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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x-file 김진 기자의 먹거리 취재 파일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꼼수 천연 색소

editor 김진 채널A 〈먹거리 X파일〉 진행자

작성일 | 2016.11.14

아이가 맛살이나 햄, 젤리 등을 먹고 알레르기 증상을 보인다면 포장지 뒷면을 확인해보라. 색소가 그 원인일 수 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꼼수 천연 색소

코치닐 색소는 중남미에 서식하는 선인장에서 기생하는 벌레에서 추출한 색소다. 이 벌레의 암컷은 몸의 마디마디에서 붉은빛을 뿜어낸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더 진한 붉은색이 만들어진다


얼마 전 채널A 〈먹거리 X파일〉 게시판에 식품 알레르기에 대한 주부들의 제보가 여러 건 올라왔다. ‘아이가 젤리만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서 진물이 날 때까지 긁어댄다’ ‘맛살이나 햄만 먹으면 아이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들이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젤리, 맛살, 햄, 과자 등으로 다양했지만 결과는 알레르기 증상으로 동일했다. 또 ‘원인으로 꼽은’ 음식을 먹지 않을 경우 알레르기 증상이 사라졌다는 점도 같았다.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이 많은 음식 중 무언가 공통적으로 들어간 문제의 물질이 있는 걸까? 서둘러 주부들이 문제를 제기했던 음식들의 포장지 뒷면을 살펴보았다. 작은 글씨로 무수히 많은 첨가물들이 표시돼 있었다. 글씨가 너무 작아서 ‘이걸 보라고 써놓은 건지, 보지 말라고 써놓은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런데 수많은 첨가물 중 공통적으로 들어간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코치닐 색소였다.

과거 코치닐 색소가 가장 많이 쓰인 식품은 딸기 우유였다. 우리가 알고 있던 딸기우유의 연분홍색은 코치닐 색소로 낸 ‘인위적인’ 색이었던 것. 따지고 보면 대다수의 딸기우유에는 생각만큼 딸기가 많이 들어 있진 않다. 딸기 농축 과즙 0.5% 정도가 전부다. 그렇기 때문의 딸기의 붉은색이 우유에 발현될 리가 없는 것이다. 성분을 생각해봐도 딸기(향)우유는 흰색이어야 한다. 어찌 보면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강한 딸기 향과 붉은 코치닐 색소를 써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최근, 이 코치닐 색소가 알레르기를 유발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우유 업계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오랜 세월 붉은색을 유지해왔던 딸기우유에서 코치닐 색소를 대체할 만한 천연 색소를 찾기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결국 업체들은 딸기우유의 붉은색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코치닐 색소를 빼고 흰색 딸기우유를 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식품 업계 중 가장 신속한 결단을 내린 곳이 딸기우유 업체였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저가의 몇몇 딸기우유는 코치닐 색소를 써 붉은색을 띠기도 한다.

그렇다면 문제가 해결된 것 아닌가? 천만의 말씀. 대략 조사해본 것만 나열해보자면 맛살, 햄, 젤리, 사탕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부터 젓갈, 음료, 비타민, 에이드 분말, 치즈 크림, 시럽, 라면 등 다양한 식품에 코치닐 색소가 첨가돼 있었다. 심지어 훈제 오리고기에도 선홍빛의 신선한 육질 색을 내기 위해 코치닐 색소를 쓰고 있었다. 이쯤 되면 코치닐 색소가 안 들어간 식품을 찾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과일 주스를 제조하는 한 유명 식품 업체에 전화를 걸어 ‘굳이 왜 코치닐 색소를 쓰는지’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과일을 짜서 끓이는 농축 과정 중에 원래 과일이 가진 색감이 달라진다. 과일의 원래 색과 가까운 색을 내기 위해 코치닐 색소를 사용한다.” 또 다른 유명 식품 업체는 이렇게 말했다. “코치닐 색소는 조금만 넣어도 제 역할(발색)을 할 수 있는데 이를 대체하기 위해 식물성 색소를 넣는다면 훨씬 더 많은 양을 써야 한다.” 결국 색감과 효율성, 이 두 가지 이유인 것이다. 이는 동시에 식품의 맛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코치닐 색소가 쓰인 수많은 식품은 포장 겉면에 ‘천연 색소 사용’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도대체 이 코치닐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다들 천연 색소라고 홍보하고 있는 걸까.

