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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세계의 교육 현장을 가다

공립학교에서 다시 들리는 ‘하느님께 감사, 아멘’

글&사진·김숭운 미국 통신원 | 사진제공·REX

2013. 04. 02

최근 미국의 몇 개 주가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종교 교육 논쟁이 불붙었다. 여기에는 그동안 종교가 미국 사회의 중요한 바탕임에도 교육 현장에서는 역차별을 받았다는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공립학교에서 다시 들리는 ‘하느님께 감사, 아멘’


지난해 미국 애리조나 주 상원에서는 공립학교에서 성경을 선택 과목으로 가르치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이 찬성 21 대 반대 9로 통과됐다. 자유주의자들의 거부권 행사 청원에도 불구하고 잰 브루워 애리조나 주지사는 이 법안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애리조나는 조지아, 오클라호마, 테네시, 텍사스,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이어 성경 과목 개설을 허용한 미국 내 6번째 주가 됐다. 앞으로 애리조나 주의 공립학교와 주정부의 지원을 받는 차터 스쿨에서는 ‘성경이 서양 문명에 미친 영향’ 같은 과목을 가르칠 수 있게 됐다.
이번 애리조나 주의 결정에 대해 미국 내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엇갈리고 있다. 법안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종교 교리를 가르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찬성 측에서는 “하버드나 예일 대학의 많은 교수들도 성경에 대한 지식이 성공적인 교육의 열쇠라고 말한다”는 점을 들어 반박하고 있다.
사실 교육의 탈종교화는 자유주의 경향과 함께 20세기 후반 미국 교육계를 주도해온 주요 화두였다. 그 결과 학교에서 매일 수업 시작 전 실시하던 기도 시간이 없어졌고 생물학 수업에서 창조론이 제외됐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생물학 교과서에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도 소개해야 한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성경의 내용을 좀 더 깊이 있게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의 교육이 지나치게 과학에 치우쳐 있으며, 진화론도 사실은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하나의 가설’일 뿐이라는 것이 이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논리다.

종교 교육 둘러싸고 학교와 학생 간 갈등 깊어져

공립학교에서 다시 들리는 ‘하느님께 감사, 아멘’

1 종교 교육을 메인 주제로 다룬 ‘타임’ 표지. 2 최근 공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허용하는 주가 늘면서 종교 교육 논쟁이 일고 있다.



교육계에서 종교 문제로 인한 갈등은 수업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학교의 관계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종종 법정 소송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지난해 졸업식 연설문을 둘러싸고 텍사스의 한 고등학교와 학생이 벌인 소송이 대표적이다. 이 학교 수석 졸업생인 안젤라 힐텐브랜드는 학교 전통에 따라 졸업식에서 답사를 하도록 돼 있었으나 학교 측은 그의 연설문에 ‘하느님께 감사’ ‘아멘’ 등 종교적 단어가 포함된 것을 문제 삼아 수정을 요구했다. 이 사건은 곧 전국적인 이슈가 됐고,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연방 법원은 안젤라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사건도 있었다. 2012년 10월 텍사스 주 한 소도시의 시장과 법원이 공립 고등학교 치어리더들에게 운동 경기에 나가면서 성경 구절을 말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학생과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이 사건 역시 소송으로 번졌다. 결국 법원은 ‘시장 명령 임시 중지’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이 사건을 둘러싼 논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으로 ‘눈부신 듯 보이지만 한계가 있는 과학 발전’과 최근의 사회·경제적인 고통을 꼽았다. 평범한 사람들도 순식간에 빈곤층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인간의 의지를 뛰어넘는 신의 섭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교육계에서 기독교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사실 미국의 공립학교 수업에서 코란이나 불경을 읽는 것은 다문화에 대한 이해 차원에서 허용되는 반면 기독교 수업은 금지돼왔다.
미국은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이민자의 나라기도 하지만, 기독교의 뿌리가 강한 나라다. 국민의 90%가 신의 존재를 믿으며, 그들 대부분이 개신교와 가톨릭에 적을 두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민은 이런 종교 교육에 대해 심정적으로 큰 부담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민자유연맹과 교육에서 탈종교화를 추구하는 단체들은 본격적으로 이를 반대할 계획이다.
앞으로 미국 공립학교 교육에서 이 문제가 어디로 튈지는 모른다. 그러나 당분간은 미국 중부 지방의 바이블벨트에서는 종교 교육을 용인하는 쪽으로, 반면에 이민자가 많은 동부와 서부의 대도시에서는 거부하는 쪽으로 흘러갈 것 같다. 이런 학습 현장에서의 종교 문제로 인한 갈등은 다민족 사회지만 기독교가 대세인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독특한 현상이다.



김숭운 씨는…
뉴욕 시 공립 고등학교 교사이자 Pace University 겸임교수. 원래 우주공학 연구원이었으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좋아 전직했다. ‘미국에서도 고3은 힘들다’와 ‘미국교사를 보면 미국교육이 보인다’ 두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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