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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 피해자 어머니가 털어놓은 막내아들 이야기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박해윤 기자

입력 2011.11.17 16:26:00

둘 중 하나는 확실한 살인범.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무죄. 14년 전 이태원 햄버거 가게에서 발생한 이 잔혹하고 이상한 살인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강력한 살인 용의자 아더 패터슨이 지난 8월 미국에서 체포돼 법원에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당시 피해자 고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씨를 만나 막내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14년 전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 피해자 어머니가 털어놓은 막내아들 이야기


고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씨(69)와 만나기 전, 기자는 몇 차례 질문지를 작성하려 고심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어머니는 이미 똑같은 질문을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을 것이다. 그냥 가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자택을 찾았을 때, 어머니는 한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에서 피해자 어머니 역을 연기한 배우 김민경이었다. 어머니는 “뉴스에서 패터슨이 검거됐다는 소식을 듣더니 (배우가) 밥이나 한 끼 하자고 해서 식사하고 들어오는 길”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버석한 얼굴로 기자와 마주 앉았다. 인터뷰하는 내내 아픈 가슴을 후비는 것 같아 걱정됐지만,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눈물은 14년 동안 이미 흐를 대로 흘러서 다 말라버린 것만 같았다. 그는 “이렇게 인터뷰해서 범인이 잡히고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만 있다면…”이라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오히려 그 이야기를 듣는 기자가 표정을 관리하기 어려웠다.
“나 같은 사람보다야 언론이나 국회의원이 한 번이라도 어디에서 말하는 게 낫지. 작년에는 (한나라당) 주광덕 의원님이 많이 도와줬어요. 알아보니까 미국에서는 재판 기록이 인터넷에 뜬다네요. 6월인가 7월쯤에 한 번 판결을 받았다 하더라고. 거기서 얘(아더 패터슨)는 내보내면 안 되고 구속시켜야 한다고. 법원에서는 우리 보고 조용히 있으면 처리하겠다고 했는데, 내가 걱정이 돼서….”
어머니는 아들을 죽인 용의자가 미국에서 잡혀 신병 인도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8월 법무부에 전화해보고서야 알았다. 작년에도 몇 번 전화했지만, 소재 파악 중이라는 대답만 돌아오던 차였다. 영화 ‘도가니’가 개봉되고 나서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이 주목받는 것을 보고 더 몸이 달았다고 했다.
“전화 안 했으면 여태 몰랐겠죠. 방송국 기자한테도 전화하고 의원님 보좌관한테도 전화해서 이렇게 된 거죠. ‘도가니’ 사건을 보니까 우리도 어떻게 좀 해결됐으면 해서…. 우리 중필이 사건도 영화(2009년 ‘이태원 살인사건’)로 만들어졌는데 저거마냥 해결 좀 됐으면…. 마음이 급하더라고요. 날마다 사람들이 ‘공소 시효, 공소 시효’ 하면서 내년이면 끝난다는데, 또 어떤 기자는 도망간 날로 공소 시효가 멈춰서 아직 10년 이상 더 남았다고도 하더라고요. 영화 찍을 때도 스태프들이 이야기 듣더니 패터슨이 범인 같댔는데 검사가 왜 그렇게 했는지.”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어머니 입에서 ‘공소 시효’니 ‘신병 인도’니 하는 전문 용어가 술술 나왔다. 14년 동안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얼마나 애태웠을지 짐작하고도 남는 대목. 어머니의 시계는 1997년 봄에 멈춰 있었다.
평소 어머니는 허리가 아파서 잘 걷지 못한다. 주변에서 치료받으라고 해도 “중필이가 이런데…”라며 내버려뒀다. 기자가 혹시 아들이 꿈에 나오지는 않았느냐고 묻자 “요새는 안 나오데”라는 답이 돌아왔다.
“셋째 딸이 (중필이랑) 제일 친했거든요. 한 5년 동안은 걔 꿈에 나왔어요. 내 꿈에도 나와줬고요. 남편도 가끔 ‘꿈에 중필이가 왔다’면서 살아서 만난 거마냥 좋아하더라고요. 꿈에선 한마디도 안 해요. 그래도 다들 걔 보면 꿈이라도 기분 좋아서….”

