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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봉사하는 인생

은퇴 후 시골병원에서 진료 재개한 전 서울대병원장 노관택

글·강지남 기자 / 사진ㆍ정경택 기자

입력 2006.01.04 15:42:00

서울대병원장, 대한병원협회장 등을 지내고 은퇴한 의료계의 거목(巨木) 노관택 박사가 최근 경기도 파주의 시골마을로 내려가 이비인후과 진료를 시작했다. 하루 평균 5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느라 몸은 고되지만 다시 환자를 돌보는 기쁨을 찾아 즐겁다는 노 박사를 만났다.
은퇴 후 시골병원에서 진료 재개한 전 서울대병원장 노관택

서울에서 자유로를 따라 북쪽으로 한 시간가량 달리면 도착하는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 몇 년 전부터 고층아파트와 연립주택이 들어서고 파주시청과 파주경찰서, 파주소방서 등이 자리해 파주의 중심지라 불러도 손색없는 곳이지만 서울 한복판의 번화함과는 영 딴판인 지방 소도시의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 자리한 경기도립의료원 파주병원에 지난해 가을 이비인후과 진료 개시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명색이 종합병원이지만 시골병원인 까닭에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해 지난 5~6년간 이비인후과 진료를 할 수 없었던 것. 그 딱한 처지를 듣고 서울대병원장 등을 지내고 은퇴한 노관택 박사(76)가 자청해 이곳으로 내려왔다. 그의 ‘시골 입성’은 이 마을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벌써 반년 가까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파주병원에서 진료활동을 펴고 있는 노 박사를 만나기 위해 12월6일 파주병원으로 향했다. 비교적 한산하다는 오전시간에 방문했는데도 환자들이 끊임없이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목줄기가 당기듯 아파서 동네 병원에 갔더니 성대가 마비된 것 같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왔어요. 정말 마비된 건가요?”(중년 여성 환자)
“전혀 마비된 게 없습니다. 성대가 마비되면 목소리가 변하는데 그렇지 않았지요? 일종의 근육통 같은데 목운동을 많이 하셔야겠어요.”(노 박사)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난 지 벌써 몇 년 됐어요. 병원을 여러 곳 찾아다녀봤는데 속 시원하게 왜 그런지 얘기해주는 데가 없어서 답답한 마음에 서울 봉천동에서 여기까지 찾아왔어요. 신문 보니까 선생님이 정말 유명하신 분이라고 해서….”(70대 남성 환자)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면 귀울림 증세의 원인을 찾을 순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과 비용을 들여 원인을 찾는다고 해도 고치기가 어려워요. 잠을 못 잘 정도라면 그동안 많이 고통스러우셨을 텐데…. 여기엔 장비가 없어 검사를 해볼 순 없어요. 검사 받으시려면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합니다. 일단 증세가 완화되는 약을 처방해 드릴게요.”(노 박사)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교수로 근무하다 서울대병원장까지 지내고 은퇴한, 1960년대 중이염 치료의 최고 명의로 명성을 떨친 그는 평생을 통해 쌓아올린 사회적 명성 따위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싶었다. 그는 그저 곧 헐릴 계획이라는 낡디낡은 건물 안 진료실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선 채 환자들의 귀를 들여다보고 차트를 써내려가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실 환자들한테 별로 해줄 게 없습니다. 각종 검사를 위한 장비가 갖춰지지 않았을뿐더러 수술실과 입원실이 있다 해도 이비인후과에 저 빼고는 전문의는커녕 전공의도 없어 수술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는 “다만 환자들이 하소연하고 싶은 걸 다 들어주고 차근차근 치료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치료하면 좋은지를 설명해주는 것으로 환자들의 바람을 채워주고 있다”고 했다. 사실 노환의 불청객인 귀울림이나 난청 등은 완치가 어려운 병이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완벽한 처방책을 바라기보다는 자신의 어려움을 의사에게 토로하고 위로받고 싶어한다는 것. 이날 그를 찾아온 70대 노인 환자는 보청기가 귀울림 증세에 어느 만큼 도움이 되는지 설명해주고 보청기 회사에 연락해서 어떻게 이야기하면 되는지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준 노 박사에게 ‘자세하고 속 시원하게 얘기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차례 하고 돌아갔다.
노관택 박사가 파주병원으로 내려와 진료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찾아오는 현상도 벌어졌다. 서울은 물론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등 전국에서 환자들이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지난번에는 목포에서도 왔다”면서 “덕분에 하루 평균 50여 명의 환자를 보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할 때 오전에만 1백~1백50명의 환자를 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보다 지금이 더욱 힘듭니다. 그때는 제 옆에서 보조하는 레지던트와 간호사가 2~3명씩 있어서 지휘관 역할만 하면 됐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진료, 차트, 처방전을 혼자 힘으로 다 해야 해서 힘이 몇 배 더 들지요.”

