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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WITH CHANNEL A 김진 기자의 먹거리 XX파일

찬밥의 반격

글 · 김진 채널A ‘먹거리 X파일’ 진행자 | 사진 · 채널A 제공

작성일 | 2015.07.10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찬밥’이 들어가는 표현이 몇 가지 있다. 듣기만 해도 벌써부터 서러운 ‘찬밥 신세’와 매우 다급한 상황에 처한 심정을 나타내는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가 대표적. 찬밥은 두 표현 모두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다. 그런데 이 찬밥이 우리의 살을 쏙 빼줄 수 있다면, 그리고 혈당 수치를 획기적으로 낮춰줄 수 있다면 어쩌겠는가. 여름휴가철을 앞두고 늘어난 뱃살 때문에 고민인 사람들에게 찬밥이 이렇게 경고한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다.”
찬밥의 반격
찬밥과 뱃살. 눈치 빠른 독자들은 상관관계가 전혀 없어 보이는 저 둘 사이의 연결 고리를 추리하고 있을 것이다. ‘혹시 찬밥을 살에 붙이는 건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말하기 전에 멀리 스리랑카에서 발표된 흥미로운 실험 연구 한 가지를 소개한다. 지난 3월 스리랑카의 한 화학공학대학 연구팀은 쌀밥의 칼로리를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저희가 고안해낸 방법은 누구나 집에서 할 수 있는 쉬운 조리법입니다. 오일을 넣고 밥을 한 다음에 냉장고에 넣어서 식힌 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딱딱하지 않고 먹기 좋은 형태로 만드는 겁니다. 만약 이 방법이 통한다면 밥의 칼로리를 50~60%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 -수드하이르 제임스(Sudhair A. James) 스리랑카 화학공학대학 연구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발표. 쉽게 말하면 밥 지을 때 오일을 넣고, 밥을 차갑게 식혀서 먹으면 칼로리가 절반 이상 줄어든다는 놀라운 말이다. 특히 비만의 여러 유형 중 한국인은 탄수화물에 의한 비만이 큰 문제인데, 이 실험대로라면 한국형 비만율을 낮추는 데도 획기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밥을 차갑게 식힌다고 양이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스리랑카 연구팀은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한 걸까? 우리는 스리랑카 연구팀의 발표를 직접 검증해보기로 했다.

실험팀이 사용했다는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쌀 품종인 안남미를 준비한 후 실험 조건대로 쌀 무게의 3%만큼 코코넛 오일을 넣었다. 그리고 이를 중간불에서 25분간 가열해 고슬고슬한 밥을 지었다. 일반 밥보다 찰기가 더 많아 쫀득쫀득하고 코코넛 향이 가득한 코코넛 오일 밥이 완성됐다. 자, 이제 밥을 식힐 차례다. 12시간 동안 냉장 보관한 후 갓 지은 밥과 비교 분석했더니 칼로리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 것이란 스리랑카 연구팀의 주장과 달리 두 밥은 별 차이가 없었다. 어찌된 일일까. 스리랑카 연구팀에게 수차례 전화, 이메일 문의를 남겨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연구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우리가 먹는 쌀을 가지고, 우리의 식문화에 맞춰 흥미로운 실험을 하기로 했다.

찬밥의 반격

찬밥에 많이 포함돼 있는 저항전분은 위에서 흡수되지 않고 대장까지 통과돼 배설된다.

사실 스리랑카 연구팀의 주장엔 상당한 근거가 있다. 찬밥이 칼로리를 줄여주는 데엔 ‘저항전분’이 제 몫을 하는데, 저항전분은 쌀에 포함된 섬유질의 일종으로 쉽게 소화되지 않는(Non-digestible) 특성을 지녔다. 따라서 저항전분이 많을수록 당으로 흡수되지 않아 살이 찌지 않는 것이다. 즉 일반적인 밥의 경우 위에서 소화 과정을 거친 다음 주로 소장에서 체내로 흡수되는데, 저항전분의 함량이 높은 밥의 경우 위에서 분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소장에서 소화가 늦게 되거나 인체에 전혀 흡수되지 않은 채로 배설된다. 이것이 저항전분이 많이 함유된 밥을 먹었을 때 훨씬 낮은 칼로리량을 나타내는 이유다.

이제 ‘우리 스타일’로 실험에 들어갔다. 먼저 일반적으로 우리가 먹는 한국 쌀과 일반 가정에서 흔히 쓰고 있는 콩기름을 준비했다. 코코넛 오일 대신 콩기름을 첨가한 물에 국내산 쌀을 넣은 후 25분간 가열해 밥을 지었다. 이렇게 갓 지은 밥을 냉장고에 넣은 후 12시간 동안 냉장 보관했다. 과연 우리 쌀과 우리 기름을 가지고 밥의 칼로리를 낮출 수 있을까.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먼저 일반적으로 국내산 쌀로 밥을 갓 지었을 때 저항전분 함유량은 1.17%. 코코넛 오일을 넣고 밥을 지었을 때는 저항전분 수치가 1.93%로 증가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콩기름을 넣고 밥을 지었더니 저항전분 수치가 3.17%,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스리랑카 연구팀의 코코넛 오일보다 우리의 콩기름이 저항전분을 높이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이 말은 콩기름을 넣고 밥을 지은 후 냉장했을 때, 갓 지은 밥보다 3배나 칼로리가 줄어든다는 말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코코넛 오일은 탄소가 짧은 것이 많은 반면에 콩기름은 탄소가 긴 것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 탄소 길이에 의해 지방산이 차이가 나고 저항전분의 함량도 차이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말식 전남대 식품영양과학부 교수

찬밥의 반격

1 코코넛 오일, 콩기름, 참기름으로 각각 밥을 짓는 모습. 2 재가열한 밥을 먹은 후 혈당이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3 찬밥 먹고 난감해하는 김진 기자. 4 각 오일별 저항전분 함량 비교표.