허리 아파서 함께 여행 못 간 게 마음에 걸려
어머니는 귀퉁이가 노래진 닳고 닳은 가족 앨범을 꺼냈다. 그는 “기자님이 앨범 볼 것 같아서 아예 안 넣었다”고 했다. 앨범을 조심스럽게 넘기자 말 그대로 ‘선한 인상’의 훤칠한 청년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파카 입은 건 셋째 딸 졸업식 때. 저 사진은 대학교 때 놀러 가서. 이건 초파일에 절에 가서 찍은 거고….”
어머니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언제 어디서 찍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앨범을 넘기는 기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어머니가 말했다.
“에이고, 이렇게만 해서 일이 해결되면 내가 길에서도 춤을 추고 다닐 거라고 해요. 그 소리 막 하는 게 아닌데, 자식 죽었는데 뭔 춤이야. 범인이 없어졌는데….”
아들은 1남3녀 중 막내였다. 큰누나와는 일곱 살 차. 딸 셋 낳고 어렵게 낳은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막둥이를 낳고 하늘을 날 것 같았다고 했다.

14년 전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 피해자 어머니가 털어놓은 막내아들 이야기

고 조중필씨는 1남3녀 중 막내로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잘하던 착한 청년이었다.



“요즘에야 딸이 낫다고 하지만 어렵게 중필이를 낳았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어요. 딸 셋 낳고 아들 낳았으니 얼마나 좋아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고 사는 데 힘이 생기더라고. 아들이 죽 착하게 크니까 예뻐했고. 그 애가 또 워낙 주변 사람한테 잘했어요. 하늘같이 의지했어요. 남편보다도 더.”
늦게 얻은 아들은 크면서 어머니 속 한번 썩인 일이 없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우등상과 표창장을 받았다. 성적 대부분은 ‘수’와 ‘우’. 상장도 많았다. 담임선생님은 성적표에 ‘체육과와 미술과에 능력이 뛰어남’이라고 적었다. 홍익대학교 전파공학과(지금은 없어졌다) 재학 당시 10과목 중 9과목에서 A와 A+를 받았다. 이동통신 회사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다. 당시 아들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집이 이태원이었다.
“우리는 이태원이 어떤 덴지, 그렇게 험한 곳인지도 몰랐어. 가보질 않았으니까. 에휴, 거긴 왜 가서…. 언젠가 여자친구가 찾아와서 저 때문에 죽은 거 같다고,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중필이는 군대에 늦게 갔어요. 96년 군대 가기 전에 시간이 있으니까 엄마랑 여행 가자고 하는 걸 내가 95년부터 허리가 아파서 잘 못 걸어 못 간다고 했지. 97년에는 그 애가 다리가 아파서 의가사로 제대하더니 또 진해에 벚꽃이나 보러 가자고 하더라고. 아버지가 기차 타고 가라고 그러는데 내가 허리가 아파서 기차를 못 타잖아요. 그래서 또 못 갔는데 그런 일을 당한 거지. 난 속으로 ‘7일쯤 가자 그래볼까’ 했었는데….”



막내아들 스님 만든 애끊는 모정

14년 전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 피해자 어머니가 털어놓은 막내아들 이야기


