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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오랜만입니다

영화 제작자로 15년 만에 컴백한 미스코리아 손정은

“이제 아이들도 다 컸으니 제 일을 다시 시작해도 좋겠다 싶었어요”

■ 글·이영래 기자(laely@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2. 12. 18

78년 미스코리아 진 손정은이 영화계로 돌아왔다. <쇼쇼쇼> MC로, <화요일에 만난 사람들> 진행자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다 영화사 대표로 변신,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등을 제작하기도 했던 그는 87년 이후 전혀 소식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히 살아왔다. 15년 만에 다시 영화계로 컴백한 그가 밝히는 ‘나의 지난 15년’.

영화 제작자로 15년 만에 컴백한 미스코리아 손정은
78년 당시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 교육대학원에 재학중인 학생 신분으로 미스코리아에 출전, 진에 당선되면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손정은씨(48). 그가 지난 10월28일 하얏트 호텔에서 있었던 영화 <하늘 정원> 제작발표회에 제작자로서 모습을 나타냈을 때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그간의 세월을 헤아려보면 중후한 중년 여인이 돼 있어야 하는데 좀 과장된 말일지는 모르나 <하늘 정원>의 주연 이은주와 비교해도 언니, 동생 사이로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월이 그녀만 비켜간 것일까?
“저희 어머니도 연세보다 한 10년은 젊어보이세요. 유전이죠. 비결 같은 게 뭐가 있겠어요? 남들 쓰는 화장품 똑같이 썼고 그냥 똑같이 살았어요. 오히려 커피로 잠 이겨가면서 글쓰는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더 늙어보이는 게 정상일 거에요. 사실 요즘도 그런 생활은 변함없거든요. 새벽 2시 반에 자서 6시 반이면 일어나요.”
‘젊어보인다’는 칭찬에 그녀는 겸연쩍은 듯 웃었다.
“토요일 오후였던 걸로 기억나요. 머리 자르러 친구하고 미용실에 갔는데 미용실 원장님이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 보면 어떻겠냐고 권하더라고요. 친구가 같이 가 보자고 꼬시기도 했고, 호기심도 있어서 나갔어요. 당시만 해도 그렇게 큰일이 벌어지리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근데 미스 서울에 뽑히자 ‘이화여대 대학원생이 미스 코리아 대회에 나왔다’고 바로 신문에 실린 거예요.”
당시 이화여대는 재학생들의 연예계 활동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그 시절 정서로 보면 수영복 콘테스트가 있는 미스코리아 대회에 학부 학생도 아니고, 대학원 학생이 출전한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퇴학당할 처지에 놓인 그녀는 차라리 자퇴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78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선발됐다.
“집에서도 난리가 났죠. 당시 우리집은 준재벌 못지않은 재력가 집안이었어요. 아버지께서는 딸이 설마 그런 데 나갈 거라 생각을 못 하셨어요. 놀라신 것도 당연한 일이었어요. 그래도 아버지께선 항상 저를 인정하고 믿어주셨어요. 제가 한국 대표로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나가기 위해 출국할 때, 당시로선 만져본 적도 없는 큰돈을 쥐어주셨어요.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나가는 자리니 네가 돈을 낼 생각이 없거든 아예 방문을 나서지 마라’고 충고하시더군요.”
당시 그는 인기 최고의 쇼프로였던 TBC <쇼쇼쇼> MC를 맡기도 했고, <화요일에 만난 사람들>이란 토크 프로의 메인 MC를 맡기도 했다. <화요일에 만난 사람들>은 당시로선 보기 드문 교양 토크쇼로 사회, 문화 각 분야의 다양한 인물들과 대담을 진행하는 프로였다. 또 84년엔 당시 최고의 인기 코미디언이었던 고 이주일씨와 함께 <테레비안 나이트>라는 프로를 진행하기도 했다.

영화 제작자로 15년 만에 컴백한 미스코리아 손정은

스태프들과 제작 상황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손정은씨. 그는 요즘 영화 <하늘 정원>의 촬영이 시작돼 부쩍 바빠졌다. 미스코리아 당선 당시의 모습(아래).

방송뿐이 아니었다. ‘미모와 지성을 갖춘 여성’이라는 이미지와 커리어를 앞세워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79년엔 영화 <광염 소나타>에 출연하며 배우로 데뷔했고, 80년엔 최초의 영상소설 <불새>를 기획출판했다. 또 연극 <오늘 같은 날>에 출연하는가 하면, 미혼녀와 기혼녀의 각기 다른 결혼관을 조명한 장편소설 <진하게 블랙으로>로 작가 데뷔도 했다. 그런 그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81년 결혼하고, 82년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그녀는 <화요일에 만난 사람들>에서 만난 사업가 남편과 결혼해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고 이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살았다.
“학교를 자퇴해서였을까? 공부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았어요. 방송일에 싫증도 났었고. 그래서 미국으로 갔죠. 미국에서 무용심리학을 전공했어요. 그렇다고 죽 미국에서 공부만 했던 건 아니고 이후에도 계속 왔다갔다하며 살았어요. 아이들이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 뒷바라지도 해야 했고.”
사실 영화계 진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을 오가며 생활하던 85년경, 그는 영화제작사 ‘김필름’을 설립하고,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엘리베이터 올라타기>, <미리마리우리두리> 등 3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따라서 이번 영화제작 복귀는 15년 만의 일이다.  
87년 이후 몇년간 그는 잡지 칼럼니스트로 살았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세계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취재, 기행문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92년경부터는 주로 미국에 머물러왔다.
“자유롭게 살아온 것 같지만 실제 그렇지 못했어요. 아이들에 대한, 또 부모님에 대한 제 의무에 충실해야 했으니까. 제 나이가 그렇잖아요? 아이들도 어느 정도 성장했고, 문득 한가해지는 거예요. 그때 뒤를 돌아보니 내 자리는 비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다시 해보자고 생각했죠. 막상 새로 시작하려니 겁도 나지만 전 제 자신을 믿어요.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방법이 있는 거잖아요? 언젠가 제가 만든 영화를 들고 칸에 갈 거예요.”
그는 올해 영화제작사 ‘두손 드림 픽처스’를 설립하고 영화 제작에 다시 뛰어들었다. 현재 안재욱 이은주 주연의 영화 <하늘 정원>을 찍고 있고, 다른 한편을 기획중이라고 한다. <하늘 정원>은 죽을 때까지만 자신을 사랑해 달라는 광고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한 남자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영화로 내년 봄 개봉할 예정이다.
“80년대의 영화제작 사정과 지금은 천지 차이예요. 전에는 제작 자금을 다 들고 있어야 제작이 가능하니까 나름대로 한계가 많았는데, 요즘은 전체 제작비의 3분의 1만 있으면 제작에 들어갈 수 있거든요. 펀드를 받잖아요. 그뿐인가요? 제작진 수준이며 관객들 호응도 좋아져서 정말 할 맛 나더라고요.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도전할 테니까 계속 지켜봐주세요.”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에서 여성 제작자로 변신, 활발한 활동을 다짐하고 있는 그. 중년의 나이에 새롭게 도전하는 그의 건투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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