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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달콤한 쿠키 깽단’ 박칼린

Sweet cookie, Sweet life

글·김유림 기자|사진·조영철 기자

2015. 01. 15

‘의외의 모습’이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은 겉보기엔 무대를 호령하는 여장부 같지만 알고 보면 다른 사람에게 음식 만들어주기를 좋아하는 요리의 달인이다. 특히 그가 만든 빵과 쿠키를 먹어본 사람은 누구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그가 올리버스윗과 손잡고 쿠키 만들기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달콤한 쿠키 깽단’ 박칼린
뮤지컬 음악감독, 공연연출가로 활동 중인 박칼린(48)이 최근 또 하나의 재능을 공개했다. 12월 초 자신의 이름을 딴 베이킹 브랜드 ‘칼린즈 스윗 키친(kolleen’s sweet kitchen)’을 론칭한 것. 페이스트리 전문점 올리버스윗과의 콜래보레이션으로 이뤄진 이번 작업은 박칼린이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온 정통 미국식 쿠키가 메인이다. 앞으로 쿠키뿐 아니라 브라우니, 레몬 바, 피칸 타르트 등 다양한 메뉴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12월 중순 서울 삼청동 한 갤러리에서 만난 박칼린은 자신의 얼굴 반만 한 둥글넓적한 쿠키를 집어 들고 “이것들을 굽느라 어제 하루 종일 바빴다”며 웃었다. 마침 이날은 ‘칼린즈 스윗 키친’ 론칭 행사가 있는 날이어서 박칼린은 손님 접대용 쿠키와 케이크를 직접 준비해 왔다. 인터뷰 중간 중간 자신을 축하해주러 온 지인들과 친근한 포옹을 나누는 그의 모습에서 쿠키처럼 달콤한 ‘박칼린표 감성’이 느껴졌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지인들 대부분은 이미 그가 만든 쿠키를 한 번쯤 맛본 사람들이다. 수시로 쿠키와 빵을 구워 공연 연습장에도 가져오고 지인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기 때문이다. 이제 그 쿠키를 대중도 맛볼 수 있게 됐다. 박칼린 쿠키는 올리버스윗 직영점과 올리버스윗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 가능하다.

“우연히 올리버스윗 당근 케이크를 먹었는데 그동안 애타게 찾던, 어릴 때 먹던 바로 그 맛이어서 깜짝 놀랐어요. 마침 그 케이크를 가져온 분이 올리버스윗 대표님과 잘 아는 사이라고 해서 만나게 됐고, 사업 얘기까지 나오게 됐죠(웃음). 올리버스윗은 방목한 닭의 유정란과 100% 우유 버터 및 생크림, 벨기에와 프랑스의 프리미엄 초콜릿 등 우리 몸에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도 믿음이 갔어요.”

어린 시절 엄마에게 전수받은 미국식 베이킹 노하우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박칼린은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처음 빵 굽는 법을 배워 지금껏 꾸준히 베이킹을 즐겨왔다. “미국 여자아이들은 거의 다 빵을 구울 줄 안다”는 그의 말처럼 박칼린에게 베이킹은 특별한 일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이다. 어쩌다 마음이 동하면 하루 종일 부엌에서 빵을 굽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지러웠던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도 한결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부엌에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워요. 지금껏 한 일을 정리도 하고 앞으로 뭘 할지 고민도 하고, 어쩔 땐 빵을 구우면서 창의력이 막 발휘되기도 하죠(웃음). 쿠키, 빵, 케이크 하면 그것들이 품고 있는 달콤하고 온화한 정서가 있잖아요. 넉넉히 만들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눠 먹을 수도 있고, 마음이 울적할 때 맛있는 빵 하나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따뜻한 부엌, 그곳에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가 삶의 큰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집에 쌀은 떨어져도 밀가루, 달걀, 버터 등 베이킹 재료는 절대로 떨어뜨리지 않아요(웃음). 바닐라 익스트랙은 3~4병씩 쟁여둬야 안심이 되죠.”

박칼린이 만든 쿠키는 일반적인 쿠키와 달리 부드럽고 촉촉하다. 이는 곧 미국식 베이커리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나라에 보급된 디저트는 대부분 프랑스식이나 일본식인데, 미국 스타일은 푸짐하고 가볍고 부드럽다”고 설명했다. 이번 론칭을 앞두고는 두 달 가까이 올리버스윗 메인 파티시에와 머리를 맞대고 최상의 맛을 찾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평소 제가 만들어 먹던 쿠키의 레시피를 기본으로 밀가루의 배합이나 첨가물의 비율 등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했어요. 소량으로 만들 때와 대량으로 만들 때 맛이 다르고, 좀 더 대중적인 맛을 찾아내기 위해서였죠. 이번 기회에 밀가루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어요. 차에 온갖 종류의 밀가루를 싣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다 써봤어요(웃음). 올리버스윗 영업이 끝난 뒤에 그쪽 키친에서 쿠키를 구웠는데, 늘 저만의 방식으로 베이킹을 하다가 다른 전문가와 의견을 조율하고 함께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죠.”

칼린즈 스윗 키친의 마스코트는 박칼린의 애견으로 유명한 삽살개 해태다. 해태는 2010년 ‘남자의 자격’으로 그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을 때 인터뷰에 종종 등장하면서 덩달아 유명세를 탔고, 15년 넘게 그의 곁에서 그가 베이킹하는 모습을 지켜봐왔기에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태는 두 달 전 세상을 떠났다. 박칼린은 “워낙 나이가 많아서 떠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오래 함께한 만큼 슬픔도 컸다. 항상 의젓한 모습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봐준 해태가 이렇게 마스코트로 남아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요리와 공연의 공통점은 ‘배려’

‘달콤한 쿠키 깽단’ 박칼린

박칼린이 기자에게 직접 만들어준 쿠키와 브라우니, 피칸타르트, 레본 바.

