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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무한도전’ 정신감정 주치의 송형석 앵그리 우먼 상처 치유법

“문제의 원인을 남이 아닌 나에게 돌리고 문화생활로 힐링”

글·김유림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MBC 캡처

2013. 02. 19

MBC ‘무한도전’ 정신감정 편에 출연해 날카로운 심리 분석과 예사롭지 않은 입담으로 주목받은 정신과 전문의 송형석. 만화 그리고 기타 치는 의사로도 유명한 그는 마음의 병을 예술로도 치유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가 화병, 우울증에 시달리는 주부들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

‘무한도전’ 정신감정 주치의 송형석 앵그리 우먼 상처 치유법


“박명수 집중력 장애 증상, 정형돈 자기중심적, 정준하 문자 메시지로 불안감 달래는 여중생의 행동 패턴, 노홍철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는 사람에게 적극적, 유재석 남에게 베푸는 게 몸에 밴 유형.”
2009년 MBC ‘무한도전’ 멤버들이 정신과 전문의 송형석 원장에게 받은 정신 감별이다. 방송 당시 송형석 원장은 까칠하면서도 직설적인 화법으로 화제를 모았다. 현재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마음과 마음’ 병원원장으로 일하며 ‘무한도전’ 출연 이후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 패널로 활동 중이다.
사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의사라는 본업을 두고 여러 분야로 외도를 했다. 록밴드 ASIDE에서 드럼과 신시사이저를 맡아 작곡을 하고, 만화를 그리며 수시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얼마 전에는 순정만화 잡지 ‘윙크’에 2년 동안 연재해온 카툰 ‘Dr. MAD’를 묶어 심리치료 에세이 ‘까칠하게 힐링’(서울문화사)을 펴내기도 했다.
일산 병원 진료실에서 만난 송형석 원장은 외모에서부터 남다른 포스가 느껴졌다. ‘무한도전’ 출연 당시에는 단발머리였지만, 지금은 머리카락을 더 길러 아예 뒤로 묶었고, 수염도 길러 예인(藝人)의 느낌을 풍긴다. 당초 소아 청소년 상담을 전문으로 하던 그는 ‘무한도전’ 출연 후 10대부터 20대 후반의 고객층이 상대적으로 많이 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병원을 찾는 이들의 절반 이상은 ‘화병’ ‘우울증’에 시달리는 40~50대 중년 여성. 송형석 원장은 이 집단을 ‘앵그리 우먼’이라 칭했다.

우울증 시달리는 40~50대 ‘앵그리 우먼들’

‘무한도전’ 정신감정 주치의 송형석 앵그리 우먼 상처 치유법

2009년 ‘무한도전’ 정신감정 편에 출연했을 당시 모습.