어머니는 불교 신자다. 아들이 떠나고 난 뒤에는 한 달에 두 번씩 아들이 있는 절을 찾는다.
“중필이 어렸을 때부터 봉은사를 다녔어요. 이리 된 뒤에는 아리랑 고개 넘어가면 있는 작은 절(자인사)에 중필이를 갖다놨죠. 한 달에 두 번 가는데 요새는 허리가 아프니까 그것도 잘 못 해요. 요즘은 영혼 결혼도 많이 시키는데, 아들이 나이가 있으니까 큰스님한테 여쭤봤죠. 그랬더니 차라리 스님을 만들자고…. 올해 스님 계명을 받았어요. 등명 스님. 저기 큰절, 쌍계사에서 받아왔어요.”
어머니는 죽은 아들을 불가에 입적시켰다.
“워낙 선한 애니까 죽어서도 좋은 데로 갔으려니 생각해요. 짧은 생 살면서 누구한테 나쁘게 안 하고 어려서도 남의 거라면 연필 하나 가져오는 법이 없었으니까. 한번은 딸이 꿈을 꿨대요. 아주 높은 계단 위에서 중필이가 집에서 키우던 검은 개를 안고 있더래. 그래서 좋은 데 갔나 보다 해서, ‘얘, 거기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 만나니’ 하니까 ‘아니야, 가는 데가 다 따로 있어’ 하더래요.”
자식을 무참히 잃은 어머니의 한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이번에는 범인 잡아서 벌 좀 줬으면…. 맘 같아서는 사형 주고 싶은데 우리나라 법이 그렇게 돼요? 사람 죽여도 벌은 가볍게 주더구만. 아들은 죽었는데 죽인 놈은 없고, 누가 죽인 건지도 모르고 답답하잖아요. 중필이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큰스님 되고, 스님이 됐어도 우리 아들은 아들이니까…. 얼른 억울함 풀려서 마음 편히 좋은 데 가서 살라고 하고 싶어요.”
불가에는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라는 말이 있다. 석가가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긴 말로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 의지하라. 또한 진리를 등불로 삼아 의지하라’는 뜻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발길을 옮기며 차가운 갈바람을 느꼈다. 문득 고인이 피안에서 언제까지고 사랑하는 가족을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바세계에서 한을 풀지 못하고 떠난 고인이 열반에 들길 기원한다.

23세, 나는 살해당했다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의 전말

“화장실로 따라와, 재밌는 걸 보여줄게”
“엄마, 도서관 다녀올게요.”
1997년 4월3일. 조중필씨(당시 23세)는 늦은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가방에는 전공 서적과 취업 관련 책이 가득했다. 지난해 여름 다리가 아파 의가사로 제대한 뒤 계획에 없던 시간이 생겼다. 그는 여느 때처럼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후 3시경 강남역 근처의 시티극장 앞에서 여자친구 김모씨(당시 23세)를 만났다. 둘은 국기원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했다. 김씨의 집은 이태원이었다.
오후 7시. 10대 남녀 20여 명이 이태원의 한 건물 4층에 있는 클럽에서 파티를 열고 있었다. 이들은 술과 탄산음료를 마시며 향락을 즐겼다. 그들 무리 가운데 짧은 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아더 패터슨(당시 18세)과 183cm에 100kg이 넘는 거구의 에드워드 리(당시 18세)도 끼어 있었다. 배가 고파진 이들은 건물 1층 버거킹으로 내려와 햄버거를 시켰다. 패터슨은 자신의 잭 나이프를 꺼내 햄버거를 반으로 잘랐다. 대화의 화제는 칼로 옮겨갔다.
조씨는 김씨와 강남역 근처 술집에서 생맥주를 마셨다. 오후 10시경 김씨를 집에 데려다주려 버스를 타고 이태원까지 온 조씨.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그들은 버거킹 이태원점으로 들어갔다. 김씨가 감자튀김과 콜라를 시키는 동안 조씨는 화장실로 향했다. 패터슨(또는 리)이 화장실로 들어가는 조씨를 봤다.
남자친구를 기다리며 김씨는 감자튀김을 몇 개 집어먹었다. 조씨는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 쪽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입을 손으로 막고 뛰어나오는 중년 남자를 발견했다. 김씨는 남자친구가 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뒤따라 들어간 남자 종업원의 일그러지는 표정을 본 김씨가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외쳤다. “누가 119 좀 불러주세요!”

상반된 진술,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1. “진짜 갱단이면 사람도 죽일 수 있어?”
패터슨에게 리가 물었다. 패터슨은 평소 자신이 히스패닉계 갱단 ‘노르테14’에 속해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 리의 도발에 패터슨은 “따라와 봐”라고 말하곤 화장실로 향했다. 어차피 감자튀김을 먹다 손에 묻은 기름을 닦을 생각이었기에 리는 군말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리가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동안 거울에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패터슨이 소변기 앞에 서 있던 남자를 사정없이 난도질하고 있었던 것. 가로 2.6m, 세로 1.45m의 좁은 화장실은 아직 온기가 남은 조씨의 피로 새빨갛게 변했고 피칠갑한 패터슨이 칼을 든 채 서 있었다.
#2. “뭔가 멋진 걸 보여줄게.”
리는 햄버거를 자른 패터슨의 칼을 만지작거리다 이윽고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패터슨은 그가 말한 ‘멋진 것(Something Cool)’이 ‘마약’이라고 생각했다. 리는 마약을 밀수해 이태원 일대에서 팔았다. 종종 직접 복용하기도 했다. 리의 뒤를 따라간 화장실에서 패터슨은 소변기 앞에 서 있던 한 남자를 때리고 칼로 수차례 찌르는 리의 모습을 봤다. 피범벅이 된 남자가 패터슨 쪽으로 쓰러지며 패터슨의 바지와 티셔츠에 뻘건 핏물이 들었다.

