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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밴드 ‘위대한 탄생’ 리더 최희선 기타에 죽고 산 음악인생 40년

“조용필과 만남은 운명, 살아 있는 한 그의 곁에서 기타 치고 싶어”

글·정혜연 사진제공·최희선

입력 2011.07.18 17:06:00

18년간 조용필과 함께한 밴드 ‘위대한 탄생’의 리더이자 대한민국 대표 기타리스트 최희선은 네 살 때 처음 기타를 손에 쥔 이후 40여 년간 기타를 놓지 않았다. 6월 중순 ‘2011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전국투어’를 마친 그를 만났다.
조용필 밴드 ‘위대한 탄생’ 리더 최희선 기타에 죽고 산 음악인생 40년


도저히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20대 뺨치는 패션 감각에 군살 없는 몸매,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에 주름살 없는 얼굴까지 동안의 모든 조건을 갖춘 기타리스트 최희선. 조용필과 함께 18년 동안 각종 공연을 치러온 밴드 ‘위대한 탄생’의 리더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라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그에게서 음악에 빠져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최희선은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 깜짝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조용필의 명곡들을 미션 과제로 받은 도전자들과 반주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방송 직후 제 팬카페 접속자 수가 1천7백 명을 넘었어요(웃음). 사람들 반응이 의외로 뜨거워서 놀랐죠. 사실 그 팬카페도 콘서트에 오셨던 분들 중 몇몇이 지난해에 만들어준 거예요. 쑥스러워서 그만두라고 했는데 뭐 자기네들끼리 노는 용도로 쓰겠다고 해서 말리지 않았죠. 그때 봤던 그 친구들(‘위대한 탄생’ 도전자)을 얼마 전 게리 무어 추모 공연에서 또 만났어요. (김)태원이가 못 올 상황이었는데 멘티 3명을 데리고 왔고, 자우림 멤버들도 다 왔어요. 스케줄이 바빠서 기타 치는 후배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데 공연 때나마 볼 수 있어서 좋았죠.”

조용필과 18년째, 이제 다른 가수와는 못 할 듯

조용필 밴드 ‘위대한 탄생’ 리더 최희선 기타에 죽고 산 음악인생 40년


그는 지난 6월 중순 ‘2011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전국투어’ 콘서트를 마쳤다. 2년 만에 열리는 전국투어라 반응이 뜨거웠다. 한국 가요계의 전설적 존재인 조용필은 콘서트를 열 때마다 건재를 증명한다. 최희선은 이 독보적 존재인 가왕(歌王)과 18년째 함께 하고 있다.
“이렇게 조그마한 나라에서 저희만큼이나 공연을 많이 한 사람도 없어요. 올림픽 주경기장, 월드컵 경기장, 지방의 각종 경기장까지 돌아다니며 얼마나 공연을 했는지 손에 꼽을 수도 없죠. 요즘 가수들 중에서는 (김)장훈이, (이)승철이가 공연을 많이 했다지만 아직 멀었어요. 제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용필이 형 덕분이죠.”
밴드 ‘위대한 탄생’의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조는 74년 결성된 후 5년가량 부산 등지에서 활동해온 ‘조용필과 그림자’인데 79년 대마초 연예인 활동 규제 철폐와 더불어 밴드 이름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으로 바꾸게 된다. 이후 여러 차례 멤버 교체와 재결성을 거듭하다가 80년대 말 조용필이 주 무대를 일본으로 옮기면서 일본 내 백밴드가 만들어져 ‘위대한 탄생’은 해체됐다. 하지만 조용필은 93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음악인생 25년 기념 콘서트를 열며 한국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이때 ‘위대한 탄생’을 부활시켰고 최희선은 그 당시 합류해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90년대 초까지 일본에서 많은 공연을 하고 당시 형은 휴식기를 갖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한국 활동을 결심하고 일본에 있던 밴드를 해체하면서 다시 밴드를 만들려는데 그게 잘 안 됐던 모양이에요. 마침 저는 최태완, 이태윤 등과 밴드를 만들어 공연하다가 얼마 못 가 해체하려던 참이었어요. 마침 용필이 형이 밴드를 같이하자는 제의를 해서 곧바로 의기투합했죠. 새로 밴드를 만들었으니 이름도 다시 지어야 한다고 하는 걸 ‘그냥 위대한 탄생이 재결성됐다고 하시죠’라며 밀어붙였어요.”
지금껏 몇 회 공연을 했느냐는 질문에 선뜻 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만큼 셀 수 없이 많은 공연을 했다는 뜻.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공연도 많을 법한데 특별히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을까.
“무대에서 운 적이 딱 두 번 있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이틀 뒤 무대에 올라 형님의 ‘한오백년’을 듣는데 울컥해지더라고요. 그 곡은 반주가 안 들어가기 때문에 기타를 내려놓고 조용히 들어서 그런지 더 감정이 격해졌던 것 같아요. 두 번째는 2005년 7월 평양에서 공연을 했을 때였어요. 공연 절반이 지날 때까지 관객들 반응이 없자 무슨 마네킹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줄 알았어요(웃음). 끝날 무렵 북쪽 노래를 몇 곡 하니까 그제야 분위기가 풀리면서 반응이 나오더라고요. 끝나고 박수갈채를 받는데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와 또 짠해졌죠.”
후배 가수들과 작곡가들이 단연 최고로 꼽는 조용필. 그런 존재의 노래를 곁에서 들으며 기타를 칠 때는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했다.
“들을 때마다 놀라운 건 가창력도 가창력이지만 서른 곡을 부르는데 흐트러짐 하나 없이 완급 조절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 분과 함께해왔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죠. 아마도 용필이 형님 이외에 다른 어떤 가수와는 함께 공연하지 못할 거예요.”
최희선은 기타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네 살 때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당시 유명 가수와 호흡을 맞췄던 아버지 덕에 그는 트위스트 김 등 유명인사들을 가까이서 보며 자랐다.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레 기타에 빠져든 그는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가서도 기타 실력을 뽐낼 정도였다.



