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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전문’ 세계 누비는 김민아 PD 도전 인생

글 이혜민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토네이도 출판사 제공

입력 2010.08.18 10:19:00

화제의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과 ‘아마존의 눈물’에 모두 참여한 김민아 PD. 그는 북극곰도 찍고 사람도 찍자는 선배의 설득에 별 생각 없이 “그러죠, 뭐”라고 대답한 이후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오지 전문’ 세계 누비는 김민아 PD 도전 인생


밀리터리룩을 기대했다. 화제를 불러온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에 홍일점으로 참여한 데 이어, 현재는 국제시사프로그램 ‘W’를 만들기 위해 세계를 누비는 김민아 PD(31)에게는 꾸밀 시간도 여력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김 PD는 유행하는 ‘스코노’ 신발을 신고 투명 메이크업을 한 채 향긋한 향기를 풍기며 나타났다.
그는 여전히 바빴다. 당장 케냐로 출장가야 한다는 그를 설득해 7월 초 여의도 MBC에서 만났다. “세계 곳곳을 다녀 좋겠다”는 기자의 말에 김 PD는 “집 떠나면 고생”이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취재 내용을 묻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반짝이는 눈으로 대답했다.
“케냐의 성폭행과 에이즈 문제를 취재하려고 해요. 수도 나이로비만 해도 1년에 경찰에 신고되는 성폭행 건수가 2천4백 건에 달하거든요. 놀라운 것은 성폭행 피해자의 20%가 노인 여성인데, 이유가 황당해요. 할머니들과 성관계를 하면 에이즈가 치료된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래요. 결과적으로 에이즈 환자만 더 많아졌죠.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호신술을 배우는 할머니들이 있다고 해서 그분들을 뵈러 가는 거예요.”
‘W’는 국제시사프로그램. 지난 5년 간 지구촌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6mm 카메라에 담아 세상의 이면을 밝히는 데 일조해 왔다. 이곳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일하는 김 PD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 아프리카의 풍토병? 오지의 열악한 환경과 음식? 모두 아니다.
“아이템 찾는 게 가장 어려워요. 그래서 매체는 내외신 가리지 않고 다 보고, 외국 포털 뉴스도 봐요. 현지에 가면 오지 취재하는 기자들이 많이 모이는데 그곳에서 정보를 얻거나 현지에서 통역과 섭외를 도와주는 현지 코디네이터에게 아이디어를 얻기도 해요.”
현재 ‘W’ 팀의 PD는 12명. PD 3명이 한 주를 책임지는 셈이다. 4주 동안 20분짜리 방송분 하나만 만들면 되지만 생각보다 빠듯하다. 카메라를 들고 혼자 현장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2주 동안 자료조사, 섭외 등 사전 취재를 한 뒤 1주 동안 현장 취재를 하고 나머지 1주간 편집해야 방송에 내보낼 수 있으므로 여유부릴 시간이 없다.
꾸미는 것 좋아하고 예쁜 것 좋아한다는 그가 ‘오지 전문 PD’란 타이틀을 달게 된 건 무엇보다 시작점이 남달랐기 때문. 그는 2004년,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던 차에 지인 소개로 ‘중동’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면서 지금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죽을 고비 숱하게 넘겼지만 뚝심으로 버텨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취재하던 중 정부군 사령관이 테러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시가전으로 건물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장면을 수없이 본 터라 겁이 났지만, 취재를 포기하지 않았다. 선배들은 무모할 정도로 용기 있는 그에게 “오지 전문 PD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며 제안해왔다. 스스로도 ‘중동’ 프로그램을 만들고 나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데 마음이 끌리던 차였다. 그로부터 한참 뒤 ‘북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 제작진에게 러브콜을 받은 것은 특유의 근성과 적응력 때문. ‘아마존의 눈물’ 김현철 PD는 “김민아 PD는 어떤 낯선 음식도 일단 먹고 게다가 잘 먹는다. 배탈이라는 단어도 모르는 것 같다. 40℃가 넘는 열대 지역에서 물을 먹지 않고 몇 시간을 버틴다”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생사를 오갔던 기억 때문에 오지를 파고드는 일이 점점 부담스러워진다고 한다.

