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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세상에 이런 일이

1년여 만에 밝혀진 '여대생 하양 납치 살해사건’ 전말

‘사위에 대한 병적인 의심이 고귀한 생명 앗아가’

■ 글·최호열 기자 ■ 사진·동아일보 출판사진팀, 중앙일보 제공

입력 2003.05.14 11:04:00

지난해 3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대생 하양 납치 살해사건의 전모가 사건발생 1년여 만에 밝혀졌다. 하양을 직접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주범이 자백을 한 것.
살인을 사주한 사람은 하양 유족의 주장처럼 하양의 이종사촌 오빠인 김판사의 장모 윤여인이었음이 밝혀졌다. 사건의 진상과 구속된 윤여인에 대해 밀착 취재했다.
1년여 만에 밝혀진 '여대생 하양 납치 살해사건’ 전말

하양을 납치, 살해하도록 사주한 혐의가 추가된 윤여인.


지난해 3월 여대생 하양(당시 22세)이 실종된 지 열흘 만에 공기총을 6발이나 맞고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돼 큰 충격을 주었던 ‘하양사건’은 결국 하양 이종사촌 오빠의 장모인 윤여인(58)이 살인을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양을 직접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주범으로 알려진 윤여인의 조카 윤모씨(41)와 그의 친구 김모씨(40)가 지난 4월14일 범행 일체를 자백한 것이다.
사건 직후 각각 홍콩과 베트남을 거쳐 중국에서 도피생활을 하다 1년여 만에 중국경찰에 의해 검거돼 4월11일 한국으로 송환된 두 사람은 처음엔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송환된 지 사흘 만인 4월14일 “윤여인의 지시로 납치,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특히 김씨는 “범행 전에 여러 차례 그만두려고 했지만 같이 범행을 저질렀던 윤씨가 ‘부산지역 폭력배를 보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었다”며 “도피중에 하씨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이로써 지난해 8월 검거돼 ‘하양 체포감금을 교사한 죄’로 올해 1월 1심에서 징역 3년6월형을 선고받고 수원구치소에서 복역중인 윤여인에 대해 살인교사 혐의가 추가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윤여인은 “조카의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혐의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그(윤여인)가 두 사람에게 살인을 지시했다는 것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증거와 전화통화 내역 등을 확보하고 있다”며 살인교사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다.
죄 없는 여대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하양사건은 윤여인이 사위인 김판사(30)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오해가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된 것. 윤여인은 딸이 결혼한 직후인 99년말 누군가로부터 사위가 이종사촌인 하양과 불륜관계였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처음엔 막연하게 의심을 하던 윤여인은 2000년 3월 사위의 휴대전화로 걸려온 젊은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누구냐고 물었을 때, 사위가 “이종사촌 동생”이라고 대답하자 두 사람의 불륜관계를 확신했다는 것(경찰조사 결과 당시 하양은 김판사에게 전화를 건 사실이 없음이 밝혀졌다). 이때부터 윤여인은 어떻게 해서든 하양과 사위의 불륜을 밝히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그는 조카 윤씨와 현직 경찰관, 심부름센터 직원 등 20여명을 동원해 하양을 24시간 밀착감시하고 미행하도록 했다. 자신도 직접 승복차림으로 변장한 채 매일같이 하양의 아파트 주위에 나타나 방의 위치와 당일 미행일정, 행동요령 등을 알려주는 등 현장지휘를 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또한 윤씨 등에게 “둘이 만나거나 여관으로 들어가는 사진을 찍어오면 수억원을 주겠다. (현장을) 적발하면 두 사람을 무조건 나에게 데려와라”고 말하기도 했다.
윤여인은 또한 자신이 직접 사위가 근무하는 곳을 찾아가 사위를 감시하기도 하고, 하양이 집을 나와 기숙사에 들어가자 기숙사에 전화를 걸어 실제 입소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김판사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하양의 아버지 하모씨(57)는 2001년 6월, 윤여인의 집으로 달려가 강력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윤여인은 오히려 하씨가 보는 앞에서 사위에게 “하양과의 관계를 밝히라”며 난동을 부리는가 하면, 하씨에게 “딸 단속을 잘 해라. 이놈 저놈에게 붙어먹고 잘 사는가 보자”는 등 극언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1년여 만에 밝혀진 '여대생 하양 납치 살해사건’ 전말

하양의 아버지는 이사를 한 후에도 하양의 방을 그대로 꾸며 놓았다고 한다.


