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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단독인터뷰

김송이 처음 털어놓은 그간의 마음고생&감동 사랑

오는 10월 정식으로 결혼식 올리는 강원래 아내

■ 글·김지영 기자 ■ 사진·김송 제공

입력 2003.08.29 10:45:00

강원래와 김송이 결혼한다.
2001년 8월 혼인신고를 했던 두 사람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것.
그사이 세번째 시험관아기 시술마저 실패하고, 보험회사와 벌인 기나긴 법정싸움으로 마음고생이
많았던 강원래 김송 부부의 요즘 생활, 강원래의 복귀 계획을 아내 김송에게 들었다.
김송이 처음 털어놓은 그간의 마음고생&감동 사랑

지난 89년 가족의 생일을 맞아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멋진 춤꾼 강원래(34)에게 첫눈에 반한 열여섯살의 소녀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송(31). 이후 그의 마음속에는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고 싶은 한 남자가 존재했다. 9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강원래와 본격적인 교제를 시작한 그는 강원래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에도 흔들림 없이 사랑을 지켜냈다. 장애인이 되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강원래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2001년 8월에는 혼인신고를 하면서 마침내 강원래와 부부가 된 것.
그의 헌신적인 사랑이 드디어 꽃을 피운 것일까. 지난 2000년 11월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후 무대를 떠난 강원래가 머지않아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김송과 함께 내년 4월에 방영할 장애인의 날 특집극 ‘지상 1m에서 맺은 우정’에 조연으로 출연한다.
특히 강원래와 김송의 연기 데뷔작이 될 이 드라마는 음악치료사와 장애인의 애틋한 사랑을 다룬 4부작 미니시리즈로, 배우 조재현이 주연을 자청하고 나섰으며 상대역으로 문소리를 섭외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강원래의 복귀를 고대해온 팬들의 기대가 남다른 가운데 김송이 오랜 침묵을 깨고 본지 인터뷰에 응했다. 그가 정식으로 인터뷰에 응한 것은 2001년 5월 자서전 ‘장미를 사랑한 선인장’을 발간한 후 2년 만의 일. 다음은 김송과 이메일로 주고받은 일문일답.

“가끔은 남편과 사랑을 나누는 황홀한 꿈을 꿔요”
김송이 처음 털어놓은 그간의 마음고생&감동 사랑

절친한 선배가수 박미경 집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송. 박미경이 결혼식 축가를 부르기로 했다.


-지난 5월 보험회사와 3년여에 걸친 법정싸움을 벌인 끝에 21억원의 보험금을 받는 것으로 화해권고를 받아들였는데, 소송기간이 길어져 힘들지는 않았나요.
“소송기간이 길어져서 힘든 건 없었어요. 보험회사를 상대로 재판을 하면 보통 2~3년 정도 걸린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마음을 비우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지냈어요. 다만 보상금이 결정됐을 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어요. 우리측 변호사가 요구한 액수는 원래 오빠가 활동할 때의 세금을 조합해 타당하게 합산한 금액이거든요. 그런데 가해자측 보험회사에서 터무니없는 액수를 제시해서 소송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무튼 판결이 합의 아닌 합의로 끝나 시원섭섭해요. 그렇다고 부당하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저 모든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소송이 끝나고 현대해상 사장님이 원래 오빠한테 연락하셨대요. ‘그동안 소송을 길게 끌어서 미안하다. 어쩔 수 없었다. 항상 파이팅하라’고요. 제 생각이지만, 참 고마운 말씀이에요. 판결나고 강릉에 갔을 때 경포대 앞바다에서 만난 어부들한테도 진심으로 감사해요. 그때 그분들이 하신 말씀이 저희한테 큰 힘이 됐거든요. ‘1백억원은 받았어야지. 억울하게 평생을 불편하게 살아가야 할 텐데…. 힘내세요. 파이팅’ 하고 말하는 그분들의 외침을 들으면서 진심으로 걱정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며 큰 위안을 얻었어요.

김송이 처음 털어놓은 그간의 마음고생&감동 사랑

올봄 강릉 경포대 앞바다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낸 강원래 김송 부부.


