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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edu talk

부모 능력의 각축장 중국의 명문 초등학교

글·사진 | 이수진(중국 통신원)

2012. 01. 31

부모 능력의 각축장 중국의 명문 초등학교


최근 한 초등학교 4학년의 학급 송년회가 5성급 호텔에서 열렸다는 소식에 중국 네티즌들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학교 측은 학부모들이 주최한 것으로 장소 대여료 8천1백 위안(한화 약 1백50만원)은 30여 명의 참가 학생들이 분담했다고 해명에 나섰지만 비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대다수의 여론은 지나친 사치라는 지적과 함께 아이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한쪽에서는 “과연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수준의 학교”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 학교가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명문 초등학교 가운데 하나인 베이징대부속초등학교(北大附小)였던 까닭이다.
“초등학교마저도 속물적인 물질 만능주의의 잘못된 사회 풍조에 물들었다”는 개탄이 쏟아져 나왔지만 사실 학교야말로 한 사회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한 주간지에서 ‘베이징에서 가장 가기 힘든 초등학교 순위’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기사의 부제는 ‘세도가 학생 계층’이었다. 웬만해선 입학하기 힘들다는 명문 초등학교 입학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호텔 송년회 사건’은 일회성 해프닝이라기보다 부모의 권력과 재력, 지력을 다투는 각축장이 된 중국 교육의 일단면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이징 학부모들의 명문 학교에 대한 선호는 대단하다. “아이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를 보면 그 부모의 사회적 지위 및 경제 수준을 알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일단 명문 초등학교에 가야 명문 중·고·대학까지 탄탄대로를 밟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인맥이나 연줄 등 ‘관시(關系)’를 중시하는 중국 사회에서 ‘명품 인생’이 보장된 계층끼리 어울리고 싶어 하는 욕망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명문 초교로 배정받을 수 있는 인근의 ‘학구방(學區房)’은 매우 비싼 데다 기본적으로 지역 배정 정원이 많지 않다. 그래서 사방에 줄을 대고 거액의 찬조금을 내도 입학은 장담하기 힘들다. 이번에 구설에 오른 베이징대부초의 경우 공식 찬조금만 18만 위안(약 3천3백만 원)이다. 이는 청탁 과정에서 비공식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은 제외한 금액이다.

명문 초교 찬조금만 수천만원, 인근 부동산도 금값

부모 능력의 각축장 중국의 명문 초등학교

1 아이와 함께 초등학교 입학 신청서를 작성하는 부모들. 2 경극 공연을 마친 베이징대부속초등학교 학생들.



베이징에 있는 1천여 곳의 초등학교 가운데 명문으로 손꼽히는 학교는 30여 곳에 불과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베이징 시 16개 구 가운데 동성구, 서성구, 해정구에 이들 명문 학교가 몰려 있다는 점이다. 이들 ‘3대 교육 강구(强區)’의 분포를 지형도에 비유해 중앙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몰려 사는 서성구는 ‘고원’, 청나라 말기부터 관원들과 부유한 상인들이 거주한 동성구는 ‘평원’,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 명문 대학이 몰려 있는 해정구는 고도 차(高低)가 심한 ‘구릉지’로 묘사하기도 한다. 교육계에서 자조적으로 유행한 이 표현법에 따르면 나머지 13개 구는 ‘황무지’라 할 수 있다. 서성구와 동성구가 정·관계 인사들의 거주지로서 명문 학교의 요람이 됐다면 해정구는 명문 대학 및 과학 엘리트의 집결지라 할 수 있는 중관촌(中關村) 이 명문 탄생의 배경이 됐다. 베이징대부초를 비롯한 칭화대부초, 런민대부초, 그리고 중국과학기술원 직원 자녀들의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된 중관촌1, 2, 3초교는 학생들의 높은 지적 수준과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 이 덕분에 이들 학교에 입학이 가능한 주변 ‘학구방’은 부동산 경기 하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무풍지대’로 자리매김했다.
중국 친구들과 명문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치 ‘팥 없는 찐빵’을 먹는 듯하다. 학교의 교육 철학과 커리큘럼, 교사들의 자질과 덕성 등의 요소는 쏙 빠진 채 이렇게 ‘얼마나 힘세고 돈 많고 든든한 인맥이 있어야 입학 가능한가’에 대한 이야기만 무성하니 말이다. 입바른 소리를 하려다가 문득 교육 불평등으로 치면 한국도 대동소이하다는 데 생각이 미쳐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이수진씨는…
문화일보에서 14년 동안 기자로 일하다 2010년부터 중국 국무원 산하 외문국의 외국전문가로서 인민화보 한글판 월간지 ‘중국’의 한글 책임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중1, 초등6학년 아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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