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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독일 여행하고 돌아온 소설가 배수아 직격 인터뷰

■ 글·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2.11.21 10:08:00

“10년간 다니던 직장에 드디어 사표 내고 오랜만에 휴식을 즐기고 있습니다”
<부주의한 사랑> <나는 이제 네가 지겨워> 등 낯설고 독특하며 감각적인 이미지의 소설을 써온 작가 배수아. 지난 1년 동안 독일에 체류한 후 귀국해서 일절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던 그와 단독으로 만났다. 10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 살아가는 그가 털어놓은 요즘의 근황.
1년간 독일 여행하고 돌아온 소설가 배수아 직격 인터뷰
지난 1년 동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체류하다가 올 6월 귀국한 작가 배수아(37). 소설 , 에세이집 등 화제작을 써온 그는 90년대 등단한 젊은 작가군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파격적인 소설을 발표하기로 유명하다.
올해 여름 그가 독일에서 쓴 책 가 출간되었을 때 기자는 여러 차례 그의 연락처를 수소문했었다. 그러나 왠일일까. 배수아는 감쪽같이 증발해버린 뒤였다. 일산의 집은 이미 이사한 뒤였고, 휴직 상태였던 직장(병무청 김포공항출장소)에 문의해도 그의 연락처를 알 수 없었다. 출판사는 이메일 주소 외에는 연락처가 없다며 이메일을 보내라는 제안을 되풀이했다. 이메일을 여러 차례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다.
그러던 중 그의 신작 한권을 받았다. 제목은 . 출판사 측은 “어디에도 연락처를 노출시키면 안된다”고 작가에게 다짐을 받았다면서, 인터뷰 주선에 난색을 표했다. 결국 남은 것은 다시 이메일 주소뿐. 장문의 이메일과 질의서를 보낸 끝에 배씨가 답변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3일후인 지난 10월19일, 영풍문고에서 열린 작가 사인회에서 어렵게 그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트레이드 마크’인 일자로 자른 앞머리, 예전에 비해 머리 끝부분을 짧고 자유분방하게 커팅해서 귀여운 소녀처럼 보인다. 특히 나염이 된 황금색 중국풍 상의와 청바지 차림의 그녀는 마치 중국인형 같았다. 낯을 많이 가린다더니, 기자의 질문에도 그녀는 시선을 왼쪽 45도 아래 방향으로 내리깔고 뭔가 생각하는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거의 답변을 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그냥 사인회 하는 모습만 찍고 가면 안돼요?”라고 말한다. 일간지, 잡지의 인터뷰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가 이번에 에만 기사가 나간다는 것이 자못 난처한 듯했다. 결국 사인회가 끝나기를 기다려 겨우 두세 컷의 사진을 찍는 걸로 그와의 만남은 끝났다.
“난 친구가 없어요. 특별히 필요하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그의 신간 제목은 .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되지 않는 작중 화자 ‘나’는 독일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간다. 눈이 서서히 안 보이는 병을 앓고 있는 ‘나’는 ‘동물원 킨트’다. ‘동물원 킨트’란 ‘동물원에 속하고 싶은 사람’이며,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아도 혼자 자족할 수 있는 어떤 ‘고립의 정신’이다. 여기서 ‘동물원’이란 말하자면, 자신이 속하고 싶은, 혹은 되고 싶은 어떤 장소다. 어떤 이에게는 그게 ‘동물원’이 아니고 ‘바(bar)’거나 ‘영화관’이거나 ‘24시간 편의점’이거나 어떤 ‘지명’일 수 있듯이 말이다. ‘나’는 동물원 직원 채용원서를 쓰고 있다. 그런 그는 동물원에서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있는 또 다른 외국인 ‘하마’를 만난다. 그러나 ‘하마’는 갑자기 나타났을 때처럼 갑자기 사라진다. ‘나’는 작은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 ‘보도’와 외국인들을 지하 벙커로 안내하는 가이드로 일하는 대학생 ‘두스만’등을 통해 하마의 행방을 좇는다.
