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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합창단 ‘꿀포츠’ 벌 치는 방랑 성악가 김성록이 사는 법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이기욱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KBS방송 캡처, 노을농장 홈페이지

입력 2012.09.18 14:39:00

지난해 여름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을 챙겨 봤다면 이 사람을 기억할 것이다.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김성록 씨. 물 좋고 공기 맑은 경북 영양 수하계곡에서 그를 만났다.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자연인으로 살아가던 그에게 욕심이 생겼다는데….
청춘합창단 ‘꿀포츠’ 벌 치는 방랑 성악가 김성록이 사는 법


지난해 7월 KBS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 편에서 ‘꿀포츠’라는 별명을 얻으며 가장 핫한 인물로 떠오른 김성록(55) 씨. 청춘합창단 편 방송이 한창일 때 그는 인터뷰를 거절하며 자신을 ‘괴상한 인간’이라고 칭했다. 다음을 기약하자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아내를 고난과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고픈 무능한 남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다. 이후에도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얼마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였다. “언제 뵐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큰비가 온 뒤에 내려오면 풍경이 좋을 것”이라며 도인처럼 말했다. 고백하자면 기자는 주말 내내 전국에 비가 내리기를 바라며 마음속 ‘기우제’를 지냈다. 주말 내내 내린 비와 함께 그에게 연락이 왔다. 서울에서 꼬박 6시간을 달린 끝에 도착한 경북 영양 수하계곡에서 아내와 벌 치고 꿀 뜨는 방랑 성악가 김성록을 만날 수 있었다.

놀팜, 놀맘으로 불리는 김씨 부부의 노을농장
내비게이션을 따라 도착한 곳에는 천혜의 자연이 펼쳐져 있었다. 집 앞에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있는 배산임수 지형에 너와집처럼 옆으로 넓적한 형태의 돌집이 있었다. 김성록·유희걸(52) 부부가 16년째 짓고 있는 집이다. 이곳저곳 물이 새고 울퉁불퉁한 흙바닥이 드러난 것이 여전히 미완성이지만 떠돌이 생활을 하는 부부에게는 ‘휴식처’이자 ‘소풍 장소’다. 부부가 키우는 큼직한 그레이트 피레니즈 솔이는 김씨의 말에 의하면 “멍청할 정도로 순해서 좋아하는” 친구다. 털갈이가 한창이라 풀밭에 털뭉치가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김씨는 멀리서 온 기자를 포옹으로 반겼다. 집 안에는 젊은 시절 공연 사진과 악보들이 놓여 있었다. 냉방기기 하나 없는 집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기자에게 그는 시원한 아카시아 꿀물을 따라 건넸다.
“가장 최근에 욕지도 공연을 갔다 왔어요. 욕지도에 사는 팬 한 분이 있는데 그림자처럼 말도 없이 전국에서 열리는 내 모든 공연을 거의 다 따라왔거든요. 그분이 멀리 사니까 보답 차원에서라도 꼭 한번 찾아가야겠다 싶었어요.”
지난해 그의 인기는 ‘신드롬’ 수준이었다. 평범한 ‘촌로’인 줄 알았는데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자마자 폭발적인 성량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모습에 ‘한국의 폴포츠’라는 별명이 붙었다. 팬 카페도 생겼다. 회원 수 4천5백여 명의 다음 카페 ‘꿀포츠 김성록’은 그와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김씨는 ‘놀팜’, 아내 유씨는 ‘놀맘’으로 불린다. 부부가 운영하는 벌꿀 농장이 ‘노을농장’이기 때문이다. 팬 카페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질 때면 일일이 안아주느라 시간이 오래 걸릴 정도로 잔정도 많다.
방송에서 시니컬한 말투와 포커페이스, 반골 기질로 ‘남자의 자격’ 멤버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프로그램을 버라이어티하게 만든 그지만 막상 마주하니 유쾌하고 해맑기 그지없다.
“청춘합창단에 출연해서 인기를 얻자 주변에서 ‘성공했다’ ‘빛을 봤다’고 해주는데, 이미 사회적인 걸 버리고 자연을 택했을 때부터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이곳으로 내려올 당시만 해도 귀촌, 귀농 개념이 없었고, 사람들이 다들 서울로, 도시로 갈 때였으니까요. 그때 들은 말이 ‘용기 있다’ ‘제정신이 아니다’ 두 가지였어요. 이제야 성공했다고 해주는데 반대로 난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건강을 잃었거든.”
1981년 서울대 음대에 들어간 김성록 씨는 재학 시절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테너’라는 평가를 받으며 테너 박인수의 제자로 소프라노 조수미와 함께 촉망받는 성악도였다. 서울시립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며 성악가로서 입지를 닦는 도중 1993년 시련이 닥쳤다. 성악가로선 치명적인 풍치가 악화된 것. 풍치로 고통받던 그는 벌꿀에 함유된 천연 성분의 효능으로 병세가 호전된 뒤 자연스럽게 양봉업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고는 미련 없이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자연으로 떠났다.
청춘합창단 방송 당시 짙은 색 선글라스를 낀 건 녹내장 때문이다. 요즘에는 상태가 어떤지 묻자 “꾸준히 약을 넣어야 하는데 이게 통증이 없으니까 자꾸 넣는 걸 잊게 되더라”며 웃었다. 양봉 일을 오래 해 허리도 상했다고. 그는 “이런 게 누적되면 노후엔 완전히 ‘꽝’ 아니냐”며 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노래 실력은 별로인데, 매체를 통해 포장되면서 유명해진 것”이라며 “실력보다 외적인 게 크게 작용한 것 같아서 약간 씁쓸하다”고 했다.

