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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엔젤녹즙기 신화 다시 꿈꾸는 이문현 김점두리 부부

글 | 김현미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2011. 12. 07

90년대 한국에 녹즙 열풍을 몰고 왔던 엔젤녹즙기의 주인공, 이문현·김점두리 부부는 시종 웃었다. 쫄딱 망해 다리 밑 움막에서 살던 젊은 날의 고생도, 쇳가루 파동으로 월 매출 50억원에 이르던 회사를 공중 분해시키고 쫓기듯 미국으로 떠나야 했던 억울함도, 돌아와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때 허탈함도 이젠 지난날의 무용담일 뿐이다. 그들은 30년 가까이 매달려온 녹즙이란 희망을 품고 앞만 보며 살기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단다.

엔젤녹즙기 신화 다시 꿈꾸는 이문현 김점두리 부부


부산시 사하구 신평동에 자리한 (주)엔젤 사옥에서 이문현(64·회장)과 김점두리(59·사장) 부부를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부부는 사옥 옥상에서 키우는 케일 자랑부터 했다.
“옥상에 흙을 20톤이나 퍼 올려서 채소밭을 만들고 케일을 심었는데 줄기가 어찌나 굵은지 나무 밑동 같고, 잎은 사람 머리를 감쌀 만큼 커요. 마트에서 파는 손바닥만 한 케일만 보던 사람은 이게 진짜 케일인가 눈이 휘둥그레지죠. 지난번 배추밭 옆에 케일을 심었더니 벌레가 들끓어 잎을 다 갉아 먹어버렸는데 이번에는 벌레가 접근도 못하더라고. ‘흙심’이 바로 농약이에요.”(김점두리)
“요즘 채소들은 그 자체가 ‘영양실조’ 상태예요. 모양만 채소지. 제대로 된 채소를 길러 먹으려면 땅이 좋아야죠. 식물은 동물이 뜯어 먹거나 외부에서 상처를 내면 독소를 배출해 방어하고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어요. 사람도 식물과 똑같아요. 스스로 병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야죠. 그러려면 건강을 생각하며 먹어야 하는데 입맛대로만 먹으려 하잖아요. 아프면 약으로 해결하고….”(이문현)
사실 ‘먹어서 고친다’는 진리를 먼저 깨달은 쪽은 아내 김점두리 사장이었다.
“1979년 남편이 사업(프레스 공장)을 시작했다가 자금난으로 문을 닫았는데 집안 가구마다 빨간 딱지가 붙고 우리 식구는 거리에 나앉았어요. 남편은 협심증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저는 악성빈혈로 고생하고, 당시 세 살인 딸은 눈에 다래끼를 달고 살고, 온 가족이 영양실조 상태였죠. 교회에 가서 ‘죽지 않게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교회에서 만난 한 청년이 ‘아주머니 현미밥 드세요’ 하는 거예요. 처음 현미밥을 했더니 완전히 모래 씹는 기분이에요.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현미밥을 맛있게 지을까 연구했고, 가능한 한 육식을 안 하고 현미밥을 꾸준히 먹으니 어느 순간 배에 허기가 없고 식은땀도 안 나요. 6개월쯤 지나니까 남편은 호흡 곤란이 사라졌어요.”
이렇게 자연 치유의 힘을 경험한 뒤 부부는 더욱 열심히 새벽 기도를 다녔는데, 어느 날 성경 공부 모임에서 처음으로 일본제 주서를 봤다. 같은 교인인 부부가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아이를 위해 비싼 주서를 사서 매일 즙을 만들어주었는데 비싼 기계가 3개월만 쓰면 망가진다고 불평하는 것을 보고, 이 회장은 저 정도면 나도 만들 수 있겠다 싶어 시작한 게 오늘날 엔절녹즙기의 시작이었다.

버려지던 섬유질 속 즙 한 방울까지 짜내
이때 부부가 자랑하던 케일로 만든 즙이 나왔다. 짙푸른 색에 거품이 낀 음료가 입맛을 당기기는커녕 쓴맛이 먼저 떠올라 단단히 각오하고 한 모금. 그러나 음료가 혀에 닿는 순간 깜짝 놀랐다. 케일이나 셀러리처럼 섬유질이 많은 채소는 아무리 곱게 갈아도 가는 실 뭉치 같은 하얀 섬유질이 남게 마련인데 이 음료는 잔여물이 거의 없어 목 넘김이 좋다. 비밀은 이 회장이 자랑하는 ‘골수즙’에 있었다.
“녹즙에는 육즙, 골즙, 골수즙이 있어요. 육즙은 잎에서 나오는 녹색즙, 골즙은 뿌리나 줄기에서 짜낸 즙, 골수즙은 잎·줄기·뿌리 속의 하얀 섬유질을 아주 미세하게 갈아서 그 속에 깊숙이 박혀 있는 영양소를 완전히 짜낸 즙을 가리킵니다. 이 골수즙이 영양소의 보고인데 그동안 추출이 안 돼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죠.”

