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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솔직한 만남

‘삿뽀로에서 맥주를 마시다’ 펴낸 전여옥이 털어놓은 특별한 가족사랑

“일 중독자인 나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아이들, 재혼가정이지만 남다른 가족의 정 나눠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3.08.29 15:52:00

최근 자신의 베스트셀러 ‘일본은 없다’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일본을 탐구한 ‘삿뽀로에서 맥주를 마시다’를 펴낸 전여옥.
그가 말하는 ‘내가 정말 들려주고 싶었던 일본’ 이야기 & 전처의 아이들과 내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결혼생활 10년.
‘삿뽀로에서 맥주를 마시다’ 펴낸 전여옥이 털어놓은 특별한 가족사랑

서점에서 신간으로 만난 ‘삿뽀로에서 맥주를 마시다’. 책을 집어드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바로 10여 년 전 ‘일본은 없다’며 일본에 대해 날선 비판과 차가운 질타의 목소리를 높였던 전여옥(44)이 아닌가. 더구나 책을 읽어보면 전작 ‘일본은 없다’와 달리 제목처럼 일본의 먹을거리와 볼거리는 물론 일본인들의 소소한 삶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한 그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정몽준 후보를 지지한 데 이어 몇달 전에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칼럼을 써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은 없다’ 이후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 ‘여성이여 느껴라 탐험하라’ ‘간절히@두려움 없이’ ‘대한민국은 있다’ 등 베스트셀러 작가, 칼럼니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귀엽고 앙증맞고 깜찍한, 그러나 기력을 잃은 할머니 같은 일본
-‘삿뽀로에서 맥주를 마시다’라는 제목이 인상적이다. 술을 좋아하나?
“술을 즐기는 편이에요. 술을 마시는 것도 제겐 일상의 쾌락 중에 하나죠. 새벽에 글이 안 써지거나 잠이 안 올 때 위스키를 한두 잔 마시고 자요. 남편은 술을 못해 저 혼자 마시는데, 그래서인지 제 아이는 술은 여자들만 마시는 줄 알아요(웃음).”
-삿뽀로의 맥주를 제목으로 잡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일본은 맥주가 유명한데 대부분 삿뽀로에 생산 공장이 있어요. 뮌헨, 밀워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주 산지가 북위 43도에 있다고 하는데 삿뽀로가 그래요. 사실 일본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맥주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배부르니까. 그런데 먹어보니까 참 맛있어요.”
-10여년 전에 쓴 ‘일본은 없다’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책을 보면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책이 나온 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물론 달라졌죠. 10년 전, ‘일본은 없다’란 말을 썼을 때 일본은 이미 곪아터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자신 있게 ‘우리가 배워야 할 일본은 없다’고 외친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당혹스러워했죠.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30년은 뒤처져 있다고들 믿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해요. 일본 스스로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할 정도로 정체되어 있어요.”
그는 일본은 ‘지는 해’며 쇠락한 그들에게 더는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은 여전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일본에 대해 더욱 연민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10년 전에는 기자로서 왜 일본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를 설명하고, 그들과 싸우는 게 중요했어요. 다른 것을 말할 여유가 없었죠. 하지만 이젠 나약해진 그들에 대해 뭘 이야기할 것도, 요구할 것도 없어요. 그런데 여유를 가지고 보면 또 하나의 일본의 모습이 있어요. 정서적으로 아름다운 면이 있거든요. 이번엔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삿뽀로에서 맥주를 마시다’ 펴낸 전여옥이 털어놓은 특별한 가족사랑

전여옥은 일본특파원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1년에 3~4차례 이상 일본을 여행한다.


그의 말처럼 이 책엔 일본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체험한, 그후에도 해마다 최소한 3∼4회씩 일본을 드나들면서 보고 느낀 일본의 또 다른 모습이 전여옥 특유의 예리하면서도 정감 있는 문체로 그려지고 있다. 목욕을 하고 난 후 한잔의 맥주를 마시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아는 일본 여성들의 모습이나 음식 맛에 대해 집착하는 모습은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성마저도 상품화하는 그들의 극단적인 상업주의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일본식 자본주의에 대한 따끔한 비판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지금의 일본을 ‘귀엽고 앙증맞고 깜찍한, 그러나 기력을 잃고 조용히 늙어가는 할머니’라고 정의한다.
-책의 앞부분에 ‘맛기행 책’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일본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제가 먹는 걸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이란 나라가 음식에 목숨을 거는 나라예요. 일본의 식문화를 모르면 일본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음식을 맛보고 왜 이 사람들이 이 음식을 즐기는지 배우고 느끼는 것은 좋은 체험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에 가면 물가가 비싸니까 싼 곳만 찾아다니는데 그게 안타까워요. 그래선 일본을 제대로 볼 수 없거든요.”