청춘합창단 ‘꿀포츠’ 벌 치는 방랑 성악가 김성록이 사는 법

1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청춘합창단의 공연 장면. 김성록 씨는 테너 파트장을 맡았다. 2 ‘인간극장’에 나온 김성록 씨 가족. 3 젊은 시절 김성록 씨. 지금도 채밀작업을 하다가 여유가 생기면 기타를 들고 노래를 한 곡조 뽑는다.



시니컬한 꿀포츠도 청순한 아내 앞에선 애교 만점
7월 초 KBS ‘인간극장-길 위의 부부’를 통해 그의 근황을 접할 수 있었다. 20여 년 전 아내 유씨와 산골로 내려온 뒤 ‘길 위의 삶’을 사는 김씨. 자리를 물색하러 트럭을 몰고 떠난 지 몇 분도 안 돼서는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아내를 끌어안으며 “하얀 씨(아내의 애칭), 그리웠어요” 하는 장면은 조금 간지러우면서도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는 “인간극장에는 평소 행동의 10분의 1도 안 나갔다”며 “사실 아내의 진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얼마나 애정 표현을 안 하는지 오죽하면 ‘설정’이냐고 하겠어요. 실제 하는 걸 보면 ‘웩’ 하는 거 아냐(웃음). 방송 이후로 60대 후반에서 80대 할머니들 전화를 많이 받았는데, 한 시간씩 붙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 세대 사람들이 뻔하잖아요. 아내에게 하는 애정 표현이 부럽기도 하고, 대리만족도 되고 그랬나 봐요. 예쁘게 사는 모습이 좋다고 하더라고. 다른 사람들이 아니꼬워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덩달아 나까지 이미지가 좋아졌죠.”
철 따라 꽃을 찾아 벌과 함께 이동하며 꿀을 뜨는 양봉업자의 삶. 작은 트럭에 벌통과 채밀기를 싣고 제주도에서 민통선까지 일 년의 절반 넘게 전국을 유랑한다. 봄부터 여름까지 한철 동안은 개화지를 따라 이동하고, 여름이 되면 산속 깊은 곳으로 벌통을 옮겨 다음 해까지 벌을 키운다. 이동철에는 밤이슬을 맞으며 텐트와 천막 아래에서 오들오들 떨고, 길가에서 꿀 바른 식빵 한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즐거울 수 있는 건 든든한 아내 덕이다.
“집사람이 양봉에 관한 한 나보다 더 실력자라 그저 명령을 받는 거죠. ‘며칠까지 뭐뭐 해’ 하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집사람은 남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청순하고, 가련하고. 사람들이 집사람 보면 언제나 ‘존경스럽다’‘대단하다’라고 해요. 사실 양봉업이 여자들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보통은 다 남자가 하거든요. 집사람이야말로 나보다도 훨씬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한 사람이죠.”
김씨의 노을농장에서 산 꿀단지에는 딸 노을(24) 씨를 포함한 세 가족의 단란한 사진이 붙어 있다. 양봉일을 하는 부모 탓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어린 딸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부모와 떨어져 외가에서 자랐다. 지금은 서울에서 생활하며 학원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서로 얼굴을 잊을 만하면 보는 사이라고. 재미있는 것은 세 사람이 가족인데도 전혀 안 닮았다는 점이다.
“하, 노을이 어릴 때 내가 데리고 나가면 ‘엄마 닮았네’ 하고, 엄마가 데리고 나가면 ‘아빠 닮았네’ 했어요. 둘이 같이 데리고 나가면 ‘누구 아지…’ 하고(웃음). 김동인 소설 중에 ‘발가락이 닮았다’처럼 우리 딸내미가 두상이 비뚤어진 게 친할머니랑 똑같아요. 그래서 그거 보면 내 딸이다 싶더라고요. 하하하하!”
‘인간극장’에 출연한 서울대 음대 후배들은 그에게 “노래는 몸에 밴 기술이고 기능적인 건데 10년씩 놀던 사람이 저렇게 소리를 내면 우리는 어떡하냐”라며 농을 쳤다. 여전한 목소리의 비결은 정확한 발성법. 그는 “정확한 발성법만 갖추면 기본은 유지할 수 있다”며 “평소에 말할 때도 힘을 줘서 말하는 식으로 연습하는 습관이 있다”고 했다.
기독교인인 그에게는 인생에서 간증거리가 될 법한 ‘세 번의 기회’가 있다. 바로 서울대 합격과 서울시립합창단 단원이 된 것, 그리고 청춘합창단 합류였다. 마음을 비우고 헌신할 때마다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 ‘스페어’라는 개념이 좋다던 그는 나서서 처음부터 뭔가를 하기보다는, 할 사람이 있으면 하되 없으면 투입되는 삶을 즐긴다고 했다.
“어릴 때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했어요. 매일매일 뭔가 하는 게 힘들어서 들쑥날쑥 출석했더니 주위에서 ‘노래 좀 한답시고 건방지게 군다’고 하더라고. 처음부터 ‘이번 절기까지만 하겠다’고 말해놓은 상태였는데도 말이죠. 자꾸 ‘그놈 불성실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에 그만뒀는데, 한 개척교회에서 도움을 청해 그곳에서 성가대 활동을 했어요. 그 덕에 교회가 확 살았죠. 그렇게 봉사하다 서울대 시험을 쳤는데 덜컥 합격한 거예요. 합격할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 그 다음에는 목사님을 도와서 교회 일에 헌신했더니 서울시립합창단에 합격하는 기쁨을 주더라고요.”
‘남자의 자격’은 사실 출연을 고사할 생각이었다. 첫 방송을 앞두고 생의 마지막 정리라는 느낌으로 찾아간 작은 교회에서 재능기부 형식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전까지 뚱하니 앉아 있던 어르신이 그의 노래에 맞춰 찬양하는 모습에 기분이 묘했다고. ‘이런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뭔가가 내게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섬에서 나오는 길에 들른 다방 TV에서 그가 출연한 ‘남자의 자격’ 첫 방송이 나왔다.
“촌로가 방송에 7분 나온 거 가지고 이렇게 유명해졌으니 기적이죠. 나중에 들었는데 다음, 네이버 검색어 1위가 이틀 내내 내 이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청춘합창단 ‘꿀포츠’ 벌 치는 방랑 성악가 김성록이 사는 법

