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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생의 한 가운데

늦깎이 연기자 전노민 절정을 향해 달려가다

글 오진영 사진 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 ■ 헤어협찬 조한석(파크애비뉴) ■ 메이크업협찬 정현(파크애비뉴) ■ 스타일리스트 최선임(SCENE)

2010. 05. 18

국민 드라마 ‘선덕여왕’의 설원공으로 배우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전노민. 지난 수년간의 쉼 없이 달려온 길에서 벗어나 아내 김보연과 달콤한 휴식을 누리고 있다는 그에게서 ‘선덕여왕’의 비하인드 스토리, 날마다 더 행복한 결혼생활, 데뷔 10년 만에 연극에 도전하는 사연을 들었다.

늦깎이 연기자 전노민 절정을 향해 달려가다


전노민(44)은 늦게 출발해 서서히 무르익어 오래 사랑받는 배우다. 파릇한 20대를 다 보내고도 한참 지난 후에 데뷔한 그는 마흔 중반인 지금에야 경력 10년을 가까스로 넘겼다.
배우 전노민의 강점은 화면에서 튀어 도드라지는 화려한 외모나 강렬한 개성이 아니다. 듣기 좋은 중저음 목소리의 편안한 분위기, 세상 남자 다 아니어도 그만은 믿고 의지해도 될 것 같은 신뢰감, 인생의 어떤 위기에서도 달려가 안겨 쉴 수 있을 것 같은 듬직함이 그의 매력. 중년 남자 연기자로서 빛을 내는 데는 더 바랄 것 없는 최적의 조건이다. 이 최적의 능력을 잽싸게 알아본 작가·감독·제작자들이 그를 데려가 맡긴 역할이 ‘사랑과 야망’의 홍조였고 ‘가문의 영광’의 하수영이었고 ‘선덕여왕’의 설원공이었다.
게다가 TV 화면 밖 실생활에서는 아홉 살 연상인 선배 김보연을 아내로 맞아 “한 번도 싸운 적 없이” “날마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가정적인 남편이다. 언제부턴가 착한 남자, 부드러운 남자의 대표주자가 돼버린 이 남자. 지금쯤 그의 가슴속에는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는 바른 생활 사나이 이미지를 던져버리고, 목 끝까지 단정하게 채웠던 셔츠 단추를 확 풀어헤치고, 파격 변신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오를 때가 아닐까.
“왜 아니겠어요. 항상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배우로서 좋은 일이 아니에요. 계속 바르고 곧은 이미지 역할만 들어오는데 좀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해온 지 어느 정도 됩니다. 설원도 그동안 연기한 인물과 다르게 강한 임팩트 있는 역할이라 맡았던 것이고요.”

고생스러웠지만 연기자로서 전환점 된 ‘선덕여왕’
‘선덕여왕’ 제작진으로부터 처음 출연 제의를 받았을 당시 그는 ‘가문의 영광’ 출연을 마무리지을 즈음이었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그는 타 방송국 주말드라마의 주인공 역할도 제안받았다. 여러모로 마음이 안 끌릴 수 없었지만 ‘가문의 영광’에서 맡은 역과 흡사한, 반듯하고 보수적인 역이라 선뜻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설원은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모처럼 악당 분위기가 나는 강한 캐릭터라 욕심이 났습니다. 그리고 상대역이 고현정씨라는 것도 작용했고요(웃음).”
김영현 작가가 전화를 걸어와 “설원이라는 캐릭터를 배우 전노민이 맡아준다면 정말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득했고 아내 김보연도 “이런 역은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며 설원 쪽으로 대세를 몰아갔다.
“처음 두 회 분량 촬영을 마치고 작가·고현정씨와 가편집본을 함께 봤어요. 고현정씨가 ‘선배, 이거 방송 나가면 욕 좀 먹겠다’고 하기에 ‘남 얘기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라고 농담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한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매혹적인 악당과 그 악당에게 순정을 바치는 남자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전씨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남자 설원’을 표현하기 위해 일본·중국의 무협 영화를 스무 편 이상 보면서 캐릭터를 연구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사극 연기는 처음이었는데 상대역인 고현정씨가 워낙 훌륭한 배우라서 큰 도움이 됐습니다. 집사람도 방송을 보면서 ‘고현정이 괜히 고현정이 아니네’라면서 감탄하곤 했고요.”

늦깎이 연기자 전노민 절정을 향해 달려가다

반듯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연극 ‘추적’에서 비열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전노민.



