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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더블 인터뷰

'동갑내기 과외하기'원작자 최수완&김경형 감독에게 듣는 영화 뒷얘기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최규정 ■ 사진·박해윤 기자

2003. 04. 03

전국 관객 5백만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는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올봄 영화계에 유쾌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사람들이 이 영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영화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또 감칠맛 나는 영화 속 이야기가 실화인데다 데뷔작에서 대박을 터뜨린 신인 감독은 나이 마흔을 넘긴 중년. 요즘 누구보다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경형 감독과 원작자 최수완씨를 만났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원작자 최수완&김경형 감독에게 듣는 영화 뒷얘기

'동갑내기 과외하기' 원작자와 감독으로서 세번째 만남을 가진 최수완(왼쪽)과 김경형.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기울어진 집안 형편상 학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하는 스물한살의 대학생 수완(김하늘 분)과 학교에서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짱’이지만 5년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늦깎이 고3 학생 지훈(권상우 분)의 과외수업을 소재로 한 젊은 감성의 코미디물이다.
망가지는 것조차 너무 사랑스러운 김하늘과 최근 소녀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매력남 권상우가 주거니 받거니 연기호흡을 맞추는 것은 물론, 백일섭 김자옥 등 실력파 조연연기도 볼 만하다. 이 영화는 1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다양한 관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3월 중순에 이미 4백만이 넘는 관객이 보면서 올봄 최고의 히트작 대열에 올랐다.
톡톡 튀는 여자와 확실하게 ‘튀는’ 남자
40대 초반의 나이에도 과감한 헤어 스타일을 감행한 김경형 감독(43)은 나지막하고 조용한 목소리와 소탈한 웃음을 지녔다. 경쾌한 목소리에 순간을 놓치지 않는 재치와 영특함의 소유자 최수완씨(24)는 단번에 주변 분위기를 명랑버전으로 바꿔버리는 20대의 톡톡 튀는 사회 초년생이다.
원작자와 감독으로 여러번 만났을 법도 하지만 서로 바쁜 일정 때문에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이제 세번째 만남을 가졌다. 시종일관 즐거웠던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진정어린 성찰과 애정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최수완(이하 최) 감독님 만난다니까 친구들이 ‘너무 좋겠다’고들 하더라고요.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 감독님이 인기 ‘캡’인 거 아세요? 아마 튀는 헤어 스타일 때문인 것 같은데…. 염색은 영화 하시면서 하셨어요?
김경형(이하 김) 아니야. 재작년에 제대로 되는 일도 없고 하도 골치가 아파서 기분전환하려고 염색을 했는데, 그러고 나서 두달 만에 이 영화 만들자는 연락이 오더라고.
최 저희 아버지는 홍보지에 있는 감독님 사진 보셨을 때 감독님 머리가 노란색이니까 젊은 사람인 줄 아셨나봐요. 저보고 글쎄 ‘이 자식 생각은 제대로 박혀 있는 놈이냐?’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제가 ‘보기엔 그래도 실은 나이가 지긋하다’고 얘기해도 여전히 안 믿으시는 눈치세요.
김 사실 영화 만들기 전에 원작자를 한번 만나려고 했었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 그때도 바빠선지 연락이 잘 안되더니. 요즘도 그런가 봐.
최 요즘은 과외하는 애들한테 무척 미안해요. 자꾸 일정을 미뤄서요. 그리고 저한테 휴대전화 생긴 지가 얼마 안돼요. 예전엔 삐삐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걸 잃어버려서 연락이 어려웠을 거예요.
김 맞아, 원작에도 ‘삐삐’가 나오지. ‘삐삐’가 코미디 소재로 재미있기는 했는데 고민하다가 오히려 비현실적인 것 같아서 바꿨어. 그러면 오버하는 것처럼 보이거든. 그런데 아직도 호출기 서비스가 되나?(웃음)

