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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슬픔을 딛고

현대그룹 회생시킨 현정은 회장 ‘남편 뜻이어 아픔 이겨낸 지난 1년 & 요즘 심경’

정몽헌 회장 자살 후 전업주부에서 최고경영자로 변신

■ 글·최호열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현대그룹 홍보실 제공

입력 2004.09.10 11:23:00

지난 8월4일은 현대그룹 고 정몽헌 회장이 투신자살한 지 1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정 회장의 작고 후
가장 많은 인생의 변화를 겪은 이는 미망인 현정은 여사. 전업주부였던 그는 남편을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최고경영자로 변신해 그 사이 그룹 경영권을 지켜내고 침몰해가는 현대그룹을 회생시켜 화제를 모으고 있다.‘남편 작고 1주기’를 맞은 현정은 회장의 근황을 밀착 취재했다.
현대그룹 회생시킨 현정은 회장 ‘남편 뜻이어 아픔 이겨낸 지난 1년 & 요즘 심경’

지난해 8월4일, 현대그룹의 대북송금과 관련해 검찰조사를 받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투신자살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현대그룹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었는데 최고경영자까지 잃어 공중분해되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현대그룹의 새 최고경영자로 고인의 미망인 현정은씨(49)가 취임하자 재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사회활동 경험이 전혀 없는, 집안에서 살림만 해온 전업주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현정은 회장은 시숙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의 경영권 싸움에서 승리했는가 하면, 현대그룹을 안정 궤도에 올려놓았다.
그래서일까, 고 정몽헌 회장의 1주기를 맞은 지난 8월4일, 두 딸을 비롯해 현대 관계자들과 함께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의 선영에 있는 고인의 묘소를 찾은 그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그는 남편의 1주기를 맞는 소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남편의 죽음이) 굉장히 오래된 것 같다”고 말한 뒤 이내 “경영권 분쟁으로 한동안 힘들었지만 이후로는 별 무리 없이 해온 것 같다. 앞으로도 고인의 뜻이 잘 이어지도록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인 현 회장은 건강해 보였다. 지난 3월 말, 8개월 동안 계속된 현대 경영권 분쟁을 승리로 이끈 후 가진 기자간담회 때 그는 무척 수척해 보였다. 당시 그는 몸살을 심하게 앓기도 했다.
현대 관계자는 “집안 살림만 하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 앞에서 슬퍼할 틈도 없이 회장에 취임해 그룹 경영권 방어하랴, 계열사들의 경영을 개선하랴 정신없이 뛰었다. 그러다 경영권을 방어해 긴장을 푸는 순간 몸에 이상이 생겼던 것 같다”며 “경영권 분쟁으로 힘들어 할 때는 얼굴에 트러블이 심하게 생기기도 했지만 지금은 얼굴도 몸도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현 회장은 이날 추모식을 마치고 금강산에서 열린 ‘현대그룹 합동 신입사원 수련회’에 참석했는데, 5시간 가까이 산행을 하는 동안 줄곧 앞장서서 걸어가 임원들이 오히려 “뭐 그리 급하냐, 천천히 가시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현 회장은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하세요. 대학로에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사옥에 집무실이 있을 때도 마로니에 공원에서 사옥까지 걸어가곤 해 비서진이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어요. 그동안 자정이 넘도록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운동을 하지 못했는데, 걷는 것으로 체력관리를 하시는 것 같아요.”
금강산 수련회에 참가한 현대 직원에 따르면 신입사원 배구대회에서 우승한 팀과 임원진들이 배구시합을 했는데, 현 회장이 직접 경기에 참가해 놀라웠다고 한다. 또한 신입사원들과 함께 스포츠댄스를 추기도 했는데 수준급이었다고. 이외에도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을 부르는 등 밝은 모습으로 어울렸다고 한다.
남편 고 정몽헌 회장보다 그룹 지배력 더 확고
지난 1년 현 회장의 경영성적표는 A학점이라는 게 언론과 재계의 공통된 평가다.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이 올 1/4분기(1∼3월)에 창사 이래 최대인 1천22억원의 순이익을,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도 같은 기간 사상 최대인 6백5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현대아산 역시 올 들어 금강산 관광이 활기를 되찾으면서 호조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현대그룹 회생시킨 현정은 회장 ‘남편 뜻이어 아픔 이겨낸 지난 1년 & 요즘 심경’

지난 8월4일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1주기 추모제를 지내는 현정은 회장. 뒤로 딸 정지이씨(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성)가 보인다.


