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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위안부 누드’ 파문의 중심에 선 이승연

“역사의 아픈 상처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돈독 오른 매국노라는 누명만은 벗고 싶어요”

■ 글·최호열 기자, 김순희 ■ 사진·조영철, 홍중식 기자

2004. 03. 04

지난 2월12일 탤런트 이승연이 종군위안부를 소재로 한 누드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시작된 ‘위안부 누드 파문’이 결국 2월19일 촬영한 사진과 비디오 테이프를 모두 소각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의 전말과 이승연의 심경, 또 다른 당사자인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심경을 취재했다.

‘종군위안부 누드’ 파문의 중심에 선 이승연

탤런트 이승연(36)이 종군위안부를 소재로 누드를 찍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종군위안부 누드 파문’이 결국 촬영한 사진과 필름, 영상물 전부를 소각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제작사인 네띠앙엔터테인먼트(이하 네띠앙)의 박지우 이사(30)가 2월19일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사과를 한 후 모든 촬영분을 불태워 없앤 것.
‘종군위안부 누드 파문’은 지난 2월12일 이승연과 네띠앙이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군 위안부 삶을 재연한 서사적인 영상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언론에서 이 영상 프로젝트가 누드라고 보도되면서 종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은 물론 많은 네티즌과 시민들이 분노했고, 파문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종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관련단체들은 2월13일 이승연과 네띠앙을 상대로 관련 사진·동영상 서비스 제공 금지 가처분신청을 서울지법에 냈고, 네티즌들은 인터넷을 통해 이승연을 강하게 비판하며 ‘이승연 퇴출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2월16일 네띠앙의 박지우 이사가 삭발을 하며 사죄했지만 이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박이사가 “촬영분을 파기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월16일 종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네띠앙 사무실을 찾아가 항의를 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자 이승연은 이튿날 이들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이날 이승연은 “정말 잘못했습니다.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란 말을 반복하며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누드 촬영분 사진과 필름의 완전파기를 요구하며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이승연은 그 자리에서 ‘그러겠다’고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이어 들른 정대협 사무실에서 신혜수 정대협 상임대표가 “네띠앙에 내일 오전 10시까지 사진과 동영상을 폐기처분하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도록 서면을 받을 것”을 주문하자 짤막하게 “예”라고 대답해 수용의사를 내비쳤다. 이로써 ‘위안부 누드’ 파문은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2월18일, 네띠앙이 ‘위안부 누드 촬영분에 대한 공정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 연예관계자를 비롯한 정대협, 일반인 등 각계 각층의 사람들 1백여명을 초청한 가운데 공개시사회를 열겠다’고 밝혀 사태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네띠앙은 자신들의 작품은 상업적 누드가 아니라며 “(기획의 순수성에 대해) 인정을 못 받을 땐 폐기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문제의 영상물을 공개하겠다는 것이어서 종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과 관련 단체, 네티즌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네띠앙은 다시 하루만인 2월19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날 오후 3시에 열린 기자회견은 오후 2시경에야 결정돼 언론사에 연락을 했을 정도로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60여명의 취재진이 모여든 가운데 박지우 이사는 기자들이 샘플 동영상을 보고 자신들의 순수성을 평가해달라는 뜻과 함께, 모든 촬영물을 소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동영상물은 3분30초 분량으로, 민요 ‘아리랑’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고 굴속에 갇혀 불안에 떠는 모습, 일장기를 밟고 지나가는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시사회를 마친 뒤 박이사는 건물 주차장으로 내려가 인화되어 있던 사진들과 1천5백여컷에 이르는 필름, 5개의 비디오 테이프 원본을 차례로 불태웠다. 이때 자신을 종군위안부 출신이라고 소개한 한 할머니가 뛰어나와 “이것도 종군위안부의 역사인데 왜 태우느냐”며 거칠게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이사는 “이제 후련하다. 나도 저 불 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촬영물을 모두 태운 후 “이승연씨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하면서 “할머니들을 눈물나게 해서 죄송합니다”하는 말을 남기고는 자리를 떠났다.

‘종군위안부 누드’ 파문의 중심에 선 이승연

논란을 일으킨 ‘종군 위안부 누드’(위).<br>나눔의 집 할머니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이승연.


