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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대선 후보 빅3를 만나다

차가움과 신중함 사이, 새누리당 박근혜

“베일 속 공주 아닌 굴곡 많았던 한 인간, 결혼 안 해 세상 모를 거라는 건 편견…”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박해윤 기자

2012. 10. 25

박근혜 후보의 이미지에는 차가움과 신중함이 공존한다. ‘얼음 공주’라는 별명이 있는가 하면, 한 정치평론가는 그가 아파트 광고를 하면 대박이 날 것이라고도 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란다. 전직 대통령의 딸이라는 정치적 배경은 그의 유산인 동시에 한계로 지적되지만, 이는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운명으로 짐 지워진 것이다. 가을볕 아래서 마주 앉은 그는 다시 태어나면 평범한 여성으로 살아보고 싶노라고 했다.

차가움과 신중함 사이, 새누리당 박근혜


한 방송 진행자는 박근혜(60)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두고 ‘형광등 1백 개를 켜놓은 것 같은 아우라’라고 표현했다. 1백 개는 과장일지 모르지겠만 그는 확실히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실제로 만나면 키도 작고 몸집도 왜소한데 조용조용한 말투에서는 힘이 느껴졌다. 나이에 비해 피부도 고운 편이지만 오른쪽 뺨 아래는 2006년 피습 당시 생긴 흉터가 여전히 짙게 남아 있었다.
흉터는 그의 굴곡 많은 삶을 상징한다. 박 후보는 늘 정치의 한가운데서 살았다. 중학교 때 청와대에 들어가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퍼스트레이디 노릇을 해야 했고, 뒤이은 아버지의 죽음에는 슬퍼하기에 앞서 나라를 걱정해야 했다. 1998년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 달성 지역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이후 내리 다섯 번 국회의원이 됐고, 본격적인 대권 도전도 이번이 두 번째다.

“찢어진 청바지 입으면 스캔들 날 것”

차가움과 신중함 사이, 새누리당 박근혜


인터뷰를 하던 10월 13일도 그는 아침부터 강행군을 했다. 과학기술 나눔 마라톤 축제와 사진기자협회 체육대회에 들렀다. 특히 마라톤 축제에서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안철수 후보와 처음으로 ‘3자 대면’을 했다. 이날 박 후보는 트레이닝복을 갖춰 입고 코스 일부를 참가자들과 함께 걸었다. 대선 레이스에서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박 후보는 현재까지 적어도 체력적인 면에서는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철인 같은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세 손가락으로 팔굽혀펴기 20번을 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 체력이 굉장히 좋은데 비결이 있나요.
“정치는 애국심으로 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체력이란 게 하루아침에 생기는 건 아니고 오랫동안 해 온 게 쌓인 겁니다. 지금은 자주 못하지만 학창 시절엔 테니스를 굉장히 좋아했고 탁구, 배드민턴, 수영도 열심히 했죠. 20년 동안 단전호흡을 해서 혼자 물구나무도 설 수 있어요(웃음).”
▼ 먹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힐 것 같은데, 직접 요리도 하나요. 보양식이 있다면.
“음식은 골고루 먹고, 현미밥과 샐러드, 두릅나물을 좋아해서 자주 만들어 먹습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도 자주 끓여 먹는데 드셔본 분들은 다 맛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따로 챙겨 먹는 보양식은 없고, 선거 때 주로 차 안에서 김밥이나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다 보면, 흔들리지 않는 곳에서 편하게만 먹어도 그게 보양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개인적인 시간이 거의 없었을 텐데, 주말이나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독서나 단전호흡같이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시간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거나 트위터에 올라온 글을 읽고 제 생각을 올리는 일에도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요. 저도 나름 이공계 출신이라(웃음). 트친, 페친(트위터·페이스북 상으로 만나는 사람)도 많아서 올라온 멘션들 읽고 몇 줄 올리다 보면 시간이 휙 지나가더라고요.”



여성 정치인은 패션, 헤어스타일 같은 정치 외적인 면으로도 평가를 받는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의 경우 이를 역으로 활용해 외교석상에서 브로치로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고, 미셸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인은 명품과 중저가 브랜드를 넘나들며 패션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박근혜 후보의 경우 자신만의 스타일이 확고하다. 의상은 주로 깃이 있는 셔츠나 블라우스에 바지 차림. 헤어스타일은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를 떠올리게 하는 올림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 일관된 패션 스타일을 하고 있는데 특별히 추구하는 콘셉트가 있다면. 또 의상 구입은 어떻게 하나요.
“편안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어보라는 얘기도 있는데, 막상 입으면 스캔들이 될 것 같아요(웃음). 10년 이상 오래된 옷들이 많은데, 의상은 늘 만드는 곳에서 구입하고, 요즘 트렌드에 맞게 조금씩 수선해서 입기도 해서 딱히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습니다. 주변에서는 코디네이터를 두라고 하지만 저는 아직 제 패션 감각을 믿고 있어요(웃음).”
▼ 특히 헤어스타일이 어머니를 연상시킨다고 하는데요.
“사람마다 더 어울리는 스타일이 있는데 저한테는 이 스타일이 가장 맞는 것 같아요. 한 번 헤어스타일을 바꿨더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더라고요. ‘왜 깃이 있는 옷만 입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 그래서 언젠가는 둥그런 깃이나 칼라 없는 옷도 한 번 입어 보려고요(웃음).”