김성록 씨는 아내 유희걸 씨를 ‘하얀’씨 라고 부른다. 원래 자식 이름으로 하얀·노을·아련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아내 이름이 특이해서 바꿔 부른다고 했다.



갑자기 얻은 유명세, 합창단과 장학 사업에 쓰고파
올해 초부터 그는 틈틈이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녹음하고 있다. 팬 카페 회원들이 그의 목소리가 담긴 앨범을 소장하고 싶다며 자리를 마련했다. 아내 유씨는 “나이가 들면 누구라도 음정이 흔들리고 목소리가 바뀌는데, 아직 예쁜 목소리가 남아 있을 때 앨범으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작업이 녹록지 않은 모양이다.
“처음에는 경상도 사투리 교정하느라 시간을 보냈고, 그게 해결되니까 먹고살아야 해서 벌 치러 가고. 그러고 나면 촬영이 있고. 갑자기 유명해지다 보니 꿀 주문이 밀려서 정리하는데 보름 넘게 걸렸어요. 밤을 새워도 안 되더라고. 문자도 엄청 오고, 나이 드신 분들은 전화로도 주문하니까. 또 하나는 기계가 내 목소리를 안 받아줘요. 피아니시모, 편안한 소리를 많이 쓰거나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등 일반적인 성악가들과 내가 음악적 해석이 많이 다른데 기계가 이걸 안 받아주더라고. 다른 사람들은 노래를 CD에 담으면 더 깔끔하고 힘찬데 한 곡 완성해서 들어보니 원래보다 안 좋게 나오니까 열의가 팍 꺾이더라고요.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팬 카페 회원들도 기다리고 있어서 빨리 내야 할 텐데. 하하.”
세상을 등지고 오랜 기간 초야에 묻혀 산 김씨. 들꽃도 아닌 들풀처럼 살다 가기를 꿈꾸던 그가 세상과 소통하며 작은 욕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바로 합창단을 만들고 장학 사업을 하는 것.
“청춘합창단 이후 무대에 서면서 느낀 바가 있어요. 사람들이 탤런트나 유명인을 보고 감동하지는 않지만, 내 노래를 들으면 ‘감동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일장춘몽이겠거니, 2~3개월이면 식겠거니 했는데 아니었어요. 일종의 브랜드가 된 거죠. 이걸 그냥 버리기 아깝다고 생각했죠. 어머니합창단, 남성합창단, 혼성합창단 등 지역마다 합창단을 만들어서 좀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어요. 연습실 빌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금전적 문제가 있지만, 거꾸로 구성원들의 회비를 바탕으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지로 들어온 건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였지만, 이런 내가 세상에 나온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뭔지 보여주는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성동아 2012년 9월 5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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