조용필 밴드 ‘위대한 탄생’ 리더 최희선 기타에 죽고 산 음악인생 40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무교동 클럽에서 본격적으로 기타를 쳤어요. 그때는 전부 빡빡머리 시절이었으니까 가발을 쓰고 들어갔죠. (김)태원이, (김)도균이, (신)대철이가 강남과 강북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였다는데 그 전 세대엔 제가 전국구 본좌였어요(웃음). 20대 때는 하루에 잠자는 4시간을 제외하고 눈떠 있는 시간엔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았을 정도로 심취해 있었죠. 그때는 마음먹고 몇날 며칠 연습하면 원하는 대로 연주가 나왔으니까 정말 행복했죠.”
기타를 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 공연을 했던 20대 시절이었다. 당시 그는 우연한 기회에 한국 대표 기타리스트 신중현과 사제지간이 됐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주를 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었다. 최희선은 군 입대 전날까지도 신중현과 기타를 치다가 새벽 일찍 머리를 자르고 입대했을 정도였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어 마냥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무대에만 올라가면 거짓말같이 기운이 났다.
“노래하는 친구와 둘이 부산에서 일할 때 클럽 근처에 ‘서울 깍두기’라는 설렁탕집이 있었어요. 기본이 1천5백원이고 곱빼기가 1천8백원이었는데, 곱빼기 하나 먹는 날은 생일날이었죠(웃음). 지금도 후배들 만나면 그 시절 생각이 나서 먹는 것만큼은 아낌없이 사줘요.”

밥 못 먹어도 기타 있어 행복했던 시절
어려운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어느 날 뜻밖의 제의가 들어왔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많은 이들의 세션을 담당하며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날리자 유명 가수들이 그를 찾아와 앨범 녹음에 들어갈 반주와 편곡까지 부탁했다.
“편곡자, 스튜디오 세션맨으로 활동하면서 클럽 밴드 활동은 못 하게 됐죠. 그러고 있는데 80년에 솔로로 데뷔해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괜찮을 것 같아서 솔로 앨범을 준비하며 다섯 곡 정도 녹음했는데 기획사와 갈등이 생겨서 금방 접었어요. 솔로 데뷔가 원래 목적도 아니었고 당시엔 세션을 담당해주길 바라는 가수들이 많아서 원래 자리로 돌아왔죠. 솔로에 대한 미련이오? 그런 것보다 나중에 제 이름으로 된 연주앨범은 꼭 하나 내고 싶어요. 지금 써놓은 곡들이 좀 있어서 머지않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최희선은 한평생 기타를 쳤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지만 계속 반복하다 보면 싫증이 나기 마련. 기타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을까.
“2003년부터 한 3년 동안 슬럼프를 겪었어요. 30대까지만 해도 마음만 먹으면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었는데 그 무렵부터 이상하게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거예요. 여유를 가지자는 마음에 한 달 정도 기타를 안 치다가 다시 잡아도 예전같이 즐겁지가 않았어요. 뭔가 정체된 느낌이 들었고 기타에 손이 가지 않았죠. 그러다가 전 세계에 몇 대 없는 이펙트 시스템(전자기타와 스피커를 연결해 주는 장치)을 장만하면서 다시 불붙었어요. 미국의 밥 브래드쇼라는 엔지니어와 연결이 됐는데 만들어주겠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아무에게나 만들어주지 않거든요(웃음).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좋았죠. 완성된 이펙트 시스템을 통해 소리를 들으며 기타 연주법을 연구했고, 다시금 재미를 느끼면서 제 모습을 찾았죠.”
최희선이 기타를 잡은 지 어느덧 40여년이 흘렀다. 겉으로 보기엔 30대 못지않은 체력을 갖춘 듯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다. 그는 “요즘 들어 기타를 집어들 때면 무게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가끔 그는 골프를 즐기는 조용필을 따라 라운딩을 나간다. 그때마다 공연 준비하면서 연습에만 매진하느라 나누지 못한 많은 대화를 한다고.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음악적인 견해를 묻기도 하고, 골프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 편이다. 최희선은 “요즘 들어 형님이 ‘희선아, 공이 이상하게 똑바로 안 간다’며 한숨 쉴 때면 건강을 염려하게 된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연습하면서 ‘기타가 언제 이렇게 무거워졌지?’라는 말을 했는데 용필이 형님이 옆에서 그 말을 듣고 빙그레 웃으시더라고요. 내가 이 정도면 형님은 어떠실까 덜컥 걱정됐죠. 사실 전 용필이 형님이 건강하셔야 원하는 대로 연주할 수 있다는 걸 알거든요. 건강하게 늘 저희와 함께하셨으면 하죠.”
최희선은 전 세계 기타리스트 중 자신만큼이나 원하는 꿈을 다 이룬 사람도 드물 거라고 말했다. 젊은 날 원 없이 기타를 치고, 국내 내로라하는 가수들과 세션 작업을 했으며, 최고의 가수와 팀을 이뤄 지금껏 공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바랄 것 없지만 딱 한 가지, 언제까지나 무대에 서는 일만을 바라고 있다.
“신기하게도 저희 음악은 수십 번을 들어도 지겹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어제도 잠이 안 와서 예전에 했던 두 시간짜리 공연 녹음 CD를 끝까지 들었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수백 번 했던 공연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매번 다른 느낌이라 새로워요. 여태껏 미국·일본·호주 등 세계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공연을 하는 게 제일 좋네요.”

여성동아 2011년 7월 5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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