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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따뜻한 울림

이광기 김태원 가슴에 슬픔 묻고 아이티 어린이 위해 나섰다

글·김명희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2011. 05. 17

탤런트 이광기와 그룹 ‘부활’ 리더 김태원이 아이티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자선 콘서트를 연다. 언뜻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을 하나로 묶은 키워드는 ‘아버지’라는 이름. 이들이 큰 사랑을 실천하기까지 가슴 아픈 사연을 들었다.

이광기 김태원 가슴에 슬픔 묻고 아이티 어린이 위해 나섰다


여기 각자의 아픔을 등에 지고 세상 가장 그늘진 곳을 향해 걸어가는 두 아버지가 있다. 2년 전 신종플루로 일곱 살이었던 아들 석규를 잃은 이광기(42), 그리고 최근 열한 살 난 아들이 자폐임을 밝힌 김태원(46). 두 사람이 지진 피해로 고통받고 있는 아이티 어린이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들은 5월14일 경기도 일산 벧엘교회에서 추가열·소향·헤리티지 등과 함께 아이티 돕기 자선 콘서트를 연다.
콘서트를 제안한 이는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광기. 그는 2009년 11월 아들을 떠나보낸 후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아들 석규의 사망보험금을 아이티 지진 구호 성금으로 기탁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아이티로 날아가 구호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아들 석규와 닮은 그곳 아이들의 선한 눈망울은 이제 이광기가 살아가는 이유가 됐다.
“아이를 잃고 보니, 지진으로 가족을 잃은 아이티 아이들이 남 같지 않았어요. 고아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만나 석규가 입던 옷을 나눠줬더니 무척 행복해하더군요. 그 다음 날이 석규가 하늘나라로 떠난 지 백 일 되던 날이었는데, 제 꿈에 나타나 환하게 웃었어요. 그제야 비로소 좋은 마음으로 아이를 보낼 수 있겠더라고요. 하늘에서 아이가 저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하고요. 그곳 아이들을 통해 저도 제 상처를 치유받은 셈이죠.”

아들 석규와 닮은 아이티 아이들, 힘 닿는 한 돕고 싶어
이광기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자선 경매 행사를 열어 수익금 1억원을 기탁하는 등 아이티 후원 활동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아이티와의 인연을 이어가는 데는 세손이라는 아이와의 각별한 교감이 밑바탕이 됐다.
“아이들에게 제 사연을 이야기하며 ‘나도 너희들처럼 아프지만 너희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더니 기뻐하는 많은 아이들 틈에서 유독 한 아이가 저를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요. ‘이 아이가 뭔가를 아는가’ 싶기도 하고 우리 석규와 동갑이라 더 정이 많이 갔죠. 한국에 돌아와서 얼마 후 그 아이가 배식을 받다가 총상을 입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자꾸 일어날까, 울컥하더라고요. 아이티로 달려갈 수도 없고, 속상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며칠 후 세손이 선교사를 통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보내 왔더라고요. 배에 붕대를 친친 감고 있으면서도 제가 걱정한다고 하니까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그곳 아이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어요.”
이광기는 세손 이야기를 하며 당시 일이 생각나는 듯 눈물을 왈칵 쏟았다. 김태원이 그런 이광기의 손을 잡아주었다. 두 사람은 김태원이 예능 프로그램에 본격 출연하기 전, 일산에서 이웃사촌으로 지내며 친분을 맺었다. 김태원의 ‘끼’를 알아채고 예능 PD들에게 적극 추천한 것도 김구라와 이광기였다. 이 때문에 김태원은 지난해 KBS ‘연예대상’에서 최고 엔터테이너 상을 수상한 후 “나를 버라이어티로 이끌어준 김구라와 이광기에게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광기가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는 김태원이 큰 힘이 됐다. 별일이 없어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밥은 먹었느냐” “힘내라”고 용기를 북돋워줬다.