‘오지 전문’ 세계 누비는 김민아 PD 도전 인생

1 얼음의 두께가 급속도로 얇아지고 있는 북극. 2 북극에서 만난 순박한 일랑구악 아저씨와 함께. 3 모래가 아작아작 씹히는 빙하수로 밥을 지어먹었다. 4 ‘아마존의 눈물’ 제작진. 왼쪽부터 김만태 카메라 감독, 김민아 PD, 하림 카메라 감독, 김현철 PD.



“북극에서 두 번이나 물속에 빠져 죽을 뻔 했어요. 처음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나’ 싶어서 어이없고 웃겼는데, 두 번 빠지니까 무섭더라고요. 얼음 조각들을 밟으며 건너다 조각이 깨지는 바람에 수심이 70m나 되는 바다에 빠졌는데…, 그날 밤에는 눈만 감으면 물속에 빠진 것 같아 메스꺼워서 잠도 못 잤죠. 아마존에서 세 번째 죽을 고비를 넘겼고, 얼마 전에는 말라리아와 장티푸스에 동시에 걸리는 바람에 고생을 심하게 했어요. 마땅한 치료제도 없어서 예방약의 양만 늘려 먹을 수밖에 없었거든요. 10kg이 갑자기 부어서 몸이 코끼리처럼 됐다가 다시 15kg이 빠지면서 살이 두부처럼 흐물흐물해졌는데…. 그 고생을 해서 그런지 ‘오지 전문 PD가 되겠다’라고 장담하지 못하겠어요. 예전에는 몰라서 겁이 없었는데 이제는 가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되니 망설여지네요.”
그럼에도 그는 “지구의 끝 어딘가에서 만난 이들과 말로 다할 수 없는 관심을 나누며 행복했기에 자꾸만 발걸음이 가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뚝심으로 어려운 상황을 버텨왔고 앞으로도 그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것으로 보인다. 김 PD가 한 대학교 강연에서 “뚝심을 지키면 좋은 결과가 온다”고 말했던 것은 스스로를 채근하기 위한 말이기도 했을 터.
“제가 누구에게 충고할 위치에 있진 않지만 후배들에게는 이런 말을 해주면 어떨까 싶어요. ‘참아라, 그러면 좋은 일이 있을 거다.’ 일을 하다 보면 짜증나는 순간이 많잖아요. 섭외하느라 고되고, 선배들한테 ‘까이면’ 내가 이런 욕먹자고 그동안 그렇게 살았나 싶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때를 못 참고 그만두는 것보다는 참고 견디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보상처럼 기회가 따라오거든요. 저와 함께 일을 시작한 사람 중 30%만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중간에 포기한 친구들은 많이 헤매더라고요. 물론 제가 헤매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버티고 일하니까 책 내자는 제안이 들어와 책도 내고, 광고 찍자고 해서 광고도 찍고,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게 된 거잖아요. 참지 않았으면 못해볼 일인 거죠. 그러니까 앞으로도 참으면서 일해야 할 것 같아요.(웃음)”
물론 김 PD가 뚝심만 발휘하며 산 건 아니다. 좋은 PD가 되기 위해 남다른 배려심도 길렀다. ‘초짜’ 시절에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 잠도 안 재우고, 밥도 안 먹이는 ‘나쁜 PD’였지만 한 통의 편지를 받곤 개과천선했다.
“그때만 해도 조급증이 있었어요. 무리하게 촬영을 하니까 출연진인 일본인 뮤지션이 편지를 주더라고요. 좋은 PD가 되려면 첫째 같이 일하는 사람들 밥을 잘 먹여야 하고, 둘째 잠을 잘 재워야 하고 셋째 스케줄을 빡빡하게 잡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었고. 글의 말미에 ‘이것만 지키면 민아 씨는 좋은 PD가 될 거야’ 라고 써놨는데 뜨끔했죠. 그 뒤부터는 의식적으로 조심해요. 모두 자신의 안녕을 위해서 일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배고프다고 하면 밥 먹이고, 피곤하다고 하면 일 안 시켜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요즘엔 혼자 다니기 때문에 스태프와 같이 일하진 않지만 같이 일했던 스태프들이 저를 욕하진 않을 거예요(웃음). ‘아마존의 눈물’ 찍으러 갈 때 만태 선배(카메라 감독)가 짐도 못 드는 여자아이를 왜 데려가느냐며 반대하셨지만 나중엔 의남매가 됐어요. 하하.”