감자, 파스타도 12시간 냉장 후 칼로리 낮아져

찬밥의 반격

1 당뇨병 환자 김광숙 씨의 혈당 감소치. 2 당뇨병 환자 한성국 씨의 혈당 감소치.

즉 기름에 있는 탄소와 쌀의 성분 중 하나인 아밀로스가 결합해 저항전분을 탄생시키는데, 콩기름에 있는 탄소의 길이가 코코넛 오일보다 더 길기 때문에 저항전분이 더 쉽게 만들어지고 냉장 환경에서 이것이 최대치로 증폭된다는 얘기다. 여기서 한 가지 고민이 생긴다. 아무리 찬밥이 칼로리를 파격적으로 낮춘다고 해도 퍽퍽하고 딱딱한 찬밥을 어떻게 먹지? 해답이 있다. 12시간 냉장한 이후 전자레인지에서 따끈하게 데워 먹어도 칼로리가 낮아지는 효과는 변함이 없다.

실험을 하던 중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찬밥이 칼로리에 이어 혈당도 낮춰준다는 점이다. 필자를 포함한 6명의 실험 참가자에게 8시간 금식 후 찬밥을 제공해 식전 공복 혈당과 비교해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동일한 실험 조건을 위해 3일 내내 같은 양의 물과 쌀을 사용했고 200g의 밥을 반찬 없이 먹게 했다. 밥을 먹기 전 6명의 평균 공복 혈당은 95.8mg/dL. 3일간의 실험 중 첫째 날은 갓 지은 밥을 제공했고 밥을 섭취한 후 6명의 평균 혈당은 163mg/dL로 급증했다. 둘째 날엔 12시간 냉장 보관한 밥을 먹게 했고 평균 혈당은 151mg/dL가 나왔다. 셋째 날엔 12시간 냉장한 밥을 2분간 전자레인지에 데워 제공했다. 역시 식후 6명의 평균 혈당을 쟀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6명의 평균 혈당 수치가 148mg/dL로 나온 것이다. 6명의 참가자 모두 갓 지은 밥을 먹었을 때보다 혈당이 떨어졌고, 데우지 않은 찬밥을 먹었을 때보다도 수치가 낮았다. 필자의 경우 냉장 후 데운 밥을 먹었을 때 혈당 수치가 30이나 낮게 나왔다. 밥을 차게 했다 데웠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높은 혈당 때문에 고생인 당뇨 환자들에게도 효과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20년간 당뇨로 고생 중인 한성국 씨와 김광숙 씨를 대상으로 5일간 찬밥을 데워 먹게 하는 실험에 들어갔다. 한성국 씨는 한때 혈당 수치가 600을 넘어 의식을 잃기도 수차례. 먼저 갓 지은 밥을 먹었을 때 식후 2시간이 지나고 그의 혈당은 무려 323gm/dL가 나왔다. 정상적인 사람의 혈당 수치인 140의 2배가 넘게 나온 것이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혈당 수치를 떨어뜨리는 일이 간절해 보였다. 5일간 필자가 실험한 방법대로 12시간 냉장 보관 후 2분간 따끈하게 데운 밥을 먹게 했다. 5일 후 그의 혈당은 무려 226mg/dL로 떨어져 있었다. 수치가 97이나 감소한 것이다. 이번엔 김광숙 씨 차례. 그녀 역시 20년간 당뇨약을 먹어왔고 약에 내성이 생겨서 인슐린으로 혈당을 조절하는 처지다. 식후 그녀의 혈당은 336mg/dL. 그녀에게도 역시 5일간 냉장 후 데운 밥만을 먹게 했다. 5일 뒤, 그녀의 식후 혈당 수치는 171mg/dL. 수치가 165나 감소했다. 꿈만 꿔왔던 혈당 수치에 그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저항전분은 먹었을 때 소장에서 흡수가 되지 않고 대장으로 배출됩니다. 먹은 밥량에 비해서 흡수량이 적기 때문에 혈당 상승 억제 효과가 나타나죠.” -이점식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연구관

당뇨 환자의 혈당이 계속 높아지면 뇌심혈관계 질환인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당뇨 망막증, 신부전 등의 여러 합병증이 유발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100 이상 혈당 수치가 떨어진다면 이런 합병증 고민을 말끔히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늘 먹던 밥의 양을 하루아침에 줄이기는 참 쉽지 않다. 당뇨 환자의 혈당이 뚝뚝 떨어진 일도, 운동하지 않고도 칼로리가 3배나 줄어든 일도 늘 먹던 만큼의 밥을 먹고 벌어진 기적 같은 사실이다. 밥을 차게 식혔다 데우기만 했을 뿐인데 말이다. 밥뿐만 아니라 파스타나 감자도 12시간 냉장 보관 후 데워 먹으면 저항전분의 함량이 급증해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늘어난 살을 붙잡고 ‘찬밥 신세’로 있던 독자들이여, 다이어트라면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는 절박한 마음의 독자들이여 당당히 찬밥 신세가 되어라! 이젠 찬밥과 더운밥을 똑똑하게 가려 먹을 때다.

디자인 · 김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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