“분노에 휩싸인 감정으로 병원을 찾는 분들이 많아요. 스마트폰 게임 중 ‘앵그리 버드’라고 있잖아요. 자신의 몸을 날려 돼지들을 파멸시키는. 이분들의 특징이 딱 그래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까지 상대를 공격하죠. 열 명 중 세 명은 저한테까지 화를 내고 진료실을 나가세요(웃음). 뭐가 그렇게 화가 나느냐고 물으면 남편 때문에, 자식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해요. 화가 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들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거죠. 하지만 앵그리 버드에서도 보면 돼지도 돼지의 입장이 있어요. 단지 새 알을 먹고 싶은. 남편과 대화하기를 원하고 자식이 자신의 뜻대로 따라와주기를 바라지만, 상대라고 아내가, 엄마가 화를 내면서 얘기하는데 그대로 따르고 싶을까요? 마치 유부남이 자신의 신분 때문에 연애를 하지 못해서 화가 난다고 하는 것과 같아요. 내가 원하는 것을 결코 이룰 수 없는 상황이 화가 나는 거죠.”
환자를 무조건 위로하는 말이 아닌, 과연 까칠하고 냉정한 해석이다. 그렇지만 송형석 원장은 “정신과 상담은 단순한 힐링이 아니라 테라피 혹은 트리트먼트(치료, 처치)”라고 말한다. 당장은 아프더라도 상처를 칼로 찢어 치료한 뒤 그다음에 휴식과 힐링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남편과 대화하길 원하는 아내에게는 어떤 처치가 필요할까.
“아내가 짜증을 내면서 이야기하는데 남편이라고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리 없죠. 그럴 땐 그냥 당분간 남편을 내버려두라고 해요. 그러면 대뜸 ‘평생 포기하고 살아요?’ 하고 화를 내며 물어요. 평생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두어 달 정도 자신의 관심을 남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려보라는 말이에요. 그러면 남편이 먼저 한두 마디 말을 걸어오게 되고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죠. 사실 여자와 남자는 많이 달라요. 여자는 남자가 자기만을 봐주고 말 걸어주길 바라는 반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제발 말을 시키지 않고 가만히 놔두길 바라죠. 이처럼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를 때는 무조건 내 입장만 고수하지 말고 협상을 해야 해요. 결국 힐링은 자기 자신이 모든 현상의 주체라고 느껴야만 제대로 이뤄지는 거예요. 여자들이 다이어트에 집중하는 건 적어도 내 몸 정도는 스스로 컨트롤하고 싶다는 생각에서거든요. 비록 실패하더라도 ‘나 때문이다’라고 순순히 인정하잖아요. 그것처럼 모든 갈등과 불행이 내 안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면 문제를 해결하기 훨씬 쉬워져요.”
‘무한도전’ 정신감정 주치의 송형석 앵그리 우먼 상처 치유법

만화 잡지 ‘윙크’에 연재했던 카툰 ‘Dr. MAD’에 등장하는 송형석 원장 캐릭터.





떠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실제로 이런 문제로 상담하러 온 환자들 중에는 치료가 잘될 듯하다가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남편이 조금만 날 사랑해주면 내가 금방 달라질 수 있을 텐데”라고 푸념하는 경우다. 결국 인간이 괴로움의 원인을 자신 안으로 끌고 들어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송형석 원장이 권하는 치유 방법 중 하나는 관심을 남편이 아닌 다른 분야로 돌리는 것. 음악, 그림, 여행 등을 통해 인간의 고독과 맨얼굴로 마주하면 그로 인해 얻는 인생의 깨달음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가끔 자신에게도 똑같은 처방을 내린다고 한다. 우울하고 삶이 괴로울 때 음악에 몰두하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여행을 간다고. 고독 속에서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영혼이 살찌워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년의 나이에 새삼 예술에 빠져들고, 홀로 배낭여행을 떠나기란 쉽지 않은 일. 그렇지만 송 원장은 “일단 한번 해보라”고 권한다.
“‘왜 자꾸 여행을 가라고 하느냐’며 화를 내는 분들도 있어요(웃음). 하지만 상담하다 보면 대화만으로는 환자의 마음을 열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닫힌 마음을 열고 그를 자극하는 데는 음악, 미술, 드라마 같은 예술, 광활하고 깊은 영감을 주는 자연, 몸으로 움직이고 오감으로 느끼는 운동, 음식 등이 수십 배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굳이 답답한 진료실에 앉아 똑같은 얘기를 수년간 하느니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좁은 시야로 살았는가를 깨닫게 하면 저절로 치료가 됩니다. 의사인 저로서는 가장 쉬운 치료책이자 가장 강력한 치료법이니 결코 포기할 수 없어요(웃음). 실제로 일흔이 넘은 어머니와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패키지 여행 갔을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처음부터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패키지 여행도 좋겠지만, 이왕이면 스스로 도전하고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배낭여행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내 인생을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 그 자체가 힐링이거든요.”
취미생활 역시 단순히 즐거움을 찾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좀 더 깊이 있게 접근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노래와 기타를 배운다고 치면 남미의 어느 한 노가수가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즐기라는 것. 송형석 원장은 “무조건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찾아서 즐길 때 더 멋진 노후를 보낼 수 있다. 그런 기회의 장은 사회적 지원하에서 문화 종사자들이 직접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에게 한정돼 있는 인간관계를 친구로 넓히는 과정도 필요하다. 외로움을 호소하는 중년 여성의 경우 친구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들에게 친구 관계를 물어보면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안 만난다” 하고 대답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 보여주기 싫어서인 것 같아요. 남자들은 중·고등학교 동창이면 현재 내 상황이 어떻든 일단 만나서 사는 이야기를 하는데, 여자들은 만남 자체를 피해버리죠. 그러다 보니 허한 마음이 가족에게 쏠릴 수밖에 없어요. 사실 가장 안심하고 만날 수 있는 친구는 사회에 나와서 만난 친구가 아니라 학창 시절에 사귄 친구거든요. 남자들도 삼수, 사수 한다고 친구를 멀리한 경우 나중에 나이 들어 인간관계가 회복되지 않는다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친구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서서히 그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해보세요.”

