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성동아 로고

LifeStyle #korea_embassy

해외에서 ‘성추행’ 신고, 한국 대사관 냉대받은 에디터 체험기

editor 정희순

작성일 | 2017.04.05

해외에서 ‘성추행’ 신고, 한국 대사관 냉대받은 에디터 체험기
해외여행 중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아무래도 현지 대사관이다. 지난 호 마감을 끝내고 친구와 자유 일정으로 터키 카파도키아 지역을 여행하던 중 말 그대로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다. 현지 투어를 진행한 터키인 한국어 가이드가 불쾌한 신체 접촉을 시도한 것이다. 충격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기도 막막했다.

우선 의사소통의 어려움에 대한 걱정이 컸다. 제대로 처벌이 될 지도 모르는데 여행지에서 금보다도 귀한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그냥 넘긴다면 그 터키인 한국어 가이드가 더 많은 한국인 여성을 타깃으로 삼을 것이 자명해 보였다. 불행 중 다행은 물증이 없는 대부분의 성추행 사건과 달리 그가 내게 카카오톡으로 은밀한 제안과 함께 ‘증거’를 남겼다는 것.

그날 저녁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킨 후 호텔에서 근무 중이던 터키 여성 훌리아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 훌리아는 우리가 묵었던 작은 호텔 주인의 딸로, 작년 결혼한 남편과 함께 부모님의 일을 돕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몹시 흥분하며 “우리에게 너희들의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어. 네가 원한다면 너와 함께 경찰서에 가줄게” 하고 말했다. 그의 보복이 두렵다고 하자 “내가 밤새도록 너희 방문 앞에서 보초를 서겠다”며 용기를 북돋워줬다. 그 말만으로도 참 고마웠다.

이튿날 오전, 주터키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터키를 여행하던 자국민의 안전이 위협받았다는 사실을 전하고 혹시 경찰 신고 과정에서 대사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대사관의 반응은 황당했다. 상황 설명을 다 듣고 나서 꺼낸 직원의 첫마디가 “유감입니다만, 적극적으로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였기 때문.

해당 직원은 “대사관은 경찰 신고 이후 조사 과정이 불리하게 진행되거나 지연될 경우 정부 차원의 대응만을 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지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즉각 알리라는 외교부의 문자 메시지는 빈말이었던 걸까. 얼마 전 대만에서 일어난 제리 택시 성폭행 사건이 떠올랐다. 외교부의 늑장대응이 꼭 대만에서만 있는 일은 아닌 듯했다.

결국 대사관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훌리아와 함께 경찰서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하루를 꼬박 써가며 나와 현지 경찰의 의사소통을 도왔다. 그녀의 도움으로 카파도키아 괴레메 시의 누리 신길 시장과 면담까지 하게 됐는데, 그는 “괴레메 시를 대표해 사과하고 싶다”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경찰 조사가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조사가 끝난 후 결국 피의 남성은 경찰에 입건됐다. 만약 내가 정확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영어 사용에 어려움이 있었다면, 훌리아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상황이 어땠을까. 아마 터키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만을 갖고 여행을 마쳤을 것이다. 현지에서 성추행을 당하고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는 여성 관광객들의 푸념이 넘쳐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진 rex 디자인 조윤제
LifeStyle 목록보기 좋아요

Print Edition

How to be a woman

생각하는 여자가 읽는 매거진!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번호목차

독자알림

더보기

Follow up on SNS

여성동아 에디터가 핫뉴스, 최신 트랜드와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전해 드립니다.

  • 여성동아 페이스북
  • 여성동아 인스타그램
  • 여성동아 유튜브