3개월이 흘렀을 무렵 그는 갑자기 대서양에 위치한 프랑스령 섬 마르티니크 뒤코스 교도소로 이송됐다. 코카인 운반과 관련된 일이 가이아나에서 일어났고, 가이아나에서 일어난 사건은 마르티니크에서 재판을 하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파리에서보다 더욱 끔찍하고 처참한 날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물론이고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와 더욱 극심해진 배고픔, 무엇보다도 하염없이 재판을 기다려야하는 상황이 그를 점점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건 사건과 관련해 장씨는 일종의 운반책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서류가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프랑스 법정에서는 한국대사관에 공식 서류를 요청하고 수사 협조문을 보냈다고 했고, 남편도 편지에다 검찰청에서 신속하게 서류를 보낼 것이란 답을 들었다고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결국 그는 1년 4개월의 형을 살고 2006년 2월 임시 석방됐지만 재판을 받지 못해 마르티니크 법원 관할 아파트에 머물며 보호감찰을 받기 시작했다. 그 무렵 장씨의 사연이 KBS ‘추적 60분’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고 그를 돕자는 취지의 인터넷 카페가 개설되면서 보호감찰 8개월 만에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재판 결과는 징역 1년. 결국 장씨는 자신이 저지른 죗값의 두 배를 치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처음 아이 얼굴을 보는 순간 프랑스에 있으면서 세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이렇게 예쁜 새끼를 놔두고 그런 나쁜 생각을 했다는 게, 아이한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아이가 저를 보고 어색하게 뒷걸음질 치거나 잘 놀다가도 한번씩 ‘옛날 엄마 맞아?’ 하고 물을 땐 가슴이 미어졌지만 그래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했어요.”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이 실제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장씨의 남편이 너무 무능력하게 그려졌다는 점이다. 현재 유흥업소에 주류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건 물론이고 아르바이트로 대리운전을 할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사랑한다는 말도 잘 하지 않는 무뚝뚝한 성격이었지만 장씨가 프랑스에 다녀온 뒤로는 애정 표현도 잘한다고.

장씨가 프랑스로 떠날 때 네 살이던 딸은 어느덧 어엿한 중학생이 됐다. 프랑스에서 돌아와 낳은 둘째 딸도 올해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하지만 현재 배정된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에 다닐 예정이다.

“며칠 전 둘째가 유치원에 다녀와서는 ‘엄마 감옥 다녀왔어?’ 하고 묻더라고요. 엄마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아이들이 전해줬나 봐요. 순간 가슴이 툭 내려앉더군요. 결국 이사를 하기로 했어요. 지금 형편에 맞추면 좀 더 시골로 가야 할 것 같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곳이라면요.”

장미정 씨는 요즘도 가끔 수면제를 복용한다. 가족들은 제발 먹지 말라고 성화지만 교도소에 있는 동안 워낙 많은 양의 수면제를 복용해서인지 쉽게 끊지 못하고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까 잊어버리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고 저 역시 그러려고 노력하지만 쉽지가 않아요.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너무 생생하거든요. 용서라는 단어를 언제쯤 편하게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이는 물론이고 정부의 미온적이었던 태도도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어요.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들에 대한 원망과 증오를 내려놓을 때 제 딸들도 죄인인 엄마를 용서할 것 같다는 거예요.”

올해 장씨의 목표는 한 발 한 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프랑스에 다녀온 뒤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두 아이와 함께 미술관, 놀이공원도 다니면서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한다.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자신처럼 힘겹게 수감 생활을 하는 재소자들을 위해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볼 계획이다. 그는 “얼마 안 되더라도 매달 영치금을 넣어주거나 정성스럽게 쓴 손 편지로 그들에게 마음의 위로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동아 2014년 2월 6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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