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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소아암, 엄마는 정신지체, 아빠는 저지능…연지네 안타까운 사연

“어린것은 어른도 참기 힘든 항암치료를 견디고 있는데 더 이상 치료비를 마련할 길이 없네요”

■ 기획·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글·안소희 ■ 사진·최문갑 기자

입력 2002.12.11 13:28:00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소아암 4기 판명을 받고 투병중인 두살배기 연지. 하지만 연지 엄마는 딸 병간호는커녕 제 몸도 가누기 힘든 정신지체장애인이고, 아빠 역시 장애 판정은 받지 못했지만 지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계급 장애인이다. 일흔의 할머니 손길에 모든 걸 의지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연지네 가족의 딱한 사연.
아이는 소아암, 엄마는 정신지체, 아빠는 저지능…연지네 안타까운 사연

생후 6개월 때 소아암에 걸린 연지와 생활능력이 안되는 연지부모.


연지네 집을 찾았을 때, 연지는 아빠 품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 두려운지 아빠 품을 떠나지 않으려는 연지는 불면 날아갈 것 같이 연약해 보였다. 그토록 작은 몸으로 어떻게 암과 싸우는지…. 지난 9월에 돌이 지났으니 이젠 걸음마도 떼고 한창 말을 배울 나이지만 연지는 혼자 힘으론 서지도 못하고 말도 한마디 할 줄 모른다. 몸무게도 겨우 8.4kg. 전에는 뭐든지 다른 아이들보다 빨랐다는데 수술과 항암 치료 때문에 연지의 성장은 6개월에서 멈춰있었다.
“지난 봄에 연지가 자꾸 토해서 동네 병원에 갔더니 장이 꼬여서 그렇대요. 그런데 아무리 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큰 병원으로 옮겨 검사를 했어요. 처음엔 뱃속에 뭔가 있다고만 하더니 이것저것 검사를 해보곤 신경모세포종(암의 일종)이라고 하더군요. 연지가 태어난 지 6개월이 갓 넘었을 때였어요.”
연지의 상태를 전하는 할머니 김준방씨(67)는 연신 손등으로 눈물을 찍어댔다. 신경모세포종이란 교감신경에 생기는 악성종양으로 주로 영·유아기에 나타나는 질환이다. 이 병은 종양이 뼈, 골수, 간 등 다른 기관으로 빠르게 전이되어 결국 생명까지 빼앗는 무서운 병이다. 암 판정을 받은 후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암세포가 이미 뼛속까지 번져 있는 제4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제4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완치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술이 끝나고 면회를 하는데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어요. 온몸에 주사바늘을 꽂고 축 늘어져 있는데, ‘저 조그만 생명이 살려고 저렇게 애쓰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져서….”
연지는 지난 5월에 수술을 받은 후 지금까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그동안 줄곧 곁에서 보살핀 사람은 할머니다. 엄마 기현미씨(25)가 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신이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정신지체장애인이기 때문이다. 기씨는 딸 연지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연지 아버지 이현규씨(38)가 기씨를 만난 것은 7년전 친지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이씨 역시 초등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지능이 떨어져 사회적응이 힘든 처지였다. 이씨는 상처받은 사람들끼리 의지하고 살아가자며 기씨와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작한 결혼생활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가족들은 서로를 보듬어주며 살았다. 비록 빚을 지긴 했어도 작은 전셋집을 장만하고 차곡차곡 저축도 해나갔다.
“아들 내외 결혼식을 못 올려준 게 항상 마음에 걸렸어요. 그래서 늦었지만 올해 안엔 꼭 올려주려고 했어요. 집안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요, 애들 엄만데.”
그러나 연지네 가족의 소박한 행복은 하루아침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연지에게 찾아온 병마 앞에서 모든 희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10년 넘게 푼푼이 모은 돈도, 조촐한 결혼식도, 아이들 잘 키우며 열심히 살아가자는 작은 소망도 모두 깨어져버린 것이다.
아픈 연지에게는 엄마의 보살핌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그러나 기씨는 엄마 노릇을 할 수 없다. 그 모든 일은 고스란히 연지 할머니의 몫으로 남았다. 연지를 간호하고, 연지 오빠인 재룡이(5)를 돌보고, 거기에 틈틈이 집안일까지…. 칠순을 바라보는 할머니에게 이 모든 일은 벅찰 수밖에 없다.

아이는 소아암, 엄마는 정신지체, 아빠는 저지능…연지네 안타까운 사연

엄마인 기씨도 정신지체 장애인이어서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아버지 이씨도 아이들을 돌보는 데 별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종이상자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안의 유일한 수입원인 80만원의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일을 해야만 한다. 그나마도 연지의 치료 때문에 자주 자리를 비워 직장 상사의 눈치가 곱지 않다고 한다.
결국 연지가 수술로 한달 넘게 입원해 있는 동안, 연지 오빠 재룡이는 친척집에 보내야 했다. 한창 부모의 관심 어린 손길이 필요한 나이인 다섯살에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바람에 재룡이는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나이에 비해 언어 발달이 늦어 아직도 기초적인 말밖에 못한다. 요즘 주위의 도움으로 놀이방에 가고 있지만 잘 적응을 하지 못해 할머니의 애를 태우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쪼들리는 살림. 생각다 못해 가족들은 얼마전부터 기씨를 이씨가 나가는 공장에 취직시켰다. 아이들을 돌볼 수 없으니 한푼이라도 보태보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씨가 버는 돈을 합쳐도 연지네 수입은 월 1백30만원이 안된다.
최근 연지는 5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한번 할 때마다 몸무게가 2∼3kg씩 빠지는, 어른들도 견디기 힘들다는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연지는 잘 참아냈다. 그러나 언제까지 치료를 계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으로 적어도 1년은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한번 할 때마다 항암치료비와 입원비를 합쳐 1백만원이 훨씬 넘는 돈을 감당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변 친지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다들 어려운 형편이라 더 이상 손을 벌릴 곳조차 없다.
게다가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겼다. 치료의 고통 때문에 연지의 골반뼈가 빠져버린 것이다. 바로 잡으려고 하체 전체에 석고붕대를 했지만 연지가 수십번을 까무라치며 고통스러워 해 이틀 만에 석고붕대를 풀어야 했다. 연지 같은 어린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특수기계가 있지만 비용이 너무 비싸 이들 형편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다. 그저 자연치유 되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완치가 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평생 다리를 절게 될 수도 있대요. 치료 방법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손을 놓고 있었다는 걸 연지가 나중에 알게 되면 얼마나 저를 원망할까요.”
띄엄띄엄 말하며 한숨을 쉬는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할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연지가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는 연지를 달래려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인지 연지의 울음소리는 커져만 갔다. 연말이라고 거리엔 축제의 불빛이 반짝이는데 연지네 가족에게 드리운 끝도 알 수 없는 이 어둠은 언제쯤 걷힐 수 있을까.

여성동아 2002년 12월 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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