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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TORY OF CEO

간장 만드는 행복한 철학자 샘표 박진선 사장

글·김명희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11.09.16 16:24:00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 간장’ 귀에 익숙한 CM만큼이나 샘표는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최근 특허청 발표에 따르면 국내에서 상표법이 시행된 이래 최고(最古) 브랜드가 바로 샘표라고 한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경영 일선에 나서 장인 정신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고 있는 박진선 사장은 서울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철학교수로 강단에도 섰던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행복한 사람들이 건강한 제품, 바른 사회를 만든다고 믿는 우직한 간장쟁이 박진선 사장을 만났다.
간장 만드는 행복한 철학자 샘표 박진선 사장


당연히 그의 손에 샘표에서 만드는 흑초나 음료가 들려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박진선 샘표 사장(61)은 아메리카노가 담긴 스타벅스 벤티 컵을 들고 등장했다. ‘간장 공장 사장님’ 하면 깐깐하고 고집스러운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희끗희끗한 머리에 환한 웃음, 부하 직원들을 격의 없이 대하는 박 대표의 모습은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나 선생님에 가까웠다. “동안이시네요”라는 인사에 “몸에 좋은 발효 식품을 많이 먹어서”라는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박 사장은 “많이 웃어서”라고 했고, “인상이 좋으시네요”라고 하자 “그런 식으로 바보 같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돌려서 하는 것 같다”며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그의 대답은 번번이 예상된 모범 답안을 비껴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깊어지는 간장처럼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오래됐다는 것보다 좋은 가치 이어온 것에 자부심
샘표식품의 역사는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대표의 할아버지 고(故) 박규회 사장은 광복 직후 일본인 소스 회사를 인수해 샘표식품을 설립하고 집에서 담가 먹던 간장을 대량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 박진선 대표는 90년 기획실장으로 샘표식품에 입사해 97년부터 아버지 박승복 명예회장에 이어 경영을 맡고 있다. 그는 선대의 장인 정신을 계승하고, 내실을 다지는 착실한 성장 전략으로 샘표를 매출액 1천8백50억원(2009년)의 튼실한 중견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사업 면에서도 간장·된장·고추장·쌈장 등 전통 장류 외에도 소스와 식초, 수산물·과일 통조림, 면, 음료 등을 생산·판매하는 종합식품회사의 면모를 갖췄다.

▼ 최근 샘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표라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오래됐다는 게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은 아니고, 또 할아버지가 만들고 아버지가 이어오신 회사니까 내가 생색낼 일도 아니지만(웃음), 일관되게 좋은 가치를 유지해왔다는 점에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 식품 기업이니만큼 소비자의 신뢰가 없었다면 오래 버티기 힘들었을 텐데.
“할아버지 때부터 ‘우리 가족이 먹지 않는 건 만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왔고, 제품이나 위생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공장 견학, 시식 같은 것도 국내 기업 가운데 우리가 가장 먼저 시작했죠. 지금 생각하면 마케팅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개념 없이 그냥 우리는 이렇게 정직하게 만든다는 걸 보여줬던 거죠.”
▼ 장수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할아버지께서는 늘 사람들을 따듯하게 대하셨죠. 70년대만 해도 간장 담는 병이 귀했어요. 보통 맥주병을 재활용했기 때문에 공장에서는 수거해온 병을 씻어 간장 넣는 일을 하는 일용직 아주머니들이 많았죠. 그런데 어느 날 원조 자금으로 병 자동 세척 주입기가 들어와 그분들이 꼼짝없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상황이 되자 할아버지는 기계가 들어오기 전날 아무도 몰래 그분들을 모두 정사원으로 발령을 내셨어요. 그만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분이셨고, 그런 것들이 은연중에 기업 문화로 이어져 내려온 것 같습니다.”
▼ ‘샘표’라는 이름의 유래는 무엇인가요?
“간장은 물이 중요하니까, 샘처럼 맑은 물이라는 의미에서 할아버지께서 샘표라는 이름을 지으셨죠. 그런데 한자로는 샘 ‘천(泉)’자니까, ‘왜 샘표냐, 천표지’ 그런 논쟁도 있었다고 하더군요(웃음).”
▼ 초기에는 공장이 여기(서울 충무로)에 있었다죠?
“저기(대한극장 맞은편)에 있었어요. 67년 서울 창동으로 이전해서 제가 대학 1학년에 다니던 그 이듬해에는 건물이 비어 있었죠. 그래서 그곳에서 친구들하고 밴드 연습했죠(웃음).”
▼ 대학 때 밴드를 하셨군요.
“경기고 동창들과 밴드를 만들어서 대학 때 공연도 했죠.”
▼ 당시로 말하면 딴따라였을 텐데, 집안의 반대는 없었나요.
“밴드를 하려면 악기, 앰프 같은 장비를 장만해야 하니까 돈이 필요한데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공부나 하지 쓸데없는 짓 한다’며 안 사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앰프는 전자과에 다니는 친구와 직접 만들고 기타는 만들 수 없으니까 할 수 없이 할아버지께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대번에 사주시더라고요(웃음). 서울대 문리대 강당에서 공연하는 날에도 직접 오셔서 맨 앞줄 여고생들 틈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셨어요(웃음).”
▼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이 대단하셨네요.
“장손이고, 동생이나 사촌들과 나이 차가 많은 데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니까…. 한 번도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은 없지만 제가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묵묵히 지지해주셨어요.”

