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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즐거운 인생

토크쇼 MC 데뷔 앞둔 박중훈

‘사랑과 인생’에 관한 막힘 없는 수다

글·김범석‘일간스포츠 기자’ / 사진제공·스포츠동아

입력 2008.12.22 15:06:00

경기침체로 좀처럼 웃을 일이 없는 요즘, 연예계에서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어렵지 않게 박중훈의 얼굴이 떠올랐다. 영화 ‘깜보’로 데뷔한 지 벌써 24년. 욕심 내지 않고 꾸준히 제 길을 걸어온 배우로, 1남2녀를 둔 가장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겐 뭔가 그럴듯한 해답이 있지 않을까.
토크쇼 MC 데뷔 앞둔 박중훈

“요즘 하루하루가 새롭고 설렌다”는 박중훈(42)은 기자에게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라도 웃어야 좋은 일이 생기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지난 11월16일 박중훈의 집 근처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설렁탕집에서 그를 만났다.
11월 초 영화 ‘해운대’ 국내 촬영을 마쳤지만 박중훈은 여전히 바빴다. 12월 중순 첫 방영되는 KBS 2TV ‘박중훈쇼-대한민국 일요일 밤’ 타이틀 촬영과 워크숍을 겸한 회의에 이어 단합대회까지, 연일 컨베이어 벨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해운대’ 촬영차 미국으로 출국하는 그를 하루 전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그는 “경기 직전 운동선수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밖에 더 하겠느냐”며 선수를 쳤지만 이 노련한 배우는 많은 얘깃거리를 기자에게 던졌고, 적절한 비유와 임기응변, 재치로 상대를 무장해제시켰다. 이날 두 시간은 미리 본 ‘박중훈쇼’ 같았다.

출연료는 주는 쪽에서 조금 미안하고 받는 쪽에선 조금 서운한 정도
▼ 요즘 TV에서 버라이어티가 대세인데 자신 있습니까.
“자신 있다고 말하면 건방져 보일 것 같고, 그렇다고 의욕을 숨기고 싶진 않습니다. 아무래도 이젠 신동엽·강호동·유재석씨가 진행하는 걸 유심히 보게 됩니다. 충무로 밥을 20년 넘게 먹었지만 방송은 새내기잖아요. 초보운전자의 마음으로, 배우는 자세로 임할 겁니다.”
▼ 원래 다른 방송사에서 토크쇼를 준비하지 않았나요.
“그랬죠. 1년 전 거의 녹화 직전까지 갔다가 백지화됐어요.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었지만 이미 끝난 일을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아요. 지나고 보니 더 좋은 제작진을 만나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박중훈쇼’의 책임 프로듀서가 ‘소비자 고발’을 맡았던 이영돈 PD고 저와 함께 모두 6명의 PD가 일하게 됐어요.”
▼ KBS 가을 개편에서 거의 유일하게 신설된 프로인데 어깨가 무겁겠습니다.
“이번 개편에서 많은 외부 MC들이 바통터치하게 됐는데 그분들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임할 겁니다. 책임이 무겁다는 건 할 일이 많다는 뜻이겠죠?”
▼ 회당 출연료는 만족할 만한 수준입니까.
“어차피 KBS는 국정감사 때 자료가 공개되니까 그때 밝혀지겠죠. 분명한 건 다른 방송사가 제시했던 액수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란 겁니다. 저는 출연료의 황금비율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예요. 돈을 주는 쪽은 언제나 많이 주는 것 같고, 받는 쪽은 늘 부족하다고 느끼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주는 쪽에서도 조금 미안하고, 받는 쪽에서도 조금 서운한 정도에서 얘기를 잘 끝냈어요. 이렇게 되면 일하기가 아주 편해집니다. 서로 합리적으로 무리수를 두지 않으면서 좋은 결과를 위해 머리를 맞대거든요.”
▼ 정글의 세계에서 몸값은 자존심과 동의어 아닙니까.
“저는 몸값과 자존심은 별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영화 출연료도 터무니없이 많은 액수를 요구하지 않아요. 항상 적정선을 지키려고 노력하죠. 과하게 받으면 분명히 배탈 나거든요. 진정한 자존심은 돈이 아니라 연기력이고 결과물에 있겠죠.”
▼ 그동안 꾸준히 MC 제안을 받았는데 이제야 받아들인 이유가 뭔가요.
“막연히 40대 때 해보고 싶었어요. 20~30대에는 패기가 너무 앞서고, 50대는 아무래도 훈계조가 될 수 있으니까 염려스러웠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인생을 안다는 건 아니지만 40대를 대표해 여러 세대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 ‘박중훈쇼’의 차별화 전략과 승부처는 뭡니까.
“시사와 이슈, 인물을 망라한 엔터테인먼트 토크쇼입니다. 거창하게 고품격 프로라고 설레발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시청자들이 평가해주실 부분이니까요. 예컨대 고시원 방화사건이 금주 이슈였다면 스튜디오에 고시원 내부를 세트로 지어놓고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겠죠.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인터넷 악플러가 주제라면 실제로 악플을 올리는 사람들을 초대해 인터뷰를 하는 식이죠. 초딩이면 어떻고 중딩이면 어떻습니까.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출 생각입니다.”