결코 “우울하다”고 말하지 않는 우울증 환자들

‘무한도전’ 정신감정 주치의 송형석 앵그리 우먼 상처 치유법


보통 ‘우울증’이라고 하면 우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울증 환자 중 “우울하다”고 호소하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된다고 한다. 우울하다는 단어 자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 방안이 없는 허망함을 나타내는 서구적인 표현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나라 중년 여성들에게는 ‘화병’이라는 또 다른 병명이 있다. 송 원장은 “시어머니에게 감히 말대꾸도 못하던 시대 여성들에게는 혼자 화를 삭이느라 늘 가슴에 열이 꽉 찬 느낌의 화병이 맞고, 요즘처럼 할 말은 하고 사는 시대에는 시어머니에게 열변을 토하며 대들긴 하지만, 결국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데서 오는 좌절감, 그걸 우울증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의 뇌가 지치기 시작하면 짜증이 늘어요. 특히 가장 가까운 관계, 바로 가족들에게 짜증이 늘죠. 조금 더 진행이 되면 짜증을 내는 빈도와 범위가 늘어나고, 억지로라도 친구나 동료에게 잘하다가 갑자기 화를 내는가 하면, 자신의 그런 모습에 당황해서 울기도 합니다. 일이나 학습 같은 에너지가 필요한 활동은 점차 줄어들고, 술, 담배, 자극적인 행동이 점차 늘어나죠.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것이 약물 치료예요. 보통 항우울제 반 알 정도 먹으면 일주일만 치료를 받아도 당장의 분노나 불쾌감이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그러면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지 않고 빠르게 안정을 찾게 되죠. 여전히 정신과 상담이나 항우울제 처방에 거부감을 보이는 분들이 많은데, 전혀 그럴 필요 없어요. 우울증을 조기에 치료하면 우리나라 자살률도 절반으로 줄어들 거라고 확신해요.”
물론 약물 처방이 우울증을 없애는 데 100% 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약을 통해 기분이 안정되더라도 여전히 상대에 대한 원망과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면 약을 끊었을 경우 짜증과 분노의 수치가 또다시 올라가기 마련. 결국 해답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송 원장은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까지 오르지는 못하더라도 의도적으로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계속해야 한다. 포기할 건 포기해야만 내 자신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괴짜 의사, 송형석의 사생활

‘무한도전’ 정신감정 주치의 송형석 앵그리 우먼 상처 치유법


서울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송형석 원장은 어린 시절 부부 사이가 그리 좋지 않던 부모 밑에서 다소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사람 간의 갈등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가 어머니에게 가장 고마워하는 건 9년 동안 끈질기게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것. 어릴 때는 마음이 약해 그만둔다는 말도 못하고 죽어라 쳤지만, 지금은 음악 없이는 살 수 없을 만큼 인생의 커다란 기쁨이기 때문이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그는 어린 시절 부모의 불화 때문인지, 상담 중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거나 가정의 행복을 우습게 보는 환자에 대해서는 사적인 감정이 많이 실린다고 말한다. 서른 살 무렵 처음 떠난 배낭여행을 통해 인생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됐고, 요즘도 일상에 지칠 때면 고독에 깊게 침잠하고자 어디론가 훌쩍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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