공채 출신 아니라는 핸디캡 남다른 적응력으로 극복해

‘오지 전문’ 세계 누비는 김민아 PD 도전 인생


최근까지 계약직으로 일하다 얼마전 독립한 김민아 PD의 경쟁력은 그 자신. 무기는 영어와 친화력이다. 그는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오타와대학에서 언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부모님이 오빠와 저를 화교학교에 보냈는데 중국어는 잘 못하지만 그때 경험 덕분에 외국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긴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한 건 어려서는 스파르타 학원에도 보내고, ‘문제은행’ 시험지도 풀게 했지만 자식들이 그런 환경에서 행복해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다른 기회를 찾아주셨다는 점이에요.”
부모님이 아무런 계기 없이 유학을 결정한 건 아니다. 하루 종일 시험 보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던 고1 여학생은 오전 시험만 본 채 오후에는 내리 잠을 자는 ‘반항’을 했고 급기야 부모님은 해결책으로 유학을 택한 것이다. 두 아이를 유학 보낸 뒤 제부도의 폐교를 작업실로 꾸며 사는 부모는 김PD에게 존재 자체로 든든한 버팀목이다.
“유학중에도 지속적으로 보살펴주셨어요. 아버지가 보내주신 책 덕분에 문학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정도예요. 막연히 어렸을 때 ‘서른 살 되면 책 내고 마흔 살 되면 영화 찍어야겠다’라고 생각한 것도 아버지 덕택이죠.”
그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고를 갖게 된 것 역시 “부모님 덕분”이라고 말하는 효녀다.
“대학에서 전공을 정할 때도 한국에 들어오겠다고 할 때도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고 할 때도 그저 묵묵히 제 의견을 들어주셨어요. 늘 언제나 ‘그래? 하고 싶어? 그럼 그렇게 해’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제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반년의 열애 끝에 8월에 결혼식을 올린다는 김 PD는 최근 발간한 책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요’서문에 ‘그리고 얼마 후, 아득히 먼 길을 나와 함께 떠날 그대에게 이 책을 선물합니다. 함께 가줘서 고마워요’라고 예비 신랑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남편 될 사람이 외교부 공무원인데 미국 워싱턴으로 발령이 났어요. 그래서 결혼하면 함께 미국에 가서 저는 당분간 쉬면서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려고 해요. 살림에 열중하다 보면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 같아요. 그러다 갑자기 선배들이 ‘같이 갈래?’ 그러면 따라갈 수도 있어요(웃음).”
뚜렷한 계획 없이 막연한 꿈만 꿔왔다는 김 PD는 이제부터 구체적인 인생 계획표를 짜볼 예정이다.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생 계획표를 보며 반성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껏 그래왔듯 순간순간 들리는 마음의 울림을 들으며 살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새로운 미래를 앞두고 있는 그에게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장면이 있느냐고 물었다.
“‘북극의 눈물’ 만들 때, 멀미 날 정도로 헬기를 오래 타면서 순록을 찍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황량한 곳에서 수천 마리의 순록들이 자기 갈 곳을 알고 하염없이 길을 가는데…. 그 길을 어떻게 알까 싶었죠. 그런 자연을 보면서 이런 게 자연이구나,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갈 길을 가는 것이 자연이구나 싶었어요.”
인터뷰를 끝내고 밝은 웃음으로 인사하며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여성동아 2010년 8월 5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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