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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 강타한 싸이 B급 인생 스토리

“지치면 지는 겁니다, 미쳐야 이기는 겁니다”

글 | 권이지 객원기자 사진 | 문형일 기자, YG엔터테인먼트, 싸이 미투데이

2012. 09. 19

한 달 만에 유튜브 조회수 4천만 건. 대한민국 국민이 한 번씩은 클릭해 봤을 만큼의 수치다. 길을 걷다 이 노래가 나오지 않는 곳이 없고, 세계 언론도 앞다퉈 ‘강남스타일’의 인기 비결을 분석하고 있다. 잘 노는 싸이가 드디어 큰일을 냈다.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 강타한 싸이 B급 인생 스토리


7월 중순 발매된 싸이(35·본명 박재상)의 6집 앨범 ‘싸이 6甲-파트1’ 타이틀곡 ‘강남스타일’은 촌스러운 말춤과 중독성 강한 후렴구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동영상 전문 사이트 ‘유튜브’의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8월 중순 4천만 건을 넘어섰고 미국 CNN, ABC 방송, 시사주간지 타임 등도 연일 ‘강남스타일’을 핫이슈로 다루고 있다. ‘대구스타일’ ‘홍대스타일’ ‘기숙사스타일’ ‘캐나다스타일’ ‘배트맨스타일’까지 패러디도 넘쳐난다.
8월 14일 오후 7시 서울 강남 M스테이지에서 열린 싸이의 게릴라 콘서트 현장은 ‘강남스타일’의 열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 그는 “‘강남스타일’을 부른 제가 ‘강남’에서 콘서트를 여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고 게릴라 콘서트를 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오후 6시 무렵 현장은 이미 발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7시가 되자 현장은 통제 불능. 모두가 “싸이”를 외쳐댔다. 무대에 등장한 그가 ‘강남스타일’을 부르자 빙 둘러싼 사람들은 “오! 오빤 강남스타일!”을 연호하면서 한쪽 팔을 휘두르며 말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이돌 틈에서 둥글 넓적 싸이가 핫해진 이유
관중의 반응은 광란에 가까웠다. 싸이는 “진정 즐길 줄 아는 여러분이 이 나라의 챔피언”이라며 ‘강남스타일’에 이어 자신의 대표곡 ‘챔피언’을 불렀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떼창’은 전율 수준이었다. 공연이 끝날 무렵 강남 하늘을 지나던 비구름이 소나기를 뿌렸다. 하늘마저도 그의 깜짝 공연에 ‘극적 효과’를 연출해 준 셈이다. 굵은 빗방울 아래서도 사람들은 우산 하나 펼치지 않고 리듬에 몸을 맡겼다.
이에 앞서 8월 11일에 열린 그의 단독 콘서트 ‘홀랑적쇼’도 3만 석이 매진됐다. 공연이 끝난 뒤 “멋있다! 싸이 최고!”를 외치는 사람들. 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아이 둘 딸린 유부남 싸이에게 사람들은 왜 열광하는 걸까.
대한민국 가요계, 아니 K팝은 아이돌 일색이다. 하지만 2012년 여름의 판도는 달랐다.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한 달이 넘도록 음원 차트를 지배한 가수는 싸이였다. 코믹한 설정이 가득한 뮤직비디오, 재미있는 안무, 중독성 강한 후렴구, 솔직한 가사로 무장한 싸이가 등장하자 아이돌 그룹도 길을 내주었다. 예쁘고 잘생긴 아이돌이 못난 싸이에게 한 방 먹은 것이다.
미국 ‘빌보드닷컴’ ‘야후보이스’ 등에 팝 기사를 기고하는 제프 벤자민은 한 매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음악적으로만 본다면 ‘강남스타일’은 미국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싸이는 훌륭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코믹한 요소들을 포함시켰다. 여기에 미국인들이 재미를 느끼고 있다. 마니아층에 머물고 있는 K팝을 대중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본다”고 평했다.
싸이는 12년차 가수다. ‘싸이코(Psycho·정신병 환자, 비정상적인 사람)’라는 단어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그는 2001년 재미있고 독특한 가사와 춤을 겸비한 1집 ‘Psy From The Psycho World’ 타이틀곡 ‘새’와 함께 등장했다. 얼굴은 연예인과는 거리가 멀지만 마지막 가사 “나 완전히 새 됐어”에 맞춰 추는 새 춤, 그러니까 다리를 꼬고 서서 양 팔을 꺾어 들고 허리를 굽히고 시선은 앞을 바라보는 포즈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를 끌었다. 가사는 또 어떤가. 떠난 여자에게 “십원짜리야!” 라고 외쳐 통쾌함을 선사했다.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 강타한 싸이 B급 인생 스토리