이광기 김태원 가슴에 슬픔 묻고 아이티 어린이 위해 나섰다

1 이광기의 아들 석규군이 신종플루로 사망하기 전 그린 그림. 이광기는 이를 아이티 어린이 돕기 행사의 캐릭터로 활용하고 있다. 2 3 4 지난해 아이티에서 구호활동을 했던 이광기. 그는 이후에도 꾸준히 아이티 어린이를 돕기 위한 자선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광기 김태원 가슴에 슬픔 묻고 아이티 어린이 위해 나섰다

아들 석규 이야기를 하며 눈물 흘리는 이광기를 김태원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아내가 부활의 ‘생각이 나’를 들으면서 많이 울었어요. 그 노래를 들으면 자꾸 석규 생각이 난다고. 그러면 형이 ‘미안하다’며 쓰다듬어주곤 했죠. 이런저런 인연들이 쌓여 오늘 이 자리까지 함께하게 됐어요. 형뿐 아니라 흔쾌히 참여를 결정해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광기의 손을 꼭 잡고 있던 김태원이 말을 이었다.
“저는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우연이 기적이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광기씨가 아들을 잃은 후 바른 삶을 살고 있어요. 이광기씨가 그런 사건을 겪은 것도, 아이티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것도, 제가 여기에 동참한 것도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런 것들이 쌓여 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 어떤 아픔도 넉넉하게 안아줄 것 같은 김태원. 사실 그도 간절히 바라는 기적이 있다. 그는 3월 말, MBC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그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의 아들은 두 살 되던 해 자폐 진단을 받았다. 김태원은 “아내의 소원은 아들보다 하루를 더 사는 것”이라며 “난 지금도 내 아이와 대화하는 꿈을 꾼다. 지금 아들이 열한 살이지만 나와 한 번도 대화를 한 적이 없다.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그는 갑자기 예능을 시작하게 된 것도 아들과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으며, 가족들을 필리핀에 보내고 ‘기러기 아빠’로 사는 이유도 한국에서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상처를 받아 아이를 키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아파서 밖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아픈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고 힘을 주는 음악도 만들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아픔 탓인지 김태원의 시선은 늘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있다. 그가 멘토로 출연하고 있는 MBC ‘위대한 탄생’에서 백청강·손진영·이태권 등 우직하고 사연 많은 이들을 끌어안아 제자 한 명 한 명에게 칭찬과 격려로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우리가 아름다운 화면은 아니지 않느냐, 너희들이 잘돼야 너희 같은 사람들이 희망을 갖는다” “난 멘토지만 너희들을 가르치고 싶지 않다.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 내 역할이다” 등 그가 남긴 감동적인 어록은 멘티뿐 아니라 소외된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줬다.

“작은 우연이 쌓이면 기적 만들 수 있어요”

이날 김태원은 자신의 멘티들이 ‘위대한 탄생’ 1차 생방송 오디션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에 대해 “노래는 귀로 듣는 것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평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디가 그늘이고 어디가 양지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동안 우리 가요계는 지나치게 시각적으로 밝은 쪽만 추구해왔습니다. 저는 진짜 밝은 걸 찾고 있는 중입니다.”
김태원의 화법은 짧고 우회적이지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날 그는 아이티 어린이들에게도 힘이 되는 어록을 남겼다.
“지구는 의리가 있습니다. 좋았던 일들은 금방 잊어도 상관없지만 안 좋았던 일들은 쉽게 잊으면 안 되고, 우리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감당하기 벅찬 현실에 놓여 있다고 실망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이광기는 자선 콘서트를 마친 후 또 한 번 자선 경매를 열어 후원 기금을 조성하고 올여름에는 직접 아이티로 가서 장애아들을 위한 특수학교를 세울 계획이다. 김태원은 자신이 치던 기타를 자선 경매에 내놓고 ‘부활’의 신곡 ‘누구나 사랑을 한다’도 아이티 주제가로 기부하기로 했다. 두 사람의 훈훈한 사랑이 아이티를 넘어 세계 곳곳에 울려 퍼져 더 큰 기적을 낳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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