선인장에 기생하는 벌레에서 유래한 색소

결론부터 말하면 코치닐은 자연에서 채취한 천연 색소는 맞다. 다만 벌레일 뿐이다. 중남미 지역에서 자라는 선인장에는 특이한 벌레들이 기생하고 있다. 일명 연지벌레라 불리는 깍지벌레인데, 새끼손톱 절반만한 크기의 이 벌레들은 선인장 표면에 수십 마리가 다닥다닥 붙어 살며 꼭 번데기처럼 생겼다. 이 벌레의 암컷은 몸의 마디마디에서 붉은빛을 뿜어낸다. 이 벌레들을 선인장에서 산 채로 잡아서 마구 흔들어 스트레스를 준다. 벌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더 진한 붉은색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벌레를 통째로 건조시킨 다음, 여기에 물과 에탄올 등을 섞어 붉은색을 추출한다. 그리고 이를 여과해서 ‘카민’이라는 성분을 뽑아내는데 이 과정에서 벌레의 단백질이 함께 추출될 수 있다고 한다. 카민, 즉 코치닐 색소는 곤충 단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발진이나 알레르기 반응 등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한 병원에서는 코치닐 색소가 들어간 알약을 먹고 22명이 복통을 호소하고, 급기야 1명이 사망한 사례가 있다. 캐나다에서는 한 살 아이가 코치닐 색소가 들어간 유제품을 먹고 피부 발진을 일으켜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 공익과학센터와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는 코치닐 색소의 안전성 연구를 진행, ‘코치닐에서 추출된 단백질이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상당한 증거가 있다’며 코치닐 색소가 들어간 식품은 함유 내용에 대한 별도 표기를 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반면 우리나라 식약처에서는 얼마 전 코치닐 하루 섭취량을 계산해 ‘아직 안전한 수준’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맞지 않고 과연 정교한 실험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코치닐 색소가 들어간 식품을 먹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식품 업체에서는 이상한 꼼수까지 쓰고 있다. 식품 중에는 ‘코치닐 색소 무첨가’라고 겉면에 커다랗게 써서 홍보하는 것들이 꽤 많다. 그러나 뒷면에 적힌 작은 글씨를 자세히 살펴보면 코치닐 색소 대신 ‘락 색소’란 것을 쓴 식품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락 색소도 천연 색소이긴 하다. 그런데 락 색소는 ‘락크패각충’이란 벌레가 내뱉은 분비물에서 추출하는 색소다. 코치닐 색소가 ‘벌레 색소’라면 락색소는 ‘벌레 분비물 색소’인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 등에 따르면 락크패각충은 인도와 중국 등에서 서식하는 벌레로 미국과 유럽엔 잘 알려지지 않은 색소 원료다. 그만큼 관련 연구가 미흡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라운 건, 락 색소의 곤충 단백질 함량이 오히려 코치닐 색소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결국 코치닐 색소 무첨가라고 홍보하고 있는 건어포, 어린이 음료, 맛살, 햄, 베이컨, 사탕, 젤리 등의 식품들이 락 색소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식품 업체들의 ‘눈 가리고 아웅’인 셈이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꼼수 천연 색소
      

김진

동아일보 기자로 채널A 〈먹거리 X파일〉을 진행하며 많은 여성 팬을 확보하고 있다. 유해 식품, 음식에 관한 편법이나 불법은 그냥 지나치지 못해 직접 실험에 참여하거나 형사처럼 잠복근무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기획 여성동아
사진 REX  셔터스톡
디자인 박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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