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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CRITIC

이 땅의 ‘그냥 오해영’들에게 건투를!

기획 · 김지영 기자 | 글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사진 · CJ E&M 제공 | 디자인 · 최정미

2016. 07. 05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이 날로 인기를 더하고 있다. 이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지 못할 정도다. 외모도, 성격도 특별할 게 없는 ‘그냥 오해영’에게 왜 너도나도 공감을 표하고 그의 사랑을 열렬히 응원하는 것일까.

처음엔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았다. 하지만 2%대로 출발한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의 시청률은 매회 기록을 경신하더니 방송 10회에 이르러서는 케이블 채널 드라마로서는 놀라운 10%에 육박하며 ‘신드롬’의 경지에 올랐다. 도대체 〈또 오해영〉의 무엇이 이토록 대중을 사로잡은 걸까.

사실 멜로드라마는 그 자체로 힘이 빠진 지 오래다. 남녀가 등장해 서로 사랑하고 그 와중에 맞닥뜨린 장애물을 뛰어넘는 장르적 공식들이 뻔한 줄거리로 이어지면서 시청자들에게 더는 신선한 감동을 안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쁘고 멋진 주인공들만 등장하던 멜로드라마가 이른바 사회적 코드들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고 눈여겨볼 만한 성과도 만들어냈다.

지난해 화제가 됐던 MBC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가 외모에 관한 사회적 편견을 로맨틱 코미디에 투영해 큰 성공을 거두었던 것처럼, 〈또 오해영〉 역시 ‘예쁜 오해영(전혜빈)’과 ‘그냥 오해영(서현진)’이라는 두 캐릭터의 비교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면서 주목받게 되었다.

그 사회적 메시지란 〈또 오해영〉이라는 제목의 뉘앙스에서 읽히듯 일종의 ‘우연’과 ‘오해’에 대한 로맨틱 코미디식의 답변이다. 예쁜 미모와 뛰어난 스펙으로 뭘 해도 쉽게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예쁜 오해영’과, 그녀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끝없이 비교되며 고통 받는 ‘그냥 오해영’은 도경(에릭)이라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 이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삼각 구도지만 그 캐릭터들에 ‘오해’나 ‘편견’ 같은 사회적 코드가 들어감으로써 도경의 선택은 그것을 뛰어넘어 그 사람의 ‘진가’를 들여다보는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었다.

결국 ‘그냥 오해영’이란 주목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일반 대중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태생적으로 늘 화려한 위치에서 주목받으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부류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보통 사람들도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작은 위로를 전하는 캐릭터다.



이 드라마는 소외의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사적인 멜로’가 아닌 이른바 ‘사회적 멜로’의 성격을 띤다. 드라마는 후반부로 가면서 초반에 보여준 로맨틱 코미디의 가벼움을 벗어던진다. 그러면서 ‘우연’과 ‘오해’라는 드라마의 장치를 통해 ‘인간의 운명’을 들여다보는 비극의 외피를 입기 시작한다. 즉,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작은 우연들이 모든 인물들을 커다란 비극으로 몰아넣는다는 점에서 〈또 오해영〉은 마치 ‘그리스 비극(디오니소스 제례에서 실연되는 가면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그 인물들이 어쩔 수 없이 처하는 비극을 바라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리스 비극이 의도했던 것과 같은 연민과 동정을 느끼는 동시에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저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비극으로 확장되고, 그저 사적인 멜로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사회적 메시지를 내포한 이야기로 커져가는 이 과정은 〈또 오해영〉이 왜 신드롬을 만들어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본래 멜로드라마는 늘 우리네 삶의 본질에 닿아 있었다는 것. 그래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야기 구조지만 어쩌다 보니 틀에 박힌 구성 속에서 잠시 길을 잃고 있었다는 것. 〈또 오해영〉은 멜로드라마가 누군가를 위로해줄 수 있을 만큼 사회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나아가 인간의 운명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야기 구조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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