‘삿뽀로에서 맥주를 마시다’ 펴낸 전여옥이 털어놓은 특별한 가족사랑

-앞으로 일본을 여행할 독자들을 위해 일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일본 음식을 추천한다면.
“일본에 가면 꼭 제대로 된 스시(생선회)와 가이세키 요리를 맛보세요. 가이세키 요리는 우리의 한정식과 유사한 일본식 코스요리인데, 이 두 가지만 제대로 즐겨도 일본인의 사고와 생활방식, 철학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전여옥은 과거 ‘여성들이여, 테러리스가 돼라’는 책을 펴내며 스스로 테러리스트임을 자임했다. 또한 ‘여성이여 느껴라 탐험하라’를 펴낸 이후엔 페미니스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런데, 이번 책엔 ‘쾌락주의자 전여옥’이란 수식어를 달고 있다.
-쾌락주의자란 말을 쓴 특별한 이유가 있나?
“보통 쾌락이라고 하면 먹고, 마시고, (돈을) 쓰고, 섹스하고… 그런 소모적인 것을 떠올리는데 저는 책을 읽고, 책을 쓰고, 목욕을 하고, 여행을 하는 것도 쾌락이라고 생각해요. 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쾌락인데 거기엔 반드시 생산이 이어져야죠.”
-그러고 보면 당신은 일을 하면서 쾌락을 즐기는 것 같다.
“그렇죠. 저는 일을 하면서 쾌락을 느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해요. 결국 제가 좋아하는 일만 하는 거죠.”
-‘일 중독’이라고 말할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는데, 가끔 그런 치열한 삶에 회의가 올 때가 있지 않나?
“오히려 그 반대예요. 고등학교 때 좀더 공부를 잘했으면, 외국어를 더 잘했으면, 그래서 한국이 아닌 국제무대에서 일을 시작했더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남자들과 싸우는 게 참 많았어요. 원래는 대기업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는데 입사자격이 군필 남자에 한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인사 담당자와 싸우기도 했죠. 남녀차별이 없는 나라에서 그런 사소한 부딪침 없이 일을 시작했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죠.”
-정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지난해 대선 때 정몽준 후보를 지지했다. 그리고 최근엔 노무현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글을 써 화제가 되었다. 일부에선 정치를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는데?
“정치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제가 국회의원이 된다고 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더라고요. 지금 정치구조가 그렇잖아요. 그리고 전 글을 쓰는 게 더 보람 있고 좋아요. 제가 정치를 하는 것보다 신선한 여성이 정치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서포터의 역할을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전 노무현 대통령을 미워하지 않아요. 정말 싫어했다면 그런 글을 쓰지도 않았을 거예요. 국민 누구도 그가 잘하길 바라지, 못하길 바라는 사람은 없어요. 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빨리 정신을 차리라고 쓴 거죠.”

아이 인생에 연연하지 말자는 주의 주말마다 온 가족이 함께 어울려
전여옥은 10년 전인 93년 11월, 늦은 나이에 결혼해 8세된 아들 원형이를 두고 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주부로서 그의 생활은 어떨까 궁금했다.
-너무 바쁘게 살고 있어서 주부로서의 일은 별로 못할 것 같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해요. 파출부가 일주일에 두번 와서 대략적인 것을 처리해주고, 식사 같은 나머지 일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요. 그래서 외식을 자주 하는 편이죠(웃음). 집 앞에 있는 설렁탕집은 저희집 구내식당이나 마찬가지예요. 햇반이나 라면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해먹기도 하고요. 제가 요리를 좋아해서 살림을 하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에너지를 거기에 쓰고 싶지 않아요. 나이가 더 들어 일이 줄면 그때부터 재미있는 전업주부의 생활을 해보고 싶어요.”
-늦둥이여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에 대해 생각이 많을 것 같은데?
“그러면 좋겠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데요. 전 인내심이 부족해 좋은 엄마가 못돼요.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이 자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준다는데 전 그 시간에 제 책을 읽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1백원 줄 테니 네가 읽으라’고 하죠(웃음). 제 원칙은 현장학습을 많이 하자는 거예요. 그리고 아이에게 항상 ‘넌 똑똑한 아이’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엄마가 너를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아느냐’며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도록 하고 있어요. 또한 엄마란 존재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강조하며 여성에게 잘하라고 가르쳐요.”
-많은 엄마들이 아이의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종이 되고 싶어하는데,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 엄마는 아이에게 도움을 줘야 하지만 아이가 그걸 당연한 게 아니라 고맙게 여기는 마음을 갖도록 해야죠. 아이가 물컵을 꺼내달라고 하면 엄마가 필요해서 꺼내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필요해서 엄마가 도와주는 것이라는 걸 인식시켜 줘야 해요.”