간장 만드는 행복한 철학자 샘표 박진선 사장




학창 시절 박진선 대표는 수재로 이름을 날렸다.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하기까지 1등을 도맡아 한 ‘공부 잘하는 간장 공장 집 장남’은 할아버지의 자랑거리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 석사,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박 대표는 종종 직원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에서 살면서 두 번째로 잘한 일로 철학을 공부한 것을, 가장 잘한 일로 아내와의 결혼을 꼽는다고 한다. 그의 아내 고계원 아주대 수학과 교수(60)는 2005년 ‘닮고 싶은 과학기술인’에도 선정된 적이 있는 학계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스탠퍼드대 유학 시절에 만났는데 박 사장이 베짱이라면, 아내는 열심히 공부하는 개미 스타일이라고 한다. 박 사장은 “그래도 유학 시절 아이를 낳았을 때는 내가 밤에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는 등 뒷바라지를 했다”고 말했다.
박진선 사장 가족은 부부와 1남 1녀, 며느리까지 모두 서울대 출신. 자녀 교육의 비결을 묻자 “부모들은 보통 아이들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공부를 잘할 거라고 믿지만, 가장 중요한 건 집중력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집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살면서 가장 잘한 일로 결혼을 꼽는다면서요.
“아내 덕분에 내가 훨씬 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내는 내가 철학으로 전공을 바꾼다고 했을 때, 또 여러 가지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했을 때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어요. 경제적인 부분을 떠나 여러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준 사람도 아내입니다.”
▼ 자녀들도 모두 서울대에 진학했는데 비결이 있나요.
“공부하라는 소리 안 하고 비효율적으로 공부 안 한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제 경우만 봐도 학교 다닐 때 공부라고는 해본 적이 없어요. 참고서도 사본 적이 없고. 단 수업 시간에는 한 순간도 집중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은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귀담아들었죠. 아내는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지만 아이들의 경우는 저를 닮아서인지,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기보다 공부할 때 100% 집중해서 하는 편인 것 같아요.”
▼ 전자공학에서 철학으로 전공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학에 갈 때만 해도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부잣집 아들이니까 아무래도 경제적인 면에선 스트레스를 덜 받았겠죠(웃음).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간 건, ‘산업화’가 국가적인 과제였기 때문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모두 공대를 갈 때였거든요. 대학 졸업 후에는 집안에서 당연히 유학을 갈 거라 생각하고, 나도 그런가 보다 해서 유학을 갔는데, 석사 과정 첫해에 교재를 보니 이미 대학에서 다 공부한 것들이더라고요. 재미도 없고 해서 다른 과를 기웃거리다가 경제학과 수업을 듣는데 교수가 자신이 다루지는 않겠지만 참고하라고 준 책 리스트를 보니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교수가 다루지 않는다고 하니까 경제학과 친구들도 안 읽고, 나중에 보니 철학과에서 읽는 책들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됐죠.”
▼ 전자공학과 철학은 180도 다른 학문인데, 전공을 바꾸는 것도 그렇지만 공부도 힘들었을 텐데요.
“공학에서는 대부분의 가설은 이미 정해져 있어서 그걸 응용하는 학문인 반면 철학은 전체 시스템을 설계하고 개념을 정의하는 학문이죠. 접근 방법이 달라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박사 과정 첫 학기 때 리포트를 쓰는 과제가 있었는데 저는 거의 책이나 논문을 요약해서 내는 수준이었죠. 그러면 교수님들이 전부 ‘그래서 네 생각은 뭐냐, 남의 생각을 쓰지 말고 네 생각을 쓰라’고 코멘트를 달아주셨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불확실한 개념을 명확히 하는 법, 생각을 제대로 하는 법을 훈련한 것 같아요.”