'동갑내기 과외하기'원작자 최수완&김경형 감독에게 듣는 영화 뒷얘기

호출기뿐이 아니다. 영화는 대부분 원작과 흐름을 같이하지만 극중 수완의 경험과 최수완씨의 경험은 조금 다르다. 무엇보다 극중에서처럼 수완과 지훈(가명)이 사귀지는 않았으며 지훈은 지금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 살고 있다. 또 항상 과외로 바빴던 최씨는 학교 축제나 놀이동산은 고사하고 친구들 만날 시간조차 없이 빠듯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항상 밝고 명랑했던 탓에 친구들은 다소 과장된 듯한 김하늘의 연기를 보며 최수완에 비하면 오히려 절제된 표현이라며 그를 놀린다. 수완이가 맥주를 맛있게 마시는 장면에서도 친구들은 즐거워했다. 그는 맥주는 물론, 피로회복제 한병만 마셔도 취하기 때문이다.
최 목걸이만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지훈이한테 받은 거냐고 물어요. 하지만 실제로 그 친구한테 받은 선물은 떨어진 교복 단추 하나뿐이에요. 그 아이는 학교에서 너무너무 유명했고 그래서 누구도 못 건드렸는데 어쩌다 교복 단추가 떨어지면 친구들 사이에선 엄청난 값에 팔리고 그랬나봐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속으로 무지 기분 나빠했었죠(웃음).
김 그것도 참 재미있네. 역시 원작자를 미리 만났어야 했는데 말야(웃음). 참 어머니들은 실제로도 동창이셨다지?
최 네, 하지만 워낙 사는 형편이 다르다보니 지훈이네 엄마가 ‘건물이 너무 많아서 집세 받으러 다니느라 다리가 아프다’ 그러면 저희 엄마는 ‘우리 애는 장학금을 독점해서 다른 애들 보기가 미안해서리….’ 이러면서 서로 티격태격하셨죠. 하지만 고민 얘기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김 어머니는 영화 보고 뭐라 그러셔?
최 우리 엄마는 영화 보고 우셨어요. 티켓이 다 매진돼서 새벽 한시가 넘은 시간에 아빠랑 같이 보고 오셨는데 영화 속 수완이 엄마가 ‘한 학기 등록금 버는 게 장난인 줄 아니?’ 하고 소리지르는 장면에서 엄마는 몰래 우셨대요. 남들은 다 웃는데 엄마는 그때 어려웠던 생각이 나셨나 봐요. 그때는 정말 내가 대학을 마칠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몸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였거든요. 물론 제 글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에 엄마도 참 좋아하세요. 그리고 저보다 훨씬 담담하세요. 요즘은 ‘항상 평상심을 잃지 말아라’고 충고하시죠. ‘빨리 입사 준비해야지 앞으로 뭐해 먹고 살거냐’고 걱정도 하시고. 옳으신 말씀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김 작가 해서 먹고 살면 될 텐데….
최 원래 글에 관심도 많고 공부도 계속하고 싶어서 이번에 국문과 대학원에 진학했거든요. 기회가 되면 시나리오도 쓰고 싶어요. 하지만 꼭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그냥 네티즌들 사이에서만 공유되어도 좋아요. 사람들이 제 글을 보고 행복해하면 전 그걸로 만족해요.
김 최작가는 영화 속 수완이와 많이 닮은 것 같아. 당당함이랄까, 삶에 대한 근성 같은 것 말야.
최 원작 쓸 때 어렴풋이 이런 생각을 했었죠. 왜 요즘 젊은 아이들, 너무 나약하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전 여간해선 포기를 안 하거든요. 돈도 돈이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항상 최선을 다하고 끝까지 노력하는 게 어떻게 보면 악바리처럼 느껴질 만큼 그랬어요. 제 글을 통해 요즘 아이들이라고 다 그렇게 쉽게 꺾이거나 모든 걸 편한 쪽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어요.

'동갑내기 과외하기'원작자 최수완&김경형 감독에게 듣는 영화 뒷얘기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흥행 성공에 연연해 하지 않고 평소 하던대로 살겠다고 하는 두사람.


