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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0주년 음유시인 이루마가 들려주는 나의 음악, 나의 가족

‘미코’ 출신 아내, 판박이 딸 ‘로운’까지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이기욱 기자

입력 2012.01.17 10:29:00

뽀얀 얼굴, 동그랗고 큰 눈. 한국 데뷔 초 있었던 ‘일본인 혼혈설’은 이루마에게 해묵은 이야기가 됐다.
불특정 다수의 홈페이지 배경음악에서 빠지지 않는 ‘Kiss the Rain’ ‘Maybe’ 등 유려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만든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조잘조잘 수다 떨기를 즐기는 이 유쾌한 청년이 그 사람과 동일인인가 확인하려 눈을 크게 뜨는 순간, 그의 프렐류드(prelude)는 다시 연주되기 시작했다.
데뷔 10주년 음유시인 이루마가 들려주는 나의 음악, 나의 가족


첫 앨범 발매 10주년을 맞아 베스트 앨범 ‘The Best - Reminiscent 10th Anniversary’를 낸 이루마(34)는 즐거워 보였다. 앨범에 넣은 곡을 고른 기준은 두 가지. 그가 가장 좋아한 곡과 사람들이 사랑해준 곡이다. ‘Kiss the Rain’ ‘Maybe’ ‘River Flows in You’ 외에도 ‘Poem+詩처럼’과 광고 음악, 드라마 ‘시크릿 가든’ 삽입곡 ‘동화’도 넣었다. 신곡도 있다. 제목은 ‘Reminiscent(회상)’. 그는 앨범에 담은 10년이란 ‘이루마의 시간’을 듣는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간 계속 생각해온 작업이었어요. 기분이 정말 좋죠. 공연할 때 같은 곡을 연주해도 매번 편곡을 달리했는데, 그걸 앨범에 넣고 싶었어요. 앨범은 감상용이고, 사람들이 제 음악을 쉴 때 많이 듣기 때문에 너무 튀지 않고 잔잔하게 연주했어요. 옛날에 연주한 ‘Kiss the Rain’이 박자의 정확성을 따졌다면, 이제는 아마 숨 쉬는 것 같은 자유스러움을 좀 더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첫 앨범 그 후 10년, 인생 변주를 시작하다
베스트 앨범 표지에는 심플한 검은 배경에 하얀 선으로 그린 피아노가 있다. 평소 그가 자주 그리는 그림을 디자이너가 본뜬 것이다. 오랜 시간 숙성시킨 포도주처럼 풋풋한 건반 터치가 있던 자리는 농익은 성숙함이 채웠다. 그는 ‘성숙’이라는 말이 나오자 손사래를 쳤다.
“아직 멀었어요. 평생 가도 성숙해지지는 못할 것 같아요. 저는 연주자라기보다 작곡가라고 생각해왔어요. 지금도 작곡이 더 맞는 것 같고, 가요도 쓰고 싶어요.”
그는 곡을 쓰면 주고 싶은 가수로 김연우를 꼽은 바 있다. 실제로 이루마는 2004년 유희열이 제작한 김연우의 2집 앨범에 연주 음악 2곡(‘몇 해 전 삼청동 거리엔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끝’), 3집에는 ‘흐려진 편지 속엔’이라는 곡을 줬다.
“틈틈이 곡을 쓰긴 했는데 집중적으로 가요를 만들어보고픈 욕심도 있고, 다양한 곡을 써보고 싶어요. 그때는 막연한 상태에서 가요를 썼던 터라 연우 형 목소리에 맞게 만든 것 같지도 않고. 지금은 서로 알고 지낸 세월이 길고 경험도 많아져서 더 잘 써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돌 가수가 곡을 달라고 하면 제 색을 담아서 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피아니스트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본디 그는 작곡가다. 첫 작업은 연극음악이었다. 2000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우연한 계기에 뮤지컬 연출가 이지나를 만나 연극 ‘태’의 음악을 맡았다.
“영국에서 먼저 공연하고 한국에서 하는 연극이었어요. 대학생이었는데 경험을 쌓고 싶어서 하겠다고 했죠. 그땐 (오)만석 형도 데뷔 전이었고, (홍)록기 형도 뮤지컬 하기 전이었어요. 뮤지컬 배우 이정화씨가 주연을 맡고, 안혜순 누님이 안무를 맡은 독특한 형태의 연극이었죠. 그 일이 끝나고 경험을 더 쌓고 싶어 한국에 왔어요. 그런데 연극이 막을 내리니까 일이 없어서 고생했어요(웃음).”
이후 이루마는 음악 관련 회사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다 재정이 악화되자 동료와 회사를 나왔다. 직접 여자 가수를 키워보려고 했지만 잘 안됐다. 그는 “그때는 댄스 음악도 썼었는데”라며 웃다가 “함께 일하던 친구가 한국에서도 유키 구라모토, 앙드레 가뇽 같은 사람을 만들어보자며 연주 앨범을 내자고 제안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2001년 나온 1집 ‘Love Scene’. 2집 ‘First Love’에 실린 ‘When the Love Falls’가 드라마 ‘겨울 연가’에 실리면서부터 폭발적인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데뷔 초에는 이국적인 외모와 이름 탓에 일본인 피아니스트가 아니냐는 오해도 숱하게 받았다.
“받침도 없는 이름에다가 영문 ‘Yiruma’로 쓰니까 다들 오해하시더라고요. 사실 의도했던 바예요. 사람들의 선입견을 없애고 싶었죠. 이루마가 외국 사람인 줄 알면 음악을 들어주지 않을까 싶었고, 한국 사람도 이런 음악을 쓸 줄 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처음엔 속았어요. 사람들이 당연히 일본 사람이겠거니 생각하시더라고요. 혼혈이라는 오해도 받았죠. 얘기하다 보면 ‘어, 이루마씨, 어떻게 이렇게 한국어를 잘하세요?’ 하기도 하고, 어디 가면 ‘이루마상~ 하지메마시테(처음 뵙겠습니다)’ 하고(웃음).”
그의 이름은 성이 붙어야 의미가 완성된다. ‘뜻을 이루마’라는 의미의 순 한글이다. 이루마는 “어릴 때는 놀림도 많이 받았다”면서 “이름처럼 뭔가를 이루려면 아직 멀었다”며 쑥스러워했다.

