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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 솔직한 고백

‘예능 늦둥이’윤종신 웃음 뒤에 감춘 인생의 희로애락

글 김범석‘일간스포츠 기자’ | 사진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워크원더스 제공

2009. 01. 20

윤종신은 스스로 운이 좋다고 말한다. 발라드 가수로 가요계에서 입지를 다졌고 생존경쟁이 치열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의 강점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이미지. 그의 말과 노래 가사는 소박하지만 진심이 담겨 있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예능 늦둥이’윤종신 웃음 뒤에 감춘 인생의 희로애락

최근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예능 늦둥이’ 윤종신(40).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동안 웃기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을까” 궁금해하지만 사실 그는 데뷔 초부터 개그맨의 DNA가 흐르는 가수로 유명했다. 워낙 입담이 좋아 녹화 대기실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일찌감치 그의 진가를 알아보고 군침을 삼킨 예능국 PD도 많았다.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의 여운혁 PD도 그중 한 명. 그는 “왜 좋은 재능을 썩히고 노래만 하냐”며 윤종신의 개그 본능을 자극했다. 라디오 DJ를 오래 한 이유도 말하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5개의 예능 프로에 고정출연하지만 그는 지금도 “마음의 고향은 라디오 부스”라고 말한다. 최근 그는 3년 7개월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하고 본업인 가수 활동을 재개했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전쟁 같은 세상에서 가장으로서 책임 다하는 수단”
▼ 앨범 제목이 ‘동네 한바퀴’인데 어떤 속뜻이 담겼죠?
“주위를 돌아보자는 의도였어요. 김(범석) 기자는 어릴 적 살았던 동네에 가본 적이 있나요? 저는 종로구 평창동 근처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어요. 지금도 그곳에 가면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요. 행복은 어쩌면 ‘행복했던 기억’의 준말인지도 몰라요. 그래서 동영상보다는 스틸 사진에 가깝죠.”
▼ 평창동이면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곳 아닌가요?
“평창동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웃음).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는데 알려진 것처럼 저택도 많지만 제가 사는 곳은 평범한 빌라예요. 게다가 아직 전세인 걸요.”
▼ 그동안 돈 많이 벌지 않았나요?
“97년 포이동(현 개포동)에 녹음실을 만들었다가 쫄딱 망했어요. 가수들의 로망이 나만의 녹음실이거든요. 장비를 살 때만 해도 내가 24시간 음악만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웃음). 음악에 대한 필(feel)이 늘 충만한 것도 아니고요. 앨범을 못 내서 일년 내내 테니스와 축구만 한 적도 있어요. 임대료와 엔지니어 인건비 때문에 2002년 접었죠.”
▼ 이번 음반에 아내 전미라씨도 참여했다죠?
“아들을 소재로 한 노래를 하나 넣었는데 ‘널 사랑해’라는 후렴구를 직접 불렀어요. ‘해볼래?’ 물었더니 ‘재밌겠다’며 냉큼 오케이하더라고요.”
▼ 평소 가사는 어떻게 작업합니까?
“좋은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노트북에 저장해놓죠. 폴더가 따로 있어요.”
▼ 원래 고향이 서울인가요?
“경상도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님 따라 여섯 살 때 상경했어요.”
▼ 나이 들면 뜨거웠던 사랑이 미지근해지진 않습니까.
“미지근해졌다고 나쁜 건 아니죠. 뜨거울 때는 함부로 만졌다가 화상을 입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미지근하면 많은 사람이 만질 수 있죠. 신기한 게 일을 대하는 마음은 예전보다 훨씬 뜨거워졌어요. 결혼하니까 전투력이 막 샘솟아요.”

‘예능 늦둥이’윤종신 웃음 뒤에 감춘 인생의 희로애락

지난 2006년 결혼한 윤종신 전미라 부부는 슬하에 아들 라익이를 두고 있다.


▼ 윤종신씨도 사는 게 전쟁인가보죠?
“그럼요. 총알만 안 날아다닐 뿐 전쟁이죠. 그래도 저는 이왕 하는 일 즐겁게 하자는 쪽이에요. 바쁜 건 똑같지만 아등바등 사는 것보다는 열심히 사는 쪽이 낫죠. 예능 프로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감사해요. 가정을 책임진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잖아요.”
▼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고 믿습니까?
“뜨거운 사랑에는 분명히 유효기간이 있죠. 20대 때 ‘그 사람’이 아니면 하루도 못 견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잖아요. 헤어진 뒤 ‘그 사람’이 없어도 우리는 충분히 잘 살고 있지 않나요? 그만큼 내성이 길러지는 거겠죠.”
▼ 학창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중·고등학교 때는 개성 없는 아이였고, 대학 때 별명은 권총찬이었어요. F를 너무 많이 받아서 학사경고까지 받았거든요. 곡 쓰고 통기타에 미쳐 살았는데 우연히 015B 객원가수로 발탁돼 데뷔했죠.”