그는 외형을 키우기보다는 내실을 다지고, 자신이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되 굵직한 현안은 직접 챙기는 ‘외유내강’형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일각에선 “현 회장이 얼굴마담 외에 한 일이 무엇이냐”며 “최근 현대그룹의 경영 호조가 그의 경영능력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현대 관계자는 “위기 속에서 침착하게 그룹의 조직을 추스르고 기강을 다잡는 능력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고 정몽헌 회장 당시 현대그룹은 계열사간의 결속력이 느슨했어요. 이에 비해 현 회장은 사라졌던 그룹 사장단 회의와 그룹 실무자 회의를 부활시켜 조직 장악력을 높였어요. 그룹 지배력 면에서 정 회장보다 더 확고히 한 거죠. 그 결과 ‘현 회장’이라는 구심점이 생기면서 직원들도 ‘현대가족’이라는 결속력이 훨씬 강해졌어요. 이게 앞으로 현대가 제 2의 도약을 하는 데 큰 힘이 될 겁니다.”
현 회장이 최고경영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경영철학을 익힌 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현대가 못지않게 현 회장의 친정과 외가 또한 유수한 사업가 집안이다. 할아버지는 호남은행 설립자고, 아버지 역시 신한해운을 운영하다 지난해까지 현대상선을 경영했다. 외할아버지는 전방그룹 창업주고, 어머니는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어려서는 외가와 친가에서 자라며, 결혼 후에는 시집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경영철학을 몸에 익힌 셈이다. 그래서 그는 취임 초기 “(현대가) 집안이 가부장적이어서 그동안 나설 수 없었지만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언젠가는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8월4일 추모제에서도 그는 “경영을 하다보면 문득문득 어른들의 가르침이 생각나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세상에선 시아버님인 정주영 명예회장을 저돌적인 분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치밀하게 계산을 하고 결정을 하는 분이셨어요. 종종 ‘경영자는 담담한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죠. 제가 직접 경영을 하면서 그 말씀이 많이 생각나요. 남편은 생전에 ‘기업이 어느 이상 성장하면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 국민의 것이다. 이윤을 추구하기보다는 국가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저도 그 뜻을 이어갈 생각이에요.”

고인 유품 지금도 그대로 제자리에 놓아둬
이외에도 그는 친정어머니가 “사람을 의심하는 것도 경영자의 능력”이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고 했다. KCC와의 경영권 분쟁을 겪으며 든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말에 공감을 하지만 아직은 여전히 사람을 믿고 싶다”고 했다.
대기업을 경영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는 지난 1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하루 길이가 짧아진 것 같아요. 요새는 집에 조용하게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거의 없는데, 어쩌다 그럴 때가 있으면 ‘아, 집에 혼자 있는 게 이렇게 좋은 거로구나’ 하고 절감해요”하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직도 경영교육을 받는 입장으로 가끔씩 교수, 여성기업인 등 외부전문가로부터 코치를 받는다”는 그는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장 회장도 남편이 작고한 후 어려운 회사를 맡아 크게 성장시킨 입지전적 인물이기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그룹 회생시킨 현정은 회장 ‘남편 뜻이어 아픔 이겨낸 지난 1년 & 요즘 심경’

금강산에서 열린 현대그룹 신입사원 수련회에 참석한 현회장은 건강해 보였다. 직접 배구경기에 출전하는가 하면(왼쪽 사진) 5시간 걸린 등산도 앞장 서서 걸었다(아래 사진). 사원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현회장 모습(오른쪽 사진).