이에 하씨는 윤여인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승소한 데 이어, 2001년 10월22일 윤여인은 서울지법으로부터 하양을 직접 미행하거나 제3자를 시켜 미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접근금지 명령을 받기도 했다. 연이은 재판에서 패하자 격분한 윤여인은 조카 윤씨에게 하씨를 납치하도록 사주했다. 하지만 몇 차례에 걸친 납치계획이 실패하자 지난해 초부터 아예 하양을 납치, 살해할 것을 지시했고, 그로인해 결국 하양은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런 물증도 없이 단지 소문만 믿고 하양과 사위를 불륜관계라고 의심해 살인까지 사주한다는 것이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윤여인은 어떤 사람이길래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지난해 8월 윤여인을 검거, 조사를 담당했던 형사와 하양의 아버지는 공통적으로 윤여인에 대해 편집증이 강한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한다. 특히 하씨는 윤여인에 대해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려고 해도 시종일관 자기 주장만 하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요. 누가 아무리 설득력 있게 말을 해도 듣지를 않아요. 정말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죠. 심지어 법원 앞에서 만나 말다툼을 한 적이 있는데, 제 딸과 김판사가 불륜관계라는 주장을 하면서 자기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자기 자식을 차에 치어 죽게 해달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해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자기 자식에 대해 그렇게 말하겠어요.”
윤여인이 하양과 김판사의 불륜을 확신하면서 주장하는 증거는 단 하나. 김판사의 사무실이 보이는 화장실에 숨어 감시를 하고 있는데 하양이 김판사 사무실 앞에까지 왔다가 자기를 발견하고는 도망을 간 적이 한번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조사 결과 그 시각에 하양은 집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윤여인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말을 해도 안 통해서 제가 물었어요. 그 시각에 하양이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고. 그랬더니 자기가 어느 점집에서 점을 봤는데 점쟁이가 하는 말이 그 시간에 가면 있을 거라고 해서 갔다는 거예요. 그게 말이 되느냐고 해도 막무가내였어요.”
윤여인은 심지어 경찰조사에서 “사위가 전화를 받았을 때 몇초 동안 말없이 있다 끊으면 둘이 만나자는 신호”라고 주장해 경찰들을 어이없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윤여인의 사주를 받아 하양을 미행했던 사람들의 진술에 따르면 “몇달 동안 미행을 해도 두사람이 만나는 것 같은 낌새가 전혀 없어 오해한 것 같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을 해고시키고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경찰은 윤여인이 하양과 사위의 관계를 의심한 것은 그의 개인사 때문일 것으로 추측했다. 경찰에 의하면 윤여인은 남편 류씨(59)가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가진 부산지역의 향토사업가였기에 물질적으로는 풍부했을지 모르지만 가정적으로는 평탄하지 못했다는 것. 수년 전부터 남편과 별거상태인데다, 아들마저 떨어져 살고 있어 윤여인에겐 딸이 자신의 전부일수도 있었을 터. 그런 딸이 결혼하자 자기 집 바로 앞에 집을 얻어주고 함께 살면서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위가 결혼 전에 사귀던 여자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 후 또다른 여자가 있지 않을까 의심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하양 이야기를 듣고 의심하기 시작한 거죠. 그건 딸에 대한 애정일 수도 있고 자기 설움에 대한 보상심리일 수도 있을 겁니다.”

1년여 만에 밝혀진 '여대생 하양 납치 살해사건’ 전말

하양 살인사건 주범인 윤씨와 김씨의 현장검증 모습.


윤여인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 위해 그가 수감중인 수원구치소를 찾았다. 면회실에서 그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지난해 8월 경찰에 검거되었을 당시, 그는 퍼머를 한 단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퍼머도 다 풀리고 머리도 많이 자라 있었다. 생머리를 대충 묶은 데다 화장기가 전혀 없는 맨얼굴에 초췌한 모습이어서 언뜻 알아보기 힘들었다. 목에 보호대를 한 것이 눈에 띄었다.
윤여인은 낯선 면회객을 긴장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누구냐”고 물었다. 그리곤 면회객이 기자임을 알고는 “이 면회는 거부하겠다”며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대신 구치소 관계자로부터 친정과 시집식구들이 거의 매일 면회를 오고 있다는 등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구치소 관계자에게 윤여인이 왜 목 보호대를 했는지, 구치소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물었지만 규정상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해당하기 때문에 말해줄 수 없다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건강은 양호한 편이며, 현재 구치소 내에서 별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근황을 확인시켜주었다.


여성동아 2003년 5월 4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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