개그 프로와 수다 즐겨, 인생 빠르기표는 ‘비바체’

데뷔 10주년 음유시인 이루마가 들려주는 나의 음악, 나의 가족


감성적인 음악을 쓰는 작곡가 이루마가 즐겨 보는 프로그램은 ‘개그 콘서트’. 퓨전 요리 같은 조합이다. 그는 개그를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한다며 “실컷 웃고 나면 다시 자신을 추스르고 음악을 쓸 수 있다”고 했다.
“항상 ‘이런 거 하면 정말 웃기겠다’라는 생각을 해요. 군 생활할 때도 개그맨이 선임, 후임으로 있어서 웃긴 이야기나 콩트를 많이 들었거든요. 아주 어릴 적부터 찰리 채플린을 보면서 희극인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개그 프로는 다 찾아서 봐요. 김기리씨 나오는 ‘리얼리티’도 챙겨 보고, 황현희나 유세윤씨도 정말 웃겨요. 재미있는 사람들 만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런 프로그램 볼 때면 바보처럼 입을 ‘헤~’ 벌리며 보고 있고. 콘서트에서도 멘트하면 관객들이 재밌어하세요.”
‘음악 요정’으로 주가를 올린 가수 정재형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예전에 재형이 형을 라디오 프로그램에 초대한 적이 있는데 거의 유일한 연예인 게스트였죠. 형이 그룹 ‘베이시스’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좋아했고, 제 애창곡이 ‘세상의 모든 이별’(베이시스 곡)이라면서 연락하고 싶다고 했죠. 그랬더니 제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면서 형은 휴대전화, 집 주소, 심지어 프랑스 주소까지 다 적어주셨어요. 그때 참 여유 있고 재밌는 분이구나 생각했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집 주소’를 받아낼 정도로 강한 친화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사람 만나는 걸 아주 좋아해요. 몇 시간씩 수다를 떨 수도 있어요.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들어주기도 좋아하죠. 살면서 저를 지나쳐간 다양한 사람들, 그들이 지금의 이루마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그에겐 ‘피아노로 시를 쓰는’이라는 수식이 동반된다. 그는 “지금까지 쓴 음악들은 소네트(sonnet)였다”고 말했다.
“심플하게 피아노 한 대로 써온 지금까지 제 곡은 미술로 비유하자면 스케치죠. 제 귀에는 아직 미완성의 음악들이에요. ‘포엠 뮤직’이라는 말을 쓴 건 사람들에게 뉴에이지라는 장르를 쉽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에요. 클래식도 재즈도 아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배경음악 같은 곡이라는 걸 전하고 싶었죠. 옛날 선조 때도 그랬잖아요. 시가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음악이 시가 되기도 하고.”

