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An Mi Eun
입력 2017.11.16 10:54:10
지금 런웨이에서 따끈따끈한 신상 가방은 ‘종이 백’이다. 버리기 아까워 모아둔 종이 백을 꺼내 들 때가 왔다.

‘쇼’적인 연출에 불과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종이 백이 다시 세상에 나온 건 2012년 질샌더와 2015년 꼼데가르송의 F/W 컬렉션에서다. 질샌더의 슈트를 차려입은 모델은 샌드위치 봉투 같은 종이 백을 무심하게 움켜쥐는 것으로 스타일을 마무리했다. 꼼데가르송은 종이 백에 PVC 커버를 입힌 아이디어 백으로 품절과 재입고 사태를 반복했다. 그렇게 심상찮은 기류를 풍기던 종이 백이 ‘빵’ 터진 건 이번 시즌부터다.
발렌시아가의 2017 F/W 남성 컬렉션을 시작으로 아크네스튜디오, 모스키노, 구찌, 베르사체, 헬무트랭 등 셀 수 없이 많은 컬렉션에서 종이 백 행렬이 이어진 것이다. 이미 ‘이케아를 닮은 백’으로 대히트를 친 경험이 있는 발렌시아가는 카프 레더를 단 종이 로고 백을 다음 타자로 내세웠다. 아크네스튜디오의 베이커 백(Baker bag)은 제과점에서 사용하는 소포지 봉투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것이 특징이다. 반으로 접어 들거나 옆구리에 끼는 등 보고 있으면 쿨한 애티튜드가 절로 떠오른다. 모스키노는 한술 더 떠 종이 백을 차용한 디자인의 드레스를 선보이는가 하면, 구찌와 베르사체는 알파벳 로고가 새겨진 패턴 쇼퍼 백으로 종이 백 대열에 합류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종이 백을 넘어서는 존재감을 지닌 비닐봉지 백을 컬렉션에 올린 디자이너들도 있다. 헬무트랭은 쓰레기봉투에서 영감을 얻은 비닐 백을 선보이며 ‘트래시 백(Trash bag)’이란 재미있는 이름까지 달았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디자인으로 50만원대의 고가임에도 ‘없어서 못 사는’ 귀하신 몸이 됐다. 엔할리우드 역시 옷이 뭉텅이로 들어갈 것 같은 비닐봉지 백을 런웨이에 올리며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드러냈다.
아직도 종이 백이 평범한 종이봉투로 보이는가? 지금 당장 옷장 문을 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버리기 아까워 모아둔 종이 백을 찾는 일이다. 그리고 기억하자. 종이 백을 들고 걸을 때만큼은 당당한 애티튜드가 필수라는 것을. 그것이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종이 백일지라도.
designer Choi Jeong Mi
사진 REX
여성동아 2017년 11월 64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