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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되어 살고 있는 시라소니 아들 이의현 목사의 인생역정

■ 글·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3.03.05 17:22:00

기막힌 인생유전이었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시라소니. 해방 전후 조선 최고의 주먹에서 종교인으로 변신했던 그의 극적인 인생처럼 외아들 이의현씨 역시 주먹인생을 살다 지금은 성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이씨가 처음으로 털어놓은 아버지 시라소니에 대한 추억과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목사되어 살고 있는 시라소니 아들 이의현 목사의 인생역정

이씨는 아버지 시라소니를 세상에 제대로 알리기위해 책을 펴낼 계획이다.


최근 청소년과 남성 시청자들 사이에 시라소니 바람이 불고 있다. 드라마 ‘야인시대’ 2부가 시작되면서 김두한(김영철 분)의 인기가 주춤하는 사이, 라이벌로 등장한 시라소니(조상구 분)가 강한 카리스마와 야성미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
‘전설의 주먹’으로 알려진 시라소니(본명 이성순)는 험난한 인생역정과 독특한 싸움스타일 때문에 일찍부터 만화와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 30대 이상 남성들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인기를 보여주듯 최근 ‘시라소니 평전’(동아일보사) 등 그와 관련한 책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고,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또다시 준비되고 있다.
해방 전후 김두한과 함께 조선 최고의 주먹으로 명성을 떨쳤던 그는 말년에 기독교에 귀의, 독실한 신앙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부자는 걸어가는 인생길마저 닮은 것일까. 젊은 시절 주먹인생을 살던 그의 아들도 지금은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어 눈길을 끈다. 경기도 일산 성현교회 담임목사로 있는 시라소니 아들 이의현씨(44)를 만났다.
수소문한 끝에 이목사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찾아가자 그는 “아버지는 10년 주기로 세상에 떠들썩하게 이름을 알린다”며 웃었다. 73년경 만화 ‘유지광의 주먹천하’를 통해 처음 시라소니란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고, 83년 그가 작고할 때 언론마다 앞다퉈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다뤘다. 또한 91년 시라소니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올해 또다시 ‘야인시대’로 붐이 일고 있으니 얼추 맞는 말인 셈이다.
그는 커다란 박스를 꺼내 보였다. 그안엔 시라소니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와 영화 시나리오, ‘스포츠동아’에 연재되었던 일대기를 비롯한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기사, 그리고 사진과 유품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시라소니란 걸 알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유지광의 주먹천하’란 만화를 통해서였어요. 해방 전후 주먹세계의 계보를 그린 만화였는데, 거기에 시라소니란 인물이 등장하더라고요. 처음엔 아버지인 줄 몰랐죠.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우연히 그 만화를 보시더니 ‘사실과 다르다’며 크게 역정을 내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알았죠.”
그는 어머니 이진옥 여사(74)와 함께 시라소니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노환으로 며칠째 몸져 누워 있던 이여사였지만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기운이 나는 듯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아버지는 신의주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셨는데, 할아버지가 그곳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웠을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다고 하더군요. 아버지의 형님인 이성덕씨는 조선 제일의 스케이트 선수로 베를린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었을 정도였죠. 그런데 아버지가 17세 되던 해에 할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집안이 망했대요. 그때부터 중국과의 밀무역에 나섰다고 하더군요.”
당시 밀수를 하기 위해선 시속 1백Km로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기도 하고 뛰어내리기도 해야 했다. 이를 통해 몸을 단련한 시라소니는 주먹으로 조선과 중국대륙에 이름을 날렸다. ‘시라소니’란 이름을 얻은 것도 이때였다. 시라소니란 어미로부터 버림받은 새끼호랑이를 일컫는 북한 사투리. 호랑이는 벼랑에서 떨어뜨린 후 살아서 기어올라온 새끼만 키운다. 이때 벼랑을 기어올라오지 못해 어미로부터 버림을 받았지만 죽지 않고 살아 혼자 자란 새끼호랑이를 시라소니라고 부르며 최고의 맹수로 친다.
아내를 끔찍하게 사랑했던 시라소니
해방 후 남한에 내려온 그는 홀홀단신으로 우미관의 김두한, 명동의 이화룡, 종로의 이정재와 함께 서울의 주먹세계를 제패했다.
“아버지는 잠시 인천 부두노조에서 활동하다 47년 다시 서울로 올라왔어요. 당시 서북청년감찰부장으로 활동했는데, 우연히 만난 어머니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고 하더군요.”
해방 전 조선 최고의 미인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동화백화점에서 근무했던 이여사는 백화점에서도 최고의 미인으로 꼽힐 정도로 미모를 자랑했다. 당시 이야기가 나오자 이여사가 말을 거들었다.

