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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유괴·유괴미수 하루 평균 1.3건 발생

“금전 취득 목적보다 성범죄와 관련 깊어”

정세영 기자

2025. 11. 14

최근 미성년자 유괴·유괴미수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며
불안감에 떠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에 가정과 학교,
국가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인지,
범죄자들의 변화된 유인 수법은 어떤 것인지 알아봤다.

서울 강남구 서초동에서 초등학교 3학년 딸을 키우고 있는 김서희(가명) 씨는 학교에서 집까지 도보로 3분 거리이지만, 절대로 아이 혼자 다니지 못하게 한다. 집 앞 편의점이나 학원을 갈 때도 반드시 동행한다. 김 씨가 이처럼 아이를 보호하고 나선 덴 최근 보도된 미성년자 유괴·유괴미수 사건과 관련이 깊다. 그는 “학교에서 유괴예방 안전수칙 공문을 수시로 발송하고 있다”며 “교문을 지키고 있는 경찰관들을 볼 때마다 괜히 무섭고 불안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그는 “다른 부모들도 아이들한테 불필요한 바깥출입은 삼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 지역구 초등맘 카페에서는 맞벌이 부모들끼리 휴무를 공유하며 아이들을 번갈아 픽업하는 모임도 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8월 말, 서울 서대문구에서 20대 남성 2명이 초등학생 3명을 유인하려던 사건이 크게 이슈화된 후 비슷한 사건이 뉴스에 주기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고등학생이 성범죄를 목적으로 초등학교 저학년 여학생의 목을 조르고 납치를 시도한 광명 사건, 고령 여성이 검은색 봉고차를 세워둔 채 학생을 유괴하고 납치하려던 광주의 사례까지 아찔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매년 경신되는 유괴·유괴미수 사건

통계에 따르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유괴·유괴미수 사건이 하루 1.3건꼴로 발생하고 있다. 경찰청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발생한 유괴·유괴미수는 총 319건이다. 특기할 만한 점은 그 수치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다. 미성년자 대상 약취·유인 혐의로 검찰에 접수된 피의자는 지난 2022년 272명에서 2023년 299명, 2024년에는 301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집계된 피의자만도 214명에 달한다. 연말이 되면 지난해 수치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검찰청은 전국 검찰청에 “사건 발생 초기부터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피해자를 보호하라”고 지시하며 사건 해결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최근 미성년자 유괴·유괴미수 사건이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백종우 경희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는 아이들의 특성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백종우 교수는 “가해자들은 성인에 비해 저항 능력, 사회적 판단력이 낮은 아이들을 범죄의 위험 부담이 적은 대상으로 인식한다”며 “특히 유괴·유괴미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초등학생의 경우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약해 쉽게 타깃이 되곤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약취·유인으로 인한 피해자 가운데 43%(130명)가 초등학생에 해당하는 7∼12세였으며 6세 이하 21.8%(66명), 13∼15세 12.9%(39명)가 뒤를 이었다.

아이들을 어떤 목적에서 범행 대상으로 삼는지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금전적 이득, 정서적 결핍, 통제 욕구, 인지 왜곡 등 사안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금전 목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성범죄와 관련이 깊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에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2010년대 대법원 판례를 자체 분석한 결과 절반 이상이 성범죄와 관련이 있었다”며 “왜곡된 성적 욕구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그만큼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2009∼2013년 대검찰청 범죄 통계에 집계된 13세 미만 아동 유괴 사건의 범행 동기를 살펴보면 우발적 범행이 1위를, 가정불화가 2위를 차지했다. 이와 관련해서 이웅혁 교수는 “우발적 동기 역시 면밀히 따져보면 성범죄 목적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2023년 아동 유괴 피해자 가운데 62%가 여성, 가해자 73%가 남성이었다는 대검찰청의 범죄 통계 역시 범행의 주요한 목적이 성범죄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범죄자가 아이를 유인하는 수법도 변화했다. 과거에는 “나 좀 도와줄래?” “친구가 없는 것 같네. 내가 같이 놀아줄까?” 등의 멘트로 자존감이 낮고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를 공략했다. 지금은 기획사 캐스팅 매니저를 사칭하거나 가수들의 굿즈, 콘서트 티켓, 게임기, 게임 아이템 등으로 아이들을 유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취·유인으로 인한 피해자 가운데 초등학생이 전체의 43%를 차지했다.

약취·유인으로 인한 피해자 가운데 초등학생이 전체의 43%를 차지했다.

구속 초기 단계부터 강력 처벌 규정해야 

대한민국 형법 제287조는 미성년자를 약취·유인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성적 목적의 약취·유인일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여 가중처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성년자 약취·유인 범죄가 늘어나는가 하면 피의자의 구속은 되레 줄고 있는 상황이다. 2020년 5.6%에 불과했던 유괴·유괴미수 혐의 피의자 구속영장 기각률이 지난해에는 30%로 훌쩍 늘었다. 이는 최근 법원의 판단 기준이 엄격해졌거나 피의자 방어권 강화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해외 선진국들은 미성년자 약취·유인 범죄를 최악질로 취급한다. 우리나라 역시 아동 범죄에 무기징역이나 사형이 가능하지만 미수에 대해선 관대한 경향이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1심에서 실형을 선고한 경우는 단 20%에 그쳤다. 8월 발생한 서대문구 유괴미수 용의자들도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논란이 불거졌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많은 이가 초기 단계부터 강력한 처벌 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일례로 몇몇 국회의원이 법정형 대폭 상향, 전자발찌 부착 의무화, 성범죄 알림 등록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유괴방지 3법’을 발의했다. 이를 비롯해 처벌 수위 상향, 전자팔찌 부착 기간 및 준수 의무 확대, 아동보호구역 CCTV 실시간 모니터링 전환, 학교 정규 교육과정 내 유괴 예방·위기 대응 교육 의무화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미성년자 약취·유괴 방지 4법’ 등을 발의하는 등 관련 법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등하굣길과 심야 시간대 학원가 주변 등의 예방 순찰을 강화하고 있으며, 미성년자 약취·유인 사건이 발생할 경우 이를 ‘코드 1(긴급 출동)’ 이상으로 접수해 최우선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은 전체 초등학교를 아동보호구역으로 지정해 24시간 순찰과 폐쇄회로티브이(CCTV) 설치 등을 강화하고 안전망을 더욱 촘촘히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서울시는 초등학교 1, 2학년에게 배포했던 ‘초등안심벨’을 내년부터는 전 학년에 지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초등안심벨은 위급 상황에서 버튼을 누르면 100dB 이상의 경고음이 울리는 작은 안전 장비다. 책가방 등에 부착해 간편히 소지할 수 있다. 

여러 기관의 시스템이나 장치도 중요하지만 가정에서 역시 각별한 주의와 교육이 필수다. 아이들에게 길을 묻거나, 간식을 사준다거나, 물건을 들어달라는 등 낯선 이의 접근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주지시켜야 한다. 또 위급 상황 시 큰 소리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교육해야 한다. 주민들 역시 주의 깊게 주변을 살피며 의심스러운 정황을 목격할 경우 적극 신고하려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요즘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SNS 등 온라인을 통해 친분을 쌓은 뒤 직접 만남을 갖고 납치하는 사건이 늘고 있다. 김진희 아동청소년보호법변호사는 “부모는 자녀에게 SNS에 자신의 프로필과 행적을 게시하지 않도록 지도해야 하며, 주기적으로 아이의 SNS 게시물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납치 #유괴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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