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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의 해피 엔딩으로 끝난 롯데 가족 시네마, 막전막후

글 · 김명희 기자 | 사진 · 박해윤 기자, 뉴시스 뉴스1

2015. 09. 15

롯데가의 경영권 분쟁이 올여름 재계를 강타했다. 90세를 훌쩍 넘긴 창업주와 두 아들이 얽힌 경영권 다툼은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던 풍경을 현실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했다. 돈 앞에선 혈연도 무색한 재벌의 반열에 롯데도 이름을 올린 셈이다.

신동빈의 해피 엔딩으로 끝난 롯데 가족 시네마, 막전막후
7월 27일 신격호(93)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동주(61)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부자가 일본롯데홀딩스 긴급 이사회를 개최해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을 포함한 6명의 이사를 해임하며 시작된 롯데가의 경영권 분쟁은 신동빈 회장이 8월 17일 열린 일본롯데홀딩스 임시 주주총회에서 완승하며 막을 내렸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이 낯 뜨겁게 싸우는 모습,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연 매출 83조원에 이르는 대기업의 폐쇄적인 경영 방식은 실망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신동빈 회장은 아버지, 형과 타협할 의사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버지를 존경한다”면서 “개인적인 부분에서는 언제든지 대화할 생각이 있지만 그룹 내 13만 명이 근무하고 있다는 점과 사업에 대한 안정성을 고려할 때 가족과 경영의 문제는 별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근대적이고 폐쇄적인 경영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풀이됐다. 이후 분쟁에서 승리한 신 회장은 복잡하게 얽힌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 문화를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편을 갈라 싸우는 동안 깊어진 가족 간 갈등의 골과 국적 논란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격도 예상된다. 분쟁 과정에서 크게 부각되진 않았지만, 놓쳐서는 안 될 뒷얘기들을 취재했다.

1막_쓸쓸히 퇴장한 거인 신격호 회장

신동빈 회장은 7월 31일 롯데호텔의 최대주주인 L투자회사 9곳에서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을 해임했다. 이로써 1948년 일본 도쿄에서 자본금 1백만 엔으로 (주)롯데를 설립하고,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세운 이래 반세기 넘게 이어오던 신격호 시대도 막을 내렸다. 경남 울주 중농의 10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1942년 맨몸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신문, 우유 배달, 막노동 등을 하며 사업 기반을 마련했고 제과 사업으로 성공한 후에는 유통으로 눈을 돌려 롯데를 재계 5위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웬만해선 언론이나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은둔의 경영자’로 유명하다. 하지만 고령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경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온 신격호 회장은 두 아들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내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줬다. 롯데가 중국 사업 부진으로 최근 몇 년간 1조원에 가까운 손실을 입었다거나, 아들이 자신을 대표이사에서 해임할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점 등은 숫자에 밝고 그룹 장악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그의 평소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일각에선 그가 7월 27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해임한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롯데홀딩스 사장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하거나, 사람을 잘못 알아보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등의 소문과 함께 몇 년 전부터 치매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이런 소문에 대해 롯데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우리도 사실 여부를 알지 못한다”면서도, “롯데그룹(신동빈 회장) 쪽에서 흘러나간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신격호 회장이 치매를 앓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맏아들 신동주 전 부회장에 대한 지지 역시 힘을 잃게 된다. 하지만 신동빈 회장으로서도 아버지의 병력을 이용해 경영권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 한다는 시선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가운데 한 언론은 주치의와의 인터뷰를 통해 신 총괄회장이 판단력 등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보도했다.



2막_신동빈 회장 세 자녀 국적은 일본

형제 분쟁 과정에서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사 격인 롯데호텔의 지분 대부분(94%)을 일본롯데홀딩스와 L투자회사 등 일본 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롯데를 한국 기업으로 믿고 있던 국민은 배신감을 느꼈고 이는 국부 유출 논란으로 확산됐다. 신동빈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롯데 매출의 95%가 한국에서 발생하는 점 등을 들어 “롯데는 한국 기업”이라고 밝혔지만, 향후 롯데 후계 구도의 핵심이 될 신동빈 회장의 자녀들은 모두 일본 국적이다. 신 회장은 일본인 아내 시게미쓰 마나미 씨와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두고 있다. 마나미 씨는 일본 굴지의 대기업 다이세이건설의 오고 요시마사 부회장의 둘째 딸로, 일본 왕실의 며느릿감으로 거론됐었다는 소문도 있다. 두 사람은 1985년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의 소개로 결혼했다.

