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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art #duchamp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변기 뒤샹의 ‘샘’

EDITOR 김명희 기자

입력 2019.02.14 17:00:01

흔하디흔한 소변기 하나로 ‘현대미술’이라는 대어를 낚은 마르셀 뒤샹. 그의 작품이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샘, 1950(1917년 원본의 복제품), 자기 소변기, 30.5x38.1x45.7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샘, 1950(1917년 원본의 복제품), 자기 소변기, 30.5x38.1x45.7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이제 회화는 망했어, 저 비행기 프로펠러보다 멋진 걸 누가 만들어낼 수 있겠어?” 

마르셀 뒤샹(1887~1968)이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항공박람회를 관람한 뒤 친구인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 한 말이다. 이에 앞서 1917년 뒤샹은 이미 현대미술의 중요한 변곡점이 된 퍼포먼스를 벌였다. 당시 독립예술가협회 이사를 맡고 있던 그는 ‘출품비만 내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전시회의 콘셉트에 따라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남성용 소변기에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달고는 ‘알 머트(R. Mutt)’라는 가상 인물 사인을 넣어 출품했다. 전시 관계자들은 대량 생산된 기성품, 그것도 변기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냐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인 끝에 예술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샘’의 전시를 거부했다. 이에 뒤샹은 한 잡지에 알 머트라는 무명 작가를 옹호하는 척하며 이 작품에 대한 글을 투고했다. 

“변기가 부도덕하지 않듯이 머트 씨의 작품 ‘샘’도 부도덕하지 않다. 배관 수리 상점의 진열장에서 우리가 매일 보는 제품일 뿐이다. 머트 씨가 그것을 직접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일상의 평범한 사물이 실용적인 특성을 버리고 새로운 목적과 시각에 의해 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생각으로 창조된 것이다.” 

아티스트가 한 땀 한 땀 공들여 제작한 작품만이 예술이라고 믿던 시대, 뒤샹은 이미 만들어진 것(Ready-made)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현대미술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러한 뒤샹의 예술을 집중 조명하는 ‘마르셀 뒤샹’전(~4월 7일)을 마련했다. 


에로즈 셀라비로 분장한 뒤샹, 1921, 만 레이, 젤라틴 실버 프린트, 17.8x13.3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에로즈 셀라비로 분장한 뒤샹, 1921, 만 레이, 젤라틴 실버 프린트, 17.8x13.3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뒤샹은 수학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으며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로 국제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할 만큼 체스 실력이 뛰어났다. 그의 남다른 사고력이 기존의 틀을 깨는 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는 대목. 한때는 ‘에로즈 셀라비’라는 여성의 자아로 위장해 활동하며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했다. 요즘 유행하는 ‘젠더리스(Genderless)’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뒤샹이 말년에 비밀리에 작업한 유작 ‘에탕 도네’는 낡은 문에 뚫린 2개의 구멍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제작한 설치 작품으로, 구멍 안으로는 다리를 벌린 채 누워 있는 여성의 누드가 보인다. 몰래카메라 기법을 작품에 차용한 최초의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샘’과 ‘에탕 도네’ 디지털본을 비롯한 뒤샹의 회화와 드로잉, 사진 1백50여 점을 통해 그의 남다른 삶과 작품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기성품을 예술로, 몰래카메라 기법 최초 차용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변기 뒤샹의 ‘샘’
로토릴리프(광학 원반), 1935, 오프셋 석판인쇄로 양면 인쇄된 마분지 원반, 지름 20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로토릴리프(광학 원반), 1935, 오프셋 석판인쇄로 양면 인쇄된 마분지 원반, 지름 20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 2), 1912, 캔버스 유채, 147x89.2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 2), 1912, 캔버스 유채, 147x89.2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이번 전시는 가장 방대한 뒤샹 컬렉션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과의 협업을 통해 이뤄졌다. 자신의 작품이 한 곳에 모이기를 원했던 뒤샹은 오랜 후원자이자 친구이던 월터와 루이즈 아렌스버그 부부를 설득해 자신의 작품 2백여 점을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기증하도록 했다. 뒤샹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인연도 흥미롭다. 뒤샹은 1, 2차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작품이 유실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자신의 작품들을 미니어처로 만든 이동식 미술관 ‘여행가방 속 상자’라는 작품을 만든다. 버전에 따라 수록된 작품도 조금씩 다른데 국립현대미술관은 2005년 이 중 하나(1941년 에디션)를 구입하면서 역대 최고가인 62만3천달러(약 6억원)에 구입해 고가 매입 논란이 일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작품과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소장한 1966년 에디션이 함께 전시된다. 두 작품을 비교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여성동아 2019년 2월 6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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