이 자리를 빌려 하고 싶은 말은,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원래 오빠는 클론 공연으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닐 때도 사치하지 않고 버는 족족 열심히 저축해온 사람이라는 거예요. 돈이 소중하다는 걸 진정 아는 사람이죠. 아마 다치지만 않았다면 지금도 열심히 뛰어다니며 보상금 이상의 돈을 모았을 거예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시나요?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오빠의 건강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뜻이에요.”
-강원래씨가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고초가 많았을 텐데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괜시리 눈물부터 나려고 해요. 원래 오빠가 장애인이 되었다는 말은 항상 제 맘을 아프고 힘들게 해요. 제 꿈에 나타나는 원래 오빠가 언제부터인가 휠체어를 타고 있어요. 날마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가끔 꿈 속에서 원래 오빠와 사랑을 나누는 황홀한 꿈을 꿔요. 이게 꿈이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눈을 뜨면 현실은 너무나도 끔찍하고 무서운 상황들이에요. 새벽에 눈을 뜨면 아쉬워서 한참을 멍하니 있어요. 그러다 오빠의 방광을 누르면 터질 것같이 부어올라 있고요. 소변이 찼는지도 모른 채 곤히 잠든 오빠를 보며 전 당황해서 부랴부랴 넬라톤(요도를 통해 방광 내에 호스를 꽂아 소변 빼는 것)을 해줘요. 하지만 오빠는 여전히 아무 반응도 없이 자요. 그런 오빠 모습을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측은하고 안타까워요. 그렇게 벌써 2년 9개월이 흘렀어요.
사실 오빠와 늘 같이 있다 보니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는데 외출해서 저만치 떨어져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아, 내가 사랑하는 원래 오빠는 장애인이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돼요. 전 장애인 배지를 단지 초보에 불과한 오빠가 지금까지 잘 참고 견뎌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하지만 오빠가 예전보다 참 많이 약해져서 마음이 아파요. 오빠가 눈물이 많아졌거든요. 비교적 빨리 장애를 인정하고 대중 앞에 나서긴 했지만 보이는 것처럼 강하지만은 않은 사람이에요. 오빠가 소리 없이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 때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그저 휴지를 뽑아 닦아주는 수밖에는. 그런 오빠를 격려하는 저 역시도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기에 너무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아요. 하루는 친구를 만나 힘이 든다고 했더니, ‘만약 그때 사고로 오빠가 죽었으면 네 맘이 어떨지 생각해봐라. 네 몸이 힘들어도 지금 고생하면서 같이 살아가는 게 훨씬 낫지 않으냐.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서 네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 위로해주더군요. 그 말이 가슴 깊이 와 닿았어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선택한 길이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죠.”

“시험관아기 시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해볼 거예요”
-패션쇼 같은 행사장에 나란히 자리한 두 사람의 모습은 언제나 다정해 보이는데 싸울 때는 없나요.
“어떻게 만날 좋은 날만 있겠어요. 저희도 다른 부부들처럼 싸우기도 하면서 살아요. 연애시절에는 싸우면 두달 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도 나중엔 오빠가 지쳐서 먼저 연락해오곤 했어요(제가 한 고집 하거든요^^). 그럼 금세 풀어져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만났죠. 하지만 이제는 싸워도 떨어질 수가 없어요. 각방 쓰는 수밖에요(^^). 그래도 하루를 못 넘기고 금방 화해해요. 남들은 그걸 사랑싸움이라고 하더군요.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한이불 속에서 자고 나면 금방 풀린다지만, 사실 저는 부족한 뭔가가 남아요. 오빠의 사랑의 손길이 그리워서 그런가 봐요. 얼마전 쌍둥이 남동생이 분당에서 운영하는 바에 갔다가 예전에 세브란스병원에서 오빠 수술을 집도해주신 박사님을 만났어요. 우리가 ‘언제쯤이면 신경을 잇는 회생술이 나오냐’고 진지하게 여쭸더니, 박사님은 ‘마음의 수양을 쌓고 그저 명상을 하십시오’ 하는 말씀만 되풀이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10년, 아니 20년이 지나면 걷는 방법이 나오지 않겠냐’고 했죠. 정말 희망적인 한마디를 기대했지만 박사님은 50년이 걸려도 불가능할 거라고 하시더군요. 정말 착잡했어요. 구깃구깃, 갈기갈기 찢어진 종이짝 같은 기분이었어요.”

