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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부녀열전

드라마 ‘야인시대’에 출연중인 부녀 탤런트 정일모·정소이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진숙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3.07.09 18:10:00

SBS ‘야인시대’에 주먹계 대부와 그의 딸이 함께 출연하고 있는 것이 알려져 화제다.
정일모와 딸 정소이가 그 주인공.
과거를 청산한 뒤 10년째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정일모의 인생역정과 각별한 부녀의 정.
드라마 ‘야인시대’에 출연중인 부녀 탤런트 정일모·정소이

‘야인시대’에서 둘다 ‘주먹’으로 출연하는 정일모·정소이 부녀.


‘주먹계의 전설’ 김두한의 일대기를 그린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에 진짜 주먹계의 보스와 그의 딸이 나란히 출연해 화제가 되고 있다. 김두한의 최측근 부하인 홍만길로 출연하는 정일모(53)와 10공주파 리더 이영숙의 오른팔인 백장미 역으로 출연하는 정소이(21·본명 정은진)가 그 주인공. 드라마에서 이들 부녀가 맡은 배역 또한 둘다 ‘주먹’이다.
“‘야인시대’는 제 과거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 연기하기가 무척 편해요. 건달들 사이의 의리나 보스를 깍듯하게 모시는 행동들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액션연기도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하고 있어요.”
정일모는 80년대 중반 무렵까지 전국을 아우르는 주먹계 보스 중의 한명이었다. 그가 그 세계에 몸을 담게 된 건 권투를 하면서부터다. 71년 프로복싱 라이트급 신인왕 챔프로 화려하게 프로복싱계에 데뷔한 그를 주먹세계가 그대로 놓아두지 않은 것. 주먹세계로 ‘스카우트’된 그는 곧바로 주먹세계의 행동대장으로 활동했다. 그의 나이 21세 때다. 이때부터 파란만장한 ‘건달’생활이 시작됐다.
그는 절대 흉기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맨주먹으로만 승부를 펼치며 조직을 키워나갔다. 대구를 시작으로 각 지방에서 가장 잘 나가던 주먹들이 줄줄이 그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단숨에 전국의 조직을 평정한 그가 보스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80년대 후반 노태우 전대통령이 벌인 ‘범죄와의 전쟁’ 때문이다. 당시 전국의 모든 건달들이 너나없이 감옥신세를 져야 할 상황에 놓이자 그는 ‘변신’을 결심하고 과감하게 손을 털었다.
“제가 거느리던 조직이 대한민국 최고 사단일 때 자리에서 물러났어요. 그때 후배와 선배, 동료들로부터 원망도 많이 들었어요. ‘이 형의 깊은 뜻은 시간과 세월이 대신 말해줄 거다’ 하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는데 지금은 ‘형님 말이 맞았다’면서 후배들이 찾아와요. 그래서 후배들이 떳떳한 길을 걷도록 돕고 있습니다.”
‘변신’을 시도한 그가 연기자의 길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었다. 90년 어느날 한 술집에서 큰 싸움이 일어났는데 이를 보고 있던 그가 눈짓 하나로 싸움을 중지시켰다. 폭력배들이 그를 알아본 것이다. 우연히 그 술집에 있었던 영화감독이 그에게 영화출연을 제의해 91년 ‘신(新)팔도 사나이’에 출연하게 됐다. 이왕 하는 거 주연도 해보고 싶었던 그는 영화 ‘대명’의 신인배우 공모에 나섰고 4천2백 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이정재 역을 따냈다. 주먹세계의 실제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그를 따라올 상대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연기생활 10여년에 접어든 중견 탤런트가 됐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맡았던 역할들도 대부분 ‘주먹’이었다. 지난 92년 KBS ‘적색지대’에서 섬뜩한 마피아, 97년 KBS ‘용의 눈물’에선 이방원의 가신 정집사로 열연했다. 주먹계에서 손을 털고 나서 ‘남들이 인정해주는 직업으로 깨끗한 돈을 벌고 싶다’던 그의 소망이 이뤄진 셈이다.
그의 뒤를 이어 딸 정소이가 탤런트의 길을 걷게 된 데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피’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녀 역시 초등학생 무렵부터 무술이나 거친 운동에 흥미를 가졌던 것. 딸의 이런 모습조차 재능이라 여긴 아버지의 배려로 태권도와 합기도를 배우기 시작, 각각 2단의 실력을 쌓았다. 또 남자도 하기 어렵다는 무술 격투기로 몸을 단련했다.

드라마 ‘야인시대’에 출연중인 부녀 탤런트 정일모·정소이

아버지 정일모가 딸에게 드라마 촬영에 앞서 연기에 대한 충고와 무술지도를 하고 있다.


“연기자가 되고 싶어서 2년 동안 연기지도도 받았는데, 액션 연기는 할수록 재밌어요. 연기할 때마다 마치 춤을 추는 느낌이거든요.”
정소이는 영화 ‘색즉시공’에 에어로빅 선수로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현재 출연중인 ‘야인시대’에서도 그녀는 상대방과의 격투신 정도는 대역 없이 직접 하고 있다. 아버지는 “TV 드라마 사상 여자건달이 나오기는 처음일 것”이라며 자랑스러운 눈길로 딸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그가 딸을 대견하게 여기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아버지와 무관하게 순전히 자신의 실력으로 ‘야인시대’에 캐스팅되었기 때문. 무술로 단련된 딸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딸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장형일 PD와 이환경 작가에게 10공주파 두목 이영숙의 오른팔 역할을 할 만한 사람으로 딸을 추천했다. 스태프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그녀의 강렬한 눈빛과 과감한 액션연기에 반해 그 자리에서 캐스팅을 결정했다. 그는 딸의 드라마 출연이 확정되자 그제야 자기의 딸임을 밝혀 스태프들을 놀라게 했다.
“제 딸이라고 먼저 밝히면 캐스팅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까 일부러 말하지 않았죠. 딸 스스로 능력을 인정받아야 하니까요. 아직까지 표정연기는 미흡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차차 좋은 연기자가 될 수 있겠죠.”
부녀지간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 정소이는 아버지에 대해 새삼 여러가지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방송국에서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하나같이 아버지를 좋아하더라는 것. 처음엔 아버지의 과거사를 다 알면서도 사람들이 아버지를 따르는 것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곧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정일모는 그동안 과거 주먹계의 대부였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동료들에게 다정하게, 착실하게 연예계 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무척 성실한 분이죠. 항상 드라마 촬영 1시간 전에 현장에 나오셔서 연기 연습을 하고 계세요. 굳은 일도 마다하지 않으시죠. 또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고 베풀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따라요. 그래서 제가 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로 한번도 점심을 제 돈으로 사먹은 적이 없어요(웃음).”
서로 연기를 모니터링하면 싸우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며 마주 보고 웃는 두 사람. 그러면서도 딸은 아버지를 “연기 수업 한번 받지 않고도 당당하게 해내는 연기자”라고, 또 아버지는 딸을 “연기 초년생이지만 감각과 안목이 타고난 연기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즐비하게 늘어선 ‘어깨’들의 호위 속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부족할 것 없던 주먹시절에 비하면 초라한 연기생활이지만 정일모가 “즐겁다”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여성동아 2003년 7월 4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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