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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름다운 도전

‘사랑해, 말순씨’ 출연해 화제 모으는 다운증후군 배우 강민휘

“장애 극복한 화제의 주인공이 아닌 ‘배우 강민휘’로 기억되고 싶어요”

글·민선화‘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2005. 11. 14

오는 11월 초 개봉 예정인 문소리 주연의 영화 ‘사랑해, 말순씨’에 실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배우가 출연해 화제다. 지난 2월 초 KBS ‘인간극장-천사, 배우가 되다’를 통해 소개돼 감동을 자아낸 강민휘가 그 주인공. 강민휘와 부모를 만나 어린 시절부터 배우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보았다.

‘사랑해, 말순씨’ 출연해 화제 모으는 다운증후군 배우 강민휘

“이제‘스타’라고 다들 알아봐서 동네 찜질방에서도 사인하느라 바빠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어 발음이 어눌하긴 하지만 자신감에 찬 모습이 당당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는 한국 영화계 최초의 다운증후군 배우 강민휘(25)다. 그는 오는 11월3일 개봉될 영화 ‘사랑해, 말순씨’(감독 박흥식)에서 다운증후군을 앓는 ‘재명’ 역을 맡아 스토리 전개에 중요한 모티프를 제공한다. 정상인에 비해 지능지수, 언어 표현능력, 암기력 등 모든 것이 뒤떨어지는 그가 영화배우가 됐다는 것은 실로 믿기 어려운 일. 하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연예인의 꿈을 이뤄낸 강민휘와 그의 부모는 “연예인이 된 것은 필연”이라고 말한다.
“민휘가 어릴 때부터 TV 보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걸 너무 좋아했어요. 지금도 노래방에 가면 혼자서 2~3시간은 기본이죠. 그래서 학교 축제 때면 무대에도 서고 플루트 연주도 곧잘 하는데 이런 민휘의 재능을 눈여겨보신 대학 교수님 한 분이 지금의 매니지먼트사를 추천해주셨어요. 장애인 연기자를 선발해 트레이닝하는 곳인데 처음엔 여기도 떨어졌어요. 민휘에게서 가능성은 발견했지만 ‘정신지체 장애인에게는 연기지도를 하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셨대요. 그러던 중 소속사로 다운증후군 배우를 찾는다는 연락이 왔고 우여곡절 끝에 영화에 출연할 기회를 잡았죠.”

12번의 미팅 가진 뒤에야 출연 결정
약 한 달간 속성으로 연기수업을 받은 그는 장기인 노래와 춤은 물론이고 플루트 연주, 즉흥 연기력 점검까지 총 12번의 미팅을 거친 후에야 영화 출연계약서에 사인을 할 수 있었다. 그는 “너무 좋아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며 그때의 감동을 다시 떠올리는 듯 함박웃음을 지은 뒤 지난 겨울 추운 날씨 속에 진행된 영화 촬영에 대해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첫 촬영에 임하는 모습은 지난 2월초 KBS ‘인간극장-천사, 배우가 되다’를 통해 방영돼 감동을 자아냈다.
1980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사랑해, 말순씨’는 중학생인 주인공 광호의 눈에 비친 세상을 그린다. 억척스러우면서 주책맞은 엄마 김말순과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부쩍 반항기가 심해진 열네 살짜리 아들 광호와 다섯 살짜리 딸 혜숙이, 그리고 옆집 사는 장애우 재명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극중 재명으로 분한 민휘는 대사보다는 남의 행동 따라 하기, 질문에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하기, 같은 행동 반복하기 등 다운증후군의 특징을 그대로 살린 리얼한 행동 연기를 보여준다.
‘사랑해, 말순씨’ 출연해 화제 모으는 다운증후군 배우 강민휘

‘사랑해, 말순씨’에서 다운증후군 소년 재명 역을 맡아 최병걸의 노래 ‘진정 난 몰랐었네’를 신나게 부르고 있는 강민휘.


“일반 배우가 장애인 연기를 하는 게 아니니까 언어 구사나 행동, 감정 표현들이 서툴 수밖에 없어요. 감독님도 처음엔 민휘가 편하게 연기하면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장면들만 골라 편집할 생각이었대요. 그런데 촬영이 진행되면서 민휘가 극중 상황을 이해하고 카메라 앞에서 진짜 연기를 하더래요. 특히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장면에서는 절절한 표정 연기를 보여줘 전 스태프들이 민휘 연기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어요.”