박칼린은 베이킹뿐 아니라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다. 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다음 날 요리할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고 하니 진정한 요리 마니아가 아닐 수 없다. 새로 나온 재료들은 포장지 뒷면에 적힌 원료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살피는 살림 9단. 현재 시판 중인 우유는 종류별로 다 맛봤고 소금, 후춧가루 등 양념도 브랜드별 맛의 차이를 다 알고 있다고 한다. 과자도 새로 나온 건 꼭 사서 먹어봐야 직성이 풀린다고.

요리를 좋아하는 만큼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식사하는 것도 즐긴다. “주로 모이는 멤버들, 깽단이 있다”며 웃는 그는 “어제도 그들 중 한 명과 크리스마스 파티 때는 뭘 만들지 고민하다가 와인 소스를 곁들이는 보쌈을 하기로 했다”고 귀띔해줬다. 추수감사절에는 잊지 않고 칠면조 요리를 하고, 최근에는 자체 개발한 소스와 바비큐 립 요리로 지인들의 입을 즐겁게 했다. 그는 맛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가 깃든 요리라고 강조했다.

“누군가를 위해 정성스럽게 요리하는 것 자체가 배려고 사랑이에요. 이왕이면 상대가 먹고 기분 좋을 음식을 해야 하죠. 예를 들어 ‘미스터 쇼’(남자 배우 8명이 빨래판 복근을 선보이며 여성을 위한 성적 판타지를 선보여 화제를 모은 작품)를 할 때는 먹고 힘을 내야 하니까 비계 없는 좋은 고기로 요리를 하고,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친구라면 신선한 채소와 과일로 만든 샐러드 요리를 대접하는 식이에요. 또 뮤지컬 연주자들을 위해 빵을 자주 구워 가는데, 유제품과 호두를 못 먹는 친구들이 있어서 그들만을 위한 빵을 따로 만들어가기도 해요. 요리는 만드는 것이 반이고 먹는 게 반이라는 점에서 공연과 똑같아요. 관객이 즐거워야 공연이 완성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먹는 사람이 맛있고 기분 좋아야 요리한 보람도 있거든요.”

유난히 식사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식가답게 맛집 탐방을 즐기는 박칼린은 상대방과 무얼 먹을지 고민을 하고 식당과 메뉴를 고르는 과정, 음식을 앞에 두고 맛을 평가하는 모든 순간 등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식사 문화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1년 내내 연락을 못하다가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라도 음식 하나만 앞에 있으면 대화거리가 생겨요. 그렇기 위해선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메뉴를 선택해야 하죠. 가끔 주변에서 자기 마음대로 메뉴를 정하는 상사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가장 얄밉고 안타까워요(웃음).”

비단 음식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삶 전반에는 배려와 존중이 깔려 있다. 그가 ‘남자의 자격’에서 보여준 ‘부드러운 리더십’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마냥 인자한 모습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무대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날카롭고 냉철하다. ‘남자의 자격’에서도 소통과 신뢰 속에서 자율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각자 맡은 임무를 잊지 않도록 채찍질하며 ‘박칼린식 리더십’을 선보여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는 “스태프는 배우를, 배우는 스태프를 항상 소중히 여기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도전은 내게 너무 과분한 말, 그저 즐길 뿐

국내 뮤지컬 음악감독 1세대로, 1996년 뮤지컬 ‘명성황후’에 들어갈 음악을 만들어 실력을 인정받은 박칼린은 그동안 음악감독 외에도 첼리스트, 판소리 소리꾼, 연극배우, 연출가, 보컬 트레이너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다. 지난 10월에는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폐막식 총감독을 맡아 또 다른 스케일의 연출력을 보여줬다. 당시 그는 “불가능 앞에서 끓어올랐던 인간의 순수한 열정과 창의성에 초점을 맞췄다. 서로 다른 배경 속에서 태어난 인간은 각기 다른 빛깔의 삶을 살아간다. 때로 예기치 않은 사고로, 질병으로, 전쟁과 가난으로 넘어지고 쓰러지지만 고유의 창의성을 무기로 불가능 앞에서 한계를 이겨내는 것이 인간”이라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박칼린 역시 끊임없이 노력하며 자신의 활동 반경을 넓혀간다는 점에서 이들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 정작 그는 자신에게 도전이란 단어는 너무 거창하다고 말한다.

“제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뿐이에요. 음악과 연출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변형된 일을 하는 거죠.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건 맞지만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할 만큼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진 못하죠.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뭔가 새로운 걸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이 나와 잘 맞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이는 거죠. 그래서 젊은 친구들 앞에서 강론할 기회가 있으면 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해요. 하고 싶은 일을 해야만 최선을 다할 수 있고, 그래야만 행복하고 건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건강해야 일도 많이 할 수 있잖아요. 저는 운 좋게 제가 좋아하는 일 그리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일을 놀이처럼 즐기며 살 생각이에요.”

이번 베이킹 사업 역시 부담감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꿈 하나를 이룬다는 설렘으로 준비했다고 한다. “극장, 도서관, 빵집이 한곳에 모여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을 꿈꿔왔다”는 그는 앞으로도 디저트 문화와 함께 교육,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디저트 문화는 이제 시작 단계인 것 같아요. 뭐든 처음은 신나고 재밌잖아요.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카페와 베이커리, 또 홈 베이킹 등 앞으로 다양한 베이킹 문화가 자리 잡을 거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저도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다면 보람을 느낄 것 같아요(웃음).”

‘달콤한 쿠키 깽단’ 박칼린
디자인·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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