신동빈 회장은 일본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마친 뒤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노무라 증권에서 근무하다 1988년 롯데그룹에 입사했다.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형 신 전 부회장과 달리 신동빈 회장은 우리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한국에서 생활한 사람이라고 보기엔 일본식 억양이 너무 강하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시기는 1996년이며 그 전까지는 일본 국적이었기 때문에 병역의 의무를 피해갈 수 있었다. 아버지가 밟은 코스를 똑같이 따라 현재 노무라 증권에서 근무 중인 장남 신유열(29) 씨는 지난 3월 일본인 여성과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딸 역시 일본에서 각각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지난 8월 11일 신동빈 회장의 대국민 사과문 발표에 이은 기자회견에서 “지배구조와 3대(신격호-신동주 · 신동빈-신유열)에 걸쳐 병역을 다하지 않은 점 등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서 반롯데 정서가 강한데 이를 완화시킬 복안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지만 신 회장은 “앞으로 좀 더 투명한 경영을 하고 지배구조 간소화, 순환투자 해소 등 그런 부분에 많은 노력을 해나가겠다”고만 밝혔을 뿐, 자녀들의 국적이나 병역에 관한 언급은 피했다. 기자회견 후 롯데그룹 관계자 역시 “그 부분은 노코멘트”라며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신동빈의 해피 엔딩으로 끝난 롯데 가족 시네마, 막전막후

1 일본 도쿄 시부야에 위치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자택. 2 롯데 일가의 단란했던 시절. 왼쪽부터 신 총괄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씨, 신동주 전 부회장의 아들 정훈 씨, 신영자 이사장,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 큰며느리 조은주 씨, 신동빈 회장의 장녀 규미 씨, 신동빈 회장, 둘째 며느리 시게미쓰 마나미 씨, 신동빈 회장의 아들 유열 씨와 차녀 승은 씨. 1998년 촬영한 사진이다.



신동빈의 해피 엔딩으로 끝난 롯데 가족 시네마, 막전막후

(왼쪽부터) 형제의 난 와중에 베일을 벗고 모습을 드러낸 롯데가의 여인들. 신영자 이사장과 딸 장선윤 씨. 신격호 회장의 아내 시게미쓰 하츠코 씨, 신동주 전 부회장의 아내 조은주 씨.

3막_베일 벗은 롯데가 여인들

형제의 난이 진행되는 와중에 베일에 가렸던 롯데가 여인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두 번째 아내인 시게미쓰 하츠코(88) 여사가 언론에 포착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지금까지 3명의 부인을 뒀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한국인 아내 노순화 씨와 결혼해 맏딸인 신영자(73)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을 낳고, 일본으로 건너가 하츠코 여사와 결혼해 신동주 · 신동빈 형제를 낳았다. 노순화 여사는 1960년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미스 롯데 출신인 서미경(56) 씨와의 사이에서도 딸 유미(32) 씨를 두고 있다.

하츠코 여사는 일본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의 지분을 20% 정도 갖고 있는 만큼, 그의 심중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경영권의 향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7월 30일 입국했다가 이틀 만에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남편과 두 아들의 중재를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에서 ‘장남과 차남 중 어느 쪽 손을 들어줄 생각인가’를 묻는 질문에 “둘 다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신영자 이사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에게는 각별한 딸이다. 1942년 스무 살 젊은 나이에 채 돌도 지나지 않은 딸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이후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고 온 어린 딸 영자가 눈물겹도록 보고 싶다’며 딸을 향한 절절한 부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1973년 롯데호텔에 이사로 경영에 발을 디딘 신영자 이사장은 롯데가 백화점과 면세점 분야에서 국내 1위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음에도 신동빈 체제가 들어선 이후 경영 일선에서 밀려나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7월 27일 신격호 회장의 일본행에 함께한 것도 그 연장선상으로 풀이됐지만,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영자 이사장은 아버지의 건강이 걱정돼서 함께 간 것 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롯데그룹 측에선 신동빈 체제에서 소외된 신영자 이사장이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해 신동주 부회장 편에 섰다고 보는 시선이 있다. 신 이사장은 롯데쇼핑(0.74%), 롯데제과(2.52%), 롯데칠성음료(2.66%), 롯데푸드(1.09%), 롯데정보통신(3.51%), 롯데건설(0.14%), 롯데알미늄(0.12%)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녀의 일본행에는 2012년 ‘재벌 빵집’ 논란 이후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지난해 롯데호텔 마케팅부문장으로 컴백한 둘째 딸 장선윤(44) 씨도 동행했다.

일본 국적인 신동빈 회장의 부인이 이번 사건에서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의 아내 조은주(51) 씨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남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신 전 부회장이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일본에서 주주들을 만나 설득하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재미교포 사업가의 딸로 알져진 조씨와 신동주 전 부회장은 1992년 결혼해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공식적으로 드러난 주식과 부동산 평가액만 각각 7백60억원과 4백90억원에 이르는 신 총괄회장의 세 번째 아내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는 겉으로 어떤 행보도 보이지 않으며 이번 형제의 난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디자인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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