장 협착증으로 소장 60cm 잘라내, 건강하게 잘 늙는 게 삶의 최대 화두
‘라디오스타’ ‘예능선수촌’을 보면 그는 2인자의 느낌에 가깝다. 프로그램을 주도해서 이끌고 나가기보다는 한 발 떨어져서 관망하다가 빈틈을 치고 들어가는 식이다. 윤종신은 그런 자신을 “축구로 따지면 골게터보다는 부지런히 센터링을 하는 역할”에 비유했다. 이는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 술자리에서 그의 역할은 대화를 주도하는 친구의 독재(?)를 막는 것이라고. 그는 “완장을 차면 책임져야 한다. 2등이 좋다”고 말했다.
▼ 예능 프로 녹화 도중 패널들끼리 얼굴 붉히는 일은 없나요?
“다 친하니까 그럴 일은 거의 없죠. 간혹 욕심 때문에 말을 좀 심하게 할 때가 있는데 상대가 ‘기분 나쁘다’고 경고하면 천하의 김구라도 바로 화제를 돌려요(웃음).”
▼ 가장 불쾌했던 경험은 뭔가요?
“상대가 리액션을 안 해줄 때죠. 예능에선 리액션이 생명이거든요. 음악은 나만 잘하면 되지만, 예능은 서로 도와줘야 돼요. 협력 플레이죠.”
▼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군가요?
“아직까진 없어요. 거만한 게 아니라 제 캐릭터와 겹치는 사람이 아직 없잖아요?”
▼ 노출 빈도가 너무 잦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가혹하게 말씀하시면 억울하죠(웃음). 제 입으로 이런 얘기하는 건 우습지만 ‘기적의 승부사’ 빼고 제가 출연한 프로가 모두 잘됐어요. 하지만 그런 지적은 귀담아듣고 있습니다. 분명히 어느 순간 질리는 시점이 오겠죠. 그전에 제가 알아서 정리할 겁니다.”
▼ 남들을 웃기면 발라드 가수로서 치명적이지 않습니까?
“그게 고민인데 크게 개의치 않으려고요. 대중이 제 노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건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제 탓인 거죠. 대중의 수용 미학을 존중해야 돼요. 다행인 건 제가 양면성이 아닌 다면성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 말을 많이 한 날은 혹시 집에 가서 공허하지 않습니까.
“그런 날이 있죠. ‘오늘 너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구나’ 후회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사람한테 위로를 받아요.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서 와인 한 잔 하면 금세 풀리죠.”
▼ 라디오 진행 도중 여자를 회에 비유해 구설에 시달렸죠?
“무조건 제 잘못이죠. 그때 제 머리의 회로도가 다운됐었나봐요. 말조심해야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사고였어요.”
▼ 요즘 최대 화두는 뭔가요?
“역설적이지만 잘 늙는 거예요. 제가 불규칙한 식생활 때문에 장 협착증에 걸려 소장을 60cm나 잘라냈거든요. 그 뒤로는 건강이 가장 큰 관심사가 됐어요. 요즘도 틈날 때마다 잠원동에서 심야 테니스를 치고 북한산에도 올라가요. 제 꿈이 손자 손녀 보고 죽는 거예요(웃음). 황석영 작가가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우리는 오늘을 사는 거다’라고 했는데 그 말 듣고 정말 무릎을 쳤습니다. 오늘도 제대로 못 사는데 내일과 미래가 무슨 소용 있겠어요.”

