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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미식가로 만드는 프랑스 엄마들의 식탁 교육

글·이미령, 로랭 달레 | 사진·지호영 기자, REX 제공

입력 2013.04.24 10:40:00

2010년 프랑스 가스트로노미(gastronomy: 미식)가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프랑스 사람들은 음식을 조리하고 먹고 마시는 일을 품격 높은 문화 예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런 프랑스의 음식 문화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내 아이를 미식가로 만드는 프랑스 엄마들의 식탁 교육


“이 자리에 프랑스에서 직수입한 분을 모셔왔습니다. 르구테(le gou ^ter: 간식) 경험에 대해 직접 들어보시죠.”
2월 25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슬로푸드문화원에서 슬로푸드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부탁받았다. 내게 주어진 주제는 프랑스의 식생활 교육이었는데, 로랭은 옆에서 파워포인트의 슬라이드를 넘겨주다 갑자기 내가 자신을 호명하니 어리둥절해하며 사람들 앞에 섰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만들어놓은 과일잼 병을 50여 개나 깨뜨린 경험을 들려줘요.”
나의 제안에 청중의 시선이 일제히 로랭에게 쏠렸다. 원래 부끄러움이 많은 편인 로랭이 쑥스러워하자 사람들은 ‘빨리 말해요’라는 눈빛으로 재촉했다.
“제가 여덟 살이나 아홉 살 무렵인데요….”

배가 고프다고 아무 때나 먹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국적 불문 다 비슷하다. 채소나 과일보다 과자, 사탕과 같이 단 음식을 좋아한다. 밥보다 케이크 같은 간식만 먹으려는 아이들도 많다. 또 일정한 시간에 먹는 게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프다,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른다. 아이들 성화에 피곤한 엄마들은 쉽게 지갑을 열고 사달라는 대로 다 사준다.
“피자가 좋니? 그래 먹으러 가자.”
“닭 튀김요리가 먹고 싶다고? 그래 가자.”
“자장면과 탕수육? 그래 그래….”
주위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그러나 프랑스에는 그런 엄마들이 없다. 있다 해도 매우 드물다. 프랑스 엄마들은 절대 식생활 문제에 관한 한 아이들에게 끌려다니지 않는다. 대단히 엄격한 편이다.
프랑스 아이들은 하루 세 끼 정해진 시간에 식탁 앞에 앉아 어른들이 만들어주는 음식을 어른들과 똑같이 먹어야 하고, 식탁에서 자세가 불량해도 엄한 꾸지람을 듣는다. 가장 큰 벌은 식탁에서 매너가 좋지 않을 때 ‘디저트 금지령’을 당하는 것이다.
또 배가 고프다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텔레비전에서 온갖 가공식품을 선전하고 있지만 프랑스 부모들은 아무리 아이들이 졸라도 쉽게 사주지 않는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좋은 식습관을 만들어주기 위한 프랑스 부모들의 노력은 대단하다. 때로는 프랑스 엄마들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끼니마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간식 습관도 철저하게 교육한다. 프랑스에서는 학교는 물론 길거리에서 사탕을 빨거나 뭔가를 먹고 있는 아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 내 자동판매기 설치도 불법인 나라다.
프랑스 엄마들은 아이가 배고프다고 해도 무조건 음식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Feeling hungry”와 “Being hungry”를 엄격히 구분한다. 즉 배고픔을 느끼는 것과 정말 배고픈 것은 다르다는 말이다. 식사 전에 배가 고프면 식사 때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신호로 받아들인다.
프랑스 사람들은 보통 저녁 8시에서 8시 30분 사이에 식사를 하며, 어린아이들도 아무리 빨라야 7시쯤 한다. 조금 크면 어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반면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저녁 식사 시간이 6시 무렵으로 빠른 편이다. 이처럼 프랑스의 저녁 식사 시간이 늦은 편이어서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 저녁 식사 전까지 허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오후 4시에서 4시 30분 사이에 ‘르구테’를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습관이라 성인이 돼도 그 시간만 되면 르구테를 찾는 로랭 같은 사람도 많다.
‘르구테’는 거창한 식사가 아니라 바게트 한 쪽에 버터나 잼을 발라 먹거나 신선한 과일이나 요구르트를 먹으며 허기를 살짝 달래주는 것이다. 가정마다 르구테 메뉴가 다르고 직접 만들기 어려우면 동네 빵집에서 가벼운 간식거리를 사 먹는 사람들도 있다. 방과 후 동네 빵집 앞에 엄마 손을 붙잡고 줄 서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르구테를 사 먹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프랑스인들이 모여 사는 서초구 방배동 서래마을 빵집들도 예외가 아니다. 인근 프랑스 학교의 방과 후면 아이들이 빵집을 드나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르구테와 관련해 로랭에게는 어린 시절 다소 아픈 기억이 있는데 이 강연에서 갑자기 공개하라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 로랭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입을 열었다.