당연한 얘기지만 드라마에서 상대배우와의 호흡은 많은 것을 좌우한다. 전노민은 ‘사랑과 야망’ ‘나쁜 여자, 착한 여자’ ‘가문의 영광’ 등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도 좋은 상대역 여배우를 만난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사랑과 야망’을 찍을 때는 이유리씨와 한 장면 놓고 50번까지 리허설을 한 적 있어요. 둘이 하도 붙어서 열심히 하니까 연애한다고 촬영장에서 소문까지 났었죠.”
‘선덕여왕’은 시청률이 49%까지 치솟고 전 국민의 관심을 모은 대작으로 화려한 명성을 떨친 드라마였지만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죽을 맛이었다고 한다. 아침 일찍부터 나와 대기해야 하는데 뭘 찍는지도 모르며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풀이되면서 모두 너무 지쳤다고 .
“나중에 감독이 인터뷰한 기사를 보니 ‘사람 좋기로 유명한 전노민도 언성을 높였다’며 저를 언급했더라고요.”
더구나 그는 ‘선덕여왕’ 촬영 도중인 지난해 8월 친형이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리지 않고 평상시처럼 촬영에 참여했다. 나중에야 “제작진이 사정을 알고 미안해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선덕여왕’은 다시 돌아가서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은 힘든 과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전노민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듣게 해줬고 그의 새로운 연기 변신을 가능하게 할 전환점이 되었다.



“아내와는 아직도 신혼,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예요”
지난 수년간 쉴 새 없이 이어졌던 드라마 출연에서 오랜만에 놓여나 지난해 말부터 모처럼 달콤한 휴식을 취하던 그는 봄을 맞아 새로운 활동을 준비 중이다. 신현준·이기우와 함께 호흡을 맞춘 영화 ‘우리 이웃의 범죄’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데뷔 10년 만에 처음으로 도전하는 연극 ‘추적’이 5월7일부터 6월20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추적’에서 그는 겉보기에는 지성적이고 품위 있는 소설가지만 궁지에 몰리면서 추악하고 비열한 본성을 드러내는 위선적인 상류층 인사를 연기해내면서 그동안 목말랐던 색다른 캐릭터를 표현하게 된다.
“제가 맡은 역은 2007년 개봉된 동명 영화에서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인물이에요. 배우로서 한번쯤 욕심내볼 만한 입체적이고 강렬한 캐릭터죠.”
언제나 그의 연기활동을 격려하는 편인 그의 아내는 이번만은 선뜻 반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늦게 데뷔한 만큼 방송에서 더 많이 빛을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30년 연기인생 동안 신인상부터 주연상까지 화려한 수상 경력을 쌓은 그의 아내는 늘 “당신은 더 멀리 갈 수 있는 사람,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 라면서 남편을 응원하는 동반자다. 두 사람은 2002년 연기자 선후배로 촬영장에서 만나 데이트를 시작했고 2년 만인 2004년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이 각각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세 딸은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동안 2년 가까이 쉰 김보연은 5월 초 드라마로 오랜만에 활동을 재개한다.

늦깎이 연기자 전노민 절정을 향해 달려가다


“그동안도 캐스팅 제안은 계속 들어왔는데 집사람이 좀 쉬고 싶어 했어요. 아이들도 미국에 있고 친정도 미국에 있어서 아이들 곁에 자주 갔다 왔죠. 지금은 일하는 게 굉장히 재미있고 신난다고 합니다.”
결혼 6년째를 맞는 이 부부, 아내는 남편이 드라마 촬영을 하느라 밤늦게나 새벽녘, 언제 들어와도 항상 문 앞에 달려와 웃는 얼굴로 맞아준다고 한다.
“인터뷰할 때 ‘지금도 매일 뽀뽀하냐’고 많이들 물어보던데 자다가도 문소리 나면 벌떡 일어나 달려와 웃으며 맞아주는 사람한테 뽀뽀 안 할 수 있나요?(웃음)”
지금까지 한 번도 부부 싸움을 한 적 없다면서 그 이유는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 말, 다툼을 일으킬 수 있는 말은 안 하고 피해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 번도 안 싸웠다고 하면 다들 안 믿어요. 늘 가까이서 저희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매니저나 스타일리스트들은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집사람이나 저나 한 번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아마도 또 다른 비결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우리가 10년만 더 일찍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든지 “연애할 때보다 같이 사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그렇지?”라며 아낌없이 애정 표현을 주고받기 때문일 것이다.
“부부가 살면서 행복하다는 말을 듣기 쉽지 않은데 아내는 늘 저에게 ‘지금 너무 행복하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가는 게 너무 아깝다’고 말해줘요. 제가 집사람에게 못하고 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그는 ‘선덕여왕’의 김영현·박상연 작가와 고현정, 홍상수 감독과 술자리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술이 거나하기 오른 김에 홍 감독에게 “고현정씨만 좋아하지 말고 나도 한 번 시켜달라”고 했더니 홍 감독이 “전노민씨한테 어울릴 것 같은 역으로 변태 택시 기사 역이 하나 있다”고 맞받았다고 한다. 전노민이 연기하는 변태라니, 정말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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