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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뜨는 남자

오랜 무명생활 끝에 스타덤 오른 배우 황정민의 결혼생활 공개

“사랑이라는 운명은 끝까지 지켜낼 때 비로소 이뤄지는 거예요”

글·최호열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2005. 08. 31

영화배우 황정민이 주연을 맡은 영화 ‘너는 내 운명’과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 9월과 10월 연이어 개봉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오랜 무명시절을 거쳐 주연급 배우로 떠오른 그의 연기 인생과 동갑내기 뮤지컬 배우 김미혜와의 결혼생활을 취재했다.

오랜 무명생활 끝에 스타덤 오른 배우 황정민의 결혼생활 공개

올가을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영화배우는 단연 황정민(35)이다. 그가 박중훈, 김승우와 함께 열연한 영화 ‘천군’이 지난 7월 중순 개봉한 데 이어 9월에 전도연과 함께 찍은 ‘너는 내 운명’이, 10월에는 엄정화와 열연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 연이어 개봉하기 때문. 또한 그는 9월부터 류승범과 함께 영화 ‘사생결단’ 촬영에 들어간다.
지난 8월11일 서울 남산예술원에서 열린 영화 ‘너는 내 운명’ 제작보고회장은 황정민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기자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제작보고회는 영화 속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석중(황정민)과 은하(전도연)가 야외결혼식을 올리는 이벤트를 가진 후 기자간담회로 이어졌는데,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황정민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모습은 극중 배역인 순박한 농촌 노총각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불과 두 달 전, 영화 ‘천군’ 시사회에서 보았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 2 : 8 가르마를 한 머리, 촌스러운 감청색 양복에 흰 고무신…. 농촌에서 나고 자란 늙은 노총각의 모습 그 자체였다. 외모뿐만이 아니라 걸어가는 폼에서부터 몸동작, 말투까지 ‘저 사람이 진짜 황정민일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는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들 중에서 한 번도 ‘전에 보았던 황정민’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데뷔작인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의 순박한 드러머 강수, ‘로드무비’에서 하염없이 떠도는 청년 대식, ‘YMCA야구단’에서 착하고 어리숙한 광태, ‘마지막 늑대’에서 “아, 심심하다”를 외치던 어리버리한 경찰, ‘바람난 가족’에서 차가움과 외로움을 동시에 지녔던 문소리의 남편, ‘여자, 정혜’에서 시인, ‘천군’에서 군기 꽉 든 해군장교로 끊임없이 변신을 해온 것.
오랜 무명생활 끝에 스타덤 오른 배우 황정민의 결혼생활 공개

황정민은 지난해 9월 동갑내기 뮤지컬 배우 김미혜와 결혼했다.


머리스타일이나 수염, 안경 따위의 분장 차이만은 아니다. 그는 과거 연극에서 노숙자 역할을 맡았을 때는 두 달 내내 허름한 옷을 입고 손톱에 때가 낀 채로 다녔을 정도로 배역에 몰입하는 스타일이다. 이번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도 배역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천군’ 촬영이 끝나자마자 12kg을 늘렸다 ‘천군’의 보충 촬영을 위해 다시 줄이는 집념을 보였다. ‘너는 내 운명’을 함께 찍은 전도연도 “황정민은 촬영 기간 내내 석중이처럼 살았다. 그처럼 자기 배역에 몰두하는 배우는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
“영화 촬영 하는 내내 정말 친하게 지냈어요. 밥도 늘 같이 먹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밥도 따로 먹고 전화도 안 받는 거예요. 그래서 왜 그런가 했더니 다음 날 석중이가 헤어진 은하를 그리워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때문이었어요. 그 정도로 24시간을 석중이로 사는 걸 보고 정말 무서운 배우다 생각했죠.”(전도연)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황정민은 “영화를 찍는 내내 너무 좋아서 불안할 정도였다”며 작품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촬영하는 동안 쉬는 날이 어색할 정도로 즐거웠다고.
“감독님이랑 전도연씨랑 너무너무 좋아요. 집사람에게 막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나기 전의 설렘 같은 거라고 얘기했을 정도예요. 상대배우가 이렇게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에요.”

한 달 월급 12만원으로 살면서도 꿈이 있어 행복했던 연극배우 시절
오랜 무명생활 끝에 스타덤 오른 배우 황정민의 결혼생활 공개

영화 속에서 하지 못한 결혼식을 제작보고회에서 거행한 황정민과 전도연.


