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자이언트’ 스페셜 ②

‘자이언트’ 빛낸 악역 윤용현·박수진 부부 인터뷰

“아내가 바라는 것처럼 끝까지 배우로 남고 싶어요”

글·이혜민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 ■ 장소협찬·충정각 ■ 의상협찬·엘부림 타임 ■ 헤어·재영(앳폼 조성아) ■ 메이크업·테미(앳폼 조성아) ■ 스타일리스트·김소영

2011. 01. 18

결혼은 동반자와 떠나는 기나긴 여행이다. 인생이란 여행길이 때로 험난하지만 그럼에도 견뎌낼 수 있는 건 옆 사람이 건네는 따뜻한 손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 ‘자이언트’에서 빛나는 존재감을 보여준 배우 윤용현 역시 아내가 있어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한다.

‘자이언트’ 빛낸 악역 윤용현·박수진 부부 인터뷰


드라마 ‘자이언트’를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사람을 수하에 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조필연(정보석)이 아무리 궂은일을 시켜도 “예! 알겠습니다!”라고 답하며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고재춘은 근래 보기 드문 충복 캐릭터. 심지어 자신이 따르던 자가 파멸의 순간에 이르자 ‘의원님은 언제나 지존의 모습이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런 그의 모습 때문인지 ‘의리 있는 자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고재춘을 연기한 배우 윤용현(41). 그의 실제 모습이 궁금해 인터뷰를 청했다. 하지만 막상 만난 그는 “드라마 ‘종방연’에 같이 가려고 아내도 마침 서울로 오는 중인데 함께 인터뷰하면 좋지 않을까요”라며 머리를 긁적이곤 웃었다. “4남1녀 중 넷째인데도 그나마 형편이 나아 파주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아내에게 숨통을 트여주고 싶어 기회가 되는 대로 함께 나온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 박수진씨(33)가 나타나자 그의 표정이 금세 환해졌다. 지인들 전화를 받느라 분주한 두 사람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얻은 것이 많은 듯했다. 특히나 윤용현은 “조연인데도 인정받는 것 같다”며 기뻐했다.
“‘야인시대’ ‘대조영’ 때도 기억해주셨는데 이번에도 알아봐주셔서 기분 좋죠. 주변에서 ‘너 같은 부하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제대로 연기한 것 같아 뿌듯해요(웃음).”
사실 윤용현은 자신이 맡은 역할이 오래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악역인 조필연을 끝까지 보필하며 첫 회부터 마지막 60회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윤용현은 묵직한 감동을 전해주는 존재가 됐다. 그런데 도리어 그는 “회를 거듭할수록 괴로웠다”고 했다. 연기력을 발휘하지 못해서다.

카리스마 있는 충복 연기 위해 8kg 감량
“감정을 절제하고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재춘이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대목은 마지막 회에 자살하는 장면, 딱 하나뿐일 거예요. 명령을 받으면 지체 없이 ‘예! 알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게 대사의 전부이니까 배우의 감정이 들어갈 틈이 없었던 거죠. 물론 배우로서 내 감정에 취해 애드리브를 할 수도 있었지만 참았습니다. 조필연이 ‘속초에 가라’고 할 때 단칼에 ‘알았다’고 하지 않고 ‘속초요~?’ 하고 반문하는 건 고재춘 스타일이 아니니까요. 만약 제가 대사에 감정을 실었다면 시청자들이 고재춘을 좋아해주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저 사람은 저런 연기밖에 못 하나’ 비웃을 것 같아 괴로웠지만 작가님과 감독님만 믿고 연기하길 잘했어요. 덕분에 악역을 보필했던 제가 미움 받지 않고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있잖아요(웃음).”
가만히 남편의 말을 듣던 아내가 “당신이 대사를 어떻게 바꿨어도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라며 장난을 건다. 그러면서도 그간 남모르게 고생한 남편을 치켜세웠다.
“남편은 카리스마 있는 충복을 연기하고 싶어했어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그런 사람이요. 그래선지 극 초반에 20대 소위를 연기할 때는 8kg을 빼더라고요. 입에서 역한 냄새가 날 때까지 물만 먹고 굶으며 친정엄마가 보내주신 보약도 식욕이 좋아진다는 이유로 마다하더라고요. 보좌관 역할을 할 때는 날카로운 인상을 풍기기 위해 양복을 따로 맞춰서 몸에 꼭 맞게 입었고요. 이러저러한 노력을 하면서 역할에 대해 많이 연구해왔는데, 늘 그렇지만 이제 좀 캐릭터를 알겠다 싶을 때 작품이 끝나던데요(웃음).”

