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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public_art #interview

모두를 위한 미술을 말하다 아트 컨설턴트 권이선

editor 정희순

작성일 | 2017.07.20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엔 예술 작품이 참 많다. 도시 곳곳에서 만나는 예술, 바로 퍼블릭 아트다. 퍼블릭 아트의 중심지 뉴욕에서 활동하는 권이선(Liz Kwon) 큐레이터를 만났다.
모두를  위한  미술을  말하다 아트 컨설턴트 권이선

1 2013년 5월부터 9월 초까지 진행된 올리 겐저 전시 광경.
2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 트랜스포테이션 허브 ‘오큘러스’.
3 하이라인 파크 전경.
4 권이선 큐레이터 뒤에 걸린 작품은 루돌프 스팅겔 作.

“이 작품이 좋은 이유는 주변 인테리어 속에서 스스로를 과하게 드러내지 않아서예요. 그렇지만 페인팅 자체로서의 예술적 존재감은 엄연히 보여주고 있죠.”
 
호텔 이곳저곳을 찬찬히 둘러보던 그가 개념적인 작업을 하는 이탈리아 출신의 뉴욕 작가 루돌프 스팅겔(Rudolf Stingel)의 작품 앞에 멈춰 섰다. 얼마 전 퍼블릭 아트를 주제로 한 책 〈모두의 미술〉을 펴낸 권이선(37) LYK Art Projects LLC 대표다.

해외의 호텔 아트 컬렉션 사례를 많이 다뤄온 권 대표는 “한국의 호텔도 궁금하다”며 지난 4월 인천 영종도에 문을 연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을 인터뷰 장소로 골랐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쿠사마 야요이, 알레산드로 멘디니 등 대중에게 친숙한 작가들의 작품을 비롯해 수천 점에 이르는 아트 컬렉션을 만날 수 있어 입소문이 난 곳이다.

“‘공간을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채울 것인가’라는 논의는 현대미술 영역에서 갈수록 확대되고 있어요. 현대미술 작품을 보여주는 공간과 환경이 점차 다양해지고, 작품의 형식만 보더라도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등 계속 변화하고 있죠. 그렇게 되면서 현대미술이 일상에 더 가까워졌고 접근성이 높아졌어요. 호텔에서 만날 수 있는 미술 작품도 그중 하나인 셈이죠.”

그는 고려대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문화예술경영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미술의 심장부라 일컬어지는 뉴욕 첼시 지역의 갤러리 디렉터로 다년간 일하며 현대미술과 관련된 여러 전시와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해왔으며, 현재는 뉴욕에서 큐레이팅·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유럽 기반의 글로벌 아트 컨설팅 그룹 벨베누아르(Velvenoir)의 파트너로도 활동 중이다. 그의 아버지는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로 오래 재직하다 한동안 서울시 부시장 겸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을 지낸, 권영걸 계원예대 총장이다.

요즘은 국내에서 퍼블릭 아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서울 시내에도 대중에게 친숙한 공간이나 조형물들이 많이 늘어났죠.
이전에는 퍼블릭 아트가 사회의 신념이나 가치, 이상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담당했어요. 역사적으로 훌륭한 인물의 동상이나 사건에 대한 기념비적인 것들이 그러한 예죠. 하지만 점차 예술 자체로서의 의미가 강조되면서 작품의 형식과 보여주는 방법도 다양해졌어요. 아티스트의 예술적인 의도가 더 존중받게 된 거예요. 요즘은 공원과 보도, 건축물의 내·외부부터 호텔과 패션 스토어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쉽게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을 접할 수 있게 됐어요. 이 모든 것들을 퍼블릭 아트라고 부르고요. 미술과 삶의 영역을 나누는 구분이 점차 흐릿해지고 있는 거예요.