엔젤녹즙기 신화 다시 꿈꾸는 이문현 김점두리 부부

1 이문현·김점두리 부부는 녹즙기의 설계와 제작을 직접 한다. 2 옥상에 심은 케일을 보며 즐거워하는 부부. 3 녹즙기에서 착즙되고 남은 찌꺼기.



1982년 처음 채소 분쇄기를 개발한 이래 그의 목표는 이 감춰진 골수즙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빼내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녹즙기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해왔다. 공고 출신에다 손재주가 많았던 이 회장은 기계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데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스테인리스를 깎아서 만든 쌍기어가 빈틈없이 맞물리는 상태를 보여주며 착즙의 원리를 설명했다.
“채소가 두 개의 기어 사이를 통과하며 분쇄되고(1단계), 스크류를 통과하면서 압착되고(2단계), 좁은 관문을 지나며 마지막 남은 골수즙까지 짜냅니다(3단계). 이러한 3단 방식 덕분에 다른 녹즙기와 비교했을 때 착즙량이 2배 가까이 많고 찌꺼기는 매우 적습니다.”
녹즙의 양뿐만 아니라 착즙된 영양소의 양을 비교할 때 그 차이는 더 확연해진다. 2009년 한국식품연구소가 4개사 녹즙기 성능 비교 실험을 한 결과, 같은 분량의 당근과 사과를 넣었을 때 추출된 칼슘은 최대 17배, 마그네슘은 5배까지 차이가 났다. 다시 말해 엔젤녹즙기로 만든 녹즙과 같은 분량의 영양소를 섭취하려면 5~17배나 많은 채소와 과일을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 석류씨나 포도씨처럼 단단한 재료에서도 착즙이 가능해 밀싹, 달맞이꽃씨앗, 해바라기씨 등 씨앗류를 많이 섭취하는 미국, 유럽, 러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회장이 90년대 중반 미국 시장을 개척하겠다며 녹즙기 샘플을 들고 LA를 누빌 때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생주스 매장이었다.
“미국인들은 건강 음료로 밀싹즙을 즐겨 마시는데 주스 매장에 가면 소주잔 3분의 1 정도 분량에 2달러씩 받고 팔았어요. 그런데 대당 4천7백 달러나 하는 기계에서 즙이 한 방울 두 방울 마치 참기름 짜듯 조금밖에 안 나오니 답답하기 짝이 없죠. 우리 기계로 한번 해보자 해서 테스트를 했는데 즙이 주르륵 단숨에 짜져 나오니까 모두 감탄하더군요. 지금도 LA에 가면 그때 팔았던 저희 녹즙기를 많이 볼 수 있어요.”
현재 (주)엔젤은 세계 30개국에 수출을 하고 있으며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90%가 넘는다.
“그냥 생과일과 채소를 먹으면 되지 왜 즙을 내서 먹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앉은 자리에서 당근 서너 개, 사과 네댓 개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즙을 내서 먹으면 가능합니다. 또 체내 흡수율 면에서 녹즙은 67%, 생채소 17%이고, 몸에 들어가 소화·흡수되는 시간이 녹즙은 10~15분, 생채소는 3~5시간입니다. 수치만 봐도 왜 녹즙을 권하는지 금방 알 수 있죠. 하루 적정량이 얼마냐고 묻는 사람도 많은데 저는 소화·흡수를 할 수 있는 만큼 양껏 마시라고 권합니다.”
이 회장은 두 가지 명함을 쓴다. 하나는 (주)엔젤의 개발 이사고, 다른 하나는 천연치유연구원 원장이다. 요즘은 회사 경영을 아내와 두 아들에게 맡기고 그는 자연 치유 연구와 건강 상담에 주력하고 있다.
“녹즙기 많이 팔리는 것보다 원인도 모르고 아픈 사람들이 녹즙을 복용하면서 스스로 치유해가는 과정이 제게는 더 중요해요. 이렇게 좋은 걸 사람들이 몰라서 먹지 않는 것을 보면 속이 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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