목사되어 살고 있는 시라소니 아들 이의현 목사의 인생역정

시라소니와 아내 이진옥씨(위). 동료들과 함께 찍은시라소니 모습(아래 사진 가운데).


“48년에 친척의 소개로 남편을 처음 만났는데, 솔직히 너무 못생겨서 안 만나려고 했어. 그러니까 하루는 우리 집안 친척들을 다 모이게 하더니 쌍권총을 딱 꺼내놓고 결혼을 안 시켜주면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을 하더라고. 그러니까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친척들이 서둘러 결혼을 시켰지.”
이여사에 대한 시라소니의 사랑은 끔찍했던 모양이다. 예쁜 아내를 얻었다는 기쁨에 외출할 때는 항상 데리고 다니며 자랑을 했고, 맛있는 음식점을 발견하면 꼭 다음에 데려가곤 했다.
“아이들에겐 무뚝뚝했지만 내겐 한없이 다정했어. 심지어 맛있는 걸 사가지고 오면 아이들 몰래 나만 먹게 했지(웃음). 남편은 나 때문에 아이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니까.”
그래서일까, 다른 주먹 거물들이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등 사생활이 복잡했던 것과는 달리 시라소니는 추문 한번 내지 않고 아내와 평생을 해로했다.
물론 남편이 주는 사랑만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깡패의 아내’란 손가락질은 차라리 견딜 만했다. 다른 주먹들과 달리 이권개입에는 흥미가 없어 집에 가져오는 돈도 없는데다, 우연찮게 돈이 생겨도 후배의 딱한 사정을 들으면 수중에 있던 돈을 다 털어주는 성격이어서 평생 지독한 가난이 이여사를 짓눌렀다.
“굶기도 많이 굶었지. 한번은 동회에 나가면 무상배급을 준다는데, 창피해서 구호 양곡 좀 받게 해달라는 소리를 못했어. 언젠가는 동장이 동회비를 걷으러 왔다가 사는 꼴을 보고는 돈을 달라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밀가루 한 포대를 보내온 적도 있었어. 그럼 그걸로 일주일 먹고 살았지.”
아버지 닮아 주먹이 강했던 이의현씨
가난만 안겨주는 남편이 원망스럽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오히려 “남편이 나 만나서 고생을 했지” 하며 손사래를 저었다.
“처음엔 깡패란 것도 모르고 결혼을 했다가 나중에 알았어. 그래서 굶어 죽어도 좋으니 제발 나쁜 짓은 하지 말라고 간청했지. 그런데 나쁜 짓을 해야 돈이 생기는 거잖아. 그걸 못하니까 남편도 답답했던지 자기를 원망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하지만 그 덕분에 남편 이력서엔 평생 빨간 줄이 하나도 없어.”
이여사의 인생에 결정적 변화의 계기가 온 것은 53년 1월, 남편이 이정재 일파에게 테러를 당하면서였다. 이 일을 계기로 시라소니와 이정재의 관계는 크게 악화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남편을 구원하기 위해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어. 하지만 남편은 총을 가지고 다니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지. 하지만 결국 암살을 하지는 못했어. 그후에도 여러 차례 테러를 당했지만 천하제일 주먹인 남편을 쓰러뜨릴 수는 없었지.”
그는 남편의 싸움실력에 대해 특기인 공중제비돌기와 박치기는 숱한 전설을 낳을 만큼 대단했다고 자랑했다.
“당시 남편을 테러하기 위해 일부러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많았어. 그러면 남편은 되도록 싸움을 피했지. 하루는 나랑 같이 길을 걷는데 누가 시비를 거는 거야. 나는 그때 싸운지도 몰랐어. 눈 한번 깜빡이고 나니까 시비를 걸었던 사람은 맞아서 쓰러져 있는데 남편은 어디에 있는지 안 보이는 거야. 그 정도로 빨랐어(웃음).”
시라소니는 여러 면에서 이정재와 비교가 되었다. 이정재가 자유당과 관계를 맺고 세력을 확장할 때 그는 조봉암을 경호하는가 하면 정·부통령 후보로 이승만-이기붕, 신익희-장면이 맞붙었을 때는 민주당 경호를 책임지기도 했다. 당시 자유당에서 트럭 세대에 깡패들을 실어서 민주당 유세장을 박살내려고 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깡패들이 유세장에 왔다가 시라소니가 있는 것을 보고 그냥 돌아갔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 사실을 알고 이기붕씨가 자기 쪽에서 일해달라며 돈다발을 한 박스 보내왔어. 내가 거절하라고 했지. 그러니까 다시 명동공원을 주겠다고 제의를 하더라고. 그것도 거부했어. 이처럼 의(義)가 아닌 건 절대 하지 않는 분이었어.”
시라소니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 군은 전국의 폭력배들을 다 잡아들였다. 이때 시라소니도 구속되었다. 하지만 이여사가 다니는 교회 목사와 교인들이 탄원서를 내 풀려나올 수 있었다. 당시 아내의 간곡한 설득으로 주말마다 꼬박꼬박 교회에 나가는 등 신도들의 신망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정재는 목에 ‘깡패 오야붕’이라고 적힌 팻말을 매단 채 서울 시내를 행진하는 수모를 당한 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일을 계기로 시라소니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허무감에 빠져들었고, 말년에 아내의 소원대로 종교에 귀의했다.