삶이 순탄치 않은 것은 김감독도 마찬가지다. 다만 대학생이던 최수완씨가 주변환경 때문에 고생을 한 반면 김감독은 고생을 자초한 셈이다. 그가 잘 나가던 CF연출과 방송작가 생활을 정리하고 꼬박 영화준비에만 매달린 지 5년 만에 만난 영화가 ‘동갑내기 과외하기‘였으니 말이다. 그동안 이러다 영영 영화를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그에게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일을 하면서는 늘 내 일이 아닌 것 같은 공허감과 허기가 있었기에 그는 영화를 고집했다. 그에게서 영화는 정말 하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그런 일이었다.
김경형 감독은 영화를 끝내고 한창 바쁜 일정 중에도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그동안 함께 고생한 가족들과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최 사람들은 40대 감독이 어떻게 이런 젊은 영화를 만들었는지 궁금해 해요.
김 원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낸 것뿐인데…. 예를 들어 비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조차도 별일 아닌 듯 씨익 웃고 넘어가는 그런 태도 말이야. 그게 요즘 아이들 말로 ‘쿨’한 정서와 맞아떨어졌던 거지. 하지만 만일 20대가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렇게 만들진 않았을 거야. 더 모험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었겠지. 그 나이에는 동년배보다는 세상 그 자체에 더 관심이 많잖아. 오히려 난 나이가 있으니까 좀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뿌리는 원작에 있었고 난 그저 그 원작을 ‘재미있다. 좋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감성을 가졌다는 거, 그 정도겠지.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최 감독님 생각에도 ‘이건 정말 잘했다’ 하는 부분은 어떤 거예요?
김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은 라스트 신이지. 내가 원했던 건 부잣집 아들 지훈이를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 틈으로 끌어내려 격의를 없애는 거였어. 그래서 마지막에 복잡해진 상황을 해결하는 열쇠를 수완이한테 준 거지. 상황 종료 후 지훈이의 근사한 BMW 오토바이가 아니라 수완이의 배달용 스쿠터를 타고 돌아가는 것으로 마무리한 것도 그런 의미였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그 설정이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었다는 거, 그게 가장 좋았지.
최 저도 결말이 맘에 들었는데요. ‘우리가 이런 조건에서도 사랑을 하느냐 마느냐’ 울며불며 말하는 식의 신파조가 아니라 깔끔하게 끝나잖아요? 스무살, 스물한살 그 나이 또래에는 결혼 같은 거 생각하지 않잖아요. ‘우리 이제 좀 좋아해볼까?’ 이런 식으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로 그냥 끝나버린 거요, 그게 가장 적절한 결말이었던 것 같아요.
김 앞으로 평생 영화 만들면서 먹고 사는 게 내 꿈이라면 꿈이지. 영화판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바닥이니까 말야(웃음). 장르에 대한 편견 없이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 이번에 연출한 거 보고 사람들은 나보고 멜로물을 잘할 것 같다고 하는데 전쟁영화도 만들고 싶고, 코미디를 또 하더라도 좀더 완성도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 하지만 아직은 얼떨떨한 상태니까 이제부터 잘 고민해봐야지. 최작가한테 또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것도 한 번 해보고 싶고.
최 저는 그래요. ‘꼭 시나리오 작가가 돼야지’ 이런 생각은 없어요. 글쓰기는 평생 하겠지만요. 그건 저한텐 습관 같은 것이거든요. 아주 어려서부터 일기를 썼으니까요. 그보다는 이런 생각을 해요.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제가 대학생 때 쓴 글인데 그걸 보고 열한살, 열세살, 이런 어린 친구들이 ‘재미있다’는 메일을 보내주면 너무너무 기쁘더라고요. 그렇게 어린 친구들이랑 의사소통이 되고 교감이 된다는 것이 참 좋아요. 그런 감성을 계속 지켜나가고 싶은 게 제 소망이죠.
김 그 점은 나도 정말 동감이야.
최 글쓰기를 제 삶의 행복한 일부로 그렇게 남겨둘 거예요.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 한다면 정말 힘들 것 같거든요. 앞으로 입사시험도 볼 거고요. 대학원 공부도 그렇고 뭘 하든 즐겁게 하고 싶어요.
사실 두 사람은 이제 곧 흥행의 고지에 오를 자신들의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흥행 성공에 대해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저 자신들이 만들어낸 영화를 좀더 많은 사람이 보고 즐거워한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고 그런 과정을 행복한 기억으로 고이 간직하겠다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첫 작품의 성공에 부담스러워하며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며 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들에게는 스스로 즐거워질 수 있는 더 좋은 미래를 향한 꿈이 있고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팔팔한 청춘’을 간직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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