데뷔 10주년 음유시인 이루마가 들려주는 나의 음악, 나의 가족


사랑스러운 딸 로운이, 음악적 재능은 아빠 판박이
그는 2007년 탤런트 손태영의 친언니로 미스코리아 출신의 동갑내기 손혜임과 결혼했다. 배우 권상우와는 동서 간이다. 연예인 집안이다 보니 인터뷰할 때마다 권상우·손태영 부부의 근황을 묻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고. 이루마는 “제 기사인데 동서(권상우)네 얘기가 더 많을 때도 있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동서는 요즘 성룡과 함께 영화 ‘12 차이니즈 조디악 헤즈’를 촬영하고 있어요. 아이를 무척 좋아해서 시간 날 때마다 집에 놀러 오는데, 제 딸이 굉장히 잘 따라요. 가족끼리 자주 모임을 가지고, 가족 여행을 좋아하고, 무척 가정적인 사람이고,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결혼 전부터 늘 대가족을 꿈꿔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2008년 예쁜 딸 ‘로운’이를 얻었다. 딸 이름은 순 한글로 아내가 직접 지었다.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에요. 신기한 게 어떤 이름을 붙이면 그 이름처럼 돼가는 것 같아요. 제게 정말 ‘이로운’ 아이죠(웃음). 아이가 말도 잘하고 고집도 센 것이 저를 꼭 닮았어요. 춤과 노래도 즐기고 음악에도 관심 많고. 그 나이 땐 다 그런다고는 하는데 제 아이라서 그런지 남달라요. 자기가 무대 꾸며놓고선 ‘아빤 앉아서 봐’ 하곤 춤추고, 노래 연주해달라고 하곤 춤추고. 한동안은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곡을 쳐줬어요. 딴~딴딴딴딴딴 치면 자기가 ‘팬텀’이 된 것마냥 사방을 유령처럼 돌아다녔죠.”
그를 닮아 딸도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졌다. 그는 로운이의 성대모사까지 해가며 ‘사랑스러운 딸’을 자랑했다.
“밖에서 사람들이 로운이에게 ‘넌 어쩜 이렇게 하얗니’ 하면 진지한 표정으로 ‘복숭아를 먹었거든요’ 얘기해요. 진짜 얼굴이 베이비 핑크예요. 귀여워요. 특별한 음악 작업이 없으면 오후 6시에 귀가하는데 요새는 항상 선물을 기다리더라고요. ‘아빠! 아빠!’ 하고 나와서는 ‘오늘은 뭐 사왔어요?’ 물어봐요. 껌이나 초콜릿을 하나씩 사서 들어가면 참 좋아해요. 머리도 많이 길렀어요. 예뻐요. 저는 정말 딸이 좋아요. 딸이 제게 어울리는 것 같고요. 동서는 운동 같은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 게 딱 아들이 어울려요(웃음). 제 딸을 위해서는 뭐든 해주고 싶고, 나중에 커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하는 게 아빠 마음이죠.”
그의 딸은 엄마와 백화점에 장 보러 가서도 ‘징글벨’을 영어로 부르며 돌아다닐 정도로 음악을 좋아한다. 음정도 정확하고 당김음도 잘 활용하는 게 아빠의 재능을 물려받았다.
“로운이 장래 희망이오? 만화 캐릭터가 되고 싶대요. 요새 ‘폴리’가 유행이에요. ‘로보카 폴리’. 거기 나오는 ‘앰버(분홍색 앰뷸런스)’ 캐릭터가 있는데 ‘로운이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물으면 ‘앰버’ 하고 말해요. 자기 전에도 ‘아빠, 나는 뮤지컬 하는 꿈을 꿀 거야’ 그래서 ‘뭘 하고 싶니’ 물으면 ‘앰버가 돼서 뮤지컬을 하는 꿈을 꿀 거야’라고 답해요. 큰일 났어요. 앰뷸런스가 된대요(웃음).”
이루마는 2012년 새 앨범을 내고 외국에서의 활동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그의 음악은 최근 유럽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TV 프로그램 삽입곡으로 자주 쓰이고, 독일 클럽에서는 하우스풍으로 편곡한 그의 음악을 틀어준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 욕심도 밝혔다.
“완전한 예능은 아니더라도 토크쇼 같은 프로그램에는 나갈 생각이에요. 그렇잖아도 (신)동엽 형이 ‘이제 방송에 좀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이루마는 모르더라도 제 음악은 한 번씩 접해보셨을 테니 이제 대중에게 다가가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대극장 말고 소극장 공연도 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편안한 분위기에서 같은 공기를 맡으며 연주하면 재미있죠. 더 자유롭고요.”
자신의 음악을 누군가가 들어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이루마. 누군가의 삶, 그 배경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공기 같은 음악. 이루마라는 강은 그런 음악을 자신의 손에서 사람들의 귓가로, 마음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장소협찬 | Cafe SCENE(02-745-1565)
여성동아 2012년 1월 5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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