1997년 9월20일 서울지법 319호 법정. 같은 해 4월 이태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1심 마지막 공판. 심리를 마친 형사합의22부 재판장 이호원 부장판사는 피고인석에 앉은 두 명의 피고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판사가 아닌 인간으로서 묻겠습니다. 여기 앉아 있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범인인 것은 맞습니까?”
두 사람 모두 “그렇다”고 대답했다.
“리에게 묻겠습니다. 중필씨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제 옆에 앉아 있는 아더 패터슨입니다.”
“패터슨에게 묻겠습니다. 중필씨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제 옆에 앉은 리입니다.”
방청석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에게 반성의 기미는 없었다. 수사기관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은 줄곧 상대가 살인자고 자신은 목격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장난치는 것 같았다. 마치 ‘범인 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가 죽였다, 그런데 나는 아니다”
왼쪽 목 네 곳, 오른쪽 목 세 곳, 가슴 두 곳. 조씨는 9군데를 찔려 사망했다. 한칼 한칼 속이 보일 정도로 깊었다. 치명타는 단숨에 끊긴 왼쪽 목 동맥. 범행에 쓰인 접이식 칼은 칼날 9.5cm, 손잡이 12.2cm였다.
미군범죄수사대(CID)와 한국 경찰은 패터슨을 주범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한국 검찰은 리만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부검 소견에 따르면 범인은 조씨보다 키가 크고 힘이 셀 확률이 높았기 때문. 당시 조씨의 키는 176cm. 패터슨은 167cm, 리는 183cm였다. 거짓말탐지기 반응도 리에게 불리했다.
리는 살인죄가 인정돼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1998년 4월24일 “패터슨의 진술 신빙성이 의심스러워 리의 단독 범행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패터슨은 살인죄로는 기소되지 않고 흉기 소지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다. 실형을 살던 그는 특별사면을 받고 출소했다. 검찰에서 패터슨에 대한 출국 금지 연장 조치를 안 한 틈을 타 그는 출국 금지 해제 사흘 만인 8월24일,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두 번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9월30일 서울고법은 리에게도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한 사람이 죽었다. 그러나 범인은 없다. 당시 사건은 피의자와 주요 증인이 모두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통역 문제가 있었다. 한미행정협정(SOFA)에 따라 한국 법원이 미국 국적의 증인을 마음대로 부를 수 없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서울지법과 서울고법은 그들의 친구인 랜디를 증인으로 소환했지만 그는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랜디는 처음 CID에 “패터슨이 ‘내가 살인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한 사람이다.
2009년 9월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되고 재수사 여론이 들끓자 같은 해 12월15일 검찰은 법무부에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를 요구했다. 그러던 중, 10월10일 미국에 있던 패터슨이 사법 당국에 검거돼 조사를 받고 있고, 한국으로 송환될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은 패터슨에 대해 “미국에서 중대한 폭행 전과가 있었고, 한국에서 살인 혐의로 범죄인 인도 요구를 받았다”는 점을 들어 “구금을 승인하고 보석은 허용치 않는다”고 밝혔다.
범죄인 인도 결정에 관한 재판은 길게는 3~4년씩 걸린다. 따라서 패터슨의 공소 시효가 얼마나 남았는지에 대해 법조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살인사건의 공소 시효는 15년. 원칙적으로 사건 발생 만 15년이 되는 내년 4월2일 이후에는 범인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하다. 신병 인도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공소 시효가 만료될지도 모를 일. 법무부 측에서는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 시효는 정지된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 253조 3항을 들어 아직 12년 6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여성동아 2011년 11월 5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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