“부모님 죽음이 가장 큰 시련, 슬픔도 쌓이면 힘이 돼”

차가움과 신중함 사이, 새누리당 박근혜


박근혜 후보는 1952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맏딸로 태어났다. 어릴 적 그는 역사소설을 즐겨 읽었고, 리더십도 있었다.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모래주머니 놀이, 고무줄 놀이, 공기 놀이 세 종목을 두루 잘하면 동네 골목대장으로 등극할 수 있었는데, 나는 골목대장이 되기에 충분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1963년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면서 영애가 됐다. 이에 대해 그는 “혜택을 누린 점도 있겠지만 청와대 생활은 금기사항이 빼곡한 나날”이었노라고 돌아봤다. 중학 시절 그는 청와대에서 원효로에 있는 성심여중까지 전차로 통학했다. 세간에는 대통령 딸이 전차를 타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하루는 전차 운전사가 성심여중 배지를 단 박 후보에게 “너희 학교에 대통령 딸이 다닌다면서? 예쁘게 생겼니? 공부는 잘하니? 키는 얼마나 되니?”라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는 난처함을 무릅쓰고 “네 다녀요, 얼굴은 글쎄요, 키는 저만 하고 공부는 잘 하나봐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성심여고,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거쳐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1974년 8·15 경축행사에서 어머니가 저격당했다는 비보를 듣고 유학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심장이 잘려나가는 것 같은 고통”이었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이 주어졌다.
1979년 10월 26일, 박 후보는 또 한 번 비극을 맞는다. 그는 자서전에서 “한분도 아니고 부모님 모두 총탄에 피를 흘리고 돌아가신 가혹한 이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핏물이 가시지 않은 아버지의 옷을 빨며 남들이 평생 흘릴 만큼의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그 와중에 그는 비서실장에게 “전방에는 이상이 없습니까”라고 먼저 물었다고 한다. 그의 내면에 국가관이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버지를 잃은 후에는 가장으로서 동생들을 챙겨야 했다. 이런 격랑 속에서 결혼 같은 개인의 행복을 누릴 여유가 없었다. 그럼 사랑은 어땠을까. 그는 올 초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대학교 때 본받고 싶은, 선망의 대상인 선배가 있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사랑이 아니었나 싶다”고 했다. 박 후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성형은 우선 신뢰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과 아팠던 순간을 꼽는다면.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부모님 생전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갔을 때예요. 경남 거제의 저도라는 섬으로 여행을 갔는데, 가족과 같이 백사장을 거닐고, 수영하고, 오순도순 얘기도 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가장 아팠던 순간은 아무래도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죠.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이에요.”
▼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아픔인데, 어떻게 극복했나요.
“지금 돌아보면 미치지 않고 산 게 신기할 정도예요. 슬픔에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자포자기하고 방탕하게 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쓰러지지 않고 일어나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는 거죠. 어릴 때 고전을 많이 읽고 감동적인 글귀는 메모를 해두곤 했는데, 결국은 그런 것들이 아픔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운명에 꺾이지 않고 올바르고 굳건하게 살아야 한다, 그런 이야기들. 저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는 그림 한 장을 봐도 ‘와 멋있다’가 아니라 ‘나도 바위처럼 저렇게 굳건하게 살 거야’라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어려운 일도 자꾸 겪으면 마음에 근육이 생겨서 힘이 되더군요.”
▼ 박 후보의 차가운 이미지가 부모님을 일찍 여읜 것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요.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런저런 경험이 없으면 순진해서 세상 사람들 전부가 자기 마음 같은 줄 알고 속아넘어가는데, 생각지 못한 아픔과 배신 같은 것을 겪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신중해진 것 같아요. 무턱대고 의심하지는 않지만 어떤 말이든 덜컥 믿지도 않죠. 덤벙대다 보면 일을 그르치기도 하는데, 저는 그런 실수는 안 하는 것 같아요.”
▼ 어릴 때부터 주목받는 삶을 살았고 실제로도 모범생 스타일인데, 가장 큰 일탈을 꼽자면.
“언젠가 많은 분들이 모인 곳에서 인사를 드릴 기회가 있었는데,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까 제가 책상 위에 올라가서 인사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때 제 스타킹에 구멍이 나 있어서…(웃음). 항상 그렇게 완벽한 모범생은 아니고 실수도 하고 농담도 즐겨 주고받습니다. 노래방도 많이 갔지요. 그게 일탈인지는 몰라도(웃음). 지금은 바빠서 잘 못 가는데 예전에 갔을 땐 ‘존재의 이유’, 그리고 뭐더라…(웃음), 당시 유행하는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 박 후보께도 열등감이 있나요.
“누구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죠. 저는 평범하고 단란하게 가정을 꾸리고 사시는 분들을 보면 부러워요. 하지만 인생이란 게 원래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잖아요. 제 삶이 평범하지는 않았지만 나라를 위해 모든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 다시 태어나면 어떻게 살고 싶나요.
“정치인 말고, 평범한 여성으로 살고 싶어요.”