‘삿뽀로에서 맥주를 마시다’ 펴낸 전여옥이 털어놓은 특별한 가족사랑

전처의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데는 남편의 도움이 컸다고 말하는 전여옥씨.


-사회생활을 활발하게 하다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었을 때도 많았을 것 같은데?
“아이가 다른 사람들이랑 있을 땐 의젓하다고 하는데 저만 나타나면 저에게 딱 달라붙어 ‘껌딱지’가 돼요.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갈등이 많았어요. 아이에게 ‘너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은 제가 일이 좋아서 나가는 거니까요. 한번은 밖에 나가는데 그날 따라 유난히 기를 쓰고 울며 나가지 말라고 떼를 쓰는 거예요. 억지로 떼어놓고 출근을 하다가 ‘그래,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아이랑 있자’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올라갔어요. 그런데 아이가 언제 그렇게 울었냐는 듯 장난감을 가지고 신나게 놀고 있더군요. 그때 ‘너는 네 인생이 있다. 내가 네 인생에 연연해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아이가 무조건 편하고 즐겁게 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도 상처를 받을 필요가 있고 결핍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한테 벌벌 떨 필요가 없어요.”
-전여옥씨는 초혼이지만, 남편은 재혼이다. 전처의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결혼 초, 힘든 일은 없었나?
“글쎄, 없었다고 할 수 없겠죠. 장남은 군대를 갔다왔고 큰딸은 대학생인데, 보통 그 나이면 부모랑 같이 안 다니잖아요. 그런데 저희 가족은 주말이면 온 가족이 떼로 잘 다녀요. 그래서 딸의 남자친구가 화를 내고 싸운 적도 있대요. 주말마다 식구들이랑 약속이 있다고 하면 데이트는 언제 하냐고(웃음). 제가 ‘그러지 말고 데이트를 나가라’고 해도 가족이랑 있는 게 더 좋대요. 그뿐만 아니라 남자친구와 데이트한 이야기, 남자친구 집안 이야기까지 저에게 속속들이 다 해요.”
-새엄마와 그렇게 친하게 지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비결이 뭔가?
“제 남편의 노력 탓이죠. 재혼가정이 실패하는 것을 보면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아이들에게 ‘너희들 때문에 저 여자랑 결혼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아이들이 새어머니에 대해 무례하게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남편은 저와 결혼하면서 아이들에게 제가 자기에게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 또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아빠의 행복을 바랐던 아이들도 ‘아빠가 행복하려면 내가 저 아줌마랑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착한 아이들이죠. 사실 아이들이 힘들었을 거예요. 제가 놀랄 정도로 마음을 쓰더라고요. 어떤 때는 제가 참 미안해요.”
-본인도 아이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을 했을 텐데?
“결혼 초만 해도 전 아이들의 엄마가 되기보다는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하고 제가 아이들의 인생에 뭔가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쿨(Cool)한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원형이를 낳고 나서는 솔직히 아이들에 대한 감정이 달라지더라고요. 지금은 정말 정을 나누는 한가족이 되었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결혼한 지 4년쯤 되었을까, 제가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였는데, 저에게 와서 그러더라고요. 오랫동안 자기들이 지켜봤는데 지금까지 본 어른 중에서 엄마가 가장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힘을 내라고.”



불륜이 왜 사회적 화두가 되는지 파헤쳐보고 싶어
-주말에 뭘 하길래 딸이 남자친구를 만나기보다 가족과 있기를 원하는지 궁금하다.
“우리 부부가 주말에 이벤트를 잘 만들어요. 가족들이 모두 운동을 좋아해서 자전거를 함께 탄다거나, 남편이나 제가 새로운 음식을 만들곤 해요. 어느 음식점이 맛있다고 하면 함께 먹으러 가기도 하고, 가족들이 함께 여행을 갈 기회도 만들어요. 그러면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죠. 전 어떤 가족이든 그런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운동을 좋아하나?
“운동을 싫어하는 편이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좋아하게 되었어요. 지난해 여름 남편이 목 디스크 수술을 받으면서 태극권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의사가 목 디스크엔 태극권이 좋다고 추천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남편은 뭘 시작하면 끝까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스타일이에요. 반면 저는 끝장을 보는 편이라서 함께 하면서 남편을 감시하고 있어요(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1년에 한두 권 정도 책을 낼 생각이에요. 지금 가족구조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어요. 요즘 불륜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고, 점점 가정이 해체되고 있잖아요.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지 파헤쳐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전여옥닷컴을 만들까 하는 생각도 있고….”
그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여성동아 2003년 9월 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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