토크쇼 MC 데뷔 앞둔 박중훈

▼ 첫 회 게스트로 혹시 안성기씨가 출연하는 건 아닙니까?
“그런 전형성을 깨는 게 우리의 과제입니다(웃음). 그렇지 않아도 안성기 선배와 이웃 주민인데 며칠 전 헬스클럽에서 ‘중훈아, 선택 잘했다. 잘되길 바란다’고 덕담해주시더라고요. 그 형님의 말씀은 행간의 의미를 잘 읽어야 해요.”
▼ 대표적인 예능프로인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는 챙겨서 봅니까.
“일부러 찾아서 보는 편은 아니지만 눈에 띄면 보죠. 바뀐 방송 환경과 트렌드를 공부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유명인의 가십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뿐 아니라 그런 접근 방식이 대중에게 위안을 줄 수 있거든요.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변잡기로 몰아간다는 거죠.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편식하면 건강에 도움이 안 되잖아요.”
▼ 의미에 너무 방점이 찍히면 자칫 채널이 돌아갈 수 있을 텐데요.
“그래서 의미와 재미를 함께 추구하겠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웃지 않는다고 재미없는 건 아니거든요. 얼마든지 속으로 흐뭇하게 웃을 수 있어요. 5분마다 웃음이 뻥뻥 터질 수도 있지만 우리의 목표는 70분 동안 은은한 미소를 잃게 하지 말자는 겁니다.”
▼ 특정 정당 지지자(박중훈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왔다)가 시사 토크 프로에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겠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된장찌개를 좋아한다고 요리 프로그램 진행을 못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노사간의 문제도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갈등 집단이기도 하죠. 기업인과 노동자가 우리 프로에 출연해 서로 갑론을박을 벌일 수 있다고 봅니다.”
▼ 결국 소통의 문제네요.
“맞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심각할 정도로 소통 부재의 부작용을 겪고 있어요. 한국이 다이내믹한 장점이 있는 반면, 빈부 격차와 세대 간 단절, 갈등은 하루빨리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 만약 말다툼하고 화해하지 않은 불편한 사람이 게스트로 초대된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사실 그런 점이 가장 고민이 돼요. 제 기억에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지만 혹시 저도 모르게 상처 준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전지전능한 제작진에게 도움을 청해야죠(웃음).”
▼ 한결같은 외모에 대해선 복안이 있습니까.
“요즘은 외모도 경쟁력이라는데 은근히 걱정이 많았죠. 그래서 데뷔 후 처음으로 스타일리스트의 도움을 받기로 했어요. 양복과 넥타이를 매는 날도 있고,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녹화하는 날도 있을 겁니다.”

아이들에겐 친구 같은 아빠, 아내에겐 존경받는 남편
박중훈은 94년 결혼 이후 현재까지 재일교포 출신 아내와 슬하의 1남2녀를 매스컴에 단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 본인은 얼굴이 알려졌지만 아내와 자녀들만큼은 사생활을 보호해주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약 10년 전 기자에게 박중훈의 아내와 그의 집을 구경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온 적이 있다.
지난 99년 박중훈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빌라에 살 때다. 그때도 인터뷰를 위해 몇 차례 매니저에게 전화를 했지만 묵묵부답. 어쩌다 통화가 돼도 “지금은 곤란하다”는 말만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박중훈을 직접 만나 부딪쳐보기로 한 기자는 무작정 그의 집을 찾아갔고, 박중훈은 낯선 불청객을 순순히(?) 거실로 안내했다.
당시 아내는 거실에서 빨래를 정리하고 있었고, 박중훈은 기자에게 가족을 일일이 소개시켜줬다. 기자는 얼떨결에 짧은 일어로 “하지메마시떼(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인사했고 그의 아내는 “한국말 잘해요”라고 말해 기자를 머쓱하게 했다. 단아한 미인형의 얼굴이었고 과일과 커피를 가져다주며 “편히 쉬다 가시라”고 말했다. 말하지 않았지만 남편에 대한 존경심을 읽을 수 있었다.
박중훈은 2층의 방을 개조해 만든 시사실로 기자를 데려가 담배를 권하며 영화와 일상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시사실 양옆에는 ‘투캅스’를 비롯한 그가 출연한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는 다른 건 몰라도 가족 얘기는 다루지 말아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어차피 나는 유명인이라 일상의 불편함을 겪는 데 익숙해졌지만 가족들은 나 때문에 불편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아내와 아이들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토크쇼 MC 데뷔 앞둔 박중훈

