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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trails #yangyang

관음보살과 서퍼, 여행자가 같은 꿈을 꾸는 곳 양양

손미나의 우리 길 걷기 여행

손미나 기자

2018. 03. 28

계절의 끝과 시작, 그 경계의 어느 날에 양양으로 떠났다. 백두대간이 설악의 대청봉을 힘껏 밀어 올린 후 남은 기력을 다해 땅의 끝자락을 바다로 이어간 곳. 그래서 험하고 아득한 한계령을 지나자마자 진하고 투명한 군청의 아찔한 바다가 땅끝에서 제 아름다움을 펼쳐내며 서로의 풍경을 교차시키는 곳, 그곳이 양양이다. 

그리고 그날의 양양행(襄陽行)을 건넸을 때 진심이 아니면 드러낼 수 없는 반가움으로 그가 동행에 응했다. 한국에 머문 지난 10년 사이 양양에 온 걸 헤아리자면 네 번, 아니 그 이상이라고 하니 어지간한 한국 사람들보다 더 즐겨 찾았다 할 만하다. 공교롭게도 그에게 양양은 눈과 추위의 풍경으로만 기억되고 있었다. 고향 브라질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북반구의 겨울을 맛봐서 행복했다지만, 아직 그는 봄의 양양을 알지 못하는 셈이다. 브라질 청년 카를로스 고리토에게 따뜻한 양양의 추억을 선물하기 위한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삶과 쉼이 공존하는 수산항

항구 왼쪽 봉긋한 수산봉의 전망대에 오르며 내려다보이는 항구, 수산항은 반듯하고 예쁘다. 그 시선을 부두 가까이로 들이대면 새벽 먼 바다에서 삶의 치열함을 쏟아낸 보상으로 얻은 풍성한 해산물들을 부리고 있다. 

어판장 건너에서는 수산항의 또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에, 어떤 것은 꽤 오래전에 만들어진 듯 고풍스럽기까지 한 수십 척의 요트들이 빼곡하게 정박되어 있다! 유럽 휴양지 항구에서나 마주할 법한 풍경을 양양에서 접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양양에 대한 정보 중 ‘요트’는 없었기에 더 새롭고 반가운 발견이다. 카를로스도 양양에 이렇게 멋진 요트 마리나와 클럽하우스가 있는 줄 몰랐단다. 이미 많은 요트 마니아들이 이곳에 자신의 요트를 정박해 세일링을 즐기고 있으며, 요트가 없더라도 체험 세일링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들으며 파란 바다 위 봄 햇살 가득한 선상에서의 시간을 그려보았다. 양양 첫 여정에서부터 머리는 벌써 다음 양양행을 계획하고 있다.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 바다를 앞뜰 삼아 지은 절집 낙산사

절벽 위 의상대와 바닷바람 맞으며 서 있는 한 그루 소나무. 단 하나의 양양 풍경으로 주저 없이 고를 수 있다.

절벽 위 의상대와 바닷바람 맞으며 서 있는 한 그루 소나무. 단 하나의 양양 풍경으로 주저 없이 고를 수 있다.

카를로스에게 낙산사는 유다른 공간이다. 양양 여행마다 이곳 낙산사를 방문했고 외국에서 온 친구들에게도 꼭 권하는 곳이다. 설악산에서 새해 첫 해돋이를 본 뒤 낙산사로 내려와 묵어가거나 템플스테이도 경험해본 그는, 당시 스님과 한참을 나눈 이야기가 인생의 지침이 되고 있다는 마음속 얘기를 들려주었다. 해안 절벽 아래 파도가 조용히 부서지는 솔숲 산책로에서였다. 

낙산사는 먼 나라에서 온 이들에게만 놀랍고 감동스러운 사찰이 아니다. 처음 의상대사가 지은 이후 1350여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이어졌을지 상상해보라. 의상대사가 바닷속에서 떠오른 붉은 연꽃 안의 관음보살을 만났다는 홍련암과 만해 한용운이 머무는 중에 지었다는 바닷가 절벽의 의상대, 예종이 아버지 세조가 죽은 뒤 그 생전의 업으로 저승길이 순탄치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지어 바쳤다는 동종, 바다로 나간 이들의 안녕을 기리는 마음을 모은 16m 높이의 관음보살상이 낙산사를 찾은 이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물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절묘한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제 감동의 몫을 다 해내는 사찰이다.

서퍼들의 자치구죽도해변

양양이 안겨준 의외의 놀라움은 죽도해변에도 있었다. 파도를 향해 거침없는 패들링을 멈추지 않는 이들이 이 작은 마을을 서퍼들의 자유로운 세상으로 바꾸고 있다.