경영의 목표는 구성원의 행복, 이윤은 성적표
박 사장은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만 해도, 그 일이 천직이 될 줄 알았다. ‘제품만 좋으면 된다’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지독한 원칙 경영이 수세에 몰리면서 젊은 감각을 지닌 그가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됐고, 그때부터 기업의 가치를 고민하게 됐다. 철학자 출신답게 박 대표가 찾은 해답은 독특하다. 그는 이윤 추구가 아닌 구성원의 행복을 경영의 최고 목표로 삼았다.
이 같은 경영 철학은 ‘겸손, 사심 없는 마음, 열정’이라는 샘표의 인재상에서도 드러난다. ‘겸손’은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는 마음 자세, ‘사심 없음’은 회사 일을 할 때 ‘나’ ‘너’ 이런 생각이 나지 않아야 한다는 뜻으로 회사에 도움이 되는 마음만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며 ‘열정’은 일을 즐기고 몰두해서 하는 것이다.
샘표의 인재상은 다소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도 같다. 하지만 박 대표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사람은 언젠가는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아울러 이런 사람들이 모인다면 함께 일하는 것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간장 만드는 행복한 철학자 샘표 박진선 사장

샘표식품의 경기도 이천 공장 모습. 예쁘게 칠한 공장 외관이 마치 예술 작품 같다.



이처럼 그의 경영 철학은 구성원들의 행복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수렴된다. 경기도 이천 공장에 직원과 일반인들을 위한 예술 작품 전시 공간 ‘샘표 스페이스’를 만든 것도 그렇고, 공장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꾸미는 ‘아트 팩토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장 시설이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고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이 훨씬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상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구성원들이 즐겁게 만든 음식 재료는 가정의 식탁에도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릴 것이다.
▼ 샘표에서는 직원을 뽑는 데 요리 면접을 본다고 들었습니다.
“요리 면접을 본다고 하면 요리 실력을 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기본적인 자질과 팀워크를 보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자신이 돋보이려고 요리는 안 하고 발표 준비만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건 곤란하죠.”
▼ 능력보다는 인성을 중시하는군요.
“겸손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또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배우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죠. 사심이 있으면 자신의 손익만 따지게 되고, 일이 돈 버는 수단으로 전락하면 행복을 느끼기 힘들게 돼요. 하지만 열정을 갖고 있으면 일하는 게 즐겁고 언젠가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죠.”
▼ 직원의 행복을 경영의 가장 큰 목표로 둔다는데, 사실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윤을 많이 내는 것 아닙니까.
“경영 이론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 또 회사가 굴러가기 위해선 적자가 나면 안 되겠지만, 회사도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하나의 사회입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만족스러운 환경에서 행복을 느끼며 일한다면 이윤은 목표로 잡지 않아도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경영과 인생의 멘토로 삼고 있는 분은 누구신가요.
“그런 질문은 참 곤혹스러워요(웃음).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보면서 ‘저렇게 하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은 가끔 하지만 ‘누구를 따라 해야겠다’ ‘누구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 간장 공장에 굳이 갤러리를 만든 이유는요.
“90년대까지만 해도 직원들이 큰 공장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저도 이천 공장에 가면 뿌듯했죠. 하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공장을 사무실과 다름없는 쾌적한 공간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직원들에게 예술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좋겠다 싶어 식당 옆에 샘표 스페이스를 만들었어요. 문화 활동이 직원 개개인의 생산성에 어떠한 효과를 미치는지 측정할 수 없지만 처음엔 ‘이런 걸 왜 하나’ 하고 의아해하던 사람들이 점차 예술 작품을 좋아하고 거기에 빠져드는 게 느껴집니다. 작품을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 조금씩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 아트 팩토리 프로젝트는 어떻게 기획됐나요.
“3년에 한 번씩 공장 외벽을 칠하는데 보통 관리하기도 편하고 지저분해도 티가 나지 않는 회색으로 칠하곤 했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회색 페인트칠이 무미건조하게 보이더군요. 관리하기 편하다고 거기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무미건조한 회색 공간에서 일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삭막한 공간에 있다 보면 사람들의 마음도 경직될 테니, 공장이라는 장소에 대한 통념을 바꿔보자 해서, 공장을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꾸미는 아트 팩토리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죠. 직원들도 좋아하고 예전에는 아파트 부녀회 같은 장년층이 공장을 주로 찾았는데, 요즘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방문하거나, 젊은 세대들이 공장에 사진 찍으러 오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뤄가는 듯해 보람을 느낍니다.”
▼ 경영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텐데, 해소법은?
“나는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심리분석을 받아보니까 스트레스를 남들과 비슷하게 받지만, 내가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욕심 내서 어떤 걸 꼭 가지겠다거나 이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덜 느끼는 것 같습니다.”
샘표의 한 직원은 샘표의 이미지를 사람에 빗대어 표현해보라는 제안에 ‘박진선 사장님 같은 느낌. 소박하지만 풍부한 자아를 지니고 있으며, 해맑지만 카리스마 있고 오래된 친구 같다’고 말했다. 직원들 스스로가 회사 얼굴로 꼽을 만큼 사랑받는 경영자가 얼마나 될까. 그런 점에서 박진선 사장의 행복 경영에 박수를 보낸다.

여성동아 2011년 9월 5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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