현대가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 때부터 집안 여성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지금 현 회장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현 회장은 “두 가지 분위기가 공존한다”고 말했다. ‘몽’자 항렬의 시동생들은 그의 적극적인 지지자들인 반면, 윗세대인 ‘영’자 항렬은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하지만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현회장의 경영참여를 좋게 생각해 외부에서 들은 얘기들 가운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직접 전화를 걸어 알려주는 등 든든한 조언자가 되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정상영 명예회장과의 갈등은 아직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화해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지난 4월5일 한식날에 열린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제사에 정상영 명예회장이 참석하지 않았다. 8월3일 밤에 집에서 있은 고 정몽헌 회장 제사에도 정몽준 의원과 정의선 현대차 부사장 등이 참석했지만 KCC쪽에서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그의 ‘눈물’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남편이 사망한 후 한 번도 공식석상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장례식이나 삼우제 때는 물론 1주기 추모제 때도 사진기자들이 그의 눈물을 잡기 위해 망원렌즈까지 들고 쫓아다녔지만 실패했다.
눈물을 보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는 “저는 남 있는 데서 잘 못 울어요. 혼자 있을 때 울면 울까. 더구나 아이가 셋인데 제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 뭐 그런 경각심도 생겨서 마음을 강하게 먹은 것 같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현대 관계자는 “회장의 말 하나 행동 하나가 직원들 사기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자기 절제가 더욱 강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힘들 때면 제일 먼저 남편이 떠오를 것이다. 그는 “중요한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 그 사람이 지금 이 순간 바로 제 옆에 와서 저를 도와 좋은 결정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털어놓았다.

‘영웅시대’에서 정 회장 나약하게 그려 안타까워
현대그룹 회생시킨 현정은 회장 ‘남편 뜻이어 아픔 이겨낸 지난 1년 & 요즘 심경’

현 회장은 남편이 세상을 뜬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지 않고 있다. 당시 옷가지들도 옷장에 그대로 걸려 있고, 마당엔 남편이 굴려 보낸 골프공 하나까지 그대로 있는 것. 그는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못 치우게 해서 그대로 놓아둔다”고 말하지만 그 자신이 힘들 때 유품을 보며 남편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려는 마음에서가 아닐까 싶다.
화제 속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영웅시대’ 도입부에서 고 정몽헌 회장의 투신자살 사건이 그려졌다. 현 회장도 그 장면을 보았던 모양이다. 그는 임직원과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서 드라마가 화제에 오르자 “딸들과 함께 보았는데, 실제와는 다르게 남편이 나약한 모습으로 그려져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한다. 딸들 역시 드라마를 보며 “우리 아빠는 저렇지 않은데” 하며 안타까워했다고. 그러면서 현 회장은 “정몽헌 회장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고 책임감이 강했으며, 처해진 현실을 견디지 못해 그러한 결정(죽음)을 한 것이 아니다. 혼자 모든 것을 안고 가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 회장에게는 딸 둘과 아들 하나가 있다. 장녀 정지이씨(26)는 외국계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하다 올해 1월 현대상선에 입사해 현재 재정부에서 근무 중이고, 둘째 딸은 올 가을 와튼스쿨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아들 역시 유학을 준비 중이다. 힘들 때 자식들이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텐데도 자신의 욕심보다는 자녀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그의 교육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지이씨가 현대에 입사한 것도 현 회장이 원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뜻이었다고 한다.



현대그룹 회생시킨 현정은 회장 ‘남편 뜻이어 아픔 이겨낸 지난 1년 & 요즘 심경’

현 회장은 시아버지와 남편의 뜻이 담긴 대북사업에 더욱 애착을 갖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사진은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과 함께 방북하는 모습.


현대 관계자에 따르면 정지이씨는 신입사원은 순환근무를 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근무를 하고 있으며, 회장의 딸이라고 해서 특별 대우를 받지는 않는다고 한다. 8월4일부터 6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 ‘현대그룹 합동 신입사원 수련회’에서도 다른 신입사원들과 똑같이 모든 프로그램을 소화했다는 것. 튀는 성격이 아니어서 동료·상사들과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재정 파트를 먼저 간 것은 현 회장의 뜻이에요. 제일 재미없는 부서에서부터 시작하라는 말씀이 있으셨거든요(웃음). 하지만 재정을 알아야 기업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셨다는 말을 들었어요.”
현 회장은 8월1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현대그룹의 중장기 발전 비전을 밝혔다. 여기에서 공식적으로 현대건설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현대건설을 다시 인수하고 싶은 바람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사석에서 그는 “그룹 임원의 상당수가 현대건설 출신인데다 현대그룹에 있어서 고향 같은 존재여서 희망사항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가 현대건설 인수에 애착을 보이는 것은 그룹 정통성 계승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시아버지와 남편의 유업인 대북사업을 지켜 나가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그가 현대그룹을 더욱 성장시켜 현대건설을 되찾을 수 있을지, 우리나라 대기업 최초의 여성 총수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지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여성동아 2004년 9월 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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