‘예능 늦둥이’윤종신 웃음 뒤에 감춘 인생의 희로애락

▼ 살면서 억울한 일도 겪어봤죠?
“지금까지 거국적인 인기를 누려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되도록 남 탓 안 하고 현실을 빨리 인정하는 습관이 몸에 뱄어요. 잘 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거든요. ‘누구누구는 노래 대신 마케팅으로 떴다’고 손가락질하지만 따져보면 마케팅도 실력이거든요.”
▼ 만약 ‘내일 뉴스’를 혼자 접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뭘 할 겁니까.
“주가를 알아봐야죠(웃음). 온 국민이 ‘펀드통’에 시달리잖아요. 저도 주식 때문에 마음고생 했어요. 3년째 적립식 변액펀드를 붓고 있거든요. 그런데 많은 전문가들이 극복되지 않은 경제위기가 한 번도 없었대요. 요즘도 돈 생기면 투자해 조금씩 평균매입단가를 낮추고 있어요.”
▼ 재테크에 관심이 많으신가봐요?
“가장인데 그 정도는 기본이죠. 녹음실 문 닫고 앨범 제작에도 손댔다가 손해를 크게 봤어요. 결혼 전 아내한테 제 경제상황을 숨김없이 고백했어요. 모아둔 돈은 없다. 그렇지만 앞으로 열심히 일해서 우리 가족 고생시키지 않겠다고요.”



결혼하고 아이 낳은 후 재테크에 관심 많아지고 세상 보는 눈 관대해져
윤종신은 얼마 전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해 당뇨병으로 10년 넘게 투병 중인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자식을 낳아보니 부모 마음을 이제 조금 알게 됐다고 한다. 윤종신은 지난 2006년 전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 전미라와 화촉을 밝혔다. 강호동 등 몇몇 연예인과 친목도모를 위해 테니스를 치다가 전미라를 본 윤종신이 먼저 호감을 느꼈고, 강호동의 적극적인 어시스트로 결혼에 골인했다. 아들 이름은 아내 이름 중 한 글자인 ‘라’와 집안의 돌림자인 ‘익’을 합해 라익이라고 지었다. 얼마 전 치른 라익이 돌잔치에는 유재석·김수로·이효리 등 SBS ‘패밀리가 떴다’ 팀과 강호동·신정환·김구라·김국진 등 동료, 선후배들이 찾아와 축하해줬다. 그는 “불경기이고 금값도 많이 올라서 일부러 초대하지 않았는데 고맙게 다들 시간을 내줬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 연애할 때 아내의 어떤 점이 가장 좋았나요?
“착하고 낙천적인 성격이요. 출산할 때도 13시간 참고 자연분만했거든요. 저희 부부가 사실 다산주의자인데 부은 얼굴을 보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아내 손잡고 ‘우리 이제 그만 낳자’고 했는데 아내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당신, 무슨 소리냐’며 몇 명 더 낳을 수 있다는 거예요.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한테는 천사가 따로 없죠.”
▼ 분만은 지켜봤습니까.
“보다가 녹화 일정이 있어서 방송국 다녀왔는데 그 사이에 낳았더라고요. 미안해서 아무 말도 못했어요. 요즘은 라익이가 저를 알아보고 안겨요. ‘아, 이 맛에 자식 키우는구나’ 싶더라니까요.”
▼ 아빠가 되니 기분이 어때요?
“확실히 전보다 관대해진 것 같아요. 요즘 제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그럴 수도 있지’예요. 용서가 빨라졌죠(웃음).”
▼ 아기 목욕도 직접 시키나요?
“그럼요. 목욕시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장모님이 계셔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 기념일은 잘 챙기나요?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죠. 녹화다 음반 준비다 해서 집안일도 많이 못 돕는데 그날만큼은 로맨틱하게 보내야죠. 그런데 빼빼로데이나 화이트데이 이런 건 솔직히 못 챙겨줘요. 아내도 그런 날까지 뭘 바라는 눈치는 아니고요. 아이가 생기니까 모든 관심사가 이제 아이에게로만 모아져요. 세상 모든 부모님이 다 그런 마음으로 자식을 키웠다고 생각하면 존경스러워요.”
▼ 결혼해도 외로울 때가 있나요?
“그럼요. 사람이니까 외로운 거라는 시도 있잖아요. 저는 외로운 감정도 사랑해요. 특히 곡을 작업하는 저희 같은 사람들에겐 필수 감각 중 하나죠. 슬플 때 슬픈 음악을 들어야 오히려 진정되잖아요.”
▼ 스스로 생각하는 윤종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우유부단하지만 운이 따라주는 사람 같아요. 위기가 닥쳐도 순간순간 잘 넘어가는 임기응변형 인간이고요(웃음). 언젠가 목공이나 공예를 배워볼 생각이에요. 솜씨 좋은 기능공이 돼서 의자나 그릇을 직접 만드는 게 꿈입니다. 제가 만든 그릇에 음식을 담아 가족들과 밥을 먹는 상상을 하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해요. 결혼이 이렇게 좋은 건데 왜 그렇게 미뤘는지 후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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