알고 보면 완벽한 강남 남자 싸이



그 후 내놓은 ‘챔피언’ ‘연예인’ ‘낙원’ 등은 사람들을 신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작 가수로서 싸이의 활동 기간은 길지 않다. 5집 ‘싸이파이브’ 수록곡인 ‘싸군’에서 그는 “대마 1년, 자숙 1년, 대체복무 3년, 재판 1년, 현역 2년, 합이 8년. 데뷔 10년에 활동 2년”이라 밝히며 굴곡 많고 말 많은 자신의 인생을 축약해 노랫말을 썼다.
주류 문화에 맞서 마이너의 정서를 대변하는 문화를 ‘B급 문화’라고 부른다. 고상한 말과 노래 대신 B급 음악은 거친 언어로 욕망을 충실하게 노래한다. 싸이는 사회가 멋대로 지정해버린 ‘루저’들과 함께하며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강남 8학군 출신’ ‘해외 유학파’ ‘사업가 아버지’…. 이는 모두 싸이,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 박재상을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사실 그를 둘러싼 환경은 B급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의 노른자위 강남 출신 박재상은 비주얼만 빼면 완벽한 ‘강남스타일’이다. 아버지인 박원호(62) 씨는 반도체 검사장비 전문업체인 디아이의 대표다. 어머니는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누나 박재은(38) 씨는 프랑스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에서 요리와 제과 부문을 수료한 뒤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싸이의 아내 유혜연 씨는 첼리스트다. 싸이는 미국 버클리 음대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 강타한 싸이 B급 인생 스토리

1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열린 싸이의 게릴라 콘서트를 찾은 시민들. 2 싸이가 직접 자신의 SNS에 음원 차트를 올킬했다며 캡처해 올린 화면. 3 싸이의 단독 콘서트 ‘홀랑적쇼’를 찾은 3만 관객. 이날 조명 불꽃이 튀어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 강타한 싸이 B급 인생 스토리