▼ 아내는 뭐라고 합니까.
“일에 대해선 아내가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서 아직까진 잘 모르겠어요(웃음). ‘당신,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많이 하면 실수할 수 있으니까 항상 조심하라’고 한마디하더라고요. 정답이죠.”
▼ 집에선 어떤 아빠인가요?
“큰아이가 벌써 중1이고 둘째, 셋째도 초등학교 5학년, 1학년이에요. 이제 다 키웠죠? 늘 친구 같은 눈높이를 유지하려고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네요(웃음). 오히려 아이들이 저를 철들게 해요.”
▼ 외국으로 유학 보낼 생각은 없습니까.
“천만에요. 외국 가서 잘될 아이들은 한국에서도 공부 열심히 해요. 영어는 우리나라만큼 잘 가르치는 나라가 또 있습니까? 다 제 몫이 있는 거죠. 집사람도 그렇고 가족들이 서로 떨어져 지내는 걸 못 견뎌요.”
▼ 인생 최대 위기는 언제였나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찍을 때 가장 힘들었어요. 당시 아버지가 예순아홉이셨는데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셨고, 아내도 둘째 낳느라 일본에 가 있을 때라 정말 외롭고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다는 좌절감이 들었어요. 술 마시면 꼭 누군가랑 시비가 붙어서 액션영화 많이 찍었을 때예요(웃음).”
▼ 시속 40km로 달린다는 40대인데 행복하십니까.
“20대는 아직 아이인데 정작 본인들은 그걸 모르죠. 저도 몰랐고요. 그래서 20대는 ‘뭐든지’ 가능한 나이인 것 같아요. 그에 비해 30대는 ‘웬만하면’ 가능한 연령대고, 40대는 ‘여전히’ 가능한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50대는 ‘제한적으로’ 가능한 나이이고, 60대는 ‘의지가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부담감이 많지만 40대가 참 괜찮은 나이인 것 같아요.”
▼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습니까.
(방금 전까지 40대 예찬론을 펼치던 그는 이 질문에 “생각만으로도 즐겁다”면서 “머무는 기간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얼마 동안 살다가 올 수 있냐”고 물었다. “한 달”이라고 했다.)
“한 달이라. 20대 후반으로 가보고 싶네요. 제가 뉴욕으로 유학 갔을 때가 스물다섯이니까. 그 무렵 아내를 만났죠. 아내 만나기 전에 연애도 실컷 해보고 싶고요(웃음).”

욕심 내려놓고 알차고 부드럽게 사는 게 꿈
박중훈은 24년 배우 인생을 중간 평가해달라고 하자 “1등을 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늘 자신을 닦달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올라갈 때 너무 우쭐했고, 내려갈 때 필요 이상으로 좌절했던 것 같았다는 것. 그는 이제 욕심을 내려놓고 이끼 낀 돌처럼 부드럽지만, 알차게 사는 게 꿈이라고 한다.

▼ 술은 자주 마시나요.
“40대가 되니까 확실히 체력이 안 받쳐줘요(웃음). 상처가 나도 재생하는 데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고요. 술을 마셔도 간에서 회복하는 속도가 더디니까 잘 안 마시게 됩니다. 제가 술 마시면 살도 금세 찌거든요. 체중 관리해야 하니까 안 마시는 게 상책이죠. 잠들기 전 와인 한두 잔 마시는 게 전부예요.”
▼ 술 마시자며 나오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간혹 있었는데 제가 원체 잘 안 나가니까 이제 뜸해졌어요. 전화가 오는데 안 받으면 미안하니까 해가 지면 전화를 꺼놓게 되더라고요.”
▼ 요즘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한국 영화의 위기도 만만치 않죠?
“데뷔 이후 이렇게 힘든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돈줄이 꽉 막혀 있으니까요. 이제 스타들이 출연해도 투자가 안 되는 일이 다반사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럴 때 솎아질 것 솎아지고 나면 양질의 콘텐츠가 나오지 않겠어요? 위기와 기회는 항상 왕복 티켓 같은 거잖아요.”
▼ 좋은 배우는 어떤 배우인 것 같습니까.
“글쎄요. 이제 점점 배우의 자생력이 축소되는 것 같아요. 100점짜리 영화를 열심히 노력해서 130점짜리로 만들 순 있는데 70점짜리를 100점으로 채울 순 없는 것 같아요. 많은 이들이 영화는 감독예술이라고 하잖아요. 배우는 훌륭한 감독을 만나 충실한 메시지 전달자가 되는 거죠.”
▼ 종교 말고 신봉하는 게 있습니까.
“사람은 살면서 무수히 많은 점을 뿌리고 산답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그 점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선으로 연결돼 있는 거죠. 세상의 모든 일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존재한다는 뜻이에요. 밀물과 썰물이 그냥 반복되는 것 같지만 파도로 쉼 없이 움직이는 거잖아요. 그래서 오늘을 충실히 사는 사람이 내일도 잘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배우의 진정한 자존심은 몸값이 아닌 연기력이라고 말하는 박중훈.

여성동아 2008년 12월 5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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