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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작가 김정현, 중국에서 유랑자로 사는 이유

글 오진영 사진 현일수 기자

입력 2010.03.16 11:47:00

3백만 독자를 감동시킨 소설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이 10년 가까이 중국에서 살고 있다. 최근 신작 ‘아버지의 눈물’을 발표하고 잠시 귀국한 그를 만났다. 강력계 형사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그가 오랫동안 중국에 머물고 있는 이유, 그리고 잇달아 가족소설을 내놓은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 중국에서 유랑자로 사는 이유


“소설 ‘아버지’를 썼을 때가 제 나이 마흔 살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나이에 뭘 안다고 아버지에 대해 썼을까, 코미디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96년 8월 출간돼 6개월 만에 1백만 부가 팔려나가고, 지금까지 3백만 부 가까이 찍어낸 자신의 소설 ‘아버지’에 대해 작가 김정현(53)은 ‘코미디’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강력계 형사이던 그가 퇴직과 연이은 사업 실패 후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발표하고 그렇게 세 번째로 내놓은 ‘아버지’가 일종의 신드롬으로까지 번진 것은, 코미디가 아니라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운명이고 업보였다.
“‘아버지’가 너무 많이 팔리고 유명해지니까 두렵고 도망치고 싶기도 했어요. 그래도 작가로서 의미 있는 작품을 쓰고 싶어 남북관계를 다룬 책을 준비하면서 중국을 오간 게 계기가 돼서 지금까지 9년째 중국에 살고 있어요.”
그는 마흔 살이 되기 전에 강력계 형사를 그만두고 극장업, 인테리어 사업 등에 손을 댔다가 접고 실업자 신세로 고향 경북 영주에 내려가 있었다. 그때 경찰 간부 한 명이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의 전 직장 상사이자 대한민국 수사 경찰의 거봉으로 손꼽히던 인물이었다. 경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그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경찰의 핵심에서 일하던 거물을 파렴치한으로 몰아붙이고 구속 수사를 감행하는 데 너무 화가 나고 분해서 쓴 게 첫 번째 소설이에요.”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뿔딱지가 나서” 무작정 원고지에 쓰기 시작했다는 첫 소설 ‘함정’은 정치권력 비리와 싸우는 형사의 이야기다. 습작 한 번 해본 적 없는 그가 4개월 만에 세 권짜리 소설을 탈고했다.
“소설을 썼으니 책으로 내보자는 생각이 들어 중앙 일간지를 펴놓고 책 광고 크게 낸 출판사 세 곳을 찍어서 다짜고짜 원고 사본을 보냈어요.”
원고를 보내고 사흘째 되던 날, 한 출판사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출판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던 그는 ‘소설 한 권 출판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생각하며 서울로 올라와 출판사 대표를 만났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소리를 듣고 앉아 있으면서 속으로 ‘내가 얼마를 내야 하는지 액수나 빨리 얘기해주면 좋겠다’ 구시렁대고 있었지요. 그런데 계약서에 사인을 하라고 하더니 계약금이라면서 제게 돈 봉투를 주지 뭐예요. 하하하.”
그날 받은 2백만원의 절반을 뚝 갈라서 어려울 때 신세졌던 친구를 찾아가 대뜸 용돈이라며 건넸다고 한다. 나중에 다시 만난 친구가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해서 은행에 수표를 조회해보기까지 했다’고 말해 한참을 웃었다고.

출판사마다 거절당한 ‘아버지’ 단숨에 밀리언셀러 등극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 중국에서 유랑자로 사는 이유