‘자이언트’ 빛낸 악역 윤용현·박수진 부부 인터뷰


옆에서 “맞다, 맞다”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윤용현은 “끝날 무렵에는 좀 알겠는데 방영되는 중간에는 연기가 늘 어렵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방송을 보곤 왜 이런 감정을 풀어내지 못했을까, 저렇게 연기한 게 맞았을까 고민하다 밤새 뒤척이는 일이 많은 것도 연기에 대한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남편을 아내는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고 했다. 특히 “방송에 나오는 부분이 많지도 않은데 매일같이 촬영장에 가는 상황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 하지만 그만의 사정이 있었다.
“와이프한테 미안하긴 한데 그럴 수밖에 없어요. 바쁜 배우들이 많은데 거기에 저까지 바쁘다고 하면 촬영이 되겠어요? 그래서 촬영 시간이 나느냐고 물을 때마다 안 된다고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마 하루에 한 신 찍은 경우로 치면 제가 가장 많을걸요. 현장에 가서 그저 말없이 기다리다 보면 화날 법도 하지만 드라마가 공동작업인 걸 어쩌겠어요. 그저 폐 안 끼치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죠.”
이런 우직함이 오늘의 그를 만든 동력인 듯했다. 하지만 그는 “보석이 형 때문에 나도 빛을 받게 된 것뿐”이라며 그 공을 연기 파트너인 정보석에게 돌렸다. 어쩌면 1년여간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닌 사이기에 그에게 갖는 감정이 남다른지도 몰랐다.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보석이 형이 포옹을 하면서 ‘고재춘이 있어서가 아니라 네가 고재춘 역할을 해서 형은 정말 든든했다. 덕분에 편히 연기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촬영 중간에 고맙다느니, 잘했다느니, 그런 말 없이 프로답게 연기하고 끝냈거든요. 그런데 형이 마지막에 그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행복하던데요(웃음). 그러고 보면 저는 극 중에서 보석이 형만 사랑했던 것 같아요. 끝까지 결혼도 안 하고 보필만 했더라고요(웃음).”



조필연 보필하는 고재춘처럼 아내 아끼는 남편
이런 고재춘을 보면서 아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실제 모습에 혹 이질감을 느끼진 않는지 궁금했다.
“재춘이처럼 나쁜 일도 서슴지 않는 무서운 사람은 아니에요(웃음). 도리어 남들의 나쁜 점도 다 받아주는 넉넉함이 있어 주변에 사람이 많죠. 재춘이처럼 제 말에 늘 동의해주는 것도 아니고요(웃음). 아침에 나온 국이 점심에도 나오면 싫은 내색도 하거든요. 하지만 조필연 옆에 고재춘이 있어주는 것처럼 제 곁에 있어주려고 해요. 의논할 일이 있을 때는 꼭 얘기하고, 제가 껴서는 안 될 자리인 것 같은데도 꼭 데리고 다녀요. 어떤 분은 그런 저희의 모습을 좋지 않게 보셔서 부담스럽기도 한데 그래도 같이 가자고 해요.”
얘기를 곰곰이 듣다 “그래도 난 꼭 데리고 다닐 거야”라고 선언하듯 말하는 남편을 보자 아내가 빙긋이 웃는다. 결혼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무일푼으로 상경해 스물일곱 나이에 MBC 공채 탤런트 23기가 됐는데도 “부모님께 어느 정도 경제적인 도움을 드리고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채를 마련한 뒤 아내를 맞고 싶었기 때문”에 결혼을 미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기인 안재욱이 별처럼 뜰 때 감독님들에게 ‘제발 저도 역할 하나 달라’고 부탁해 MBC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에서 이상한 역할은 모조리 맡았다”는 그는 그런 연기가 싫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악역 연기만 한다는 것이 상처가 될 법도 하건만 “돈 걱정하지 않고 부모님 보험 다 붓고 용돈 50만원씩 드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그의 인생도 쉽게 풀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충남 홍성 태생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줄곧 오락부장을 하던 끼로 배우를 꿈꿨지만 대입에 실패한 것. 스무 살에 극단 오디션에 합격해 연극배우가 됐지만 계속 허름한 곳에서 살 자신은 없었다고 한다. 연기학원을 다니며 생계를 위해 노래방에서 상영되는 배경화면 출연자 섭외를 할 때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운이 트이는 시기가 왔다. 우연히 영화를 찍다 만난 탤런트 임현식이 권유해 탤런트 공채 시험을 봤는데, 최종 시험을 앞두고 양옆으로 차가 오가는 자유로 잔디밭에서 일주일 내내 소리를 지르며 발성 연습을 한 덕에 품바와 판소리로 심사위원을 웃고 울리며 당당히 방송계에 입문한 것이다.