덕분에 그가 출연하는 장면도 대폭 늘어났다. 기대 이상의 열연을 펼친 그는 촬영장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뿐만 아니라 ‘금연홍보대사’로도 활약했다고 한다.
“민휘는 술, 담배, 커피같이 몸에 좋지 않은 건 절대 가까이 안 해요. 보통 영화 관계자들은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 민휘만 촬영장에 나타나면 얼른 끌 정도로 협조(?)를 잘해주셨죠(웃음). 그 공로를 인정받아 금연협회에서 감사패도 받았어요. 다들 민휘를 예뻐해주셨는데 특히 문소리씨는 향수를 선물할 만큼 잘해주셨어요.”

이제 ‘영화배우 강민휘’라는 어엿한 타이틀을 갖게 된 그는 일반적으로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다운증후군 장애인과는 다른 면이 많다. 일단 눈썰미가 좋아서 한번 가본 길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경남 김해 집에서부터 영화의 주된 촬영지인 전북 전주까지 혼자서 버스를 타고 다녔을 정도. 또 인내심이 강해서 영화 속에서 유난히 뛰고 달리는 장면이 많았는데 하루에도 몇 차례씩 뛰고 달리기를 반복해도 결코 중간에 포기하는 일이 없었다고. 그런 그가 힘들어한 것은 바로 ‘체중조절’이다.
“다운증후군 환자들은 식탐이 강해요. 그래서 식사와 운동량을 조절하지 않으면 금세 살이 찌고 나중엔 생명에도 지장이 있기 때문에 항상 민휘의 체중조절에 신경을 쓰죠. 예전에 비해 10kg 정도 뺐어요. 민휘가 힘들어하긴 해도 부모의 말에 잘 따라줘요. 어릴 때부터 약속한 것은 무조건 지켜야 된다고 가르쳤거든요.”

생후 6개월 때 다운증후군 판정받았지만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키우려고 노력
‘사랑해, 말순씨’ 출연해 화제 모으는 다운증후군 배우 강민휘

강민휘의 부모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자칫 아들이 영화 속에서 어리숙한 바보로만 비쳐져 장애우를 키우는 다른 부모들에게 상처라도 주지 않을까” 염려했다.


김해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강성기(46)·이경숙씨(46) 부부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생후 6개월 때 다운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처음엔 다운증후군이 뭔지도 몰랐어요. 6개월이 지나도 고개를 못 들고 옹알이도 못했지만 또래들보다 발육이 좀 늦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갔더니 다운증후군이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또래 아이들하고 잘 어울리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세 살 때부터 미술학원이랑 놀이방에 보냈어요. 민휘는 여덟 살 때 한글도 다 뗐고 아이들과도 잘 놀았어요. 그런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겠더라고요. 일단 학교에서도 장애인이라고 부담스러워했고 또래 아이들에 비해 학습능력이 떨어졌거든요.”
그러나 “민휘를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키우려고 노력했다”는 그의 부모는 특수학교에 입학시키라는 주위 권유에도 불구하고 민휘를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 고등학교도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학교에 보냈고, 여느 아이들처럼 피아노와 플루트를 가르쳤다. 또 정신지체학생을 받아들이기 곤란하다는 대학의 문을 끝없이 두드린 끝에 아들을 충남 천안에 있는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에 입학시켰다.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한 강민휘는 전체 학생의 약 20%가 장애인인 이 학교에서도 유일한 정신지체 장애인 졸업생이었다.
“우린 민휘를 장애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키웠어요. 어려서부터 밥하고 청소하기 같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다 가르쳤어요. 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혼자 떨어져서 기숙사와 자취 생활도 했어요. 우리 세 식구가 함께 있을 때는 이 녀석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곤 해요. 장애우를 키운 선배 엄마로서 조언이요? 아이에게 욕심을 내지 말라는 거예요. 많은 걸 바라면 서로 힘들어지니까 물 흐르듯 열심히 살았어요.”
“대학 졸업하면 집 근처에 있는 공단에서 적당한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영화에 캐스팅됐다고 해서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다”는 그의 부모는 “개봉을 앞둔 요즘 걱정이 더 많아졌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혹여 영화 속에서 어리숙한 바보로만 비쳐져서 장애우를 키우는 다른 부모들에게 상처라도 주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는 것.
반면 강민휘는 “열심히 했으니까 (영화가) 잘될 것”이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는 영화가 개봉된 뒤에도 한동안 바쁠 전망이다. 오는 11월 말부터 공연될 연극에 출연할 예정인 것.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 아닌 가능성 있는 배우 강민휘로 오랫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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