소문난 명의가 시골병원으로 왔다는 소문이 퍼지자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와
은퇴 후 시골병원에서 진료 재개한 전 서울대병원장 노관택

노관택 박사는 “병원 여건이 좋지 않아 수술 등을 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한다.


노관택 박사는 울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때 부산 경남고등학교를 다닌 그는 졸업 후 중학교 교사나 은행원이 되라는 부모의 기대 속에 자랐다. 하지만 패기 넘치던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합격하기 어려운 대학이 어디냐”고 물었고 “서울대 의대가 가장 어렵다”는 대답을 듣고는 서울대 의대를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서울대 의대 합격증과 당시 전북 군산에 있던 한국해양대학 조선공학과 합격증 두 개를 들고 고향 마을로 내려갔어요. 시골 분이셨던 아버지께서는 한국해양대학에 가면 그저 뱃놈이 되는 줄로만 아시고는 ‘뭘 해도 뱃놈은 되지 마라’고 하시면서 논밭을 팔아 서울로 유학 보내주셨죠.”
1949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그는 대학 2학년 때 한국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내려가 피란 생활을 했고 그곳에서 여러 대학이 천막을 쳐 임시 설치한 ‘전시연합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했다. 노 박사의 전공 분야는 ‘난청’. 난청을 전공한 이유를 묻자 “이비인후학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모습에서 젊은 시절 패기 넘쳤을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실린 우리 사회 엘리트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분석한 기사에서 노관택 박사는 ‘직장 경력으로 얻는 인맥 수’ 순위에서 교육인 부문 3위로 꼽혔다. 이는 서울대 교수를 지내면서 서울시립영등포병원장, 서울대학병원장, 한림대 의료원장, 대한병원협회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덕분. 의료계에서 여러 자리를 맡아 꾸준하게 봉사활동을 펼쳐 국민훈장 석류장, 중외박애상, 라이온스클럽이 수여하는 무궁화사자대상 등을 받기도 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9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 아시아태평양청각장애학술대회를 유치했던 것을 꼽았다. 이 학술대회를 계기로 여러 곳에서 후원금을 받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수술과 보청기를 무료로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관택 박사는 경기도립의료원 박윤형 원장이 “요즘 젊은 의사들이 지방의료원에 오기를 꺼려해 큰 걱정”이라고 한숨 쉬자 “그러면 내가 가서 도와주겠다”고 먼저 나섰다. 소액의 교통비만 받고 서울과 파주를 오가고 있는 노관택 박사는 이곳에서 진료를 시작한 뒤 지방자치단체 병원들의 어려운 속사정을 목격하며 많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의료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급여도 낮으니 꿈 많고 패기 넘치는 젊은 의사들이 지방의료원에서 근무하고 싶어하겠습니까. 이곳 파주병원도 종합병원이긴 하지만 전문의가 10여 명밖에 안되고 그나마 공중보건의가 대다수지요. 80년대 말 서울대병원이 서울시립 보라매병원을 위탁 운영하면서 보라매병원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을 수준의 종합병원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런 사례를 모범 삼아 열악한 지방의료원들이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경기도립의료원은 병원을 운영해본 노하우를 살려 노 박사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실행해 옮기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파주병원에 노인 전문병원을 세우는 것이 그것. 경기도에 신도시가 많이 생겨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다. 노인 전문병원이 설립되면 노 박사는 그곳에 ‘난청센터’를 개설해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보청기를 기증하는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노 박사는 올해로 일흔여섯 살을 맞는다. 서울대병원에서 정년 퇴직한 지 10년을 훌쩍 넘긴 나이다. 언제까지 파주에서 의료봉사를 할 생각이냐고 묻자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부임할 때까지는 있고 싶다”고 답한다. 누구보다도 값진 노년을 보내고 있는 그가 아름다워보였다.

여성동아 2006년 1월 5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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