김송이 처음 털어놓은 그간의 마음고생&감동 사랑

지난 7월 포장마차에서 단독 ‘기념 촬영’을 한 김송.


-세번의 시험관아기 시술 실패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시험관아기나 인공수정을 하는 부부는 모두 같은 마음일 거예요. 성공하면 더없이 기쁘겠지만 실패했을 때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뒤따라요. 저 역시 시험관아기 시술에 실패하고 다시 도전할 때는 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에요. 기대하지 말고 마음을 비워야지 하면서도 마음먹은 대로 되질 않더라고요. 제 신조 중 하나가 ‘큰 기대를 하면 실망이 더 큰 법이니 마음을 비우며 살자’인데도요. 그럴 때마다 주위 분들이 참 많이 격려해주세요. 제가 다니는 병원 원장님도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세번째 시험관아기를 착상하는 날에도 오빠의 정자 운동상태가 점점 안좋아지니까 원장님이 제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닦아주시면서 아기 없이 둘이 사는 것도 행복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셨죠. 그날은 정말 펑펑 울면서 시술을 받았어요. 세번째 시술에 실패한 지도 벌써 4개월이 지났네요. 네번째 시술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해보려고요. 듣자하니 열한번째에 성공한 부부도 있대요. 중학교 동창 하나도 일곱번만에 성공해서 지금은 너무나도 예쁘고 건강한 딸을 얻었어요. 저희 부부도 다시 시작할 때는 마음 단단히 먹고 도전할 거예요. 우리 부부에게 아이는 없어서는 안될 사랑의 열매고, 그 열매를 성공적으로 맺어야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모든 불임 부부와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전 사랑하는 원래 오빠를 닮은 딸을 꼭 낳고 싶어요(^^).”



-결혼생활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요.
“세번째 시험관아기를 시술할 무렵의 일이에요. KBS 논쟁버라이어티 ‘당신의 결정’의 녹화가 있었는데, 전 그렇게 늦어질지 몰랐어요. 출연자들이 정말 치열하게 논쟁을 펼치는 가운데, 전 주사(시험관아기 시술을 위해 매일 정기적으로 맞아야 하는 주사) 맞을 시간이 지나 전전긍긍하고 있었죠. 조급하고 불안해서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어요. 잠깐 휴식시간이 생겨 오빠한테 방송국까지 주사액을 가져다줄 수 있겠냐고 전화를 걸었어요. 내심 미안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그런데 화를 낼 줄 알았던 오빠가 기꺼이 여의도로 달려와주었어요. 그날은 아무 말이 없더니 나중에 어느 인터뷰에서 털어놓더군요. 오빠가 직접 운전해서 주사액을 갖다준 그날의 기억만큼 뿌듯한 적이 없었다고, 이제 송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운전뿐이라고요. 그날 저는 오빠한테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었는데 오빠는 잊을 수 없는 뿌듯한 날로 기억하고 있답니다(^^).”
-친정부모, 시부모와는 잘 지내나요.
“물론 잘 지내요. 시부모님도 무척 잘해주시고, 친정부모님도 마찬가지랍니다. 제가 세번째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았을 때는 우리 엄마가 호주에서 날아와 따뜻한 밥도 지어주시고, 모녀간에 밀린 대화도 실컷 나누면서 즐겁게 지냈어요. 우리 아빠도 잘 계시고요. 작년에 양가 부모님이 상견례를 하셨는데, 시아버님이 저희 아빠한테 너무 고맙고 송구할 따름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당신도 딸을 둔 아버지 입장에서 이런 상황이라면 다리 몽둥이라도 부러뜨려서 뜯어말렸을 거라고 하시면서요. 상견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무사히 잘 치렀어요.”