이젠 어엿한 충무로의 스타로 떠오른 그가 연기에 대한 꿈을 키운 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였다고 한다. 극장 입장료가 1백50원 하던 어린 시절부터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극장으로 달려가 은막에 투사된 빛에 넋을 잃곤 했다는 것.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 뮤지컬 ‘피터팬’에서 ‘날아다니는 윤복희 아줌마’를 보며 연기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그의 어머니는 다른 부모와 달리 연기자의 꿈을 만류하기는커녕 먼저 그에게 계원예술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주며 응원을 해주었다고 한다.
계원예고 연극과에 입학한 후 자신의 경상도 사투리(그는 경남 마산 출신이다)가 연기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고 발음 정확한 초등학생이 국민교육헌장 읽는 것을 녹음한 후 이를 따라하며 교정했다고 한다. 또한 고3 때는 친구들끼리 주머닛돈을 털어 극단을 만들고 ‘가스펠’이란 뮤지컬을 기획해서 한 달 공연으로 계몽아트홀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관객이 거의 없어 보름 만에 간판을 내렸는데, 이때 8백만원의 빚을 지는 바람에 부모님들에게 큰 꾸중을 듣기도 했다고.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극단 학전에 입단한 그는 95년 설경구, 조승우 등을 배출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시작으로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 후 ‘개똥이’ ‘캣츠’ ‘모스키토’ ‘토미’ 등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활동, 대학로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를 “한 달 월급으로 12만원, 연봉으로 치면 2백만원 안팎을 받았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어 항상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그가 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하면서. 이 영화는 출연 배우의 대부분을 공개오디션을 통해 뽑았는데, 경쟁률이 수천대 일을 기록해 화제를 모았다. 여기서 그는 삼류밴드 드러머로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고백 한번 제대로 못하고 친구에게 선수를 빼앗기는 숫기 없고 순박한 강수를 연기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두 번째 작품인 저예산 영화 ‘로드무비’는 황정민이라는 이름을 영화계에 확고히 심어준 작품이었다. 심상치 않은 과거를 가진 정체불명의 청년으로 정찬을 동성애의 세계로 이끄는 파격적인 연기를 펼친 그는 이 작품으로 2002년 청룡영화제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다. 두 편의 영화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는 이후 ‘YMCA야구단’ ‘바람난 가족’ ‘여자, 정혜’ ‘천군’ 등을 통해 독특한 연기세계를 펼치며 설경구와 송강호를 이어 한국 영화를 이끌어갈 배우로 자리를 굳히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연기력이 찬사를 받은 것은 올해 초 개봉한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였다. 이병헌의 경쟁조직 중간보스인 백 사장 역을 맡은 그는 몇 신 등장하지 않았지만 영화평론가들로부터 ‘악역 전문배우였던 허장강 이후 최고의 악역 연기였다’는 찬사를 받았으며 이 작품으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99년 뮤지컬 ‘캣츠’에 출연하며 만난 아내와는 서로 부족한 부분 도와주며 친해져

그는 지난해 9월 동갑내기 뮤지컬 배우 김미혜와 결혼했다. 99년 뮤지컬 ‘캣츠’에 함께 출연하면서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은 지난해 결혼을 앞두고 ‘브로드웨이 42번가’에 남녀 주인공으로 나란히 무대에 올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두 사람은 계원예고 동창이기도 하다. 하지만 학창시절엔 서로 이름과 얼굴을 가까스로 연결시킬 수 있을 정도의 사이였다고 한다. 또한 졸업 후 황정민은 서울예대에 입학하면서 연극으로, 김미혜는 성균관대 무용과로 진학하면서 발레를 전공하며 각자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러다 김미혜의 인생에 변화가 생겼다. 어느 날 뮤지컬을 보러 갔다가 그 매력에 푹 빠진 것.
뮤지컬 ‘캣츠’에 출연하며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며 가까워졌다고 한다. 황정민은 김미혜에게 부족한 연기를, 김미혜는 황정민에게 부족한 춤을 가르쳐준 것이다. 김미혜는 처음엔 무뚝뚝하지만 친해지면 뛰어난 유머감각을 발휘해 즐겁게 해주는 황정민에게 점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캣츠’가 끝난 후에도 뮤지컬을 더 잘 소화하기 위해 함께 탭댄스를 배우고, 서로의 연기와 춤에 대해 조언을 해주며 사랑을 키워나갔다.
황정민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나는 지금도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아내에 대해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너는 내 운명’ 대본을 딱 보니까 옛날 우리 집사람 처음 만나서 전전긍긍하던 그 느낌 그대로더라고요. 극중 석중이는 사랑에 빠지면 미친 듯이 달려드는 스타일이지만, 사실 저는 혼자 속만 태우는 쪽이었죠. 말 한마디 간신히 건네고, 그 사람이 픽 돌아서 가버리면 혼자 ‘으아~’ 하며 자책의 나날을 보내고….”
그는 또한 지순한 사랑을 경험한 연기자로서 “사랑이라는 운명은 끝까지 지켜낼 때 비로소 이뤄지는 것”이라는 애정철학을 털어놓기도 했다.
황정민 부부는 결혼 후 각자 영화와 뮤지컬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때문인지 아직 2세 소식은 없는 상황. 황정민의 지인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촬영이 끝난 후부터 2세 계획을 세우려고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두 사람이 ‘좋은 엄마’ 같은 잡지를 손에 들고 다니는 걸 봤는데 미리부터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것 같아 아름다워 보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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