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프런트 에세이

”순수하고 깨끗한 한글 환경에서 살고 싶다”

방송인 정재환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정재환 ■ 사진·조영철 기자

2003. 05. 07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라는 유명한 표어가 있다.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고 보존하자는 거다. 자연은 인류의 생활터전이기에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자연환경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말과 글이라는 언어 환경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말과 글을 쓰고 있으며 어떤 언어 환경 속에 살고 있을까?

”순수하고 깨끗한 한글 환경에서 살고 싶다”

언젠가 봄에 양평에 갔었다. 계절의 여왕 5월답게 길가에 피어난 개나리며 진달래가 남한강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두물머리(양수리의 옛 이름이자 순수한 우리말로 북한강과 남한강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뜻)에서 양평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작은 읍내를 통과해 곤지암 가는 길로 접어드는 길목에 시내를 건너는 작고 낡은 다리가 있었는데 그 다리 입구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다리는 붕괴의 위험이 있으니 조심해서 건너가십시오.’
건너가라는 말인가 말라는 말인가? 도대체 어찌하라는 말인가?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건 그 안내문을 보고 단 한대도 방향을 돌리는 차가 없었다는 거다. 내가 본 모든 차들은 오들오들 불안에 떨면서도 위태로워 보이는 그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건너갔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안전불감증’아닌가.
자연환경 만큼 중요한 게 바로 언어환경이다
요즘은 우리말에 관심을 갖다보니 말뿐만이 아니라 위 안내문처럼 여기저기 붙어있는 글귀에도 시선이 오래 머문다. 혹시 이런 거 본 적 있으신지?
‘한 걸음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일보 앞으로!’
여성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남자화장실 소변기 앞에 붙어있는 표어(?)다. 칠칠치 못한 남자들이 뭔가를 흘리기 때문에 유치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걸 붙여놨다고 한다. 남자화장실에 정말 이런 게 붙어있는지 궁금하시면 한번 남몰래 들어가 보시라!
그리고 이건 고속도로 휴게실에 있는 화장실에서 본 건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남자가 흘리는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캬! 예술이다. ‘일보 앞으로’나 ‘조금만 더 가까이’보다 보는 이들에게 주는 감동이 엄청나다. 살다살다 정말 맘에 드는 표어 하나 만났다.
그러고 보면 요즘 화장실 참 많이 깨끗해졌다. 화장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 공도 크지만 화장실을 중요한 생활공간으로 아름답고 깨끗하게 가꾸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이 큰 변화를 가져왔다. 심지어 ‘화장실문화’라는 말까지 나왔다. 어떤 화장실은 너무 깨끗하고 향기로워서 한참 놀거나 쉬고 싶은 충동마저 느끼게 한다.
그런데 우리가 깨끗이 해야 할 것은 화장실만이 아니다.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라는 유명한 표어가 있다.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고 보존하자는 거다. 자연은 인류의 생활터전이기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순수하고 깨끗한 한글 환경에서 살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보호해야 할 것은 이런 것만이 아니다. 말과 글이라는 언어 환경을 제대로 가꾸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어떤 말과 글을 쓰고 있으며 어떤 언어 환경 속에 살고 있을까?
‘어머 너 다이어트하니, 어쩜 그렇게 슬림해졌니? 나도 좀 날씬해지고 싶은데, 운동 이빠이하면 뭐하니, 밤마다 이것저것 짬뽕해서 졸라게 먹어대는 바람에 다 꽝이야! 남들은 다 해피하게 사는데 난 이게 뭐니? 어떨 땐 그냥 콱 다이하고 싶다니까! 뭐, 괜히 오바해서 분위기 다운시키지 말라고? 너까지 그러면 나 정말 뚜껑 열린다!”
“핸들 이빠이 돌려!”라는 말은 우리말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핸들’은 영어에서 왔지만 콩글리시이고 ‘이빠이’는 일본말 찌꺼기다. 우리말은 ‘돌려’ 하나뿐이다. 우리가 요즘 이렇게 살고 있다. 일본말 찌꺼기도 문제지만 물밀 듯 들어오는 영어 때문에 우리말은 점차 제자리를 잃고 있다. 10년 이상 죽어라 영어 공부해도 제대로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저 이런 식이다. 시간과 돈과 정열이 아까운 건 물론이고 애꿎은 우리말만 망가뜨리고 있다. 글도 정말 문제다. 언젠가 대구에 가서 발견한 큰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大邱觀光情報센터’
알만한 분들이야 알겠지만 혹시라도 한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간판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다. 무슨 글인지 읽지를 못하면 그 곳에서 관광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한자 옆에는 영어로도 써놨으니 외국인 관광객들에 대한 배려라고 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땅에서 왜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혀 배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걸까? 당연히 ‘대구관광정보센터’라고 쓰고 그 다음에 한자를 병기하든 영어를 병기하든 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혜화동 로터리에 ‘yeild’라고 쓰인 교통표지판이 있었다고 한다. 무슨 뜻일까? 아마 그 길을 지나면서 그걸 보고 “저게 무슨 뜻일까?”하며 고개를 갸우뚱하신 분들도 많을 거다. 우리말로 하면 ‘양보’다.
성균관대학교에 있는 오래된 교사 계단 한쪽 벽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의 문구가 걸려 있다. ‘위험(danger) - 계단 주변에서 뛰거나 장난을 치면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 조심하시고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한글 환경에서 살고 싶다”

물론 경고문의 제목인 ‘위험(danger)’이란 글자가 제일 크게 적혀 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성균관대학교에는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도 더러 있다. 그들이 괄호 안에 쓰여 있는 ‘danger’라는 글자를 봤을 때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위험하다? 도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걸까? 계단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계단 주변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괜히 서성거리면 위험하다는 걸까? 우리 글을 모르는 외국인 유학생들은 위험하다는 것 외에 도무지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이게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거라면 ‘계단 주변에서 뛰지 말라’는 내용도 영문으로 적어 넣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겐 괄호 안에 빨간 색깔로 대문짝만하게 적어 넣은 ‘danger’는 별 소용없는 글자다.
귀엽다” 대신 “큐트하다”가 남발되는 언어현실
하나만 더 보자. 서울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 강의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사랑관’이란 교실 입구에 이런 팻말이 붙어있다.
‘사랑관 school room ‘love’ 愛館’
이걸 보고 “좋네, 교육적이고!”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이게 우리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언어 환경이다. 왜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무려 3개의 문자 아래 살아야 하는 걸까? 아시겠지만 엄연히 우리나라 글자는 한글이다. 한자는 그 역사성 때문에 우리 한글을 보조할 뿐 중국글자이고, 오늘날 국제어 행세를 하고 있는 로마자 역시 영어 알파벳일 뿐이다.
옆집 아기를 보고 ‘귀엽다’는 말 대신 ‘큐트하다’고 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게 요즘 우리의 언어현실이다. “역시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해”라고 하면 될 걸, “북을 읽어야 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봤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우리에겐 한국어가 있고 한글이라는 고유의 글자가 있다. 나는 정말 아름다운 한국어와 아름다운 한글 환경 속에서 살고 싶다. 외국어와 외국어 교육은 다음 문제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