두 번째 소설인 ‘무섬신화’도 형사가 주인공이다. 첫 번째 소설, 두 번째 소설 모두 신인작가의 작품치고는 괜찮게 팔렸다. 세 번째 소설 ‘아버지’는 좀 달랐다.
“제가 또래와 어울리는 것보다 10여 년 이상 차이 나는 선배들과 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반듯하게 살아온 분들인데 시대를 잘못 만나 기를 못 펴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봤던 그분들의 이야기를 ‘아버지’에 담았어요.”
한 번 시작하면 하루에 원고지 1백80장까지 써내는 속도로 한 달 만에 탈고했다. ‘아버지’ 원고를 플로피디스켓에 담아 앞서 두 작품을 펴낸 출판사에 보냈는데, “이건 신파라서 좀 곤란하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여덟 번째인가 아홉 번째로 원고를 보낸 문이당에서 마침내 출판을 하겠다고 결정했다. “팔리지는 않겠지만 이런 책도 나와야 할 것 같다”면서 말이다. 이렇다 할 광고도 없이 세상에 나온 ‘아버지’는 출간 보름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석 달 만에 10만 부를 돌파했다. 독자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듬해 외환위기가 닥쳤고, ‘아버지’의 대히트는 ‘경제 불황과 명예퇴직으로 코너에 몰린 기성세대의 위기의식이 빚어낸 사회현상’으로 해석됐다. 작가의 생각은 다르다.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 중국에서 유랑자로 사는 이유


“‘아버지’가 1백만 부 나갔을 때는 대중이 외환위기를 피부로 느끼기 훨씬 전이에요. (제 책이 밀리언셀러가 된 건 외환위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명목으로 과거를 부정하는 시대에 허무함을 느끼고 죄책감을 가진 사람들이 제 책에서 공감을 얻은 거라고 생각해요.”
‘아버지’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는 이후 ‘어머니’ ‘아들아 아들아’ ‘가족’ 등 ‘아버지’와 비슷한 성격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소설을 몇 편 더 내놓았다. 하지만 그가 정말 쓰고 싶었던 작품은 그런 게 아니었다고 털어놓는다.
“아직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나이가 아니고 쓸 자신도 없었는데, 소설을 써서 넘기면 자꾸 가족소설로 제목을 붙이더라고요.”
그 무렵 남북관계와 탈북자 관련 소설을 준비하느라 중국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왕 소설가로 나섰으니 묵직한 주제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97년부터 중국을 오가며 탈북자를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세 권짜리 장편소설 ‘길 없는 사람’을 펴낸 게 지난 2003년. 남북의 이념 대립에 희생된 한 가족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여정을 직접 밟기 위해 중국과 북한, 러시아의 국경지대와 미얀마를 거쳐 중국 윈난성에 이르는 긴 여행을 하던 중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정체를 밝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징에서 윈난성까지 비행기로 네 시간 정도 걸리는데, 비행기 안에서 중국 땅을 내려다보며 생각했어요. 이 거대한 영토가 3천 년 전부터 단일국가체제를 이어오고 있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지 않은가. 중국의 문명과 통치 기술에 대해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10년 공부한 중국, 10년간 책으로 펴낼 계획
2002년 중국 베이징에 집을 마련했다. 그 즈음 중국으로 유학한 아들과 딸이 함께 살았는데, 지금은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중국에선 그 혼자 생활한다.
“베이징을 베이스캠프 삼아 중국의 웬만한 고장과 유적지는 다 가보고 현지인의 눈빛을 읽으며 다녔어요. 보면 볼수록 캐내면 캐낼수록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고 자꾸 커지는 겁니다.”
중국 역사를 공부하느라 책을 사들이는 데 쓴 돈만 족히 1억원은 될 거라고 했다. 책에 파묻혀 살다 보니 어느덧 50대에 접어들었고, 눈이 침침해져 지난해와 올해 한 쪽씩 두 눈 다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중국 역사를 공부한 지 2년 정도 됐을 때 5천 년 중국 역사를 26부작 다큐멘터리로 만들겠다는 기획안을 들고 베이징대 동방문화연구원의 유명한 석학을 찾아간 적 있어요. 그분이 제 기획안을 읽어보고는 ‘중국에서 만든 1백 부작 다큐멘터리에도 다 못 담은 중국 역사인데, 당신의 기획안이 완벽하게 담아내 놀랐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때 용기를 얻어 끝장을 보리라 각오를 다졌지요.”
일간지 연재를 통해 곧 선보이게 될 것 같다는 그의 ‘중국인 이야기’(가제)는 올해 첫 권을 출간하고, 향후 10년간 총 10권을 내놓는다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중국 역사에 파묻혀 지내던 그가 최근 ‘아버지의 눈물’이란 작품을 내놓은 연유를 묻자, 2년 전 접한 고향 친구의 죽음에 대해 먼저 얘기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인데,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합격했을 정도로 수재였어요. 녀석이 군에서 제대할 당시 아버지가 병환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자 고향에서 아버지의 사진관을 운영하며 17년간 아버지 곁을 지켰어요.”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 중국에서 유랑자로 사는 이유