내 아이를 미식가로 만드는 프랑스 엄마들의 식탁 교육

프랑스 엄마들은 아이가 조른다고 아무 때나 아무 것이나 사주지 않는다. 자녀에게 좋은 식습관을 만들어주려는 프랑스 엄마들의 노력은 때로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루는 방과 후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르구테를 먹고 카테시즘(catechism: 가톨릭 교리문답 교육)을 받으러 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급하게 장을 보러 가야 한다며 형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교리문답 복습을 하며 기다리고 있으라는 거예요.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답니다.”
이미 르구테를 충분히 먹었지만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간식 욕심이 더 생겼다. 로랭은 혼자 남겨지자 어머니가 수제 과일잼, 과자, 케이크, 초콜릿 등을 보관하는 지하 창고로 내려갔다. 단것을 좋아하던 어린 로랭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보물창고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이 쉽게 간식을 꺼내 먹지 못하게 맛있는 것들은 전부 키가 닿지 않는 높은 선반 위에 정리해두셨다. 어린 로랭이 노린 것은 제일 높은 선반 위에 놓여 있던 라즈베리잼과 미라벨잼이었다. 그것을 꺼내 바게트에 발라 먹을 생각이었다. 평소 어머니가 사용하던 의자 위에 올라가 잼 병을 잡으려는 순간 의자 다리가 기우뚱하더니 그의 몸이 쓰러지면서 선반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50여 개의 잼 병들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 깨졌다. 바닥은 온갖 과일잼들이 뒤엉켜 끈적거렸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흐릅니다. 제가 어머니 몰래 잼을 먹으려 했다는 것이 들통 날 게 뻔했기 때문이죠.”
어머니가 정성껏 만들어놓은 과일잼 수십 병이 떨어져 박살이 나고 이에 놀란 어린 소년의 모습이 떠올라 모두들 웃었다. 나도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 웃겨 깔깔댔다. 그러나 로랭은 여전히 그때의 악몽이 떠오르는 듯 미소 한 번 짓지 않았다.
“저는 공포심까지 느꼈어요. 교리문답 공부를 하러 가기 전 어머니 몰래 음식을 훔쳐 먹으려 한 것에 대한 하느님의 벌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결국 그날 교리문답 시간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오로지 걱정만 했지요. 선생님은 제가 아픈 줄 알고 집에 전화를 해 어머니와 통화를 하셨어요. 로랭이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너무 창백하고 아파 보인다고….”
그제야 로랭은 싱글벙글 웃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웃겼나 보다.
“저를 데리러 오신 어머니는 무슨 일로 제가 그렇게 ‘아팠는지’ 이미 알고 계셨죠. 어머니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저를 안아주며 ‘그렇게 더 먹고 싶으면 엄마한테 말해. 조금 양을 늘려줄게’라고 흔쾌히 용서해주셨죠. 별로 특별한 경험은 아니죠?”