목사되어 살고 있는 시라소니 아들 이의현 목사의 인생역정

이의현 목사 가족. 아들 믿음이가 시라소니를 꼭 빼닮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아이들도 어렸을 때는 모두 한주먹씩 했어. 지금은 모두 독실한 신자지만.”
그에 따르면 1남4녀 모두 힘이 세서 한가락씩 했다고 한다. 뉴질랜드에 사는 첫딸은 지금도 그가 나타나면 교민들이 싸우다가도 싸움을 멈출 정도고,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넷째딸은 상인들 사이에 싸움이 발생하면 해결사 역할을 한다며 웃었다. 둘째딸과 셋째딸 역시 일산과 평택에서 학교를 다닐 때 그 지역의 ‘짱’으로 명성을 날렸다고 한다. 막내인 이의현씨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아들 때문에 속을 썩였지. 학교에서 밤낮으로 부르는 거야. 아무튼 그 애도 가는 학교마다 왕이었어.”
옆에서 듣고 있던 이의현씨가 계면쩍은 듯 웃더니 한마디 거들었다.
“어머니의 신앙의 힘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도 그 세계에서 방황하고 있었을 겁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만능 운동선수였던 그는 주먹 하나는 자신이 있어 자꾸 싸움판에 끼여들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싸우면 아버지처럼 한번도 지지 않았다.
“점점 싸움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어요. 나중엔 하루에 한번이라도 싸움을 안하면 몸에 가시가 돋을 정도였어요(웃음). 당시 저에 대한 소문이 ‘앞 칠판에서 날아서 뒤 칠판을 발로 찬다’였어요.”
“아버지는 깡패가 아니라 진정한 스포츠맨”
론 그가 본격적으로 조직세계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닮아 조직을 생리적으로 싫어했기 때문이다. 또한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존재를 알고 난 후 ‘내가 가야 할 길은 이 길이 아니다’라고 결심을 한 영향도 있었다. 아버지가 걸었다 후회한 길을 아들이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였어요. 대대로 내려오는 폭력서클이 있었는데, 전 그곳을 택하지 않고 일부러 작은 서클 들어갔어요. 그때 그랬어요. 나를 좋게 받아주면 이 서클을 학교 짱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실제 그렇게 만들었어요.”
그의 이런 반 주먹인생은 대학 2학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런 삶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80년이었다. 아버지가 급작스런 장출혈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가 병원을 찾았을 때 이미 아버지의 심장박동을 알려주는 기계의 그래프는 일직선을 긋고 있었다.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그순간 이씨는 자신도 모르게 절규하며 기도했다고 한다. 그렇게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한 이씨의 기도가 50일을 이어졌고, 결국 기적처럼 시라소니는 살아났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기독교로 완전히 귀의, 신학대학으로 편입했다. 그리고 18년 전 아들이 목회자가 되기를 원했던 이여사가 우연치 않게 사놓았던 일산의 땅에 조그마한 교회를 지어 목회활동을 시작했다. 그게 바로 지금 그가 운영하고 있는 성현교회다.
“운명인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살 집이 없어 어머니가 삼양동 국유지에다 무단으로 집을 지어 그곳에서 살았어요. 어머니가 직접 벽돌을 한장 한장 날라 만든 집이었죠. 세 채를 지었는데, 그중 하나를 판 돈 3백만원으로 당시 허허벌판이던 이곳 일산에다 땅을 샀어요. 당시 제가 초등학교에 막 입학할 때였는데, 그때부터 어머니는 제가 나중에 목사가 되기를 기도하면서 교회를 지을 터를 사신 거라고 하더군요.”
그는 아내 김경애씨(44)와의 사이에 1남3녀를 두었다. 그는 아들 믿음이가 아버지 시라소니를 꼭 빼닮았다고 했다.
“전 아버지가 깡패가 아니라 진정한 스포츠맨이었다고 생각해요.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거나 조직을 접수하는 일이 없었어요. 누가 강하다는 소문이 들리면 가서 누가 더 센지 겨루어보는 식이었어요. 이겨서 형님 대접을 받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풍운아였죠. 사람들이 아버지를 좋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그동안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펴낼 생각입니다.”
그의 목소리엔 굳은 의지가 서려 있었다.
여성동아 2003년 3월 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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