배씨는 실제로 동물원을 좋아한다. 독일에서도 동물원을 가장 즐겨 찾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동물원에 가서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걸어다니는 게 전부일 뿐. 문제는, 소설 속에서도 이미 썼듯이 “동물원 킨트가 자신이 왜 그렇게 동물원이라는 장소에 이끌리는지 분명하게 설명하기가 힘들다”는 데 있다. 그래도 작가의 입을 통해 동물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이 책을 내고 나면, ‘동물원이 무슨 의미냐’ 같은 질문을 가장 먼저 받겠구나 예상했어요. 그러나 그건 제겐 정말 대답하기 싫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동물원은 주인공이 여행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게 전부예요. 전 동물원이 하나의 의미로 규정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적으로 동물원을 좋아해요.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동물원은 적어도 한국에는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제가 ‘동물원’이라고 발음하면 그게 전달되는 사람에게는 서울대공원이나 에버랜드 사파리쯤으로 들릴 게 분명하기 때문이죠. 전 차라리 이런 식의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책을 직접 읽은 분들이 그 뜻을 직접 알게 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이 소설은 독일에서 쓰여졌다. 그는 작년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1년 동안 독일을 여행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바로 사표를 냈다. 세계 여러나라 중 그가 유독 독일을 택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에요. 절 친절하게 도와주었던 사람이 독일에 연고지가 있었기 때문에 간 거죠. 그래서 비교적 비용도 적게 들었고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없고 거기서 와 의 대부분을 쓰며 보냈어요.”
그를 만나기 전 출판사측은 “독일에서 무엇을 했느냐 류의 질문을 싫어한다”고 귀띔해준 바 있다. 아마도 배수아씨는 여행 한번 간 걸 가지고 뭔가 대단한 의미를 붙이려 하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아니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뭔가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데 진력이 난 것이거나.
“직장을 그만둔 건 그동안 노동자의 생활을 10년이나 했으니 이제 노후의 휴식을 준비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어떤 사람은 너무 이른 거 아니냐고도 했지만, 글쎄요. 보통의 경우 은퇴의 시기를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30년 동안 일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쳐요. 난 아이가 없으니까 그 시기를 삼분의 일로 줄인 거예요. 근데 생각해보면 우리의 급여 시스템은 경력 위주로 환산되니까, 초기의 10년 동안 벌어들인 급여와 이후 10년 동안 벌어들인 급여는 상당히 차이가 나잖아요. 결국 제 계산이 틀린 거죠. 하지만 전 노동의 시간만을 계산해서 은퇴의 시기를 결정했어요. 그게 나에게는 더 유리하다고 생각됐으니까.”
쉬는 동안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책상을 페인트칠하는 거였다고 했다. 원래 손재주가 없는 편이라 책상은 몹시 흉하게 칠해졌고 또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자신의 힘으로 모습이 바뀐 책상을 보니 퍽 마음에 들었다고.
배씨의 소설에는 비록 생물학적으로는 20대 혹은 30대이지만,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인물들에게 평론가들은 ‘신세대의, 불온한, 불순한’ 등의 수식어를 붙여왔다. 그런 그에게 서른일곱이라는 나이는 어떻게 느껴질까.
“서른일곱이라는 숫자를 생각하면, 생물학적으로 너무 늙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하거나 공부하는 데 있어서 그렇다는 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받아들여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또 다른 면으로는 전 20대 후반 이후 ‘사회적 연령’이라는 것이 없는 진공상태로 살아왔거든요. 이 질문을 받고 생각하게 된 거지만, 이제 전 늙었다는 걸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고 거기에 걸맞게 현명해지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그에게 ‘사회적 연령’이라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때가 되면 결혼하고 아기 낳고 하는 일상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는 그. 새로 마련한 집에서 ‘걸리적거리는 게 싫어서’ 여전히 혼자 살고 있다는 그는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직장 선후배, 친구, 가족, 촘촘히 짜인 사회적 그물망에 비해 매우 헐거운 그물망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전 활동적인 편도 못 되고, 친구도 별로 없어요. 이성 친구이건 동성 친구이건 간에, 별로 친구를 원하지도 않고요. 최근 많이 느낀 건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상대편도 별로 절 친구로 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이라면 남자나 여자 어느 쪽이든 불편해요. 이성이라고 특별히 점수를 더 주는 것도 없고요.”
대신 그가 한동안 마음을 주었던 대상은 강아지 누렁이. 그러나 강아지는 몇년 전 사람으로 치자면 ‘자폐증’ 같은 병에 걸려버렸고, 보다 못한 그는 강아지를 시골의 아는 사람에게 맡겨버렸다.
“나중에 그 사람이 강아지의 병이 깊어져서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하더군요. 더 이상 묻는 게 두려웠어요. 그래서 그 이후의 일은 몰라요. 전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그 사람과도 연락이 끊겼지요.”