‘자이언트’ 빛낸 악역 윤용현·박수진 부부 인터뷰


아내는 “나쁜 역할을 맡긴 하지만 배우로서 조명 받고 분 바르는 게 좋다고 말하는 남편의 이런 열정을 사랑한다”고 했다. 윤용현 자신도 “탤런트가 된 후 줄곧 나쁜 역할을 맡았지만 이로써 일탈하고픈 욕망을 가상현실로 채우면서 나만의 개성을 만들게 됐다”며 호방한 웃음을 지었다. 어디를 가나 조금만 착하게 행동해도 “정말 인상 좋은 분”이라며 상대방이 마음을 여는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아내도 그의 ‘의외의’ 순박한 모습에 반했다고 한다. 윤용현은 후배 결혼식에서 반주를 해주던 시립합창단 피아니스트인 아내를 보곤 첫눈에 반해 데이트를 신청했는데, 아내도 그에게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제가 피아노를 쳐서 그런지 사람들 손을 유심히 보거든요. 그런데 남편 손은 제가 본 손 중에 가장 못생기고 투박하더라고요. 그만큼 고생을 해서 그런 거겠죠. 고생한 얘기 들어보면 정말 눈물 나실 거예요. 그래서인지 못하는 일 없이 뭐든 마다하지 않고 다 잘해요. 저는 못생긴 우리 남편 손을 정말 소중히 여겨요. 그래서 마사지도 틈틈이 해주고 자주 만져주고 손톱은 제가 꼭 깎아줘요(웃음).”
결혼하고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지만 함께한 모든 순간이 달콤했던 건 아니다. 부모님이 궁합이 나쁘다며 결혼을 반대해 6개월을 헤어졌다 다시 만나 결혼할 수 있었던 것. 문제는 결혼 1년 차에 다시 찾아왔다고 한다. “뜨거운 물도 안 나오는 시골집에서 두 분이 고생하게 하느니 모시고 와 같이 살면 좋겠다”는 남편의 청에 흔쾌히 동의했지만 함께 살면서 시부모와 부딪히는 경우가 생겼다. 다행히 이 문제도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돼 지금은 시부모와 함께 첫딸 다임이(3)를 보는 재미로 산다고 한다. 윤용현이 다임이를 “아프다고 하면 울컥할 정도로 소중한 딸”이라고 소개하자 아내도 지지 않고 아이 자랑을 한다.

‘자이언트’ 노래만 나와도 “아빠!” 외치는 딸 보는 재미
“딸이 태어난 지 25개월 됐는데 말을 정말 잘해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노래를 어찌나 잘 부르는지 몰라요. 남편도 아이가 부르는 그 노래를 좋아하고요. 텔레비전에서 ‘자이언트’ 방송 시작할 때 음악이 나오면 ‘아빠! 아빠!’ 하는 모습이 정말 귀여워요. 시어머님은 다임이가 그 음악을 기억한다고 ‘야가 보통 아가 아니다. 나가 키워본 아들 중에 가장 똑똑허다’며 칭찬해주시는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정보석씨 보고도 아빠라고 하거든요(웃음). 그래도 다임이가 ‘자이언트’ 애청자로서 아빠를 응원한 건 확실해요.”
아이 덕분에 웃다 보니 부부 사이도 더 좋아졌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넉넉한 남편이 좋다”는 아내와 “순간 욱하는 건 대한민국 최고이지만 아기처럼 해맑은 아내가 좋다”는 남편은 서로의 단점보다 장점을 보면서 아끼며 산다. 각자의 가족에게도 같은 마음이다 보니 윤용현이 ‘엄마’라고 부르는 그의 장모는 어느새 윤용현 홍보대사가 됐다고. 아내는 “가족들의 초점이 점점 남편과 딸로 옮겨지는 것 같아 소외감이 든다”며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현재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가족의 행복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인 만큼 어깨가 무겁다는 윤용현. 그는 “끝까지 멋진 배우로 남아줬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바람대로 “배우란 천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다.
“아내가 바라는 대로 살려고 노력해야죠. 또 그렇게 되어야 하고요. 앞으로 주인공이면 더 좋겠지만 솔직히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절절한 사랑 연기는 한 번쯤 해보고 싶어요. 워낙 강한 역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모든 여성들이 좋아하는 남자로 변해보고 싶거든요. 그리고 연기에 집중하더라도 가족들과 잘 지내야겠죠. 사람 욕심이야 한도 끝도 없지만 그것만큼 행복한 게 어디 있겠어요. 돈 좀 벌어서 가족들한테 용돈 마음껏 주며 살고 싶은데, ‘자이언트’ 같은 작품이 제 인생에 몇 번 더 찾아오면 그 꿈을 이룰지도 모르겠네요(웃음).”
너털웃음을 짓던 그가 인터뷰를 마치고 아내와 두 손 잡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그가 꿈꾸는 내일이 머지않을 듯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