친구는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3년 후 간암 판정을 받고 숨졌다. 그 친구 이야기만은 꼭 소설로 남기고 싶어 꼬박 1년을 매달려 ‘고향 사진관’이란 작품을 완성했다. 친구의 이야기인지라 객관적으로 감정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다시는 소설을 못 쓰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 10년 사람들과 거의 접촉하지 않고 중국 역사 공부에 매달려 있었더니 소설 쓰는 감을 잃은 것 같았어요. 내 가슴이 너무 메말라버린 게 아닌가, 사람 냄새는 없고 담배 냄새만 남은 중년이 돼버렸나 싶어 쓸쓸했지요.”
그 뒤로 한국에 올 때마다 친구들을 만나고 한동안 끊어졌던 인연을 이어가려고 애썼다. 오랜만에 또래들이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니 우리의 초상이 이거밖에 안 되나 하는 서글픔이 느껴졌다고.
“10여 년 전 ‘아버지’를 쓸 때는 미처 몰랐던, 우리가 진정 아버지 자격이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제 할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버지를 부정해서는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지요”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다. 시발택시 제조·정비 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유복하던 가정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났다. 제대로 된 장부 하나 없이 돈 줄 사람은 사라지고 돈 받을 사람만 몰려와 사무실 캐비닛까지 다 들고 가버렸다. 어머니와 삼형제는 뿔뿔이 흩어져 친척집 더부살이 신세가 됐다. 맏아들이던 그는 조부모와 함께 살았는데, 중학생이 된 그에게 할아버지는 학교에 다니지 말라고 다그쳤다.
“학교 갔다 오면 막대기 들고 쫓아오는 할아버지를 피해 숨어 있다가 한밤중에 들어가 할머니가 주는 밥 겨우 얻어먹고 새벽에 할아버지 일어나시기 전에 도망 나와서 학교에 다녔어요.”
고생스럽게 뒷바라지한 장남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할아버지로서는 ‘가르쳐봐야 소용없고, 장손은 농부로 살면서 집안 씨앗을 지키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걸 나중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는 그분들 나름의 기준과 정신이 있어서 그것을 자식들에게 당당하게 전해줬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정신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모든 걸 다 잡고 보겠다는 욕심과 불안에 휩쓸려 껍데기만 남은 게 우리 세대의 모습 아닐까요.”
그의 신작 ‘아버지의 눈물’은 50대 아버지가 주인공이다. 가장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강박과 책임감에 짓눌려 살아왔지만 결국 인생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가정과 사회에서도 설 자리를 잃고 만다.
“거대한 거품 같고 공상 같은 무엇인가에 쫓겨 정신없이 달려온 우리가 이제는 폭주를 멈추고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모습을 돌아보며 지나온 날을 반성해야 할 때가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어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 역사를 공부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자신의 역사를 부정하는 사회는 망한다는 거예요.”
그는 이제와 돌이켜보니 중국에서 10년간 중국 역사를 공부한 것도, 아버지라는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자신을 반성할 때 진정한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에 이른 것도 다 운명인 것 같다고 말한다.
“아버지와 가족에 대해 잘 모르는 나이에 쓴 작품이 너무 큰 반향을 일으키는 바람에 그 업보로 외국 땅에서 유랑자처럼 떠돌았나봐요. 먼 길을 돌아 이제야 아버지와 우리가 사는 이야기에 대해 쓸 수 있는 진정한 작가 자리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여성동아 2010년 3월 5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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