김송이 처음 털어놓은 그간의 마음고생&감동 사랑

지난 6월 서울 국립재활원에서 ‘슈퍼맨’과 ‘마릴린 먼로’로 변신한 강원래와 김송.


-10월12일 서울 강남센트럴시티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는데, 정식결혼식을 앞둔 소감은요?
“웨딩드레스를 입을 생각만 하면 벌써부터 식장에서 펑펑 눈물을 쏟을 것 같아 걱정이에요. 그럼 화장도 망가지고 모든 이가 축복해주는 분위기도 망칠 텐데…,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여야 하는데,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지네요.”
-최근 들어 강원래씨의 복귀 관련 소식들이 속속 전해지고 있어요. 구준엽씨와 내년 봄 클론 음반을 발매하기 위해 준비중이라고 하던데요.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서 시원한 답변을 해드릴 수가 없네요. 아직 정해진 곡도 없고, 소속사와 구체적인 얘기가 오간 적도 없거든요. 오빠가 만약 가수활동을 재개하면 클론 앨범을 내고 싶다는 바람을 밝힌 것뿐이에요(그래서 오빠는 항상 강조해요. 기사의 50%만 믿으라고). 하지만 그것은 오빠와 제가 간절히 바라는 소망 가운데 하나이긴 해요. 준엽 오빠나 소속사 식구들, 클론 앨범을 기다리는 모든 팬들도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해요. 전 늘 준엽 오빠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답니다. 어찌됐던 오빠의 사고로 클론 활동이 중단됐으니까요.”
-내년 4월 장애인의 날에 방영될 특집극 ‘지상 1m에서 맺은 우정’에 강원래씨와 함께 조연으로 출연하기로 했다고 들었어요.
“오빠가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을 때 PD 김영진 선생님이 미국에서 차사고로 크게 다쳐 같은 병원에 입원해 계셨어요. 그런데 그분한테 한달 전쯤 연락이 왔어요. 내년 4월 장애인의 날 방영할 특집극을 준비 중인데, 출연해보지 않겠냐고요. 처음에는 연기 경험이 없으니까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PD선생님을 만나 대강의 줄거리를 들어보니 공감이 가는 부분이 참 많았어요. 중요한 건 원래 오빠와 함께 출연할 수 있다는 거예요. 오빠가 곁에 있으면 조금은 부담이 덜어질 것 같아요. 대본이 올겨울 쯤이면 완성된다고 하니, 이후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면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해야죠. 저 때문에 좋은 드라마를 망치면 안되니까요(^^).”
-강원래씨의 모교인 강릉대 근처에 오픈할 예정이라는 댄스학원은 어떻게 되어가나요.
“올해 안으로는 힘들 것 같아요. 건물을 짓고 올리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니까요. 오빠의 복귀 계획에 관해 제가 구체적으로 아는 건 없지만 무슨 일이든지 잘 해내리라 믿어요. 원래 오빠의 강한 생활력을 믿기 때문에 안심이 돼요. 오빠가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때도 전 오빠한테 편지를 썼어요. ‘오빠는 나의 정신적 지주이며 오빠는 나의 머리이고, 난 오빠의 목에 지나지 않아. 우리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서로를 지탱해주는 존재야. 난 오빠의 손발이 되어줄게, 오빠는 나의 머리가 돼줘’하고. 그 편지의 내용처럼 전 오빠를 믿고 의지하며 따를 뿐이에요. 오빠는 지금도 저한테 자신해요. ‘너 하나 굶길 것 같냐. 날 믿어’라고요. 전 당연히 믿죠. 든든한 남편이 제 곁에 있는 걸요(^^). 오빠가 지금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은 라디오 DJ예요. 예전의 클론 이미지도 있고, 오빠는 지금도 클론의 강원래로 당당히 보여지길 바래요. 저 역시 그런 마음 간절하고요. 제가 알고 있는 원래 오빠는 자기가 맡은 일이면 죽을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 강한 사람이에요. 방송활동은 아직 장담할 수 없지만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 믿어요. 전 오빠 곁에서 내조 열심히 하며 응원해주는 아내가 될 거예요.”

여성동아 2003년 9월 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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