▼ 결혼을 안 한 이유는.
“삶이 그렇게 흘러가 버렸어요.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당연히 결혼은 하는 걸로 생각했고, ‘이런 집에서 이렇게 살면 좋겠다’는 꿈도 있었죠. 그런데 부모님이 잇달아 돌아가신 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정치권에 들어와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그런(결혼을 안 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굳어지게 됐죠.”
▼ 선거를 치르다 보면 각종 음해성 소문이 돌기도 하는데, 가장 황당했던 소문을 꼽자면.
“제가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가 서른 살이다, 그런 이야기도 있던데,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웃음).”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대통합
박근혜 후보가 정치에 입문한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다. 당시 너무 충격을 받아서 나라를 다시 반석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자서전에서 그는 “나라가 이렇게 흔들리는데 나 혼자 편하게 산다면 훗날 죽어서 부모님을 떳떳이 뵐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후로 그는 “내 행복, 나라의 행복이 따로가 아니라 같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박근혜 후보는 누구나 우러러 보는 삶을 살았지만 동시에 참 많은 굴곡을 지나왔다. 그가 남다른 시련을 겪으며 차돌같이 단단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단단한 내면에는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이라는 따뜻한 가치가 녹아 있다.

▼ 별명이 ‘수첩 공주’이기도 한데 도대체 수첩에 무엇을 적습니까.
“민생 현장에서 국민에게 들었던 고충과 제 생각들이 많이 적혀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려면 (수첩이) 꼭 필요해요. 한번 적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녁에 다시 정리해서 담당자들에게 개선할 수 있는지 챙기도록 부탁하죠.”
▼ 현장에서 피부로 접한 민심은 어떤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과 사연은.
“1년 고생해서 농사를 지었는데 태풍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며 남은 빚은 어떡하냐고 눈물짓던 할머니, 구미 공장 불산 사고로 가족을 잃고 통곡하시던 분들…. 지금 국민들은 정말 하루하루 힘겹게 살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런데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현장에 가면, 뭐 하나라도 들고오셔서 먹으라고 기어코 손에 쥐어주시고 힘내라고 응원해주시고, 오히려 제가 더 힘을 얻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죠. 이런 한 분 한 분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잘 헤아려서 어려움을 해결해드리는 것이 제 삶의 이유이고 정치를 하는 목적입니다.”
▼ 박 후보가 결혼과 출산 경험이 없어 ‘여성이면서도 여성과의 공감이 부족하지 않겠나’ 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경험의 유무가 아니라, 그 사안에 대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있느냐죠. 저는 가족이 없고 부모님 임종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속에 가족의 행복이라는 게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제가 못하니까 식당에서 웃으면서 밥 먹고,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뛰어 놀고 그런 분들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들어요.”
▼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100% 대한민국’입니다. 분열하고 흔들리는 와중에는 도약을 할 수가 없어요. 계층 간, 지역 간, 세대 간 대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어느 지역에 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가난이 대물림되고, 주어진 환경 때문에 미래를 꿈꿀 수 없어서는 안 되겠죠. 모든 국민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힘을 모아 나가는 것, 그것이 지금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가치라고 봅니다.”

박근혜 후보의 보육 & 교육 정책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임신·출산·보육 정책을 과감하게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임신부터 양육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와 환경을 만들 계획이다. 임신과 육아 부담을 덜기 위해 임신기부터 출산 이후까지 종합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고,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실시해서 마음 편하게 출산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아빠의 달’을 도입해서 아빠도 출산과 양육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 또한 전업주부나 워킹맘이 상황에 맞게 이용할 수 있는 맞춤형 보육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 중‘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와 ‘아빠의 달’ 도입은 법안으로 마련해 이미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사교육비 문제는 대학입시를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며 근본적인 해법은 ‘공교육 내실화’ 라는 견해다. 학생들이 각자의 소질과 꿈을 키우고, 그 꿈을 쫓아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진로를 결정하고, 그런 과정을 평가받을 수 있도록 초중등 교육 체제의 근간을 바꿀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수능과 논술을 교과서 중심으로 출제하고, 내신, 논술, 수능을 모두 잘해야 대학가는 체제에서 하나만 잘해도 대학가는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대학도 각 분야에 소질과 적성을 가진 학생을 선발해 창의적인 인재로 길러내는 ‘교육경쟁’을 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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