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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끼치는 팬의 두 얼굴

잘못된 ‘팬덤’ 문화의 결과물 ‘사생팬’

글 | 김유림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입력 2012.04.17 16:36:00

3월 초 그룹 JYJ가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팬들에게 폭행과 욕설을 가하는 내용이 담긴 과거 육성 녹음 파일이 공개되면서 이른바 ‘사생팬’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도를 넘어선 사생팬의 행태를 꼬집는 지적과 함께 JYJ에 대한 동정론도 확산되고 있다.
소름 끼치는 팬의 두 얼굴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캐내는 팬이라 해서 일명 ‘사생팬’. 사건의 발단은 2009년 녹음된 것으로 추정되는 JYJ 김재중의 욕설 육성 파일이 3월 6일 한 연예 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다. 10여 분간 녹음된 이 파일에는 김재중이 24시간 자신을 추적하는 사생팬을 붙잡아 심한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담겨 있다. 심지어 구타로 의심되는 ‘퍽’ 하는 소리도 들린다.
보도 당시 JYJ는 한국에 없었다. 남미 공연 투어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막 빠져나간 시점이었다. 칠레에 도착해서야 이 사실을 안 멤버들은 급히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들의 생각을 밝혔다. 어두운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 선 멤버들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 준비한 글을 읽어 나갔다.
먼저 입을 연 박유천은 “지난 2004년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감사하게도 많은 대중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8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사생팬들에게 끊임없는 고통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누군가 매 시간 나를 감시하고 나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자 일방적으로 쫓아다니는 것은 마치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았다. 피하려고 애를 쓰고 벗어나고자 발버둥쳐도 항상 갇힌 공간에서 제자리걸음하며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김준수는 사생팬들의 지나친 행동을 공개했다. “사생팬도 팬이기 때문에 스타로서 감내해야 할 고통이라고 생각하며 참아왔다. 하지만 우리의 신분증을 이용해 통화 내용을 모두 노출시키고, 자동차에 위치 추적 장치인 GPS를 몰래 장착해 계속 쫓아 다녔다”고 밝혔다. 또 그는 “빈번히 무단 침입해 개인 물건들을 촬영하고 심지어는 자고 있는 저에게 다가와 키스를 시도하기도 했고, 얼굴을 보기 위해 일부러 택시로 접촉사고를 내는 등 매일 숨통을 조이는 고통이 밀려오곤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섰던 김재중은 사생팬들에게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과거 옳지 않았던 행동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많은 팬 분들이 저희를 위해 걱정해주시고 마음 아파하셔서 송구스럽고 죄송하다”며 “앞으로는 정신적으로 힘들고 극한의 상황이 오더라도 공인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무너지지 않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후 여론은 요동쳤다. 폭행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의견과, 사생팬의 도를 넘은 행위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높아졌다. 그러던 중 3월 20일 최초 녹음 파일을 공개한 매체가 각 언론이 사건의 본질을 잊은 채 사생팬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하자, JYJ 소속사는 해당 매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소름 끼치는 팬의 두 얼굴

1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타나자 일제히 사진 촬영을 하는 팬들. ※이 사진은 사생팬과는 무관함. 2 하루 종일 연예인의 스케줄을 따라다니는 사생택시. 연예인의 공식일정이 끝나길 기다리다가 곧장 연예인 차량에 따라 붙는다 .



흥신소에 연예인 뒷조사 의뢰하는 위험한 아이들
사생팬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사생팬의 심각성이 집중 보도된 바 있다. 특히 동방신기와 JYJ는 사생팬이 많기로 유명하다. 이들은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 넘는 비정상적인 행위를 일삼는다. 열성팬과 사생팬을 정확히 구분하기 힘들지만 둘의 대표적인 차이점은 사생팬의 경우 JYJ의 음반이나 공연, 공식적인 일정에는 큰 관심이 없고, 오로지 개인적인 사생활에 병적으로 집착한다는 데 있다.
‘사생’의 기본은 멤버들의 주민등록번호와 휴대전화 번호를 캐내는 것이다. 한 인터넷 블로그에 올라온 사생팬 후기를 보면 “주민번호는 기본이고 가족들 휴대전화번호도 다 알고 있다. 숙소 동 호수 아는 건 우스운 일. 인터넷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다 알고 있어서 멤버들이 전화번호를 바꿔도 바로 다시 알아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콘서트 때도 스태프증을 위조해 대기실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등 위법 행위도 일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멤버들 가방에 자신이 입던 속옷을 넣어두고, 생리혈을 모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스타의 살점이라도 갖겠다는 심리로 일부러 손톱을 길렀다가 가수에게 다가가 상처를 내는 등 물리적 상해를 입히기도 한다. 연예계에는 한 아이돌 그룹이 수시로 따라 붙는 팬들 때문에 소속사 차량 밑을 들여다봤더니 GPS가 12개나 발견됐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도 전해진다.
사생팬과 함께 ‘사생택시’도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사생택시는 사생팬들을 태우고 다니며 연예인들의 스케줄을 쫓는 택시로, 과속과 신호위반은 물론이고 간혹 일부러 연예인들이 타고 있는 차와 접촉사고를 낸 뒤 차에서 내린 연예인들의 얼굴을 보게 해준 대가로 돈을 받는다. 요금은 하루 종일 사생팬을 태우고 다닐 경우 9시간 기준 50만원 정도 된다. 결국 사생팬들은 사생택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부모에게 거짓말로 학원비를 타내거나 그것도 모자라 편의점·만화방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학교생활에도 지장을 주다보니 ‘사생짓’을 하다 자퇴를 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흥신소에 자신이 쫓는 연예인의 뒷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실제로 인터넷에는 “OO의 속옷을 구해주면 1억원을 주겠다는 제안까지 했다”는 내용이 떠돈다.
사생팬들은 이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모은 스타의 자료에 연예인의 이름과 날짜를 조합해 ‘120315 재중’ 식의 제목을 달아 거의 매일 블로그에 공개한다. 혼자 찍은 사진에는 ‘단독’을 붙여 다른 사생들과 경쟁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활동한 사생들은 서로 친해져 무리를 만드는데, 서로의 블로그를 드나들면서 사진과 일기 등을 보기 때문에 단독이 많을수록 조회수가 올라간다. 또 최근에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이용해 곳곳에 흩어진 사생들이 실시간으로 멤버들의 이동경로를 공유하기도 한다.
블로그에 팬픽션(Fan Fiction, 줄여서 팬픽이라 불린다)을 쓰는 사생도 많다. 팬픽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 사생팬인 자신이 가수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한 사생팬 블로그에 올라온 팬픽을 보면 “유천:OO씨. 나 예전부터 OO씨 좋아했어요/나:유천씨…저는…/유천:지금 대답해달라는 거 아니에요. 생각해보고 답해줘요/조심스럽게 고백하고 기다리겠다는 유천” 이라고 적혀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사생팬을 비판하는 여론이 일면서 그들 역시 조금은 자중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 서울 청담동·압구정동을 둘러보면 아이돌 소속사, 아이돌이 다니는 미용실 앞에 으레 모여 있어야 할 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부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길 바란다.

여성동아 2012년 4월 5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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