〈모두의 미술〉에서는 뉴욕의 퍼블릭 아트를 다루는데 주로 어떤 작품들이 등장하나요.
단순히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나열하기보다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맞물려 있는 퍼블릭 아트를 직접 보러 다니면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책으로 쓰고 싶었어요. 록펠러센터의 ‘프로메테우스상’이나 미드타운의 길가에 놓인 로버트 인디애나의 ‘러브’ 등도 상징적이지만, 그러한 작품들보다 다양하고 중요하면서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례들을 이야기하고자 했죠. 책을 보시는 분들이 뉴욕의 거리를 거닐며 작품을 보는 듯한 생생한 체험을 하셨으면 해요.

책에 소개된 여러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것 하나만 꼽는다면요.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등장한 작품과 작가들이 모두 특별해서요. 2013년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 전시됐던 올리 겐저(Orly Genger)의 ‘빨강, 노랑 그리고 파랑’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거대한 밧줄 더미에 선명한 색을 입힌 후 일일이 뜨개질을 해서 엮어낸 작품이에요. 여기 쓰인 밧줄은 실제 항구에서 사용하는 선박용이었는데 그걸 엮었다고 상상해보세요. 정말 노동 집약적인 작품인 셈이죠. 그렇게 만든 다양한 높낮이의 작품들 위에서 사람들이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누워서 햇빛을 즐기기도 했죠. 올리 겐저의 특징적인 소재인 밧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에게는 야외 침대와 벤치를 제공해준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뉴욕의 역사는 물론이고 작가에 대한 조사도 꽤 공을 들이셨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발행되는 건축·인테리어 잡지 〈월간 bob〉에 현대미술 작가들의 인터뷰를 기고한 지 8년째예요. 그만큼 다양한 작가들을 만나고 연구할 기회가 많았던 거죠. 그들이 모두 국제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데다 건축과 아트를 넘나드는 대형 설치물 작업을 하는 분들이라, 공간을 다루는 작가들의 데이터가 많았어요. 뉴욕에 산 지 올해로 13년째인데, 현대미술에 대한 여러 정보와 접근이 수월한 것도 한몫했고요. 이런 경험들을 토대로 나름의 자신감이 생긴 거죠.



모두를  위한  미술을  말하다 아트 컨설턴트 권이선

권이선 큐레이터가 김호득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직접 만나본 뉴욕의 현대미술 작가들은 어떻던가요.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일수록 협업에 열려 있다는 거예요.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지면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퍼블릭 아트의 초기 세대라 할 수 있는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와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는 건축가들과 수없이 많은 프로젝트를 남겼어요. 지금 딱 떠오르는 작가는 그룹 UVA(United Visual Artist)예요. 그들은 LED를 이용해 음악과 테크놀로지를 융합한 환상적인 설치물을 제작하곤 하죠. 특히 뮤지션들과의 협업이 유난히 많은데, 미국의 록 밴드 그룹인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콘서트 투어 무대 디자인을 맡기도 했어요. 그만큼 작품과 대중과의 접점이 큰 셈이죠.

우리나라 퍼블릭 아트는 어떤가요.
가장 큰 문제는 다양성의 부재죠. 여러 형태의 공간이 있고 다양한 성격의 아티스트들이 있지만, 각기 프로젝트에 맞게 고루 기회가 돌아가는 것 같지는 않아요. 저는 아티스트를 선발하고 지원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전문가들의 시선이 반영돼야 한다고 봐요.
 
얼마 전 개장한 ‘서울로 7017’은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High Line Park)와 자주 비교됩니다. 책에 하이라인 파크도 등장하던데, 서울로 7017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제가 이에 대한 비교 의견을 낸다는 것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로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직접 보지 않았고, 하이라인 파크만을 많이 이용했으니까요. 많은 경우 ‘퍼블릭 아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뭔가 만들어지면 그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들이 쏟아져요. 하지만 그랬던 곳도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거나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되는 것도 다수 있죠. 한 예로 뉴욕 다운타운, 9·11 테러 이후 월드 트레이드 센터 재건 지역에 세워진 지하철역 ‘오큘러스’가 있어요. 이곳은 스페인계 미국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했는데, 공사가 지연된 데다 막대한 건설비로 인해 부정적인 여론이 강했어요. 하지만 작년에 오픈하면서 장엄하고 특이한 외관으로 건축계의 관심은 물론 뉴요커와 관광객들에게 대표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죠. 이처럼 퍼블릭 프로젝트의 종합적인 평가는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야 알 수 있어요.