양양이 안겨준 의외의 놀라움은 죽도해변에도 있었다. 파도를 향해 거침없는 패들링을 멈추지 않는 이들이 이 작은 마을을 서퍼들의 자유로운 세상으로 바꾸고 있다.

양양으로 여행 간다는 말을 들은 지인이 대뜸 서핑이란 단어를 꺼냈다. 양양에서 서핑은 뜬금없다 싶어 마음에 두지 않았던 터에 죽도해변에 이르러 번뜩 그의 말이 떠올랐다. 긴 해안은 아니지만 연중 고르게 세찬 죽도해변은 우리나라 서퍼들의 성지가 되었다. 해변에서 한걸음 물러난 해안도로변에는 서핑 보드를 관리하고 대여하거나 강습을 진행하는 전문 숍들이 어깨를 이어가고, 그 사이에 트로피컬풍의 커피하우스와 스낵바들이 있다. 양양이 많이 달라졌다고, 흥미진진한 여행거리들로 풍성해졌다고 하지만 이곳에 대적할 만한 것은 없을 듯하다. 꽤 오랜 시간 해안도로변의 구멍가게로만 지냈을 집들이 요란하고 허세 가득한, 그래서 한편으로는 말을 걸어보고 싶은 카페로 변신했다. 

그 앞에서 서퍼들의 환호성을 미리 상상해보았다.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을 만나다남애항과 남애리

양양 최대 규모이면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로 손색없는 남애항에 들러, 부지런히 바다를 부려놓는 배들을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카를로스를 이끌고 해안길을 걸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초록빛 바다에 익숙했는데 양양의 네이비블루 바다는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라는 그는 저만치 야산을 따라 지붕을 이어가는 해안 마을로 끌리듯 발길을 내딛었다. 화려한 색으로 칠한 지붕과 크게 마음 쓰지 않은 듯한 담장을 올린 집들이 좁은 골목길 양쪽에 이어진다. 모든 삶의 이유가 오롯이 바다와 저 항구에 맞춰져 있을 것이다.

영동 북부 최대 규모, 양양 오일장

양양 오일장을 둘러보면서 영동 북부 지방 최대 규모의 오일장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구나 하는 다행스러움이 몇 번이나 마음을 채웠다. 매월 4일과 9일로 끝나는 날 열리는 양양 오일장은 설악산과 동해에서 난 송이버섯, 약초, 해산물 등을 고루 얻을 수 있는 장으로, 양양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여행자들을 위해 장날 외에 주말장을 열어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변신했다. 신선한 채소와 나물, 먹음직스러운 지역 별미와 해산물 가득한 노점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지갑이 홀쭉해지는데, 그게 또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시장 내 골목 한 자락에는 막걸리 한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은 장터도 마련되었고, 관광객들을 위한 벼룩시장도 열린다. 언뜻언뜻 미래 세계적 관광지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곳이다.

홍합장칼국수


멸치나 다양한 해산물로 맛을 낸 국물에 비법 장으로 얼큰한 맛을 더한 음식을 ‘장칼국수’라고 부르는데, 사실 우리나라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장칼국수는 강원도가 ‘원조’다. 지금도 강릉과 속초 등을 중심으로 시장 거리와 시내에서 강원도식 장칼국수를 내는 곳이 많고 인기도 있다. 양양 오일장에서도 이 진미 장칼국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는 홍합으로 맛을 내 살짝 짬뽕을 닮은 듯한, 그러나 깊은 장맛이 오래 기억에 남는 홍합장칼국수가 별미로 사랑받는다.

설악과 동해를 품은 힐링의 도시, 양양

손미나와 카를로스 고리토가 추천하는 해파랑길 양양 구간

해파랑길 제44코스(12.7km, 도보 4시간 30분)
수산항 - 낙산해변 - 낙산사 입구(낙산사) - 설악해변 - 설악 해맞이공원 

해파랑길 제43코스(9.5km, 도보 3시간)
하조대해변 - 여운포교 - 동호해변 - 수산항 

해파랑길 제42코스(9.9km, 도보 3시간 30분)
죽도정 - 죽도해변 - 38선휴게소 - 하조대 - 하조대전망대 - 하조대해변



손미나 작가와 카를로스 고리토는 해파랑길 걷기에 두루누비(durunubi.kr) 사이트를 활용했습니다.

director 최은초롱 기자 writer 남기환 photographer 김성남 조영철 기자 동영상 연출_김현우 PD designer 김영화제작지원 한국관광공사 취재협조 양양군청 매니지먼트 곽상호 스타일리스트 김기만 어시스트 이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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