스물여덟의 여자는 어느날 서점에 갔다. 파스텔 컬러의 표지가 예쁜 잡지가 눈에 띄었다. 그것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소설을 써서 보냈다. ‘문예지’가 뭔지도 몰랐던 여자는 그리하여 ‘소설가’가 되었다. 이건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배씨의 실제 이야기다.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93년에 데뷔작 을 발표하기 전까지 그는 소설을 써본 적도, 자신이 작가가 되리라고는 한번쯤 꿈꿔본 일도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운명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전 운명이나 그런 건 믿지 않아요. 뭔가를 믿기엔 전 심하게 게으르고 신념이 없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변덕이 심하니까요.”
벌써 발표된 지 10년이 가깝지만, 그의 소설은 여전히 너무나 낯설다. 어떤 이에게 배수아의 소설은 ‘매혹’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고문’이다. ‘90년대의 문학이 배태한 이질스럽고 지리멸렬한 환멸적인 이야기의 한 극점’이라거나 혹은 ‘이미지에 중독된 자’라거나 ‘우리 문학사에서 선례를 찾기 어려운 이단의 글쓰기’와 같이 엇갈린 평가들이 오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할 정도로 그의 소설문법은 기존의 문학적 전통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여기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별로 신경 안 써요. 평론가들이 하는 말 중에서 제일 시시하다고 생각한 건 ‘신세대 운운’하는 평이에요. 비교적 공정하고 맞는 평가는 제 글에 오문과 비문이 많다는 거지요. 맞아요. 전 어느 경우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기도 해요.”
배씨는 스스로 상당히 ‘냉정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필요에 따라 상냥한 척도 잘하지만, 근본은 냉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시끄러운 록음악과 깊이 있는 클래식음악을 포함해 온갖 음악을 다 들을 수 있지만,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발라드’는 끔찍할 만큼 싫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로트는 즐겨 듣는다니 의아하다. 또 TV를 볼 때도 ‘휴먼 스토리’류의 작품이 나오면 절대로 보지 않는다. 대신 즐겨보는 건 호러영화.
감정의 분출을 싫어하는 그의 이런 성향은 자신의 작품에도 적용된다. 그는 작중인물에 동화되지 않도록 늘 주의하며, 경험이 바탕이 되는 글이 아니라 허구를 쓰려고 노력한다. 또한 이미 발표된 작품들에는 미련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은 늘 최근에 쓴 글이며(그는 “요 근래 쓴 소설 중에는 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옛날 작품일수록 일단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제가 요즘 처한 가장 큰 어려움은 머리가 느리게 돌아간다는 거예요. 글을 쓰면서 그걸 절감하게 되었어요.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잘 모르고 살았을 텐데…. 지금은 바꿀 수도 없는 문제니까. 욕심 같지만, 좀더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하고 싶어요. 라틴어를 공부하면 어떨까? 아니면 광물리학이거나. 제가 전혀 해보지 않았거나 현실적으로 유리하지 않은 그런 걸 공부해보면 조금 나아질까…? 하지만 아직도 구체적인 길은 찾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머리 나쁘다는 걸 가르쳐준’ 소설 쓰기에 당분간 매달릴 계획이다. 지금껏과 마찬가지로 그의 소설은 앞으로 사람들에게 잘 읽히거나 동감이 쉬운 그런 작품들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생명체가 아닌) 사물로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 혹은 자아발휘 욕구의 억제, 성 정체성의 거세 등에 관심이 간다”는 그가 독자에게 특별히 친절한 소설을 써줄 것이라는 기대는 아예 접어야 할 것 같다. 하긴, 세상에는 오직 그의 소설만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독자도 분명 있을 수 있다.
“전 물고기자리 여자예요. 그래서인지 저 자신이 어류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비린내가 나는 냉혈동물 말이죠.”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는 아마 물고기자리 별점을 제대로 읽지 않은 모양이다. 현금 지위 명예와 같은 세속적인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물고기자리. 그들은 창조적이고 예술적이며 은밀하고 비밀이 많다. 물속을 평화롭게 유영하는 어류처럼 누구보다 평온하게 인생의 격랑을 받아들이는 그들. 까다롭고 퉁명스러울 때도 있지만 누구보다 상처받기 쉽고, 또 마음이 따뜻한 게 물고기자리라는 것을 말이다.

여성동아 2002년 11월 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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