한국의 미술관을 미국의 미술관과 비교해보면 어때요.
이번 〈모두의 미술〉을 출간하기 전엔 뉴욕의 뮤지엄을 소개하는 〈뉴욕의 특별한 미술관〉이라는 책도 냈었죠. 기본적으로 뮤지엄은 공공을 위해 세워지는 공간이에요. 그런데 한국의 뮤지엄들은 공공의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 설립 이념이나 개성이 모호한 것 같아 아쉬워요. 가령 미국의 구겐하임 뮤지엄은 ‘20세기 초 유럽의 아방가르드 작품을 뉴욕에 소개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요. 뉴욕 휘트니 미술관의 경우 ‘미국의 젊은 예술가를 후원한다’는 비전으로 세워졌고요. 세계적으로 유수한 뮤지엄들이 맨해튼 내에 몰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기 자신만의 특성으로 단단히 운영되는 데에는 비단 재정적인 측면뿐 아니라 뚜렷한 설립 목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기관에서 미션이 뚜렷하면 프로그램에도 반영돼 고유의 방향성이 생기게 되고, 뮤지엄을 후원하는 층도 이에 관심과 비전을 나누며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죠. 어떤 분야든 성격이 뚜렷해야 성과를 낼 수 있잖아요. 그런데 한국의 뮤지엄들은 어떤 미션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겉으로만 보이는 활동 때문에 제가 미미하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아버님께서 디자인계에 계시잖아요. 어려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겠어요.
아버지는 건축공학을, 어머니는 조각을 하셨어요. 덕분에 어려서부터 디자인을 비롯한 미술 영역을 모두 폭넓게 접할 수 있었죠. 지금도 친정집에 가면 작품을 비롯한 도록들이 너무 많아서 제가 잔소리를 할 정도예요(웃음). 게다가 남편도 뉴욕에서 인테리어·건축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결혼 후에도 공간과 예술 작품, 라이프스타일과 관련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죠. 남동생도 건축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나중에 가족이 모두 재미 있는 프로젝트를 같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돼요. 다르지만 인접한 전문 영역에 몸담은 가족들은 제 자극제예요.

퍼블릭 아트에 집중하게 된 이유가 거기 있었나 보네요.
맞아요. 그러다 보니 호스피탈리티 인더스트리(Hospitality Industry·환대 산업) 쪽으로 자연스레 관심이 좁혀졌어요. 호텔이나 리조트, 쇼핑몰, 레스토랑 등과 같은 공간에서 예술 작품이 어떻게 보이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주목하게 된 거죠. 가족과 휴가를 가도 꼭 직업병처럼 이를 관찰하게 되네요(웃음). 전시 기획 및 컨설팅 서비스를 하는 제 회사에서도 환대 산업 안에서의 프로젝트들을 확대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퍼블릭 아트가 발전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퍼블릭 아트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하는 실수는, 공간을 다 만들어놓은 후 ‘이 공간이 비었으니 조각 작품 하나 가져다 놓지’ ‘여기가 벽이니 그림 하나 걸지’ 하는 거예요. 작품을 하나의 장식 요소로만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좋은 퍼블릭 아트는 공간을 지을 때부터 기능과 성격을 고민해야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아티스트와 기획자(컨설턴트), 그리고 건축 디자이너 간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낼 수 있는 거죠. 퍼블릭 아트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전환할 수 있도록 필요성을 알리고, 아트와 대중의 교차점을 늘리는 것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진 홍중식 기자 REX 사진 제공 LYK Art Projects LLC James Ewing 디자인 김영화 장소협조 파라다이스시티(1833-8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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