편식 금지하고 새로운 것을 먹게 하는 미각 교육
프랑스 엄마들은 이렇게 아이들에게 규칙적인 식사를 제공하며, 편식하는 아이에게 끌려다니지 않는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뭐든지 다 먹어보게 하고 새로운 음식을 경험할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좋은 ‘맛’을 강조하며 미각 훈련에 큰 노력을 다한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설탕, 소금, 지방이 주재료인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들을 ‘말부프(malbouffe: 정크푸드)’라고 부르며 약간은 천시한다. 또 미국 청소년(6~17세)의 25%가 리탈린 같은 향정신제를 복용하는 이유는 그들이 먹는 저급한 음식과 관련이 많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도 미국식 패스트푸드의 공습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점점 더 패스트푸드나 화학첨가제가 가득 들어 있는 인스턴트 음식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식 말부프’가 빠른 속도로 프랑스 사람들의 식습관을 바꾸고 있다. 이와 함께 어린이 비만, 우울증, 과잉행동장애와 같은 질병이 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계 최초의 미각 교육도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1964년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와인 전문가인 자크 퓌제(Jacques Puisais)가 투르(Tours)에서 맛에 대한 교육을 시작했고, 1976년 프랑스미각연구소(L’Institut Francsais du Gou ^t)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다학제적(multidisciplinary)’ ‘다분야(multisector)’를 통합한 체계적인 맛 연구는 물론 음식의 맛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연구에 주력했다. 그의 열정적인 연구 결과의 결실인 감각 개발과 미각 발달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프랑스 교육 현장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미각교육 자료로 사용되는 귀중한 자산이다.
이 연구소의 교육 내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치밀하다. ‘온 국민의 미식 생활화’가 목적이므로 임신부는 물론 배속에 있는 태아에게도 미각 교육을 실시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는 프랑스인들이 한 인간의 미각 발달은 엄마 배 속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에 프랑스 가스트로노미(미식)가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프랑스 사람들은 음식을 조리하고 먹고 마시는 일을 품격 높은 문화 예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내가 프랑스 문화의 정수를 음식 문화에서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랑스 가스트로노미는 자연이 낳을 수 있는 최고 식자재를 엄선해 수준 높은 음식을 만들고 오랜 전통으로 관습화된 식탁 예절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대화하며 나누어 먹는 데 삶의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 독특한 미식 문화다. 프랑스인들은 자국 음식 문화를 프랑스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내 아이를 미식가로 만드는 프랑스 엄마들의 식탁 교육


프랑스 음식 레시피는 수백 년 전부터 기록되기 시작해 지금도 계속 개발되고 보존되고 있으며 식자재를 까다롭게 선별하는 프랑스인들의 합리적인 소비 행태는 지역 농축수산물의 발달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제대로 된 음식 맛을 잘 아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농축수산업 종사자들이 최고의 식자재를 생산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 역시 이에 호응해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원산지 관리시스템(AOC: Appellation d’origine contro ^le`e)을 통한 철저한 지역 특산물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이렇게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각 지역 향토 음식과 그에 맞는 와인을 짝짓는(페어링) 수준은 가히 예술이라 아니할 수 없다. 좋은 음식을 만들고 즐기는 데 ‘집착’하는 프랑스인의 음식에 대한 유별난 감성은 이들만의 독특한 민족성으로까지 인정될 정도다.

“당신은 바로 당신이 먹는 것이다”
프랑스 엄마들이 자녀가 영유아 시절부터 체계적인 미각 교육을 하는 목적은 음식과 맛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쌓게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미각 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감각적으로 더욱 예민해지고 감수성이 풍부해진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맛을 구분할 줄 알고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어린이들의 어휘 수는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풍부하다. 많이 생각하고 논리적이다. 그런 아이들은 어학은 물론 수학, 화학, 물리학, 인문학적 감수성까지 발달한다.
‘슬로푸드’는 이탈리아의 카를로 페트리니(Carlo Petrini)가 “좋게, 깨끗하게, 공정하게(Buono, Pulito, Giusto)”를 주장하며 시작한 운동이다. 소비자는 공동생산자이며 좋은 음식, 깨끗한 음식, 공정한 음식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따로 이런 운동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음식과 깨끗하고 공정하게 거래된 음식을 먹는 것을 오랫동안 일상화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먹는 것을 내게 말해다오.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 지 말해주겠다.”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정치인이며 미식가인 브리야사바랭(Brillat-Savarin)이 한 말이다. 그가 1825년에 출간한 ‘맛의 생리학(Physiologie du gou ^t)’은 지금까지도 미각 연구자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필독 도서다.
브리야사바랭 같은 조상을 두고 있는 프랑스인들의 85%는 살아 있는 음식, 자연을 호흡하게 하는 음식, 몸과 마음, 정신과 영혼까지 건강하게 하는 음식이야말로 진짜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음식과 맛있는 음식에 자연스러운 힐링 요소가 있다고 믿는다. 음식으로 철학하고 수준 높은 문화 예술을 생활화한 것이다.
미식가란 누구인가? 진짜 음식, 좋은 음식을 감별할 줄 알고 즐기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국민 전체가 미식가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겠다. 미식이 대단히 현학적이고 전문적이며 복잡한 타이틀은 아닌 것이다.

푸드 칼럼니스트 이미령, 셰프 로랭 달레는…

내 아이를 미식가로 만드는 프랑스 엄마들의 식탁 교육


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하다 최근 한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사에서 국제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해 현재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Le Chef Bleu Catering을 경영하고 각종 매체에 음식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mleedallet@yahoo.fr
여성동아 2013년 4월 5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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