그럼에도 그가 ‘B급 문화의 선봉장’이 된 것은 스스로 B급을 콘셉트로 한 음악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의 과거 노래들을 들어보면 ‘강남스타일’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곡이 아니다. 데뷔곡인 ‘새’에서 욕망을 노래했고, ‘챔피언’ ‘연예인’ ‘위 아더 원’ ‘롸잇 나우’처럼 춤추며 뛰어놀기 좋은 곡들을 잇따라 선보였다. 가사는 단순해 외우기도 부르기도 쉽다. 그가 전면에 내세우는 곡들은 대부분 앞서 말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번 곡에서는 일렉트로닉 열풍에 충실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최근 트렌드가 그랬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춤을 위시한 안무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고급문화라 일컫는 ‘강남스타일’을 촌스럽게 비틀었다. 그는 텐아시아와 ABC뉴스 공동 인터뷰에서 “강남은 서울에서 가장 핫한 곳 아닌가. 그런데 사실 이 뮤직비디오는 핫하지 않은 사람이 핫하지 않은 춤을 추면서 계속 그게 핫한 곳의 스타일이라고 우기는 거다. 가끔 보면 강남스타일이 전혀 아닌 사람들이 강남스타일이라고 우기는 게 웃기니까, 그거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일종의 비꼬기다. 내가 강남에서 계속 살았지만 내 비주얼이 강남 느낌은 아니니까 더 재미있겠다 싶었고, 그게 이 곡의 포인트다”라고 ‘강남스타일’을 만들게 된 배경을 밝혔다. 그는 남들이 동경하는 강남을 비틀었고, 대중은 웃었다. 마치 탈춤이 양반 문화를 풍자하는 것처럼 이 노래를 통해 마음껏 조롱하며 웃을 수 있다.
싸이는 자신을 가두던 것들에서 탈피하려 애썼다. 그럴싸한 직업을 택하는 대신 마음껏 놀았다. 삶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를 제도권 킬러라고 말하며 ‘욕망’에 충실했다. 가업을 물려받길 원하는 부모와 가수 활동을 계속하려는 아들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다. 원리원칙주의자인 아버지는 ‘딴따라’인 아들을 달갑게 보지 않았다.
유학 기간 미국에서 ‘못된 것(대마초)’도 함께 배워 2001년 ‘마약사범’이란 타이틀도 추가했다. 마약은 사회의 악이었으나 대중의 반응은 ‘싸이니까…’ 정도에서 그쳤다. 이미 ‘노는 놈’이었으니 놀랄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대마초 사건 후에도 바르고 착한 삶 대신 자신의 길을 갔다. 좋은 게 좋은 거고, 그 좋은 걸 위해 살았다. 그에게 욕구를 억누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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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의 연예인!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 강타한 싸이 B급 인생 스토리


착하지는 않지만 솔직한 싸이는 병역특례요원으로 근무할 당시 지정 업무에 종사하지 않아 병무청에 의해 현역 입소를 하게 됐지만 도피하지 않았다. 2007년 12월 17일, 싸이는 “저 답지 못하게 구질구질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서른의 나이로 논산훈련소에 재입소했다. 현역 출신 예비역들이 ‘군대 다시 가는 꿈’을 최고의 악몽으로 치는 만큼 남자들에게 재입소란 끔찍한 단어였지만, 그는 다시 군복을 입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재기의 기회로 삼았다.
두 번째 군 생활로 자신감을 잃었던 싸이는 상병이 된 후 위문공연을 다니면서 젊은이들의 반응을 즉각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제대 이후 2010년 10월 싸이는 양현석이 이끄는 YG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다. 결혼 이후 싸이코 ‘싸이’보다 인간 박재상의 모습이 음악에 묻어나는 것을 우려한 양현석은 이번 6집 앨범 제작 전 소속사 ‘아티스트’인 싸이에게 주문했다. 다시 ‘양(아치)스러운’ 싸이로 되돌아가라는 것. 싸이다운 음악은 바로 양스러운 음악이었다. 결국 이 주문은 ‘강남스타일’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 강타한 싸이 B급 인생 스토리


‘감’을 잃지 않기 위해 클럽을 돌아다니는게 일인 싸이를 아내 유혜연 씨도 십분 이해해줬다. 단, 집에서만큼은 싸이가 아닌 박재상으로 돌아와줄 것을 부탁했다. 싸이는 SBS ‘힐링캠프’를 통해 두 딸의 아빠로서 소회를 밝혔다. “가장이라는 타이틀은 내게 참 안 어울리는 것 같다”면서도 한창 재롱이 늘어가는 쌍둥이 딸들을 보는 재미를 털어놨다. 그는 “작업실 옆방이 아이들 방이다. 두 딸이 자고 있을 때 가끔 과격하거나 난폭한 곡이 떠오를 때면 ‘아이들이 들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멈칫하게 된다”며 자녀에 대한 걱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지치면 지는 겁니다, 미쳐야 이기는 겁니다!”
게릴라 콘서트에서 마지막 곡을 부르기 전 싸이가 현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그의 말은 또 다른 울림이 돼 귓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연달아 터진 여러 가지 사건들로 지칠 법해도 지쳐 쓰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미친놈 소리를 들으며 ‘챔피언’이 됐다.
싸이는 놀 줄 아는 남자다. 그리고 노는 판을 만든다. ‘너희들 여기서 놀아라’ 해놓고 관조자에 머무는 게 아니라 함께 미친 듯 논다. 혼자 노는 건 한두 번은 할 만하지만 역시 노는 건 같이 놀아야 제 맛이다. 그는 그래서 대한민국 최고의 댄스가수고 세계의 댄스가수다.