한편, 네띠앙은 기자회견 20분전쯤 정대협과 나눔의 집 등에 공문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 나눔의 집 안신권 사무국장은 “할머니들 앞에서 직접 없애지 않고, 기자들을 불러 시사회까지 하고 소각한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어쨌든 소각을 했으니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본다는 게 할머니들의 생각이다”라고 했다. 그는 “인터넷에 영상물 일부가 떠돌고 있는데, 진상을 파악해 그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찍은 촬영물이 모두 불타고 있던 시각, 이승연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서울 구의동 혜민병원을 향하고 있었다. 지난해 허리 척추수술을 받았던 그는 수술 후에도 계속 허리 통증 때문에 치료를 받아왔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극심한 마음고생으로 허리 통증이 심해진 그는 이날 다시 치료를 받으러 갔다는 것.
측근에 따르면 허리 척추 치료는 수면상태에서 하기 때문에 이승연은 이날 자정 무렵에야 치료를 받고 깨어나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뒤늦게 소각사실을 들은 이승연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고.
“결코 상업적인 누드가 아니었는데도 결국 ‘종군위안부를 성 상품화한 파렴치한’이라는 혐의를 벗지 못한 채 일단락이 된 것이잖아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고 싶었는데 이제 그럴 기회를 잃어버려 아쉬운 듯 했습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은 것 같아요.”
이승연은 측근을 통해 “이번 일로 큰 상처를 받았다. 후유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당분간 세상을 등지고 푹 쉬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러면서 그는 파문이 확산되던 무렵인 2월14일 밤에 있었던 시사월간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게 자신의 가장 솔직한 심정이라고 했다.
그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기획의도와 상관없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점을 사죄하겠다”고 했다.
“돌로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죄를 할 거고요. 한 가지 두려운 건, 제가 그 분들에게 사죄를 하는 모습이 또다른 ‘쇼’로 비춰지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에요. 연출된 모습으로 언론에 비쳐질까봐 겁이 나요. 하지만 제 진심은 그게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면 설명드릴 거예요.”
이승연은 ‘위안부’ 관련 누드 영상물 제작에 동참한 이유에 대해 “(위안부 문제를) 잊고 있는 사람들이 한번쯤 그들의 아픔을 짚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터넷에서 봤어요. (황남주) 할머니가 ‘한번 찾아오지도 않던 X이 뭘 도와주겠다는 거냐’고 분노하는 것을. 인정해요. 한번도 찾아간 적 없었죠.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같은 여자로서 그분들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문제의 ‘위안부 누드’는 2월3~10일 필리핀 팔라우에서 1차 촬영이 되었는데, 여기서 이승연은 일본군에 짓밟힌 종군위안부를 누드로 표현했다. 또한 2차 촬영은 일본 후쿠오카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여기선 게이샤(일본 기생)가 된 위안부의 삶을 다룰 예정이었다. 기획안에 따르면 자결에 성공하지 못한 이승연이 일본에 도착해 게이샤가 되고, 일본 남자를 사랑하는 등 철저한 일본인으로 살아가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한국인임을 인식한 채 불행한 삶을 산다는 내용이었다.

‘종군위안부 누드’ 파문의 중심에 선 이승연

사진과 필름, 비디오 테이프를 불태우던 박지우씨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네팔에서 이뤄질 3차 촬영은 불교사원을 배경으로 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려 했고요. 새, 꽃 등 소품과 불교사원의 종교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국인이나 일본인 모두 인간일 뿐’이라는 화해의 메시지를 담을 예정이었어요.”
아울러 이승연은 “역사의 뒤안길에 버려진 아픈 영혼을 되새기고, 사업수익 중 상당 부분을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데 사용하겠다”는 의도였다고 했다.
“그분들의 분노가 무엇인지 아는데, 그 분노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면 제가 정말 미친 ×이죠. 상업적인 의도로 접근해 번 돈으로 도와준다고요? 그건 양심에 찔려서 못 할 일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제 말을 안 믿으려 해요.”

“연예계 떠나더라도 오해 풀린 뒤 떠나고 싶어요”
그는 또한 “누드라는 언론 보도 때문에 ‘상업적’으로 비난을 받는 것 같다”며 이번 영상물은 ‘누드’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2월12일 기자회견 때 배포한 보도자료에 ‘더 이상의 누드는 없다’고 했다가 뒤늦게 ‘누드가 아니다’라고 말을 바꾼다는 세간의 비난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팔라우에서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2월10일 새벽, 공항에 40여명의 기자가 나와서 ‘누드를 찍었냐’고 물어요. 아니니까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을 했죠. 누드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잖아요. 젖꼭지가 나오고 엉덩이가 나오고 성적충동을 느끼게 하는 상업적인 누드가 있는가 하면, 넓게 보면 등만 나와도 누드라고 볼 수 있잖아요. 제가 ‘누드를 찍지 않았다’고 한 것은 언론에서 말하는 상업적 누드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고, ‘더 이상의 누드는 없다’고 한 것은 (2월12일) 기자회견 때 배포한 사진 외에 더 이상의 노출이 있는 것은 없다는 뜻이었어요.”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이제 와서 ‘아전인수격 주장’을 펼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그는 “누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1차 촬영분 원본을 모두 공개할 수 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돈독 오른 매국노’라는 누명은 벗고 싶다”고 했다.
‘위안부 누드 파문’ 직후 KBS는 이미 촬영을 마친 ‘일요일은 101%’의 ‘꿈의 피라미드’ 코너에서 이승연이 등장하는 부분을 삭제한 채 방영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광고 계약이 파기되는 등 경제적인 손실도 적지 않다.
이승연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이번 사태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을까.
“왜요, 아무리 취지가 좋았더라도,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후회도 했어요. 그러다 다시 생각을 정리했죠. 저의 소신과 선택을 욕하는 것은 좋은데 의도만은 곡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그게 분명한 제 입장이에요. 좋은 취지에서 시작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고요.”
살아오면서 가장 큰 시련에 직면해 있는 이승연. 그는 현 사태가 “아이를 낳을 때만큼 힘들겠냐”며 “출산은 생사가 걸린 문제인데. 생사의 기로에 서 있지는 않다”며 애써 담담해 했다.
그는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결과가 이렇게 됐으니까 다 책임을 지겠다, 하지만 ‘돈독이 오른 나쁜 ×이 돼서 (연예계를) 떠나는 것은 집안 망신이다, 그 오해가 벗겨진 다음에 퇴출을 감수하겠다”고 했지만 그에게는 이제 그 오해를 풀어줄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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