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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정윤숙 기자의 Shopping Essay

빨간 하이힐, 그 아찔한 유혹

일러스트·정윤숙

입력 2008.01.12 11:58:00

빨간 하이힐, 그 아찔한 유혹

난 쇼핑을 좋아한다. ‘쇼핑마니아’라고 자칭한다 해도 이의를 달 주변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특히 신발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는 쇼핑 아이템 중 하나다. 일단 찍어놓은 아이템이 있으면 그 시즌이 끝나기 전 기필코 내 손 안에 들어와야 잠을 이룰 정도다. 나의 이런 슈즈 사랑은 할리우드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로 인해 국내에 알려진 ‘슈즈 홀릭’이라는 단어보다 더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밝히긴 곤란하지만 대략 수십 켤레(아직 1백 켤레가 안 되는 걸 다행이라 여긴다)에 이르는 신발을 보고 있노라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런데 요즘 고민이 하나 생겼다. 생각보다 포인트로 신을 만한 컬러풀한 슈즈가 없다는 것. 이것 참 ‘대표 슈즈 사랑人’으로서 체면이 서지 않는다. 이런 변명을 늘어놓는 이유는 다 그 ‘빨간 하이힐’ 때문이다. 이미 신발장이 넘쳐흐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은 신발을 새로 구입할 때마다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다독이는 합리적인 변명거리를 찾아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다음 달 카드 영수증을 보며 “또 질렀구나, 미쳤구나”를 연발하게 될 테니까. 그러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신발을 보며 위안 삼을 수 있다. 그럴듯한 이유라면 마음의 상처 또는 쓰라림이 상대적으로 덜하다고나 할까.
필이 꽂힌 그 빨간 하이힐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발견한 아이템이다. 해외 쇼핑 사이트로 유명한 이곳은 마치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듯 항상 들르게 된다.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이 빨간 하이힐의 소재는 스웨이드. 약간 빛바랜 빈티지 레드 컬러에 굽은 6cm와 8cm 중 고를 수가 있다. 이것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를 ‘내꺼’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게다가 수제화라는 장점에도 아주 착한 가격, 9만9천원의 세일 상품이었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템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원작 소설을 보면 빨간 하이힐이 마치 악마의 유혹을 상징하는 것처럼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또 빨간색은 아니지만 김혜수가 공포에 질린 눈을 하고 있는 포스터로 눈길을 끈 공포영화 ‘분홍신’도 빨간 하이힐만큼이나 악마적인 모티프로 사용되고 있다. 너무 강렬하고 유혹적인 컬러라는 생각 때문인지 어릴 적부터 난 빨간색을 좋아하지 않았다. 90년대에 한창 유행하던 빨간 립스틱 역시 화장을 시작한 대학시절부터 한 번도 바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빨간색 옷은 더더욱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 흔하디흔한, 이른바 ‘돈이 들어온다’는 빨간색 지갑조차 써본 적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필 필이 꽂힌 아이템이 평생 절대로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던 빨간색이라니. 나도 드디어 빨간색의 유혹에 빠진 건지도 모를 일이다. 빨간 하이힐을 보며 어떤 옷에 어떻게 매치해야 예쁠까 혼자 열심히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먼저 다른 빨간색 옷이나 가방이 없으므로 그 빨간 하이힐은 항상 포인트 아이템으로 이용할 예정이다. 블랙과 그레이 컬러 의상에 매치하면 세련돼 보일 것이고, 블루 계열의 의상과 매치하면 보색 대비로 더욱 산뜻한 느낌을 줄 것이다. 이런 나의 쇼핑 계획이 끝나고 나니 이제 눈을 질끈 감고 지를 일만 남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아쉽게도 그 빨간 하이힐을 손에 넣지 못했다. 계속 눈에만 담아두다 마감이 겹쳐 잠시 그 사이트에 못 들어간 사이, 눈물나게도 품절 사태에 이르고야 만 것이다. 나처럼 빨간 하이힐에 열광한 수많은 쇼퍼들이 그 하이힐을 너도나도 손에 넣어갔기 때문이라 나름대로 분석하며 쓰린 속을 달랬다. 그 이후로 난 빨간색만 보면 광적으로 집착하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빨간색 아이템만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던 어느 날, 드디어 매혹적인 빨간색 아이템을 하나 발견했다. 빨간색 미니스커트가 바로 그것. 도톰한 모 소재라 한겨울에도 입을 수 있고, 어떤 컬러와도 잘 매치돼 포인트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보자마자 지르고 말았다. 옷장 속에 걸린 그 빨간색 미니스커트를 볼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빨간색 집착 증후군은 잠시나마 가라앉은 상태다. 그러나 그토록 바라던 매혹적인 빨간 하이힐은 아직 만나지 못해 나의 신발장에는 여전히 빨간 하이힐이 없다. 언제, 어딘가에서 만날지 모를 나만의 빨간 하이힐을 찾아 나는 오늘도 쇼핑 사냥에 나선다.

여성동아 2008년 1월 5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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