‘강남스타일’ 인기 이끈 ‘말춤’은 어떻게 탄생했나
‘강남스타일’ 인기의 핵심인 ‘말춤’은 유명 안무가들에게 상금을 걸고 공모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유명 안무가들, 댄스팀 등에게 노래에 어울릴 만한 ‘재미있는 춤동작’을 만들도록 요청했고, 그중 ‘말춤’을 선택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안무를 맡은 이주선 단장은 “싸이가 2년 만에 컴백해서 부담이 많았는데, 여러 안무들 중 말춤은 보자마자 한 번에 너무 웃기다며 ‘OK’ 사인을 냈다. 진지하게 안무를 짠 건데 웃겨서 좋다고 해버린 거다”라며 안무 선택 과정에서 뒷이야기를 밝혔다. 1980년대 중후반 나이트클럽에서 유행하던 춤인 ‘말춤’은 양 팔을 앞으로 내밀고 두 손목을 포갠 뒤 방방 뛰며 채찍을 휘두르는 등 마치 말을 타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30~40대에게는 추억을 선물하는 춤인 것. 여성 댄서의 다리 사이로 남성 댄서가 기어 나오는 등의 섹시한 동작도 재미있다.

뮤직비디오 빛낸 카메오 열전
유재석 | 싸이와 그의 인연은 지난해 여름 MBC ‘무한도전-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를 통해 시작됐다. 두 사람은 짝을 이루진 않았지만 미션을 소화하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싸이가 직접 유재석에게 출연을 부탁했고, 유재석이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고.
노홍철 | 엘리베이터에서 ‘저질댄스’를 추며 등장해 웃음을 안겨준 노홍철은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유재석을 응원하러 촬영장에 왔다가 졸지에 놀러왔던 복장 그대로 출연하게 됐다. 두 사람은 ‘철싸’란 이름의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흔들어주세요’를 함께 부른 인연이 있다.
현아 | 연결고리가 전혀 없어 가장 놀라운 인연! 걸그룹 포미닛의 현아는 무작정 연락을 해 온 싸이의 부탁으로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게 됐다. 싸이는 이메일로 이번 뮤직비디오의 상대역을 해줬으면 좋겠고, 같이 말춤을 췄으면 좋겠다고 자료와 음악을 함께 보냈고, 이를 본 현아가 재미있다며 흔쾌히 출연을 수락했다. 바쁜 와중에도 3일을 할애해 ‘강남스타일’뿐 아니라 여성 버전인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해서 싸이를 감동시켰다.

뮤직비디오 만든 조수현 감독은 누구?
소녀시대 ‘런 데빌 런’ 원더걸스 ‘비 마이 베이비’ 샤이니 ‘셜록’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맡아 연출한 조수현 감독은 음악방송 PD 출신으로 강렬한 색채와 세련된 영상미로 유명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역시 그의 작품. 싸이와의 인연은 2001년 1집 앨범의 노래 ‘끝’ 뮤직비디오를 함께 작업하면서 시작됐다.
이번 뮤직비디오 콘셉트는 싸이가 직접 준비했다. ‘한심하고 어이없는 행동들’ ‘세상의 지루한 관습과 일상에서 벗어난 유쾌한 일탈’ 등을 표현할 20가지 넘는 에피소드들을 머릿속에 담아 조수현 감독을 찾았고, 조 감독과 상의 끝에 이를 영상으로 뽑아낸 것. 뮤직비디오의 최종 편집은 양현석 사장이 직접 맡았다. 두 대가의 손에서 세계적인 신드롬을 이끌어 낸 뮤직비디오가 탄생한 셈. 조 감독은 현재 각종 매체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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